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실한 ‘캐피탈’ 금융 위기 해결 발목 잡을라
  • 이석 (ls@sisapress.com)
  • 승인 2008.11.04 03: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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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신 전문 업체들, 자금 조달 어려워 리스크 관리 차원 대출한도 축소 나서 연체율 증가로 ‘제2 카드 대란’ 우려도
▲ 한 고객이 자동차를 구입하기 전에 캐피탈 회사로부터 제공받을 수 있는 대출 조건에 대해 설명을 듣고 있다. ⓒ시사저널 유장훈
■사례1:
중소기업 임원인 서 아무개씨(45)는 지난 10월20일 한 통의 문자 메시지를 받았다. 현재 이용하고 있는 카드론의 한도를 9백만원에서 30만원으로 축소한다는 황당한 내용이었다. 서씨의 경우 지난 6년간 거래하면서 단 한 차례도 연체를 한 적이 없었다. 사용 실적도 좋아 회사에서 정기적으로 콘도 숙박권을 보내줄 정도의 VIP 고객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한도를 줄이겠다’는 일방적인 통보를 받은 것이다.
서씨는 “최근 금융 위기로 캐피탈사의 자금난이 가중되고 있다는 얘기는 들었다. 리스크 관리 차원에서 한도를 축소할 수 있다는 생각은 했지만, 이 정도일 줄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라고 말했다.

■사례2: 한 캐피탈 회사의 영업사원인 강 아무개씨(29)는 지난 9월부터 무기한 휴가에 들어갔다. 회사에서 갑자기 대출 심사를 강화하면서 영업하기가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직장에 다니는 고객이면 신용에 관계없이 무난히 대출을 받을 수 있었다. 그러나 한 달 전부터 심사가 까다로워지면서 고객들을 하나 둘 놓치게 되었다. 강씨는 현재 이직을 심각하게 고려 중이다.
그는 “주변 동료들도 비슷한 생각이다. 회사가 공격적인 영업을 할 때는 어려움이 없었지만, 유동성이 악화되면서 제약이 너무 많다. 심지어 단골 고객까지도 대출 한도를 축소하고 있다. 당분간 쉬면서 다른 일을 찾아볼 생각이다”라고 토로했다.

대출 규제로 캐피탈사 영업 인력 이탈 잇달아

이렇듯 캐피탈 회사나 카드사 등 여신 전문 업체들이 ‘돈 가뭄’에 시달리고 있다. 이들 업체는 은행과 달리 수신 기능이 없어 그동안 회사채나 기업어음(CP), 자산유동화증권(ABS) 등을 통해 자금을 조달해왔다. 그러나 최근 글로벌 금융 경색의 여파로 채권시장이 거의 마비되다시피 하면서 심각한 자금난을 겪고 있다. 

어음중개법인인 중앙인터빌 한치호 상무는 “신용등급이 우수한 일부 우량 회사채를 제외하고 나머지는 거래가 거의 끊겼다. 채권 발행을 통해 자금을 조달하는 캐피탈사나 카드사의 경우 적지 않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라고 말했다.

회사채 거래가 얼어붙으면서 금리 또한 급상승하고 있다. 한국펀드평가에 따르면 상반기 캐피탈채의 평균 금리는 연 6.32%였다. 그러나 10월17일 현재 발행된 캐피탈채의 경우 금리가 연 8.68%까지 상승했다. 회사채 발행의 어려움과 함께 고금리까지 이중고를 겪고 있는 것이다.

때문에 상당수 캐피탈사가 현재 영업보다는 리스크 관리에 골몰하고 있다. 이로 인해 “○○ 캐피탈사의 경우 잠정적으로 영업을 중단했다” “○○ 캐피탈은 TM 직원을 오후 2~3시에 퇴근시킨다”라는 등 악성 소문까지 끊이지 않고 있다.  

그나마 현대·롯데·신한·기은·외환 캐피탈 등 모기업이나 은행이 버티고 있는 회사의 경우 급한 자금을 수혈받기도 한다. 하지만 나머지 캐피탈사들은 빈사지경에 놓여 있다. 여신금융협회는 그동안 지속적으로 정부에 지원을 요청했으나 번번이 무산되었다. 여신금융협회의 백승범 선임조사역은 “금융 당국이 최근 기준 금리를 인하하고 은행채 매입을 선언하는 등 은행권의 유동성 확보에 공을 들이고 있다. 그러나 카드사나 캐피탈 회사의 경우 아예 지원 대상에서 제외되어 있다. 때문에 정부에 만기가 도래한 회사채를 연장해줄 것을 요청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금융 당국 역시 현재 여신 전문 업체들의 행보를 예의 주시하고 있다. 그러나 아직까지 우려할 만한 수준은 아닌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금감원은 오히려 “경쟁사 간 흠집 내기로 불안감이 확산되고 있다”라고 말하고 있다.

금감원의 한 관계자는 “위기 징후가 나타났다면 벌써 우리의 레이더에도 포착되었을 것이다. 은행권보다는 상황이 좋았기에 아직까지 지원이 없는 것이다. 현재 시중에 나도는 위기설은 말 그대로 실체 없는 소문일 뿐이다”라고 귀띔했다.

하지만 전문가들의 시각은 다르다. 이대로 방치했다가는 자칫 ‘여신 전문 업체발’ 금융 위기가 촉발될 수 있다고 경고한다. 최중기 한신평정보 평가연구소 수석연구원은 “대출 한도를 급하게 줄였다는 것은 회사 사정이 그만큼 어렵다는 반증이다. 이들 업체의 경영에 문제가 생기면 수많은 고객들이 고스란히 피해를 입게 된다”라고 우려했다.

그에 따르면 지난 2004년 터진 신용카드 대란 역시 카드사들이 갑자기 한도를 줄이면서 빚어졌다. 부실 방지 차원에서 한도를 크게 줄이면서 봇물 터지듯이 연체율이 올라가 화를 불렀던 것이다. 이후 신용카드사의 경우 지속적으로 리스크 관리를 해오고 있다. 그러나 캐피탈사들은 이런 자구 노력이 전혀 없었다. 오히려 공격적인 영업으로 ‘덩치 키우기’에 몰두해왔다. 때문에 연체율이 갑자기 올라가면 서민 경제를 파탄으로 몰게 될 ‘제2의 신용카드 대란’이 벌어질 수도 있다는 소리가 나온다.

캐피탈사 연체율 매년 지속적으로 증가해

최연구원은 “캐피탈 고객의 경우 은행 이용이 제한된 경우가 많다. 캐피탈사가 일방적으로 한도를 조정하면 연체율이 상승할 수밖에 없다. 이를 피하기 위해 다른 금융권을 찾으면서 연쇄 부실을 일으킬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라고 설명했다.

실제로 신용카드사의 경우 최근 3년간 연체율이 지속적으로 떨어지고 있다. 지난 2006년 12월 5.6%에서 지난해 말 3.9%, 올 6월 말 현재 3.5%까지 떨어졌다. 그러나 캐피탈사의 경우 연체율이 1.5%에서 지난해1.8%, 6월 말 현재 2.2%까지 상승했다. 이런 상황에서 최근 한도마저 대폭 축소해 연체율이 더욱 올라갈 우려가 커지고 있다.

최연구원은 연체율이 6~8%를 넘길 경우가 위험의 징후라고 말했다. 그는 “카드사의 경우 연체율이 8~10%, 캐피탈은 6~8%까지 상승할 경우 재무적인 완충 능력에 심각한 위협을 받게 되는 위기 상황이 될 수 있다”라고 말했다.

ⓒ한신정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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