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수록 폭력에 찌드는 <007>…고급 첩보원은 어디 갔나
그러던 <007>이 1995년에 개봉된 17편 <골든 아이>에서부터 격을 잃기 시작한다. 죽이고 부시는 액션에 눈이 먼 관객들 앞에 <007>도 두 손 두 발 다 든 것이다. 유머와 함께 본드 걸이라는 미녀를 꿰차고, 생사를 넘나드는 고품격 스파이는 간데없이 머리는 없고 몸으로만 때우는 제임스 본드가 나타난 것이다.
이런 변모에 <007> 마니아들은 더 이상 제임스 본드에 매력을 가질 이유를 잃고 만다. 이안 플레밍의 원작은 12편까지였으니 후속작은 저자 없는 아류로 제작자마다 흥행에 기대는 <007>이 나올 수밖에 없었을지도 모른다.
<007 퀀텀 오브 솔러스>(22편)는 <007 카지노 로얄>(21편)의 후편이다. 전편에서 ‘베스퍼’라는 연인을 잃은 제임스 본드(다니엘 크레이그 분)가 정체 모를 조직과 맞서 홀로 싸운다는 설정이다. 전세계의 자원을 노리고 각국 정상들을 주무르는 도미닉 그린은 볼리비아의 내란을 돕는 조건으로 쓸모없는 사막을 내달라고 한다.
액션에 목숨 건 제임스 본드
본드에게 그린을 만나게 해준 주인공은 카밀(올가 쿠릴렌코 분). 그녀는 자신의 부모를 죽인 메드라노 장군을 살해하기 위해 ‘007’을 이용한다. 영화는 카밀이 본드 걸인지 설명해주지 않는다. 그저 복수심에 불타는 여자가 적재적소에 나타나 본드를 도우면서 섹스도 하지 않는 것이다. <007>의 볼거리는 매회 등장하는 신무기이다. 그러나 <007 퀀텀 오브 솔러스>에는 제임스 본드가 애용하는 권총 월서 PPK만 눈에 띌 뿐이다. 21억 달러나 투입해 육·해·공을 아우르는 이 영화를 보면서도 관객들은 배고프다. 처음부터 끝까지 뛰고 또 뛰는 <007>이 낯설기 때문이다. 아래 위로 말끔한 수트를 걸친 본드에게 지저분한 액션이라니, 어이가 없다. 11월5일 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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