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가 한국인 리서처 “예감 좋지 않았다”
  • 뉴욕 이철현 편집위원 ()
  • 승인 2008.10.21 18:36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월스트리트에는 한국인들도 여럿 일하고 있다. 그 가운데 한 명인 김선일씨(왼쪽 사진)는 미국의 아이비리그 명문 대학 가운데 하나인 코넬 대학 산업공학과를 졸업했다. 그는 월가의 지난 1년을 누구보다 가까이서 지켜보았다.

가을 학기가 되면 월스트리트 금융 기관들은 아이비리그(미국 동부 명문대학들)를 돌며 ‘인재 싹쓸이’에 나선다. 김선일씨는 졸업하기도 전인 2006년 하반기에 뱅크오브아메리카로부터 입사를 제의받았다. 그는 월스트리트에서 일하면서 경력만 잘 관리하면 세계 금융의 중심지에서 ‘아메리칸 드림’을 이룰 수 있다고 판단했다. 하지만 입사하자마자 받은 첫 인상은 무엇인가 잘못되어가고 있다는 것이었다. 교육 연사로 나온 선배 투자 전문가들은 상승세가 꺾인 채권시장에 대응하느라 새벽에 출근해 밤늦게까지 일했다. 신입사원 교육을 받는 과정에서 시장이 꺾였다는, ‘월스트리트의 내부 진실’이 자연스럽게 공유되었다.

김선일씨는 뱅크오브아메리카 투자 은행(IB) 부문에서 주식 리서처로 발령받았다. 시장은 악화일로로 치달았다. 김씨는 입사한 지 6개월도 지나기 전인 2008년 1월 정리 해고를 통보받았다. 서브 프라임 모기지 위기로 채권시장이 무너져내렸고, 주식시장도 하락하면서 투자 은행 부문에서 경영 압박을 받기 시작한 뱅크오브아메리카가 임직원 25%를 정리 해고했던 것이다. 김선일씨도 그때 부서가 없어지면서 자리를 잃었다.

김씨처럼 올해 초 해고된 이들은 그나마 사정이 낫다. 이들은 경기 침체에 상대적으로 잘 대응한 다른 은행이나 펀드에 바로 재취업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김씨도 바로 캐나다 금융회사인 RBC에 취업했다. 하지만 지금 회사에서 쫓겨나는 월스트리트 사람들은 재취업하기 어렵다. 금융 위기 여파로 너무 많은 사람이 시장에 나와 있기 때문이다. 그는 “전 직장 동료들은 이번에 회사에서 나오면 월스트리트에 남아 있는 것은 포기해야 한다고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RBC 리서처인 김씨는 기회가 주어지면 한국에 들어가려고 한다. 월스트리트에서는 더 이상 자부심이나 실적에 따른 보상을 기대할 수 없다고 보기 때문이다. 김선일 씨는 “이제 월스트리트는 없다. 최소한 내가 꿈꿨던 그 월스트리트는 사라졌다”라고 말했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