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심쟁이’ 인순이를 위한 변명
  • 하재근 (문화평론가) ()
  • 승인 2008.11.11 1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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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의전당 대관 불허 관련 기자회견으로 논란…대중음악 공연장 확충은 여전히 ‘숙제’

▲ 가수 인순이씨(가운데)가 11월3일 세종문화회관에서 응원차 함께한 가수 송대관씨(왼쪽 두 번째)와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인순이가 예술의전당 대관 신청을 불허당하자 기자회견으로 부당함을 호소했다. 그것이 인터넷을 뜨겁게 달궜다. 김장훈 등 가수 동료들도 인순이에게 동조했다. 가수협회장 송대관은 기자회견에 배석해 자신도 세종문화회관으로부터 석연치 않은 이유로 대관을 거절당했다며 인순이를 옹호했다. 인순이는 ‘한국 최고의 공연장’인 예술의전당에 대중 가수가 설 수 없다는 것은 무척 아쉬운 일이라며 차별받는 대중 가수들을 위해 나섰다고 말하고, 조용필이 섰던 무대에 자신도 서고 싶다고도 했다.

이것이 파란을 일으켰다. 네티즌은 처음에는 인순이에게 동정적이었다. 예술의전당이 구태의연한 권위주의에 사로잡혀 대중 가수를 차별하는 것 아닌가라는 여론이었다. 여기까지가 1회전이었다. 곧 2회전으로 진입했는데 여론이 반대로 뒤집혔다. 하필이면 베이징올림픽 연예인 응원단 파동과 맞물리면서, 오히려 인순이에게 연예인으로서 특권 의식이 있는 것 아니냐는 비난이 쏟아졌다.

대관 기준 모호해 ‘반발심’ 키운 것이 문제

‘인순이는 유명한 대중 가수이다. TV에도 나오고 고액 출연료의 공연도 한다. 대중의 인기도 얻는다. 대중 가수로서 돈과 화려한 명예를 다 움켜쥐고 클래식 하는 사람들이 서는 무대까지 차지하겠다는 것은 지나친 욕심이다. 왜 가난한 순수 음악의 무대까지 빼앗으려 하나?’

뭐, 이런 정도의 얘기였다. 기자회견 직후에는 인순이를 비난하는 댓글이 1천여 개 이상 쌓이기도 했다. 인순이는 한순간에 비호감 연예인이 되어버렸다. 그러나 인순이의 입장을 이해할 수 없는 것이 아니다.

세종문화회관이나 예술의전당 같은 무대에 서고 싶은 것은 가수로서 인지상정이다. 그런 마음을 갖는 것 자체를 뭐라고 할 수 없다. 문제는 그 마음을 실현하는 과정에서 지금과 같은 불미스러운 사태가 벌어졌다는 데 있다. 대관을 신청했다가 탈락하고 조용히 넘어갔으면 사건이 되지 않았을 것이다. 인순이가 반발해서 사건이 되었다. 그러므로 이 사건의 핵심은 ‘반발’에 있다. 과연 무엇이 그런 반발을 불러일으켰는가?

송대관이 지적한 것은 답답함이었다. “중요한 것은 내가 왜 그 무대에 못 서는지, 어떤 사람은 서고 어떤 사람은 못 서는 것인지 규정이 확실하다면 좋겠다.” 세종문화회관에 대관 신청을 한 것이 퇴짜를 맞았는데, 그 객관적인 이유를 알 수 없어 굴욕감이 비애로까지 발전했다는 것이다.

이들은 한국에서 가수가 ‘딴따라’라고 천대받았던 시절을 살았던 사람들이다. 가수로서 평생 지울 수 없는 상처를 안고 있을 것이다. 석연치 않은 이유로 배제될 때 차별이라고 느끼는 것은 이 세대들에게는 당연한 일이다. 인순이도 처음에는 자신이 탈락한 객관적인 기준을 가르쳐달라고 요구했었다. 그때 예술의전당 측의 입장이 석연치 않았었다. 필자가 만난 취재팀도 취재 결과 공연장의 대관 기준이 모호하다고 증언했다. 이런 것이 ‘반발심’을 키워 사건을 만들어낸 것이다.

▲ 가수 인순이씨(위)의 ‘무대 욕심’이 네티즌들 사이에 논란이 되고 있다. ⓒ시사저널 임준선

예술의전당은 나중에 입장을 분명히 했다. 클래식을 하는 곳이므로, 인순이만 안 되는 것이 아니라 대중 가수는 아예 안 된다는 입장이었다. 처음부터 이런 원칙을 분명히 고지하고 지켜왔다면 대관 소동은 생기지도 않았을 것이다. 애매한 태도가 화를 불렀고, 대중 가수의 자존심을 건드리며 반발심을 초래했다. 인순이가 살아온 시대를 역지사지로 생각해보면, 그가 분노했던 것은 당연하고 송대관 등이 동조한 것도 당연한 일이었다.

공연장 문제도 그렇다. 인순이는 ‘한국 최고의 공연장인 예술의전당에 대중 가수가 설 수 없다는 것은 무척 아쉬운 일’이라고 했다. ‘한국 최고 순수예술 공연장’이 아니라, 그냥 ‘한국 최고 공연장’이라고 불렀다. 우리나라는 대중음악을 위한 공연장 시스템이 없다. 그냥 공연장이라는 이름으로 전체가 통합되어 그 정점에 세종문화회관과 예술의전당이 있는 것으로 암묵적인 상태에서 공감대가 형성되어 있었다. 순수음악 공연 시스템 따로, 대중음악 공연 시스템 따로 발전한 나라가 아니다. 이런 구조에서 대중 가수가 예술의전당을 선망하는 것은 당연하다. 이제 와서 인순이에게 욕심이 많다고 몰아붙이는 것은 너무하다.

순수음악·대중음악 사이에 분명한 선 그어야

인순이가 순수예술 공연장까지 차지하려 한다며 비난했던 2회전의 논리는 원칙적인 차원에서는 맞는 얘기이다. 대중음악을 위한 공연 인프라가 충분히 발달되어 있고, 가수 인생의 정점에 영광스럽게 설 수 있는 유서 깊은 공연장이 멀쩡히 있는 데도, 엉뚱하게 클래식 전용 무대에 가서 연주자들 쫓아내고 강짜를 부리고 있다면 비난받아 마땅하다. 그러므로 이 논리를 현실에 적용하고 싶다면, 그래서 인순이를 비난하고 싶다면 일은 간단하다. 대중음악 공연 인프라를 건설하고, 순수음악·대중음악 사이에 공식적으로, 객관적으로 선을 죽 그은 연후에 비난하면 된다.

한국이라는 나라의 문화적 토양이 성숙하지 못해 빚어진 일이라고 봐야 한다. 본질적으로 대중음악은 돈을 벌기 위해 하는 것이다. 순수음악은 음악 그 자체를 위해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대중음악은 흥행과 가깝고, 순수음악은 예술과 가깝다. 흥행과 가까운 대중음악을 위한 인프라는 차고 넘치는 것이 일반적이다. 반면에 돈과 거리가 먼 순수음악은 가난한 약자의 이미지이다. 우리나라는 꼭 이렇지가 않다. 예술의전당은 순수한 예술의 장이라기보다 문화적 권위의 상징 같은 느낌이고, 대중음악 인프라는 의외로 열악하다.

한국 대중음악 공연장 인프라의 열악함이 지적된 것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김장훈·김건모·이승환 모두 이런 문제를 지적했었다. 신해철·이문세 등은 아예 직접 작은 공연장을 꾸리는 시도까지 했다. 일본은 작은 곳부터 대규모까지 대중음악 공연장 인프라가 활성화되어 있다. 우리나라 대중 가수들은 캠퍼스와 체육관을 전전하며 공연해야 한다.

얼마 전에 내한한 일본 가수의 공연도 한 체육관에서 진행되었다. 그곳에 다녀온 취재팀을 만났는데 음향과 시설이 콘서트장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뒤떨어져 보는 자기들이 창피함을 느꼈다고 했다. 이런 상황에서 좋은 시설을 갖춘 전문 공연장에 대한 열망이 생기는 것은 당연하다. 한 클래식 전공자는 대중 가수가 성악을 하는 예술의전당 오페라 극장에서 공연하려면 마이크 끄고 하라고 야유했다. 
감정적인 비방으로 풀릴 일이 아니다. 한류를 그렇게 팔아대는 나라라면 국가가 나서서 공연장 인프라를 확충해야 한다. 요즘 경기 진작용으로 삽질하고 도로 뒤집는 데 풀리는 재정의 일부만 끌어와도 상황이 달라질 것이다. 국가 재정은 무의미한 삽질이 아니라 문화 등 산업과 지식 능력의 발전을 뒷받침하는 데 써야 한다. 그 속에서 대중 가수가 스스로의 음악 행위에 자부심을 가질 수 있도록 하면 순수음악계와 공연장을 다투는 일 따위는 벌어지지 않을 것이다.

가수 인순이씨(가운데)가 11월3일 세종문화회관에서 응원차 함께한 가수 송대관씨(왼쪽 두 번째)와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가수 인순이씨(위)의 ‘무대 욕심’이 네티즌들 사이에 논란이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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