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진하는 일본 차, 불황도 뚫을까
  • 심정택 (자동차산업 전문가) ()
  • 승인 2008.10.28 1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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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죽의 성장세 타고 닛산도 공식 판매 개시…지갑 닫은 중산층 구매 행진 계속될지 관심

▲ 서울 강남구 신사동에 위치한 미쓰비시 모터스 매장. ⓒ시사저널 유장훈

글로벌 금융 위기에 이어 실물 경제 위기의 파고가 다가오고 있다. 초기에 럭셔리 마케팅으로 시장을 넓혀온 수입차업계는 최근에는 잇따른 가격 인하로 양적 확대를 노리면서 최근 수년간 두자릿수 성장을 이어왔다. 올해 들어 늘어난 일본 대중차 수입은 수입차 대중화의 신호탄이라 볼 수 있다. 이런 수입차업계는 최근의 불황을 피할 수 있을까?

지난 9월까지 수입차업계의 판매 실적은 전월 대비 13.9%가 늘어나 연간 누계로는 전년 동기 대비 30.8 %의 성장을 달성했다. 3분기까지는 성장세가 이어지고 있음을 볼 수 있다. 그래서인지 최근 미쓰비시 자동차에 이어 닛산이 시장 론칭을 발표했다.

닛산은 혼다, 미쓰비시에 이어 세 번째로 한국에 공식 판매되는 일본 대중차 브랜드이다. 닛산은 이미 프리미엄 브랜드 인피니티를 판매하며 쌓은 한국 시장 경험을 판매 전략에 반영시켰다. 닛산은 혼다 SUV(스포츠 유틸리티 차량)인 CR-V의 상승세를 꺾기 위해 일본산 SUV 로그와 무라노 카드를 꺼내들었다.

닛산은 내년 3월에는 미국 공장에서 생산한 중형 세단 알티마를 가세시킬 계획이다. 알티마는 현대가 도요타의 캠리보다 더 까다로운 상대로 보고 있다는 점에서 다크호스로 꼽힌다.

도심형 콤팩트 SUV인 로그는 2륜 구동 모델 가격이 2천9백90만원이고 4륜 구동 모델이 3천4백60만원으로 혼다 CR-V보다는 80만원에서 1백50만원 정도 값을 낮게 책정했다.

혼다, 어코드3.5의 인기도 9월 판매 실적 월 단위 최고 기록

닛산에서 중형급 SUV라고 자처하는 무라노는 4천8백90만원으로 가격이 높게 책정되었다. 여기에는 수입업체(임포터)인 닛산한국과 딜러 간의 줄다리기가 있었다는 후문이다. 닛산한국은 일본에서 차를 수입할 때 엔화로 결제하기 때문에 최근의 급격한 엔화 강세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닛산은 딜러들에게 엔화 상승을 이유로 딜러 판매 마진 축소를 권유했으나 딜러들은 “엔화 약세일 때는 마진을 돌려주지 않으면서 엔화 강세의 부담을 딜러들에게 전가하려 한다”라고 반발하며, “차라리 판매 가격을 높게 받자”라고 주장해 무라노의 가격이 높게 책정된 것으로 알려졌다. 또한, 무라노는 르노삼성차의 SUV인 QM5에 플랫폼(차의 골격·뼈대)을 제공했는데 이 또한 소수의 고객층만을 겨냥한 가격 전략을 택한 배경으로 전해졌다.

혼다는 시장 점유율 확대 위주의 정책과 엔화 강세로 인해 딜러들의 판매 실적이 좋은데도 외화 내빈의 상황에 빠진 것으로 알려진다. 혼다는 지난 9월에는 월 단위 판매 실적으로는 최고치인 1천2백여 대를 넘어섰다. 그 일등 공신은 어코드3.5이다.

어코드3.5는 본격적인 불황 국면에 접어든 시장에서 어떤 차가 히트할 수 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이다. 어코드3.5는 동급 배기량인 국산 르노삼성차 SM7보다도 가격 경쟁력에서 앞선다. 혼다는 올해 지난 9월까지 단일 수입차 브랜드로는 최초로 연간 1만대 판매를 돌파하며 수입차시장의 확고한 지존으로 올라섰다.    

수입차업계는 미쓰비시와 닛산이 한국 시장 론칭과 동시에 밀어닥친 실물 경제의 침체 파고를 잘 넘을지 주목하고 있다. 하지만 급격한 실물 경제의 위축은 초반부터 예외 없이 수입차업계를 강타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특히 일본 대중차 메이커들이 주력 목표 고객층으로 삼고 있는 중산층의 소비 심리가 급격하게 위축될 조짐을 보이고 있어 수입차업계의 처지에서는 문제의 심각성이 크다.

벌써 비보가 들려온다. 최근 론칭한 미쓰비시 자동차는 20여 명의 영업 전문 인력을 가동해 가계약을 받고 있는데 계약 대수가 100대 미만에 불과하다는 소문이 돌고 있다.

미쓰비시 자동차는 세단 랜서 에볼루션X를 6천2백만원에, 도심형 SUV 아웃랜더(V6 3.0ℓ)를 4천2백만원에 내놓았다. 고가 논란을 일으키기는 했지만 미쓰비시는 혼다와 제품 모델 라인업에서 차별화를 시도해 취약한 브랜드 파워를 키우겠다는 전략이다. 미쓰비시는 향후 준중형 세단 랜서와 스포츠카 이클립스, 아웃랜더 2.4, 랜서 에볼루션 랠리아트에 이어 전기 경차 아이미브(i-MEV)까지 한국에 소개할 계획이다. 고기능의 제품들로 시장에서 좋은 이미지를 형성한 뒤 저가의 대중차로 판매 볼륨을 확대하겠다는 전략으로 볼 수 있다. 최종열 미쓰비시모터스세일즈코리아(MMSK) 사장은 의욕에 차 있다. 그는 “5년 내 수입차시장 점유율 10%를 목표로 한다”라고 강조했다.

닛산은 미국 닛산 공장 생산 제품의 주력 세단인 알티마를 내년 3월에 들여와 최근의 침체된 소비 심리의 핵지대를 피해갈 수 있어 그나마 안도하고 있다.

도요타, 소나기 피해 내년 10월 캠리 출시

내년 시장 론칭을 발표한 도요타는 상대적으로 안도의 기색이 역력하다. 금융 위기나 그에 뒤이은 실물 경제의 위기를 미리 예상한 것은 아니지만 결과적으로 내년 하반기에 진출하기를 잘했다고 자체 평가하고 있다.

치기라 타이조 한국도요타 사장은 만나는 사람마다 “유꾸리, 유꾸리”(‘천천히’라는 뜻의 일본어)를 강조한다고 한다. 내년 10월 론칭 예정인 도요타 딜러 관계자는 “지금과 같은 시장 분위기에서 잘 되겠느냐. 일부러 론칭을 늦춘 것은 아니지만, 당장 론칭하는 닛산이 걱정된다”라며 느긋한 입장이다.

한편, 한국도요타는 닛산한국과는 달리 도요타통상이 46%의 지분을 가지고 있는 렉서스 딜러인 디앤티(D&T, 동양건설산업)를 제외하고는 기존 렉서스 딜러들에게 추가로 도요타 딜러권을 주지 않았다. 도요타 딜러권을 따내기 위해 절치 부심해온 기존의 렉서스 딜러들은 도요타를 맹비난하고 있다. 이러한 분위기가 최근의 렉서스 판매 실적에 반영되고 있다. 렉서스는 국내 판매 시장에서 판매 성장세가 주춤해진 상태이다.   

국산차업체들이 가장 경계하는 대중차는 역시 도요타이다. 한국도요타는 내년 10월 판매 초기부터 혼다 어코드와 현대 그랜저급 시장을 겨냥해 캠리를 출시할 계획이다. 더불어 프리우스와 캠리 하이브리드를 내놓고, 닛산과 혼다를 겨냥한 SUV RAV4도 더할 계획이다. 국내에서 가장 큰 시장인 준대형과 중형 승용, SUV 그리고 앞으로 성장해나갈 친환경차 시장을 동시에 노리는 제품 전략임을 알 수 있다.       
  
세계 금융 위기 및 기타 복합 요인으로 본격 하강 국면에 접어든 국내 실물 경제의 타격을 가장 많이 받는 계층이 중저가 수입차를 구매할 수 있는 중산층이라는 예측이 현실로 나타나고 있다. 그럼에도 시장에서 원하는 품질, 브랜드 파워, 가격대의 제품은 얼마든지 소비자들이 지갑을 연다는 것을 혼다의 사례가 설명하고 있다. 도요타 관계자는 혼다가 모든 답을 가지고 있음을 인정한다. 국내에 밀어닥친 실물 경제의 침체가 일본 대중 수입차업계에 쓰나미가 될지, 소멸성 태풍으로 그칠지는 좀더 지켜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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