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스트리트는 정직하지 않았다”
  • 뉴욕·이철현 편집위원 ()
  • 승인 2008.10.21 1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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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부동산 서비스업계 큰손’ 데이비드 미촌스키 콜드웰뱅커프리뷰인터내셔널 사장 인터뷰

뉴욕도 무너졌다.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담보 대출) 사태로 미국 집값이 곤두박질치던 와중에도 올해 초까지 꿋꿋이 버티던 뉴욕의 집값이 떨어지고 있다. 데이비드 미촌스키 콜드웰뱅커프리뷰인터내셔널 사장은 지금까지 20년 넘게 부동산 서비스업계에 몸을 담았지만, 세계 경제의 수도인 맨해튼의 집값이 무너지는 것은 처음 본다고 말했다. 금융 위기의 진앙지인 것치고는 하락 폭은 크지 않은 것이 다행일 뿐이다. 뉴욕 집값마저 떨어졌으니 전세계 집값의 하락 추세는 빨라질 것이다. 국내 집값도 이미 지속적으로 빠지고 있다.

미촌스키 사장은 미국 뉴욕 맨해튼 미드타운에 본사를 둔 종합 부동산 서비스업체의 최고 경영자이다. 그는 모기지 분양 개발을 자문하는 부동산 중개 업무를 수행하면서 월스트리트와 부동산이 미국 주택과 금융시장을 어떻게 붕괴시켰는지를 목도했다. 그는 한국도 월스트리트에서 볼 수 있는 금융과 부동산의 변태적 결합을 조심하라고 경고했다. 헨리 폴슨 미국 재무장관이 금융 위기 대책을 발표한 10월14일 맨해튼 매디슨 애비뉴 555에 자리 잡은 그의 사무실을 찾았다.

지금 뉴욕 부동산 경기는 어떤가?

최악이다. 2/4분기와 비교해 3/4분기 부동산 매매 건수가 줄어들었고 가격은 떨어지기 시작했다. 가격의 추가 하락은 피할 수 없다. 월스트리트에서 일자리 1만개가 없어진 것이 고급 주택시장에 치명적이다. 이 추세는 내년 중반까지 크게 변하지 않을 듯하다. 그나마 뉴욕은 미국의 다른 지역보다 상황이 낫다. 비어 있는 사무실의 비율이 전체 사무실의 0.5~1%에 불과하다. 주택 재고 증가율은 1년 전과 비교해 35% 늘어났다. 하지만 다른 도시의 주택 재고량은 100~2백%씩 늘어났다. 판매 수입은 24% 줄었으나 마이애미나 캘리포니아 같은 곳보다는 상대적으로 여유가 있다.

부동산시장의 바닥이 언제일지 가늠할 수 있겠는가?

예측하기 쉽지 않다. 지난달에 지금과 같은 금융 위기 사태가 일어날 것이라고 생각해본 사람이 있었겠나? 좋은 변수와 나쁜 변수가 불거지면 시장의 반응 속도가 광속에 가까워 섣불리 예측하는 것을 어렵게 한다. 대출 자격 요건을 갖춘 주택 보유자에게 시중 금리보다 낮은 담보 대출 프로그램이 나오면 24시간 안에 주택시장 위기는 해결할 수 있을 듯하다. 하지만 지금처럼 유동성 부족 사태가 지속되고 빚을 갚지 못해 차압당한 주택들이 쏟아져나오면 1~2년 걸릴 수도 있다. 

서브프라임 모기지 위기를 해결하려면 무엇을 해야 하는가?

어떤 의미에는 서브프라임 모기지 위기 사태는 끝났다. 모기지 상품을 대출한 지 2년이 지났다. 현재 주택담보대출의 심사 조건이 상향 조정되었다. 이제 집을 사려면 담보 대출 못지않게 자기 돈이 있어야 하고 직장과 소득이 있다는 것을 입증해야 한다. 이 조치들이 모기지시장을 많이 청소해주었다. 미국 주택담보대출시장에서 서브프라임이 차지하는 비율은 9%에 불과하다. 미국 주택 보유자의 50%는 고정 환율 모기지를 이용한다. 35%는 전혀 대출을 받지 않았다. 부동산시장 자체의 기초는 좋다. 문제는 가격이다. 매매 건수가 25% 줄어들면 다시 가격을 하향 조정해야 한다. 더욱이 주택값을 내리누를 만한 요소가 넘친다. 모든 시장은 극단으로 치닫는 성향이 있다. 지금 부동산시장은 지나치게 빠져 있다.

한국이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 같은 금융 위기에 빠지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정직해야 한다. 한국 금융 기관은 자기가 파는 대출 상품이 건전한 것인지, 고객 신용도나 지불 능력은 제대로 평가했는지, 담보 자산 평가는 객관적인지와 같은 아주 기본적인 물음에 정직하게 대답해야 한다. 월스트리트는 정직하지 않았다. 미국에서 가장 똘똘한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에서 그와 같이 해괴한 파생 상품들을 팔면서 실물 경기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몰랐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 또, 집값은 계속 오르기만 할 것이라고 믿었을 리 없다. 그냥 눈앞에 있는 이윤을 좇다 보니 눈앞에 위험이 보이는데도 애써 눈을 돌리거나 모른 척했다.

적절한 금융시장 규제책도 마련되어야 한다. 금융 당국은 금융 산업의 성장을 방해하지 말아야 하지만 그렇다고 월스트리트처럼 제멋대로 행동하게 해서는 큰 화를 부른다. 부동산시장도 마찬가지이다. 대출자가 보유한 신용도, 담보 가치, 소득 같은 요건들을 꼼꼼히 챙겨서 보아야 한다.

앞으로 금융 산업과 부동산시장의 관계가 어떻게 변하리라고 보는가?

지난 10년 동안 금융과 부동산은 전세계적으로 증권화했다. 그러다 보니 주택담보대출을 받지 않는 사람을 찾아보기 힘들게 되었다. 하지만 그 덕분에 지난 10년 동안 부동산시장에 유동성이 풍부해졌다. 부동산 금융의 미래는 아직 정립되지 않았다. 월스트리트 금융 기관들은 미래에 모기지 유동화 증권을 만들어낼까? 이 질문에 대한 답은 ‘예스’이다. 하지만 어떤 형태로 진화할지는 명확하지 않다. 미국 연방 정부가 은행 지분을 보유하게 된다. 그러다 보니 연방 정부가 대출을 장려하려면 은행을 움직이려 할 것이고, 경기를 진작하기 위해 모기지 총액을 늘리는 정책 수단을 활용할 수도 있겠다.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가 전세계 부동산시장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

매매 위축이다. 그것이 전 산업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분명히 미국 부동산 경기는 35~65% 하락했다. 매매 위축은 시장 내 유동성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친다. 주택담보대출이 원활하지 못하면 시장 내 유동성은 줄어들고 결국, 자산 매매 능력 자체가 빠르게 사라질 수 있다.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가 어떻게 지금과 같은 금융 위기로 비화했다고 보나?

첫째, 부동산시장의 위기는 정치적 결단에 의해 야기되었다. 부시 행정부는 주택 보급률을 높이기 위해 담보 대출 기준을 크게 완화했다. 이 정책은 상대적으로 대출 자격 요건이 떨어지는 이들까지도 내 집 마련을 가능하게 했다. 서브프라임 모기지업체인 페니매이와 프레디맥은 조건을 완화해 대출을 늘리라는 압력을 받았다. 둘째, 페니매이와 프레디맥 경영진이 경영 실적을 높여 성과급이나 상여금을 받고자 위험도 높은 상품에 투자했다. 탐욕이 정치적 부추김에 의해 눈을 뜬 것이다.

셋째, 월스트리트가 잘못된 계량 분석 툴로 모기지 관련 위험을 평가하고 모기지 자산을 한데 모으거나 다시 분류해 새 파생 상품을 만들었다. 그 과정에서 월스트리트는 전세계 투자 기관과 협력했다. 해당 상품은 전세계 100개 금융 기관에 팔렸다. 넷째, 미국 신용 평가 기관의 실수이다. 투자 부적격 상품에 최상위 등급인 AAA를 준 것이다.

마지막으로 모두 사람의 지지였다. 모든 이들이 위험 요소에 주목하기보다 돈을 버는 데 빠져 그 결과에 대해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모기지 중개업자(브로커)는 알면서도 위험도가 높은 여신을 팔았다. 월스트리트는 리스크는 분산하거나 이전할 수 있다고 꼬드겼다. 고객들은 자기 분수를 넘어서는 대출을 일으켰다. 주택값이 두 자리 숫자의 상승률로 오를 것이라고 기대한 이들은 모두 책임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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