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뇌 활동의 결실이다
  • 조철 (2001jch@sisapress.com)
  • 승인 2008.11.04 02: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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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의 출현’을 우주 현상으로 본 자연과학자의 인문학적 사유

오랫동안 자연과학의 세계를 통합적으로 이해하고 싶었습니다.” 2004년부터 지금까지 ‘뇌와 생각의 출현’이라는 강의로 인문학과 자연과학의 사이에 열린 소통 공간을 창출한 뇌 과학 전문가 박문호씨의 말이다. 박씨가 강의한 결과물로 출간한 <뇌, 생각의 출현>을 여는 첫 문장이기도 하다.

누가 인문학과 자연과학을 갈라놓았던가. 갈라놓았기에 둘 사이에 소통이 없었고, 따로 놀았으므로 절실히 ‘통합적으로 이해’하고 싶었다는 저자를 ‘출현’시킨 것이 아닐까. 문과·이과를 나눠 격리시키듯 대학 입시를 치르고, 대학 또한 서로 어울리지도 못하도록 하는 양 아예 캠퍼스를 따로 두기도 하는 실정이다. 저자의 출현이 눈에 띄는 것은 그래서이다.

저자의 공식 직함은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 책임연구원이다. 2002년 대전에서 출발한  ‘백북스 학습독서공동체’를 이끌어가면서 자연과학 독서 운동을 펼치는 지식 문화 운동가이기도 하다. 저자가 처음 강의한 곳은 ‘연구공간 수유+너머’였다. 첫 테마는 ‘양자역학과 인문과학’이었다. 그는 그 강의에서 “양자역학의 내용과 어려운 공식을 정확하게 이해하고 이를 통해 인문과학과 자연과학의 열린 소통 공간을 창출”하고자 했다. 그의 강의는 ‘뇌, 세계의 열림과 접힘’ ‘뇌와 생각의 출현’으로 이어졌고, 그의 막힘 없는 사유에 대해 인문학자와 자연과학자 모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카이스트, 서울대학교, 삼성경제연구소, 고전아카데미, 불교TV 등에서 잇달아 그를 초청했다. 저자는 자신이 30여 년 동안 이어온 탐구적 독서를 통해 체득한 자연과학과 인문학 지식을 바탕으로 천문, 우주, 생명, 뇌 과학 분야의 강의를 진행했다. 우주의 탄생, 생명의 탄생, 죽음의 발명 그리고 생각의 출현까지 이어지는 방대한 자연과학 지식이 각 분야 연구자들을 포함한 강의 참가자들과 어우러져 질문과 답변에 녹아들었다. 그들은 인문학과 자연과학을 가로지르는 ‘새로운 사유’의 가능성에 대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토론했다.

이 책은 2004~08년까지 이어진 5년의 강의를 교양 대중들과 함께 나누고자 방대한 양의 지식을 체계적으로 재구성한 것이다. 단순히 ‘뇌’라는 영역을 제한해 탐구한 것이 아니다. 저자는 에덜만, 이나스, 다마지오 등의 신경철학자들의 사유와 포스트모던 철학의 사유, 그리고 생물학, 입자물리학, 양자역학, 상대성이론 등의 과학 사유를 총망라했으며, 그 지식의 의미와 내용을 ‘뇌 과학’의 시각으로 일관되게 구성했다. 그뿐만 아니라 일반 독자들을 배려해 딱딱하고 어렵다는 과학 사유를 강의식 ‘구어체’로 풀었다.



뇌 과학에서 자연과학·인문학 융합 모색

이 책에 따르면, 우주 모델의 대칭이 깨어져서 나타난 것이 뇌, 의식의 출현이다. 즉, 생각의 출현을 우주 현상으로 본 것이다. 그래서 저자는 생각의 출현에 앞서 우주·천문 현상으로서 ‘생명’을 이야기했다. 그리고 우주의 관점에서 본 시공에 관한 문제들, 우주를 구성하고 있는 물질 세계를 먼저 거론하며, 대칭의 세계가 있었고, 대칭이 자발적으로 붕괴하면서 우주의 네 가지 힘(중력, 강한 상호 작용, 약한 상호 작용, 전자기 상호 작용)이 상호 작용해 ‘일어남의 세계’가 출현했다고 강조했다. 

저자는 이런 관점에서 뇌의 본질적 기능이 환경에 적응하는 운동에서 생성한 것임을 확신하기에 이르렀다. 이 운동을 통해 매순간 새로운 시간과 공간 감각이 생겨나고, 이 시공간 정보로 분류된 기억들이 행동을 계획하고 표출해 인간이 환경에 적응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저자는 우주라는 무대와 무대 위 배우로서 규정되는 주체가 서로 다른 존재가 아니라는 점에서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과 결합된다고 보았다.

저자는 통합적 사고와 다양한 과학적 지식을 연결하면 자연 현상을 관찰하는 방식이 달라진다고 말했다. 저자의 경우 그 방식을 터득하기까지 20년 이상 꾸준한 학습이 요구되었다. 우주에 대한 관심이 상대성 이론을 만나게 되고, 상대성 이론을 학습하고 나면 우주의 에너지와 4차원 시공간 구조와의 관계를 이해할 수 있었다. 집요한 학습은 새로운 세계관을 열어주는 ‘발전적 융합 학습’으로 진화되는데, 저자가 강의와 저서에서 밝히는 ‘과학적 사유’가 가능하게 된 것은 그 덕택이었다. 어릴 적 보았던 ‘어린 왕자의 별’을 간직하는 문학적 우주관을 넘어 도달한 곳에는 더 오래 어둠을 밝힐 듯한 ‘핵 융합하는 별’이 반짝이고 있었다.

저자는 ‘핵 융합하는 별’에 머무는 동안 과학과 인문학이라는 두 문화의 심연을 메워줄 희망을 뇌 과학에서 찾았다. 그는 “뇌를 알게 되면 인간 정신 활동의 대부분을 스스로 모니터링할 수 있게 된다. 뇌 공부가 우리에게 주는 가장 유익한 것은 ‘생각을 생각할 수 있다’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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