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자 폭탄’에 무너지는 샐러리맨의 비명
  • 이석 (ls@sisapress.com)
  • 승인 2008.10.14 1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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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판 서브프라임’ 사태가 오고 있는 것일까. 은행 빚을 얻어 한 채 두 채 집을 장만한 적지 않은 가정에서 파탄의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대부분 남들 따라 쉽게 돈을 벌어보겠다며 아파트나 상가를 구입했던 샐러리맨들이다. 이들은 월급이나 연봉을 몽땅 은행 이자 갚는 데 쓰고 마이너스 통장으로 연명하는가 하면, 경매로 넘어가는 집을 속수무책 쳐다보며 한숨만 짓고 있다. 봉급 생활자들은 한국 경제를 떠받치는 대표적인 중산층이다. 이들은 지금 자신이 하류층으로 전락하지 않을까 전전긍긍하고 있다. 한때 탐욕과 한탕 심리에 빠져 덜컥 부동산에 손을 댔다가 결국, 혹독한 대가를 치르게 된 것이다. ‘부동산 대란’의 망령에서 헤어나지 못해 허덕이는 중산층을 구제할 방법은 무엇일까. <시사저널>은 그 실상을 파헤치고 해결책을 찾아보았다. 


사례1- 한 중견 기업의 과장으로 결혼 5년차인 김 아무개씨(34). 서울에 아파트를 한 채 장만하면서 자신이 대한민국의  중산층에 들어갔다고 자부하고 살아왔다. 그러나 김씨는 요즘 밤잠을 설치기 일쑤이다. 불어나는 대출 이자를 갚지 못해 집이 경매에 넘어갈 뻔했기 때문이다.

지난 2005년 1억원을 빌려 무리하게 아파트를 구입한 것이 화근이었다. 당시 주변에서 ‘○○가 산 아파트가 얼마 올랐다’ ‘얼마 투자해 얼마를 벌었다’라는 식의 얘기가 남의 일처럼 들리지 않았다. ‘자고 나면 얼마가 올랐다’는 신문 보도를 접할 때마다 넋 놓고 있다가는 혼자만 바보가 될 것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마침 부모님이 가까운 곳에서 살라며 대림동 아파트 인근으로 이사를 오지 않겠냐는 제안을 했다. 김씨는 부모님의 도움을 받고 은행으로부터 1억원을 대출받아 현재의 28평형 아파트를 2억5천만원에 구입했다. 당장 80여 만원만 이자로 물면 되었고, 집값의 상승률이 이자율보다 훨씬 높아 문제될 것은 없었다.

그는 “2년여 만에 집값이 1억원 정도가 올랐다. 그나마 우리는 빌라형 아파트여서 상승률이 높지 않았다. 인근 아파트의 경우 같은 평수의 매매가가 5억원에 육박했다”라고 설명했다.

그런 김씨의 가계가 최근 들어 생계비를 걱정할 정도의 심각한 타격을 받고 있다. 부동산 가격이 꽁꽁 묶인 데다 거래마저 사라졌던 지난 2년여 만에 대출 금리가 두 배 가까이 뛰면서 이자 또한 급격히 증가했기 때문이다. 김씨의 월 3백만원 수입으로 1백50만원으로 불어난 이자를 상환하고 두 자녀의 교육비를 비롯한 고정 생활비를 쓰고 나면 식음료비 대기도 빠듯하다. 문제는 다음 달부터이다. 원금에 대한 거치상환분을 내야 하기 때문에 김씨는 앞으로 적자 생활을 해야 할 판이다. 그렇지 않아도 마이너스 통장에 매달려 부족한 생활비를 메우던 터에 월급을 몽땅 집에 털어놓고도 생계조차 막막해지게 되었다.

이자 부담에 마이너스 통장 잔고는 이미 바닥

김씨에게 한때 중산층의 표상이었던 ‘마이 하우스’는 이제 인생의 걸림돌이다. 그는 퇴근할 때 자신의 아파트를 쳐다보면 흉물처럼 보인다고 했다. 값을 후려쳐 집을 내놓았지만 거들떠 보는 사람이 없다. 마이너스 통장 잔액까지 바닥이 났다. 이자 연체금이 몇 번 생기자 집이 경매에 넘어갈 위기에 처했으나 부모님의 도움으로 간신히 한숨을 돌릴 수 있었다. 김씨는 요즘 하루하루 보내기가 힘겹다고 했다.사례2- 대기업 부장인 김 아무개씨(48)는 재테크를 위해 재건축 아파트를 잡았다가 요새 은행 이자만 매달 6백만원 가까이 물고 있다. 그의 연봉 7천5백만원. 월 급여 실수령액이 6백만원이 안 되기 때문에 연봉 전체를 이자로 날리고 있는 셈이다.

김씨 역시 이런 상황이 올 줄은 몰랐다고 한다. 김씨가 재건축 아파트를 구입한 지난 2004년까지만 해도 부동산 경기는 최고조에 달했다. 그는 경기도 산본에 32평짜리 재건축 아파트를 3억원에 구입하면서 이 중 1억8천만원을 대출받았다.

문제는 지난 2006년 2월 아파트의 재건축이 이루어지면서 시작되었다. 김씨는 부모님과 살림을 합치기로 하고 52평형을 신청했다. 추가 분담금이 3억8천5백만원에 달했고, 이 돈은 부모님이 현재 살고 있는 아파트를 처분해 마련하기로 했다. 그러던 차에 미국에서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가 터졌다. 부동산시장은 더욱 얼어붙었고 매수세는 완전히 사라졌다. 결국, 분담금까지 은행에서 빌리면서 빚은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내년에 입주하면 내야 할 등기 비용 3천만원까지 합칠 경우 6억원을 은행빚으로 안고 있는 셈이다.

주변에서는 “손해를 보더라도 아파트를 팔아라”라고 말한다. 그러나 속 모르는 소리이다. 아파트를 구입한 지 3년이 지나면 양도세 중과 대상에서 벗어날 수 있다. 김씨의 경우 집을 산 지 3년이 지났기 때문에 이 아파트를 팔아도 문제될 것은 없었다. 하지만 최근 재건축 관련법이 바뀌어 팔고 싶어도 팔 수 없는 처지이다. 김씨는 “재건축을 위해 잠시 이주한 시기는 거주 기간의 산정에서 제외된다. 이 기간 동안 집을 팔면 투기한 혐의를 받아 상당한 세금을 물어야 한다”라고 털어놓았다.

현재로서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는 형편이다. 그러는 사이에 이자 비용은 계속 불어나 김씨의 생계는 말이 아니다. 아이들은 다니던 학원을 모두 그만두었다. 김씨는 “말이 대기업 부장이지 사는 모양새는 도시 빈민이나 다를 것이 하나도 없다. 이자 폭탄이라는 소리가 나와 웃어넘기곤 했지만 집 한 번 잘못 장만했다가 집안이 쑥대밭이 되고 있다. 월급쟁이가 소득 전체를 은행에  바치고 있으니 앞날이 암담할 뿐이다”라고 한탄했다.

대출 이자만 6백만원 내는 재건축 아파트도

 

사례3- 대기업 차장인 서 아무개씨(46)는 지난 2006년부터 아내 명의로 임대 사업을 시작했다. 그동안 모아놓은 돈과 부모님에게 사정해 어렵게 받은 20억원이 종자돈이었다. 그러나 현재는 절반인 10억원이 날아갔다. 남은 돈마저도 팔리지도 않는 아파트나 상가 건물에 묶여 있어 있으나 마나하다.

서씨는 지난 2006년 3월 용인 죽전지구에 32평형 아파트를 구입했다. 당시 서울 목동이나 죽전 등 버블 세븐 지역은 아파트값이 1주일에 1천만원씩 상승했다. 당시 서씨가 살고 있던 32평형의 서울 화곡동 아파트가 4년간 5천만원도 오르지 않은 것과는 대조적이었다. 그래서 지금 잡아놓지 않으면 늦겠다는 생각에 4억7천만원을 들여  죽전의 아파트를 구입했다. 그는 “전 주인이 1억6천만원에 들어왔다는 얘기를 듣고 잠시 망설였다. 그러나 살까 말까 망설이는 사이 집값이 수천만 원이나 올라 생각하고 말고 할 여지가 없었다. 다급한 마음에 전세 1억7천5백만원을 안고 지금의 아파트를 구입했다”라고 설명했다.

나머지 돈은 강남의 한 상가 건물에 투자했다. 캐나다 토론토에 있는 아파트에도 은행 대출을 끼고 4억원을 투자했다. 그는 “지난 5년간 한국의 부동산 가격은 계속 상승했다. 그러나 캐나다의 경우 가격 상승 폭이 그다지 크지 않았다. 마침 캐나다 영주권이 나온 터여서 3억원을 대출받아 구입했다”라고 말했다.

한동안 수입이 괜찮았다. 죽전 아파트는 가격이 계속 상승했다. 강남 상가 건물 역시 병원이 밀집해 있어 한동안 임대 수입이 쏠쏠했다. 그러나 요즘 서씨는 자신이 왜 이렇게 일을 벌였는가 한탄하며 후회하고 있다. 버블 세븐의 거품이 꺼지면서 죽전 일대의 아파트 가격은 뚝뚝 떨어지기 시작했다. 자신의 아파트는 현재 1주일에 3백만원씩 가격이 떨어진다고 한다.

서씨 역시 처분을 생각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그러나 팔려고 해도 사려고 나서는 사람이 없다. 구입 가격보다 1억원이나 싼 3억7천만원에 내놓았는데도 보러 오는 사람조차 없다. 그동안 차질없이 임대료를 챙겼던 강남의 상가 역시 6억7천만원에서 5억원으로 가격이 떨어졌다. 지난 8월 계약이 만료되었는데 들어오려는 사람이 없어 지금은 텅텅 비어 있는 상태이다. 들어오는 돈은 없이 매달 80만원씩 관리비만 물고 있으니 답답한 지경이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미국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의 여파로  캐나다에 투자한 아파트 가격도 3분의 1 토막이 났다. 이곳 역시 그동안 분양이 안 되어 이자를 포함한 관리비로만 매달 1백80만원씩 나가고 있다. 환율 또한 계속 오르고 있어 서씨의 숨통을 죄고 있다. 서씨는 “회사에서 받는 월급 4백만원으로는 이자를 메우는데, 턱없이 모자란다.

죽전 아파트와 강남 상가를 팔려고 내놓았는데 매매 상담조차 들어오지 않는다. 부동산이 애물덩어리인 줄 이제야 알게 되었다. 이러다가 금융 비용에 눌려 거리에 나앉는 신세가 되지 않을까 걱정된다”라고 말했다.
세 사람은 한국 사회를 대표적으로 상징하는 중산층이다. 이들은 지금 이자 폭탄에 눌려 생계 걱정까지 해가며 하류층으로 전락하게 되지 않을까 전전긍긍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한탕 심리에 편승해 무작정 부동산에 손을 댔다가 받는 대가치고는 너무나 혹독하다. 그러나 이들 같은 중산층 가계의 파산 조짐은 간단하게 넘길 일이 아니다.  

소비의 중심축을 형성하고 있는 이들이 또다시 무너지면 나라 경제는 기반이 허물어지는 악순환에 처하게 된다. 문제는 향후 상황조차 그다지 녹록하지 않다는 점이다.

투자금 20억원, 2년 만에 절반으로 ‘뚝’

최근 <부동산 대폭락 시대가 온다>를 출간한 김광수경제연구소 선대인 부소장은 “지난 2003년 발발한 신용카드 대란은 저소득층에 많은 영향을 미쳤다. 그러나 최근 발생한 부동산 거품 붕괴는 중산층의 생계에 치명타를 가하고 있다”라고 지적했다.

 ‘한국판 서브프라임’의 도래 가능성을 놓고 전문가 집단과 시장, 정부의 견해가 엇갈리고 있지만 우리는 지금 언제 터질지 모를 뇌관을 안고 있는 셈이다. 현재 전세계가 우려하고 있는 대공황이 우리에게 부동산 대폭락으로 나타난다면 은행 빚을 지고 집을 장만한 수많은 중산층이 금융 비용을 감당하지 못하고 하류층으로 떨어질 수밖에 없다. 3백조원에 달하는 주택담보대출이 결국, 한국 경제의 명운을 가르게 된 것이다. 

김선덕 건설산업전략연구소 소장은 “이미 지난 2004년 한 차례 부동산 위기가 찾아왔었다. 지방 부동산 경기의 침체는 이때부터 나타났다. 수도권의 경우 금리 인하 등을 통해 봉합하기는 했지만 위험 요소는 여전했다. 그 부작용이 최근 경기가 위축되면서 터져나오고 있는 것이다”라고 설명했다.

윤채현 한국시장경제연구소 소장은 “어차피 부동산도 주식이나 채권, 환율 등과 맞물릴 수밖에 없다. 미국 등 선진국이 충격을 받는 상황에서 우리나라만 충격에서 벗어날 가능성은 많지 않다. 현재로서는 어떤 식으로든 그 충격을 완화해 한국판 서브프라임 사태가 오지 않도록 바랄 뿐이다”라고 말했다. 
   


제1 금융권만 괜찮으면 다야? 문제는 ‘부동산 PF 부실’이라고!

한국판 서브프라임 사태의 우려에 대해 정부나 금융 당국은 “가능성이 없는 시나리오”라고 잘라 말하고 있다. 금감원은 “은행권의 연체율이 9월 기준으로 0.68%에 불과하다. 주택 가격 대비 대출 비율도 40%로 80~1백10%에 달하는 미국과는 차이가 있다”라고 그 근거를 대고 있다.

이런 가운데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이광재 의원(민주당)이 최근 ‘한국판 서브프라임 사태 안심할 수 없다’라는 제목의 정책 보고서를 통해 70조원이 넘는 부동산 PF(프로젝트 파이낸싱) 부실 가능성을 제기해 눈길을 끌고 있다.

보고서에 따르면 부동산 연체율은 금융 당국의 발표와 달리 매월 상승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6월 말 0.38%에서 7월 말 0.43%, 8월 말 0.51% 등으로 계속 높아지고 있는 추세이다. 저축은행(12조2천억원)이나 캐피털 사(4조3천억원)의 경우 연체율이 각각 14.3%, 4.2%로 더 심각했다.

이의원은 “1금융권에서 2금융권으로 이동한 부동산 PF 대출이 지난해 중반 이후 캐피털 사까지 확대되고 있다. 캐피털 사의 연체율은 지난해 말 1.3%에서 올해 6월 말 기준 4.2%로 악화되었다. 여기에 중산층마저 무너질 경우 걷잡을 수 없는 상황으로 치달을 수 있다”라고 경고했다.

전문가들의 시각 또한 이의원의 보고서와 크게 다르지 않다. 중산층의 경우 경제 활동의 중심이다. 이들의 몰락은 경제 전반의 어려움을 가중시킬 뿐 아니라 금융권에도 불똥이 튀게 될 것이라는 지적이다.

전문가들마다 약간씩의 차이를 보이기는 했지만, 취득 가격 대비 25% 하락을 마지노선으로 보고 있다. 윤채현 한국시장경제연구소 소장은 “LTV(주택담보인저이율)가 40~50% 정도이고 4억원에 아파트를 구입한다고 가정할 때 아파트 가격이 25% 떨어지면서 본인 돈은 1억원이 남는다. 은행이 담보권 설정을 1백30%로 하기 때문에 4천만원 정도가 최종적으로 남게 된다. 적정한 하락 마지노선이 유지된다면 3백만명 정도가 그다지 큰  타격을 받지 않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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