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간 불’ 켜지면 그들이 온다
  • 정유훈 (현대경제연구원 선임연구원) ()
  • 승인 2008.11.04 04:36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헤지펀드, 막대한 자금력으로 주식·부동산시장 잠식…자본시장 위기 대응 매뉴얼 갖춰야

▲ 게르드 하이데 아이슬란드 총리는 경기 침체에서 벗어나려면 수년이 걸릴 것이라고 언급했다. ⓒ연합뉴스

10월 외환위기설이 세간을 휩쓸고 있을 때, 정책 당국은 1997년의 국제통화기금(IMF) 사태는 도래하지 않을 것이라고 호언장담했다. 하지만 정부는 민간 은행에 신용 보증을 서고, 중앙 은행인 한국은행은 기준 금리를 0.75% 내렸다. 게다가 미국발 금융 위기를 예측했던 루비니 뉴욕 대학 교수와 불룸버그 통신의 칼럼니스트인 월리엄 페섹 등은 한국 경제가 심각한 금융 위기에 처할 가능성이 있다고 경고했다.

참새가 방앗간을 그냥 지나가지는 않는다. 한국은 헤지펀드에게는 두 말이 필요 없는 괜찮은 먹잇감이 될 수 있다. 헤지펀드의 유령이 한국 주위를 배회하고 있다. 

아이슬란드 경제 나락으로 빠뜨려

헤지펀드의 농락에 국가 부도 상태에 빠져, 경제 회복은 앞으로 30년 이상이 걸릴지 모른다는 전망까지 나온 북구의 작은 섬나라 아이슬란드의 모습은 우리에게 많은 시사점을 준다.    

미국발 금융 위기가 세계 금융시장의 신용 수축으로 이어지자 기다렸다는 듯이 헤지펀드라는 유령은 아이슬란드 호를 침몰시켰다. 블룸버그의 자료에 따르면, 이 나라 은행들의 대외 채무 규모는 6백19억 달러로 아이슬란드 국내총생산(GDP)의 12배에 달한다. 아이슬란드 중앙 은행은 10월8일 자국의 통화 크로나화 가치 하락을 방어하기 위한 매수 개입을 포기했다. 다음 날인 9일에는 중앙 은행이 방어하고자 했던 1유로당 1백31 크로나가 무너져 순식간에 1유로당 3백40 크로나로 3배 가까이 가치가 폭락했다.

우리가 경험할 뻔했던 국가 부도가 아이슬란드에도 일어났다. 지난 9월 말 아이슬란드 국내 3위 은행인 글리트니르 은행이 국유화되었고, 이어 10월7일에는 2위 은행인 란즈방키 은행이 국유화되었으며, 9일에는 최대 은행이었던 카우프싱마저 국유화되는 사태에 이르렀다. 아이슬란드 정부는 IMF에 21억 달러의 구제금융을 받기로 했고, 러시아에도 융자를 요청했다. 신용등급평가 회사인 피치는 아이슬란드의 신용등급을 ‘A-’에서 ‘BBB-’로 내렸고, 신용 전망도 ‘부정적’으로 낮췄다. 게다가 아이슬란드의 국가 부도는 국제 분쟁으로까지 이어질 조짐을 보이고 있다. 영국의 투자자들은 높은 금리 차를 노리고 아이슬란드 은행에 거액의 돈을 예치했다. 국가 부도 사태를 맞은 아이슬란드가 자국의 해외 지점에 대한 보증을 거부함으로써 영국 정부는 아이슬란드 은행에 예치된 영국 자산 40억 파운드 확보를 위해 대테러방지법을 발동했고, 아이슬란드는 테러국 지정에 불쾌감을 넘어 분노를 표출했다. 

사실 아이슬란드는 인구 30만명에 불과한 작은 나라이고, 30년 전만 하더라도 어업 이외의 산업은 거의 없는 유럽의 최빈국에 속했다. 그러던 아이슬란드가 과감한 규제 개혁으로 IT 강국, 금융 강국으로 변모하면서 해외 투기 자금들이 주식시장과 부동산시장으로 대거 유입되었다. 이것이 화근이었다. 최빈국에 속하던 아이슬란드가 금융시장 자유화를 통해 금융 버블로 세계 5위 수준의 1인당 국민소득과 스위스 세계경영개발연구원(IMD)의 국가 경쟁력 평가에서 유럽 최고를 자랑하던 국가가 될 수 있었던 것이다. 한마디로 거품이었다.   

한 나라를 일거에 깊은 수렁에 빠뜨릴 수 있는 헤지펀드란 무엇인가? 헤지펀드는 미국 태생의 사적인 투자 조합이라고 할 수 있다. 특히, 공모와 달리 헤지펀드가 직접 특정 소수의 투자자와 금융 기관을 선정하고 출자를 받는 것으로 유명하다.

그래서 규제가 미치지 못하는 조세 회피 지역에 설립된 투자회사가 많다. 헤지펀드란 원래 리스크 회피를 위해 경제의 대내외적인 각종 위험을 제어할 목적으로 설립되었으나, 조시 소로스로 더 유명한 퀀텀펀드는 각국의 금리 및 통화 정책의 실패를 노리고 방대한 양의 자금을 운용해 고수익을 올리는 투기적 펀드로 부정적으로 인식되고 있다.

전세계 헤지펀드의 규모를 추정해보면, 2006년 전세계 자산 규모가 약 1조6천억 달러에 이르고, 이는 1997년의 약 4천5백억 달러보다 3배 이상 늘어난 것이다. 세계 최대의 외환보유액을 가지고 있는 중국의 2008년 6월의 외화보유액 1조8천억 달러에 가깝고, 세계 2위의 외환보유액을 자랑하는 일본의 2008년 8월의 약 1조 달러보다 1.5배 이상 많다. 한국의 2008년 8월 외환보유액 2천4백억 달러의 7배에 가까운 규모이다. 실제로 조시 소로스는 한때 싱가포르 외환보유액 이상의 자금을 싱가포르에서 운용함으로써 헤지펀드에 대한 경각심을 전세계에 불러일으켰다.   

2006년 전세계 자산 규모 1조6천억 달러

▲ 유럽의 한 주식시장 전광판. ⓒ연합뉴스

미국발 금융 위기가 불러온 국제 금융 위기는 투기적인 헤지펀드가 활동하기 좋은 환경이 된다. 대외 충격에 의한 불확실성의 확대로 주식시장과 환율시장에서의 변동성이 크게 확대되면, 그만큼 고수익을 올릴 수 있는 기회가 늘어나기 때문이다.

이러한 헤지펀드가 가져올 수 있는 위험은 다음과 같다. 첫째, 헤지펀드는 특정 시장에서 막대한 영향력과 독점적 지위를 형성해 교란을 일으킬 수 있기 때문에 투기적인 활동이 없었다면, 금융 위기가 오지 않았을 경제를 다른 균형점(해당 펀더멘털과 동떨어지게 악화된 상태의 균형점)으로 이동시킬 수 있다. 또, 헤지펀드는 펀드 자체의 투명성이 낮아 규제와 감시·감독이 거의 불가능해 리스크 요인을 충분히 체크할 수 없다. 때문에, 특정의 리스크를 최종적으로 투기 활동 대상이 되는, 좁게는 거래 대상자에게 넓게는 경제 전체에 전가할 수도 있다. 

한국과 같이 아직까지 금융시장이 충분히 발전하지 않은 나라는 언제나 헤지펀드의 공격 대상이 될 수 있다. 특히, 헤지펀드가 동원할 수 있는 자금력과 그들이 형성하는 매수 혹은 매도 포지션 규모가 자국 시장의 규모보다 상당히 크기 때문에, 신흥국 시장의 경우 대규모의 급격한 자본 이동으로 자국의 외환 및 금융 시장이 붕괴할 수 있다. 2007년 한국의 1일 외환 거래 규모를 보면 1일 평균 4백70억 달러로 일본의 3천2백70억 달러, 미국의 1조2천7백억 달러 및 영국의 2조4천4백억 달러에 비해 매우 적은 규모임을 알 수 있다.

 또한, 한국의 경제 구조는 대외 의존도가 무척 높아 대외 충격에 매우 취약한 구조를 가지고 있다. 이번 미국발 금융 위기와 같은 외부 충격은 언제든지 발생할 수 있기 때문에 헤지펀드로서는 한국이 좋은 사냥감으로 비치는 것이다.

그렇다면, 규제와 감독이 사실상 불가능한 투기적 헤지펀드에 대해서 속수무책으로 당하고만 있어야 하는가. 그렇지는 않다. 무엇보다도 건전한 거시 정책을 운영해 금융 기관의 건전성 규제를 강화할 필요가 있다. 정부는 정책의 일관성과 합리성을 유지함으로써 외환시장과 주식시장에서 정책 당국의 신뢰성을 제고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지금부터라도 자본시장의 자유화에 대한 로드맵을 전면 재검토하고 속도를 조절할 필요가 있다고 하겠다. 위기 상황에 적극적이고 선제적으로 대응할 수 있도록 자본시장에서의 위기 대응 매뉴얼을 준비할 필요가 있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