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무슨 잘못을 저질렀나 ‘보자’
  • 뉴욕·이철현 편집위원 ()
  • 승인 2008.10.21 17: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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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 충격> <서브프라임 해결책> <비우량 담보 대출…> 등 책으로 보는 미국 금융 위기

▲ 로버트 쉴러의 (왼쪽)과 마크 잔디의 .

헨리 폴슨 미국 재무장관이 10월14일 ‘구제금융 조처’를 발표하자 반짝 상승했던 주가가 이틀을 견디지 못하고 이내 곤두박질쳤다. 만신창이가 된 월스트리트에 대한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 온갖 방법이 동원되고 있으나 ‘백약이 무효’이다. 간신히 금융시장의 목을 조르던 패닉을 가라앉히자 이제 실물 경기 위축이 다시 패닉을 불러왔다.

미국에서 경제학자라는 타이틀을 달고 있는 이들은 저마다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담보 대출) 부실이 일으킨 금융 위기를 분석하면서 나름의 해결책을 제시하고 있다. 저마다 접근 방식과 분석 기법이 다양해 해석과 주장이 ‘백화제방, 백가쟁명’ 식으로 나오고 있다. 과연 미국의 금융 위기는 왜 일어난 것일까, 우리나라에는 어떤 영향을 미칠까, 이 위기가 언제까지 지속될 것인가 하는 화두는 당분간 세계의 핫이슈가 될 수밖에 없다.

접근 방식·분석 기법 다양해 전문가들도 추천

이런 궁금증과 관련해 주목되는 책이 세 권 있다. 마크 잔디 무디스 수석연구원이 쓴 <금융 충격(Financial Shock)>과 로버트 쉴러 예일 대학 교수가 집필한 <서브프라임 해결책(The Subprime Solution)> 그리고 리처드 비트너의 <비우량 담보 대출 관계자의 고백(Confessions of a Subprime Lender)>이 그것이다. 이 책들은 전문가들로부터 금융 위기를 가장 정확하게 예측·분석한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마크 잔디 수석연구원은 채권시장 연구 분야에서 세계 최고라는 찬사를 받고 있다. 그는 <금융 충격>에서 서브프라임 모기지가 잉태되는 순간부터 성장하기까지의 과정을 실증적으로 분석했다. 내 집 마련이라는 꿈을 이루고자 하는 이들이 자기 신용도와 소득을 숨기고 주택담보대출을 받았고, 수입 극대화에 눈이 먼 대출 기관들이 무분별하게 대출 상품을 뿌릴 때 서브프라임 모기지라는 괴물이 미국 모기지업체 장부에 잉태되었다고 보았다.

앨런 그린스펀 전 연방준비제도이사회 의장은 활황에 집착하느라 거품 붕괴의 가능성을 무시했으며, 월스트리트는 규제와 통제가 없는 공간에서 온갖 분석 툴을 동원해 모기지에 기초한 갖가지 파생 상품이라는 프랑켄슈타인을 만들어냈다고 비판했다. ‘금융 위기 책임론’에 시달리고 있는 그린스펀 전 의장이 ‘모기지에 기초한 파생 상품은 감당할 수 있는 이에게 리스크를 이전하는 탁월한 상품’이라고 극찬했던 사실도 꼬집었다. 이처럼 정부의 보호 아래 자라난 서브프라임이라는 괴물은 미국 안으로 들어오는 외국 자본에 의해 무한 성장했다는 것이 그의 분석이다.

이런 바탕 위에서 그는 10단계의 해결책을 제시했다. 부실 자산을 처리하는 방안부터 시작해 대출 규정과 모기지 중개업자(브로커) 면허제를 도입하자고 권고한다. 금융시장 투명성을 높이고 그를 위해 금융 규제 조치를 혁신하자고 제안하고 자산 거품 등에 주목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론을 제기할 수 없는 명제들이다. 문제는 이 명제들을 실현 가능한 정책으로 바꿀 구체적 방안이 빠져 있다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이 역작은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를 종합적으로 이해하는 데 적합하다. 어쩌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원인을 파악하는 것이 문제 해결의 출발점이기 때문이다.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 한국에도 ‘타산지석’

로버트 쉴러 교수는 투기성 거품론에 관한 권위자이다. 그는 저서 <서브프라임 해결>에서 ‘주택 가격 거품과 그 붕괴 과정을’ 행동주의 심리학에 기초해 설명했다.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의 기원을 심리적인 측면에서 고찰한 것이다. 쉴러 교수는 자산 거품은 부동산시장에 대한 잘못된 판단에 기초해 발달된 비합리적인 행동이 전염병처럼 퍼져나가면서 형성된 것으로 규정했다. 주택시장의 악순환 이전에 너무 과도한 선순환이 존재했다는 것이다. 2000년~06년 사이 미국의 집값은 빠르게 치솟았고, 사람들은 더 큰 돈을 거머쥐고, 더 비싼 집을 사기 위해, 더욱 더 큰 모기지를 끌어다쓰며 거품이 점점 커졌다는 분석이다. 이런 분석은 ‘거품 붕괴론’이 나오는 우리나라 주택시장에 대해서도 바로 적용할 수 있을 것 같다. 그가 제시한 해결책은 금융 교육과 정보 확산, 미래 주택시장 개발이다. 하지만 미래 주택시장도 투기성 거품이 나타나는 것을 피할 수는 없다. 정보 기술의 발달로 과거 어느 때보다 금융 정보가 시장에 충분히 흐르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인들은 금융 위기에 처한 뒤에야 쉴러 교수의 다음 말을 실감하고 있는 중이다. “자본주의 경제는 규제가 없으면 제대로 작동하지 못한다. 착한 행동을 강요할 누군가가 필요하다. 모두가 관대하고 선의를 갖고 있는 것이 아니며 공익 정신의 소유자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의 주범들은 비이성적으로 행동했을까? 사람들은 자기 돈을 한 푼도 들이지 않고 주택 담보 대출을 받아 집을 샀다. 집값이 오르고 있었으니 담보 가치를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 집값이 떨어지자 미련 없이 집을 모기지업체에 넘기고 손 털고 시장에서 나왔다. 주택담보대출시장에 참여한 대출 업체, 브로커, 자산 감평사, 투자은행, 신용평가기관, 헤지 펀드는 거품이 한창인 시절에 엄청난 수수료를 챙길 수 있었다. 엄청난 수입이 발생하는데 이 게임에 참여하지 않는 것이 비이성적이었다.

이 논란에 대한 답은 리차드 비트너가 쓴 <비우량 담보 대출 관계자의 고백>에서 찾을 수 있다. 대부분 비우량 담보 대출 고객들은 자신들이 무엇을 하는지를 알았다. 브로커들은 대출 신청자들이 신용과 소득원이 명확하지 않았지만 상품 판매에만 열을 올렸다. 상품 개발자들은 오르기만 하는 자산 평가액의 위험을 모른 체했다. 투자 은행은 파생 상품을 가능한 빨리 팔려고 했다. 신용 평가 기관은 그들에게 투자 적격 등급을 주었다. 그들은 평가 모델이 하자가 있다는 것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그 결과 무책임한 대출, 사기와 부정이 금융 산업 전체에 퍼졌다. 비트너는 이러한 행태를 ‘닭똥으로 치킨 샐러드를 만드는 방법’이라고 규정했다.

결국 이들은 경제학 용어인 ‘구성의 오류’를 일으켰다. 개인 차원에서 최선의 행위가 집단적으로는 경제에 악영향을 미친 것이다. 비트너는 이해 충돌을 해소해야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제안한다. 하지만 글로벌 금융 위기는 주택시장 참여자의 비이성적 행위로만 설명될 수는 없다. 에드워드 챈슬러 GMO 자산분배팀장은 ‘전세계에 걸쳐 발생한 부동산 거품을 하나로 설명할 수 있는 것은 비정상적으로 낮은 금리’라고 지적한다. 전세계 중앙은행들이 금리를 낮추고 통화를 과다하게 공급해 자산 거품을 만들었고 그것이 비이성적인 행위와 잘못된 대출 결정으로 이어졌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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