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아노 치는 외로운 영혼
  • 이재현 기자 (yjh9208@sisapress.com)
  • 승인 2008.10.21 1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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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재 재즈 피아니스트 루카 플로레스의 삶과 죽음

▲ 감독: 리카르도 밀라니 / 주연: 킴 로지 스튜어트
지금 세대들이 들으면 희한한 일이겠지만 4050세대들에게는 아련한 추억으로 남아 있는 것이 있다. 학교에서 단체로 영화를 보러 가는 일이다. 더러는 학교 강당으로 쳐들어와서 상영하는 ‘경천동지’할 일도 있었다. 그렇게 해서 본 영화가 <이순신>이고 <사운드 오브 뮤직>이고 <벤허>이다. 

음악 영화의 효시라고 불러도 좋을 <사운드 오브 뮤직>은 그들에게 감동 그 자체였다. 별로 예쁘지 않은 쥴리 앤드류스가 가정교사로 들어가 아이들과 함께 부른 <도레미 송>은 인구에 회자되었고, 그 가족들의 음악회 도중 <영광의 탈출>은 엔딩 크레디트가 올라갈 때까지 검은 교복의 중학생들을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하게 했다. 그 후 1985년에 개봉된 <아마데우스>는 그 어느 학교도 단체 관람을 강요하지 않았다. 열등감에 빠져 평생을 죄의식에 갇힌 살리에르의 “내가 모차르트를 죽였다”라는 대사로 시작하는 <아마데우스>는 우리에게 경박하기 한이 없지만 천재로서의 모차르트를 음악과 함께 낱낱이 보여주었다.

<피아노, 솔로>도 한 천재의 불행한 삶을 그리고 있다. 피아니스트를 엄마로 둔 루카(킴 로지 스튜어트 분)는 어린 시절을 아프리카 케냐에서 보낸다. 그는 두 누이와 형과 함께 해변에서 놀며 엄마와의 추억을 만들어나간다. 그러던 어느 날, 엄마의 차를 타고 치과로 가던 루카에게 평생 씻을 수 없는 사건이 벌어진다. 교통사고로 엄마를 잃은 것이다. 사업이 바빠 어쩌다 집에 들르는 아버지는 어린 네 아이를 친척들에게 뿔뿔이 입양시키고 그 때문에 엄마를 잃은 루카는 가족까지 잃은 신세로 자란다.

교통사고, 엄마의 죽음, 악몽

엄마의 피를 이어받은 루카는 피아노 연주에 천부적인 재능을 발휘하면서 한 재즈 클럽에 들어간다. 클래식만 연주하던 그에게 재즈는 새로운 장르이지만 카페의 연주에서 청중들은 그의 연주에 열광한다. 그러나 루카는 날이 갈수록 동료 연주자들과 갈등을 빚고, 엄마에 대한 기억에 괴로워하는 그는 영혼이 육체에서 빠져나갈 것 같다는 고통을 호소한다. 자신이 엄마를 죽였다는 생각과 아버지가 아니었으면 엄마는 죽지 않았을 것이라는 생각이 그의 ‘천재’를 압도하는 것이다. 아름다운 피아노 선율과 함께 영화는 계속 관객들을 괴롭게 한다. 공동묘지 구덩이에 처참하게 내던져지는 모차르트를 보고 손수건을 꺼내들었던 저 1985년이 다시 되살아난다. 10월23일 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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