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의 생이 궁금한가 그림들에 취한 건가
  • 반도헌 (bani001@sisapress.com)
  • 승인 2008.10.28 11:19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혜원 신윤복 다룬 책·드라마·영화·전시 ‘봇물’

▲ 신윤복의 대표작 .

신윤복 신드롬’이 대한민국을 휩쓸고 있다. 신윤복을 여성으로 설정한 SBS 드라마 <바람의 화원>이 방영 중이고, 다음 달에는 같은 설정의 영화 <미인도>가 개봉한다. 이에 앞서 드라마의 원작 소설은 베스트셀러에 올랐고, 신윤복의 작품을 감상할 수 있는 간송미술관의 전시에는 관람객이 대거 몰렸다. 드라마, 영화, 도서, 전시에 이르기까지 어디나 할 것 없이 신윤복에 대한 재조명이 봇물 터지듯 이루어지고 있고 대중들은 그것을 지켜보며 신윤복의 미스터리한 생애와 화려하면서도 친근한 그의 작품에 대해 관심을 집중하고 있다.

조선 시대 3대 풍속화가 중의 한 명이지만 단원 김홍도에 비해 덜 친숙한 혜원 신윤복에 대한 대중의 관심은 드라마 <바람의 화원>이 방영되기 시작하면서 본격화되었다. <바람의 화원>은 남장 여성 화원 신윤복을 연기한 ‘국민 여동생’ 문근영을 앞세워 방영 초기부터 관심을 모았다. 신윤복의 스승 김홍도 역은 박신양이 맡았다.

<바람의 화원>은 MBC의 <베토벤 바이러스>, KBS의 <바람의 나라>와 함께 완성도를 인정받으며 수목드라마에 치열한 경쟁 구도를 형성해 시청자를 즐거운 고민에 빠뜨리고 있다. 지난 10월22일 방송에서 전국 시청률 12.6%를 기록하며 17.2%를 기록한 <베토벤 바이러스>, 15.5%를 기록한 <바람의 나라>에 밀려 있지만 문근영의 부상으로 전 주에 방영한 스페셜 방송이 8.1%를 기록한 것을 감안하면 시청자의 관심이 떠나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11월13일에 개봉할 예정인 영화 <미인도>에 대한 관심도 대단하다. <미인도>는 11월 개봉 예정작 중 가장 보고 싶은 한국 영화 1위에 오르기도 했다. 영화 전문 사이트 무비스트(www.movist.com)가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총 응답자 중 61%가 <미인도>를 가장 보고 싶은 영화로 꼽았다. <미인도> 역시 <바람의 화원>과 마찬가지로 신윤복이 여성이었고, 김홍도가 신윤복의 스승이었다고 가정하고 있다. 하지만 기본 설정이 같을 뿐 신윤복의 사랑에 대한 묘사, 스승 김홍도와의 관계 등에서는 드라마와 다른 길을 걷고 있다.

작품의 명성에 비해 작가에 대한 기록 적어

영화 관계자는 신윤복의 여성으로서의 매력과 애절한 사랑 이야기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고 밝히고 있다. 김민선이 신윤복으로 분해 전신 누드 연기를 펼치고 <식객>의 전윤수 감독이 연출을 맡았다.

드라마와 영화로 본격화되기는 했지만 ‘신윤복 신드롬’의 진원지는 지난해 발간되어 40만부 이상 판매된 이정명의 베스트셀러 소설 <바람의 화원>이다. 소설 <바람의 화원>은 역사적 인물의 성을 바꾸는 과감한 판타지적 설정으로 조선 시대 여성이 누리지 못했을 삶을 스펙터클하게 그리고 있다. 신윤복 작품의 도판을 책에 수록해 신윤복의 그림에 대한 작가의 재해석을 설득력 있게 한 것도 성공 요인이다. 이정명씨는 “신윤복과 김홍도는 모든 국민이 다 알고 있지만 한 번도 제대로 다루어진 적이 없었다. 이들을 다뤘다는 사실보다는 이들을 동시대의 천재적 인물이라는 색다른 관계로 설정한 것이 새롭게 보여진 것 같다. 누구나 알고 있는 기존의 상식이 전복되는 데에서 독자들이 쾌감을 느낀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사회 전반적으로 문화에 대한 관심이 늘어나면서 예인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는 것과도 관계 있는 것으로 보인다”라고 말했다.

신윤복에 대한 관심은 간송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보화각 설립 70주년 기념전>에 관람객들이 몰리는 사실에서도 잘 나타난다. 개막 당일에만 2만명이 전시장을 찾았고, 최근에도 관람객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겸재 정선, 추사 김정희, 단원 김홍도 등의 작품 1백4점이 선보이고 있지만 관람객들의 관심은 단연 혜원 신윤복의 작품에 집중되고 있다. 그의 작품인 <미인도> <월하정인> <야금모행> <단오풍정> 등의 작품 앞에는 으레 많은 사람들이 발길을 멈추고 그림에 열중한다.

신윤복에 대한 관심을 반영한 것인지 EBS도 지난 10월20일부터 22일까지 교양프로그램 <다큐프라임>을 통해 김홍도, 신윤복과 함께 기산 김준근까지 조선 후기의 대표적 풍속화가 3인에 대한 다큐멘터리 3부작 <조선의 프로페셔널-화인(畵人)>을 방송했다. 지난 7월 말에 한 번 방송했던 것을 다시 내보낸 것이다.

신윤복이 대중예술 작품에 등장하고 대중들이 관심을 갖는 것은 그가 남긴 작품의 명성에 비해 그의 삶에 대해 알려진 부분이 적다는 것에 기인한다. 그에 대한 역사적 기록은 아버지가 도화서 화원인 신한평이라는 것과 신윤복 역시 화원이었다는 <근역서화징>의 기록이 전부이다. 잘 알려지지 않은 그의 삶은 작가의 상상력이 개입될 여지를 열어주었다.

<바람의 화원>과 <미인도>가 비슷한 설정을 가지게 된 것도 이 때문이다. 이정명씨는 “수십 편의 작품만을 남기고 당대에 단 한 줄의 기록도 남기지 않은 신윤복의 베일에 싸인 삶에 주목했다”라고 말했다. 영화 <미인도> 제작사 관계자 역시 “신윤복은 역사적 기록이 적어서 상상력이 발휘될 부분이 많다는 점 때문에 예술적 소재로서 매력적이다”라고 밝혔다.

신윤복의 풍속화는 현대인의 감성 자극해

▲ 신윤복 붐’이 일면서 그의 삶과 그림에 대한 관심이 커졌다. 왼쪽부터 신윤복이 그린 , 문근영이 신윤복 역을 맡은 드라마 , 신윤복의 아버지 신한평이 그린 . ⓒ시사저널 박은숙

하지만 신윤복이 여자였다는 설정은 역사적 사실과는 무관하다. 대부분의 미술사학자들은 신윤복이 남자였다는 사실에 동의하고 있다. 당시 사회 분위기에서 여성이 풍속화를 그린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었기 때문이다. 실제 역사 기록에도 신윤복의 성별에 대한 명확한 기록은 없지만 호를 가지고 있고 관직에도 오른 것으로 나와 있다는 점도 이를 뒷받침한다. 신윤복과 김홍도의 화풍이 닮아 있고, 그림 원본을 쉽게 접할 수 없었던 당시 상황으로 가까운 사이였을 것이라는 추정이 가능할 뿐 신윤복이 김홍도의 제자였다는 설정도 역사적 근거는 없다.

신윤복의 풍속화가 오늘날 사람들의 감성에 어필할 수 있는 현대적인 작품이라는 점도 ‘신윤복 신드롬’이 드라마, 영화에서 그의 그림으로까지 이어진 이유이다. 신윤복은 조선 시대 여성의 삶과 정서를 화려한 색감과 붓놀림으로 드러냈다. 등장 인물의 자연스러운 배치나 색감 그리고 보이는 대로 그리는 파격적인 화풍 등은 사군자 등 엄격한 격식에 의한 문인화보다 대중들에게 훨씬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졌다.

이 때문에 드라마 <바람의 화원>과 영화

<미인도>의 제작진은 이야기만큼이나 그림 장면에 노력을 기울였다. 신윤복으로 분한 문근영과 김민선, 김홍도로 분한 박신양과 김영호 모두 촬영 전 오랜 기간 그림 수업을 받았고, 클로즈업 화면에서 그림 그리는 손 역할에는 이화여대 동양화과 이종목 교수, 홍익대 동양화과의 최순녕 교수 등이 참여했다. 동양화가 주는 낯설음을 보완하고 역동성을 더하기 위해 <바람의 화원> 제작진은 슬로모션과 패스트모션 같은 특수 효과가 가능한 베리캠과 이노비번 렌즈를 사용했다.

이정명씨가 신윤복에 관심을 갖게 된 것도 그의 그림 때문이었다. 그는 “신윤복의 삶이 궁금하거나 그의 삶을 그리려고 글을 쓴 것이 아니라 그가 남긴 그림 속의 인물들의 삶이 궁금했고, 그들의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신윤복의 그림 속에는 사람이 있다. 웃고 울고 즐거워하고 화난 사람들의 표정이 살아 있다. 그의 그림을 보면 바로 우리 곁에 살아 있는 사람들처럼 생생해 입을 열어 무언가 얘기를 걸어올 것 같다”라고 말했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