버틸 명분 없는 ‘구본홍 카드’ 누가 지키랴
  • 감명국 (kham@sisapress.com)
  • 승인 2008.10.14 13: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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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TN 구본홍 사장의 거취 문제가 마침내 한나라당 내부에서도 거론되기 시작했다. 몇몇 당내 인사들은 계속 버티는 구사장이 정권에 부담을 준다며 스스로 용단을 내려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와 함께 구사장이 ?

▲ 10월9일 열린 방송통신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증인 자격으로 출석한 최시중 방통위원장(왼쪽)과 구본홍 YTN 사장(오른쪽)이 인사를 나누고 있다. ⓒ시사저널 임준선

한나라당이 구본홍(YTN 사장)을 비호할 이유도 근거도 없다. 구씨는 처음부터 임명 자체가 무리였다. 그 이후 선출 과정이나 인사나 각종 강경 조치가 사태를 키운 것 같다. 구사장이 일 처리를 잘못한 데 따른 것이다. (YTN 사태가) 길어지면 정권에 큰 부담이 된다. 구씨가 알아서 처신을 해야 한다.”

지난 10월7일 국회 문화체육관광방송통신위원회(이하 문방위)의 국정감사장에서 만난 한나라당의 한 의원이 익명을 전제로 기자에게 건넨 말이다. 그는 최근의 YTN 사태에 대해 “여론이 좋지 않게 흘러가고 있다”라고 우려했다. “제대로 출근도 하지 못하고 밖에서 맴도는 구사장의 모습도 딱하지만, 그렇다고 6명이나 되는 기자를 무더기로 해고하는 것은 또 뭔가. 너무 나갔다”라며 인상을 찌푸렸다. 문방위 한나라당 간사를 맡고 있는 나경원 의원은 “실질적으로 구사장은 YTN 이사회에서 정상적인 절차를 통해 임명된 사장이다. 정부·여당이 관여할 필요가 없다. 민주당과 노조의 ‘낙하산 인사’라는 주장에 동의할 수 없다”라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하지만 그녀의 말은 같은 여당의 동료 의원들에게조차 별로 인정을 못 받는 분위기이다. 한나라당의 중진급인 또 다른 한 의원은 “내막을 자세히 알 수는 없지만 구사장의 지도력에 문제가 있는 것은 맞는 것 같다. 한계에 왔다고 본다”라는 입장을 밝혔다. 그에 따르면, 최고위원회의에서도 YTN 사태가 공식적으로 논의되지는 않았지만 구사장의 지도력에 문제가 있다는 지적은 제기된 것으로 알려졌다. 또한, 향후 사태의 추이를 봐가며 구사장의 거취 문제가 최고위원회의에서 공식적으로 논의될 수도 있음을 내비쳤다.

YTN 사태 열쇠 쥐고 있는 청와대의 선택에 달려

이처럼 구사장을 바라보는 한나라당 내부의 심경은 복잡하다. 일단은 선 긋기에 주력하는 모습이다. 지금의 YTN 사태는 한나라당과 별개의 문제라는 것이다. 문방위 소속 한나라당의 또 다른 한 의원은 “민영 회사의 노사 문제 아니냐. 우리가 논의할 필요는 없다. 다만, 우리의 입장으로서 부담스러운 것은 (해고 결정의) 시기 조절을 좀 해줬어야 했다는 점이다. 국감이 열리고 있는 이 시기에 왜 하필…”이라며 불편한 기색을 감추지 않았다. 최고위원을 지낸 한나라당의 한 중진 의원은 “아무래도 한나라당이 여당으로서 청와대나 정부의 정책과 보조를 맞춰 뒷받침해야 한다. 그런 면에서 한나라당도 (YTN 사태에 대해) 책임을 피할 수는 없다. 청와대와 정부가 펼치는 언론 정책이 민주주의의 큰 틀에서 문제가 있다고 하면 쓴소리를 마다하지 않는 문화가 당에 살아 있어야 한다”라고 밝혔다. 이미 한나라당 주변에서는 ‘구본홍 사퇴 불가피설’이 급속도로 확산되는 분위기가 감지된다.

지난해 이명박 캠프의 ‘언론특보단’에 구사장 등과 함께 몸담았던 한 인사는 “아무래도 YTN을 너무 만만하게 본 것이 아닌가 싶다. KBS 사장 문제에는 그렇게 신중하고 조심스럽게 접근했으면서도 YTN은 막 밀어붙이듯이 했다. 기자들은 자존심으로 먹고사는 사람들인데, 그들의 자존심을 오히려 자극시켰다”라고 분석했다. 그는 “이제 구사장이 사태의 책임을 지고 용퇴하고, YTN 내부 출신 중에서 현 정부와도 어느 정도 교감할 수 있는 인사가 나서야 이 사태가 원만히 해결되지 않을까 싶다”라는 나름의 해법을 제시했다. 그는 “KBS 이병순 사장 같은 인사를 말하는가”라는 질문에 “일종의… 그렇다고 볼 수도 있다”라는 입장을 나타냈다.  

하지만 상황은 그리 단순치 않아 보인다. 심지어 현재 구사장 출근 저지 투쟁을 벌이고 있는 YTN 노조측조차도 “청와대가  그냥 그렇게 백기를 들고 물러나겠는가”라는 회의적인 시각을 나타내고 있다. YTN 사태가 이제 ‘낙하산 인사’ 논란을 넘어서서 현 정부가 강력히 추진하는 미디어 정책의 전체 동력에도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인식이 그것이다. 밀릴 수 없다는 힘의 싸움이라는 것이다. 

YTN 사태의 키를 쥐고 있는 곳이 청와대라는 인식은 공공연한 사실로 통하고 있다. 이제 구사장의 손을 떠났고, 결국 청와대에서 어떤 선택을 하느냐가 관건이라는 것이다. 최근 들어 박선규 청와대 언론2비서관이 YTN 사태와 관련해서 자주 등장하는 것도 이런 정황을 뒷받침한다는 분석이다.

고려대 출신으로 KBS 기자였던 박비서관은 지난 2월1일 돌연 회사에 사표를 냈다. 4월의 18대 총선에 출마하기 위해서였다. 그는 한나라당 서울 관악 을에 공천 신청을 했다. KBS에서 <8시 뉴스> 앵커와 <일요진단> 진행 등을 맡아 유권자에게 어느 정도 친숙한 인물이었기 때문에 그의 공천은 유력해 보였다. 하지만 당 재정위원장을 맡고 있던 김철수 후보에게 밀려 낙천하고 말았다. 결과적으로 서울 전역을 거의 싹쓸이하다시피 했던 한나라당은 이 지역에서 민주당에 패해 “인지도가 높은 기자 출신 후보를 냈어야 했다”라는 뒤늦은 자성론이 일기도 했다. 이런 여러 가지 정황이 참작되었음인지 그는 6월29일 청와대에 입성했다.

최근 해고당한 YTN 기자 “청와대는 구씨 사퇴 안 시킨다”

▲ YTN 건물 후문에서 YTN 노조원들이 노조원 중징계 철회를 요구하며 구본홍 사장 출근 저지 투쟁을 벌이고 있다. ⓒ시사저널 박은숙

박비서관은 청와대에 들어가자마자 YTN 문제에 상당한 관심을 기울인 것으로 보인다. 본인은 강력하게 부인하고 있지만 최근 그런 의심을 충분히 살 만한 행보들이 잇따라 드러나고 있다. <기자협회보>는 10월8일자 보도에서 ‘박비서관이 7월3일 서울 시내 한 호텔 15층 스위트룸에서 구사장을 만났다. 이날 만남은 배석자 없이 두 사람만 있었으며 30~40분가량 대화를 나눴다’라고 밝혔다. 청와대에 출근한 첫 주에 구사장을 따로 만났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박비서관은 “그날은 만난 적이 없다. 그날 외에 구사장을 만났는지에 대해서는 확인해줄 수 없다”라고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청와대에서 YTN 기자와도 자주 만나 YTN 사태에 대해 의견을 교환한 것으로 알려졌다. YTN의 청와대 출입기자였다가 이번에 구사장측으로부터 해고 조치를 당한 우장균 기자는 박비서관의 KBS 후배 기자 출신이다. 그에 따르면 구사장의 출근 저지 투쟁이 한창이던 8월 말 박비서관의 요청으로 몇 차례 만났다는 것이다. 우기자는 최근 한 신문 칼럼을 통해 “박비서관은 구씨가 사원들의 마음을 얻지 못하는 등 능력이 없음은 인정하나 청와대는 구씨를 사퇴시키지 않을 것이라며 그것이 대통령의 뜻이라고 말했다”라고 폭로했다. 이에 대해 박비서관은 반론 글을 통해 “우기자가 먼저 내게 구사장 사퇴만이 해결책이라며 청와대가 나서서 도와달라고 부탁했다. 그런 우기자에게 ‘청와대가 나설 수 있는 사안이 아니다. YTN 문제는 근본적으로 구사장과 노조, 두 당사자들이 해결할 수밖에 없는 문제이며 그것이 대통령의 뜻이기도 하다’라고 답했다”라고 반박했다. 그러자 우기자는 다시 “8월20일 박비서관이 전화를 걸어 먼저 만나자고 해서 춘추관에서 만났다. 누가 먼저 만나자고 했는지는 통화 내역을 공개하면 드러날 것이다”라고 재반박했다. 이에 대해 박비서관은 “내 반박 글 어디에도 ‘우기자가 내게 먼저 전화를 걸었다’라는 말은 없었다”라며 한 발짝 물러서는 태도를 보였다.  

박비서관의 행보가 돌출되자 청와대에서 서둘러 진화에 나서는 모양새이다. 청와대의 한 핵심관계자는 10월8일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구사장과 박비서관의 7월 회동설에 대한 정확한 내용은 잘 모르지만 방송을 담당하는 언론비서관이 방송사 관계자를 당연히 만날 수 있는 것 아니냐”라는 입장을 밝혔다. 그는 “YTN은 엄연히 민간 상장 회사인데 거기에 무슨 청와대와 정부 입장이 따로 있겠는가”라며 개입설을 부인했다. 반면 한나라당의 최고위원을 지낸 바 있는 한 중진 의원은 “논란은 있지만 여러 정황상으로 봤을 때 (두 사람 간) 접촉은 있었던 것 같다. 정부가 한편에서는 원칙이라고 주장하면서 이면에서는 정치적 조율과 정치적 의도 때문에 밀어붙이는 정황이 같이 나오고 있어 원칙과 다른 오해와 의문을 사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라고 평가했다. 

일각에서는 ‘미디어 상왕’으로 불리는 최시중 방통위원장의 의중을 주목해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민주당의 문방위 의원들은 “구사장 뒤에 이 나라의 미디어 정책을 좌지우지하는 최위원장을 비롯해 신재민 문화부 차관, 박선규 비서관 등이 포진하 고 있다는 사실은 명확하다”라고 일제히 입을 모으고 있다. 천정배 의원은 “구사장 외에도 신차관과 박비서관, 여기에 이팔성 우리금융지주회사 회장까지 가신들이 공모해서 최근 우리은행이 소유하고 있던 YTN 지분 일부를 매각하고 YTN의 민영화 가능성을 흘리며 노조를 협박했다는 것이 상식을 가진 사람들의 판단이다”라고 주장하고 있다. YTN 노조의 한 관계자는 “이명박 정부의 모든 미디어 정책과 방향은 최위원장의 머리에서 나온다”라고 단언했다.

‘미디어 상왕’ 최시중 방통위원장의 의중에 달렸다는 주장도

그래서 최위원장과 구사장 관계의 끈끈함이 어느 정도인지를 거론하는 이가 많다. 구사장은 지난해 6월 이명박 후보 캠프에 합류했다. 전직 언론인 출신들로 언론특보단이 구성되면서 양휘부 전 KBS 창원방송 총국장이 단장을 맡고 구사장은 그 밑에서 방송총괄본부장을 맡았다. 두 사람은 경남고-고려대 4년 선후배지간으로 KBS는 양단장이, MBC는 구사장이 각각 담당하는 형식이었다. 물론 언론특보단의 컨트롤타워 역할은 당시 캠프의 고문으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했던 최위원장이 담당했다. 당시 캠프의 방송전략팀에 몸담았던 한 관계자는 기자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8월 한나라당 경선 때까지는 구사장이 많은 활약을 했다. 그런데 경선 이후 김인규 전 KBS 이사가 영입되어 방송전략실장을 맡으면서부터 사실상 김 전 이사가 팀을 주도했다. 김 전 이사는 최위원장의 절대적인 신임을 얻고 있었고, 추진력도 상당히 뛰어난 ‘돌진형’이어서 이대통령도 좋아했다. 이때부터 사실상 방송 담당은 기존의 최시중 고문-양휘부 단장-구본홍 본부장 라인에서 ‘최고문-김인규 실장’ 직계로 이루어졌다”라고 전했다.

아무튼 당시 핵심 라인에 있던 네 사람은 새 정부 출범 후 모두 ‘전리품’을 챙기는 듯했다. 우선 최고문이 방통위원장에 올랐고, 양단장은 한국방송광고공사 사장에, 구사장은 YTN 사장에 각각 앉았다. 김실장 역시 KBS 사장으로 유력시되었으나, 특보 출신 KBS 사장이라는 비난 여론이 들끓자 스스로 사장 공모를 포기한 바 있다. 하지만 그는 이번에 새롭게 발족될 ‘한국디지털미디어산업협회’의 초대 회장으로 유력하게 거론되고 있다. 최위원장이 방·통 융합의 상징으로 내세우는 IPTV 사업의 핵심을 담당하는 자리이다. 최위원장의 각별한 비호가 있었다는 후문이다. 위의 관계자는 “김실장에 대한 최위원장의 신임이 확고하다. KBS 사장설에 대해 논란이 일자 정권에 부담주기 싫다며 스스로 퇴진한 것에 대해서도 상당한 점수를 주었고, 그래서 어떤 식으로든 중용하겠다는 열정이 강한 것으로 들었다. 반면, 구사장은 지난 노무현 정부 때인 2005년에도 MBC 사장에 공모하는 등 사장 욕심이 강했다. 자신으로 인한 논란이 일었을 때 끝까지 자리를 고집하는 모양새는 정권에 부담을 줄 수밖에 없다. 그런 면에서 봤을 때 최위원장이 그다지 탐탁지 않게 여긴다는 얘기가 있다”라고 전했다.

그에 따르면 얼마 전 캠프 방송전략팀 관계자들의 친목 모임에서도 “구사장의 행태가 적절치 못하다. 정권의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서라도 용퇴의 결단을 내려야 하는 것 아닌가”라는 얘기가 많았다고 전했다. 이 관계자는 구사장이 물러설 수밖에 없는 배경을 이렇게 설명했다.

“구사장은 자신의 경영 능력에 대한 자신감이 강한 듯했다. 실제 MBC 경영본부장 시절 어느 정도 경영 능력을 인정받았다는 평도 듣고 있다.  ‘지방의 작은 방송국이라도 내게 경영을 맡기면 상당한 성과를 낼 자신이 있다’라고 주변에 말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아마 그가 YTN 사원들에게 자신의 대통령 특보 이력만 보지 말고 경영 능력을 평가해달라고 호소하는 데도 어느 정도 진심은 담겨 있을 것이다. 방송국 사장이 꿈인 그로서는 YTN을 한 번 제대로 경영해보겠다는 야망과 자신이 있을 것이다. 실제로 그렇게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결국, 언론사이고 언론인이기 때문에 야망과 자신감만으로는 안 되는 것이 있다. 명분이 뒷받침되지 않는다는 게 그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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