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루하고 졸리운 건 수험생도 못 참아
  • 김지혜 (karam1117@sisapress.com)
  • 승인 2008.10.21 16: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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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능 앞둔 학생들, 특색 없는 무료 EBS 인터넷 강의 외면

▲ 불티나게 팔리는 EBS 수능 방송 교재들. 그러나 교재들에 비해 EBS 인터넷 강의 활용률은 높지 않다. ⓒ시사저널 박은숙

사교육비 절감과 공교육 정상화를 명분으로 내세운 EBS의 인터넷 강의(EBSi)가 언젠가부터 학생들에게 ‘지루하고 졸리는 프로그램’으로 인식되고 있다. 강의 내용이 학교 수업을 반복하는 데 불과하거나 깊이가 없어 중·상위권 학생들이 대학수학능력시험을 준비하는 데 미흡하다는 지적도 많다. 그래서 고3 학생들의 상당수는 EBS 인터넷 강의를 외면하고 유료 인터넷 사이트나 학원 또는 과외 공부로 눈길을 돌리고 있다. 그러다 보니 EBS의 인터넷 강의 덕분에 사교육비를 줄였다는 학부모나 학생들은 찾아보기 힘들다. 한때 인기 있었던 EBS 인터넷 강의가 왜 이렇게 찬밥 대우를 받게 되었을까.

한나라당 이경재 의원실이 제공한 자료에 따르면 EBSi에 2008년 1월에서 9월까지 1주일에 ‘한 번이라도’ 로그인한 고등학생은 16.3%이다. 하지만 이 수치는 접속자 모두를 고등학생이라고 가정했을 때의 이야기이다. 게다가 학생들은 각 대학에서 발표하는 수시 경쟁률을 확인하거나 각종 수험 정보를 찾기 위해 EBSi에 로그인하는 경우가 많아 실제 인터넷 강의의 이용률은 더욱 낮을 것으로 추정된다. 인터넷 사이트의 점유율 조사 기관인 ‘랭키닷컴’에 따르면 2008년 10월14일 현재 EBSi의 점유율은 22.3%로 1위인 ‘메가스터디’의 26.88%에 밀리고 있다. 중학생들이 듣는 ‘메가스터디 엠베스트’까지 합하면 메가스터디의 점유율은 31.59%로 EBSi를 10% 포인트나 앞선다.

유료 인터넷 강의를 더 선호하는 것으로 드러나

실제로 학생들은 유료 인터넷 강의를 EBSi보다 훨씬 선호하고 있다. 서울 강남 학원가에서 만난 고등학생들은 “대부분 EBSi보다 인기 있는 유료 인터넷 사이트를 이용한다. 유료 인터넷 강의를 듣는 친구가 훨씬 많다”라고 말했다. <시사저널>은 EBS 인터넷 강의의 이용 현황을 알아보기 위해 서울 지역 고등학교 학생 100여 명에게 간단한 설문조사와 함께 인터뷰를 실시했다. 또, 지방에 사는 몇몇 학생과 교사들을 대상으로 전화 심층 인터뷰를 했다.

학생들은 왜 EBSi의 무료 강의 대신 과목당 최소 5만원이 넘는 유료 강의를 듣는 것일까, 설문지를 통해 제시한 ‘EBS 인터넷 강의의 단점이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70%의 학생이 “지루하다”라거나 “재미없다”라고 대답했다. 실제로 유료 인터넷 사이트에서 활약하는 유명 강사들은 외모부터 눈길을 끈다. 미남 미녀 강사들이 새빨간 원색이나 파스텔톤 의상을 입고 진한 색 뿔테 안경과 화려한 메이크업으로 강한 인상을 준다. 그들이 툭툭 던지는 농담, 특이한 목소리나 제스처는 학교에서 학생들 사이에 화젯거리가 된다.

반면, EBS 인터넷 강의에 대해 묻자 대부분 학생들은 ‘유료 사이트의 강의만큼 재미나 흡입력이 못하다’라고 응답했다. 서울 영일고의 박 아무개 학생은 “EBSi는 강사 혼자 강의하고 그걸 찍는 ‘원맨쇼’이다. 혼자 말하다 보니 농담도 안 하고 생동감도 없다. ‘이런 것은 시험에 절대 안 나온다’와 같이 속 시원한 힌트를 주지도 않는다”라고 말했다.

게다가 학생들은 EBS 강의를 ‘무료이니까 한 번 들어보는 강의’ 정도로만 생각하기 때문에 사교육의 대체 수단이 되지 못한다. 대학교 2학년생인데 다시 수능을 준비하고 있다는 노 아무개군은 “EBS와 다른 유료 인터넷 강의를 둘 다 듣는데 이용 방법이 다르다. 핵심 강의는 유료 사이트에서 돈 내고 열심히 듣고 무료인 EBS 강의는 문제집 풀다가 모를 때 가끔 들어가 찾아본다”라고 말했다. 관악고의 최 아무개 학생도 같은 대답을 했다. “EBS 인터넷 강의를 듣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다른 학원이나 유료 인터넷 강의를 줄이는 것은 아니다. 굳이 하나만 선택하라면 유료 인터넷 강의를 선택하는 학생이 더 많을 것이다.”

학생들은 EBS 강의로 수능을 준비하기에 턱없이 부족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다른 사교육을 포기하지 못한다고 한결같이 말한다. 양정고의 박 아무개군은 “전문적인 강의를 듣기 위해서 7만~8만원짜리 사회탐구 강의를 듣는다. EBS에도 비슷한 강의가 여러 개 있는데 심화 과정이 없고 평이한 강의뿐이어서 심층 학습에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다”라고 털어놓았다.

이런 상황이다 보니 EBS 강의가 사교육비를 절감하는 효과는 미미하다. EBS의 이러닝 제작팀의 담당자는 “EBSi로 매년 10만원가량 사교육비 절감 효과가 있었는데, 올해에는 25만원까지 절감한 것으로 조사되었다”라고 말했지만 교육 현장에서 만난 학생들의 의견은 달랐다. EBS 강의를 1주일에 1회 이상 듣는다는 학생들도 “무료이기 때문에 간혹 보는 것이지 다른 사교육비를 쓰지 않는 것은 아니므로 사교육비 절감 효과는 거의 없다”라고 주장한다. 



담당 강사에 인센티브 없어 ‘비효율’…개선책 찾아야

지방도 사정은 비슷하다. 30명인 한 반에서 5~6명 정도만 학원이나 과외 같은 사교육을 받는다는 충남의 한 고등학교. 이곳에서도 학원이나 과외가 드물다 보니 유료 인터넷 강의에 대한 선호가 뚜렷했다. 고3인 권 아무개군은 “인터넷 강의 사이트 C에서 22만원을 내고 수학 강의를 듣는다. 마음이 급하니 비싸도 성적과 직결되는 강의를 듣게 된다. 유료 강의가 비싸서 부담되는 학생은 PMP에 불법 다운로드받아 들을 만큼 선호도가 높다”라고 말했다.

현재 EBS에서 인터넷 강의를 담당하는 김 아무개 강사는 수험생들이 EBS의 인터넷 강의를 외면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현상이라고 했다. “구조적인 문제이다. 강사는 수강 학생 수에 따른 인센티브가 없으니 의욕이 생기지 않고, 외주업체의 PD들은 실적을 위해 강의 편수를 늘리는 데에만 급급하다.”

그는 또 “EBS 내부에서 ‘공영방송은 시청률 생각 안 한다. 사람들이 안 보는 것을 만드는 것이 공영방송이다’라는 우스갯소리를 한다. 얼마나 무책임한 발상인가”라고 비난했다. 대형 인터넷 강의 사이트에서 강사들은 효과적으로 전달하는 화법과 필기방법을 연구하고, PD와 카메라맨들은 지루함을 없애고  ‘상품 가치’를 높이려고 애쓰는 것과 비교된다는 것이다.

EBS 이러닝 제작팀의 담당자는 “지루하다는 지적을 보완하기 위해 지난해부터 현장 강의도 더 늘리고 강의 평가 제도도 도입하려고 한다. 하지만 사기업처럼 스타 강사에 매달려서 인센티브를 주면서 운영할 수는 없다”라고 말했다. 물론 사교육을 받을 수 없는 도서 벽지에서는 EBS 강의가 나름으로 유용하다.

전북 고창 지역의 한 교사는 “학생들에게 아침마다 EBS 인터넷 강의를 듣게 한다. 사교육이 전무한 이곳 아이들에게는 그나마 교육 기회의 격차를 줄이는 기회이다”라고 강조한다. 하지만 한나라당 이경재 의원은 “EBSi의 본래 목적은 사교육비 절감이었는데 정작 수험생들에게 외면을 받고 있다면 무언가 개선책이 필요하다. 내실 있는 강의를 제공해서 사교육 수요를 줄이는 방안을 찾도록 EBS가 달라져야 한다”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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