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를 죽여야 지상파가 산다?
  • 반도헌 (bani001@sisapress.com)
  • 승인 2008.11.11 1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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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 3사의 편성 축소에 외주 제작사들 ‘울상’

ⓒMBC 제공

ⓒKBS 제공(위), SBS 제공(아래)    

지상파 방송 3사는 가을 개편을 맞아 일부 드라마를 편성에서 제외했다. KBS 2TV는 일일드라마를, MBC는 주말 특별기획드라마를, SBS는 금요드라마를 각각 폐지한 것이다.

KBS 2TV는 지난 10월 종영된 <돌아온 뚝배기>를 마지막으로 일일극을 폐지하고 그 자리에 뉴스를 편성할 예정이다. MBC는 주말 특별기획드라마 <내 여자>가 종료되는 대로 그 자리에 예능 프로그램인 <명랑 히어로>를 내보낼 예정이다. SBS는 호평을 받은 <신의 저울>을 끝으로 금요드라마의 자리에 새로운 예능 프로그램인 <절친 노트>를 배치하고 <웃음을 찾는 사람들>을 이동 편성했다.

드라마를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는 1주일에 볼만한 드라마 세 편이 사라졌으니 실망할 만하다. 감동과 깊이가 있는 드라마의 자리에 들어간 예능 프로그램이 득세하면서 방송이 잔재미와 가벼운 웃음에만 집중하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를 자아내기도 한다.

하지만 방송사 입장에서는 제작비 절감을 위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이다. 한국방송광고공사에 따르면 TV, 라디오, DMB를 포함한 지상파 방송의 지난 10월 광고 신탁액은 1천8백84억원이다.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4백64억원(24.6%)이나 감소했다. 지난 9월에도 지상파 방송의 광고 매출액은 1천8백65억원을 기록하며 전년보다 2백13억원(11.4%) 줄었다. 세계적인 경제 침체가 광고시장 위축으로 이어진 탓이다. 광고 매출 감소와 제작비 증가는 지상파 방송사의 적자 경영으로 이어지고 있다. 적자 폭을 줄이기 위해 방송사는 제작비 감축 대책을 마련하고 긴축 경영에 들어갔다. 제작비 규모가 큰 드라마가 첫 번째 희생양이 되었다. 지상파 방송사의 한 관계자는 “현재의 광고시장에서 비용 대비 효율성이 가장 떨어지는 드라마를 줄이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쩔 수 없는 선택이다”라고 말했다.

지상파 방송사의 선택은 외주 드라마 제작사들에게는 직격탄이 되었다. 가뜩이나 경쟁이 심한 외주 드라마 제작사들에게 방영 기회가 줄어든 것은 심각한 위기 상황이다. 드라마 3개가 편성에서 제외되었으니 1년에 10편 정도가 줄어든 셈이다. 드라마 제작에 종사하는 스태프, 배우, 작가 모두에게 기회가 축소되었다.

“사회 전체가 어려워 탓할 수만도 없다”

김기범 초록뱀미디어 대표이사는 “월·화·수·목 프라임 타임에서 조금 밀리거나 시간이 안 맞은 작품이 편성되던 MBC 주말 특별기획이 폐지된 것은 조금 영향이 있겠지만, 사실상 우리 같은 메이저 제작사에게는 크게 문제될 것은 없다. 메이저 제작사는 경쟁력 있는 외주 시간대인 월·화·수·목 미니시리즈를 주로 한다. 하지만 신생 제작사는 타격이 클 것이다”라고 말했다.

드라마 외주 제작사의 한 관계자는 “업계나 구성원 모두 위기감을 느끼고 있다. 공급 기회를 잡는 데 더 신경을 쓰고, 작가들에게 지급한 선급금을 회수하기 위해 좋은 아이디어를 가진 작품을 내줄 것을 독려하고, 긴축 경영을 하는 등의 자구책을 강구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그는 “일부에서는 방송사의 방만한 경영, 고액 연봉 등으로 인한 경영 악화를 외주 제작사에 떠넘기는 것이 아니냐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방송사 광고 수익이 줄어든 부분이 있고, 사회 전체가 어려운 상황에서 방송사를 탓할 수만도 없다. 그렇다고 방송사가 시청률을 보장하는 자극적이고, 센 이야기만 요구하는 것은 아니다”라며 방송사의 입장에 수긍했다.

그동안 지상파 방송 3사는 드라마 경쟁에 열을 올렸다. 과열 경쟁으로 인해 방송사들은 드라마 편성을 확대하고, 인기 작품은 연장 방송하고, 편당 방송 시간도 고무줄 늘이듯 자유자재로 늘렸다. 드라마의 프라임 타임인 월·화·수·목 10시의 미니시리즈는 80분이 넘어가기도 했다. 이로 인해 드라마 제작에 들어가는 비용이 불필요하게 늘어나고 제작 여건이 악화되는 부작용이 있었다. 이같은 부작용을 막기 위해 최근 3개 지상파 방송사의 드라마 관계자들은 드라마 편성 시간을 72분 이내로 제한하기로 합의했다.

외주 제작사는 더욱 피 말리는 경쟁을 하고 있다. 경쟁에는 긍정적인 측면이 있다. 한국드라마제작사협회 김승수 사무총장은 “42~43개의 외주 제작사가 회원으로 있다. 외주 제작사는 사실 많을수록 좋은 것이다. 경쟁을 유도해서 양질의 드라마를 생산할 수 있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경쟁으로 인한 제작비 상승은 외주 제작사를 수렁으로 밀어넣는 주요인이 되고 있다. 그중에서도 회당 수천만 원을 호가하는 톱스타의 출연료 문제는 심각하다. 일부 스타의 경우는 1억원을 넘는 출연료를 요구하기도 한다. 방송사에서 편당 지급하는 제작비가 평균적으로 1억원 정도인 것을 감안하면 스타들의 출연료 비중이 얼마나 높은지를 알 수 있다. 외주 제작사의 한 제작 PD는 “방송사에서 1억원을 주지만 실제 필요한 제작비는 1억4천~1억5천만원 정도이다. 방송이 나가면 제작사가 얻는 이익은 거의 없다. 이같은 구조에서는 제작비는 상승하고 제작사는 손해날 수밖에 없다.

연기자들도 제작비 절감에 동참해야

제작비를 줄여야 한다. 거품이 끼어 있는 부분에서 거품을 깨뜨려야 한다. 방송사도 거품을 깨는 데 앞장서줘야 한다. 제작비에 거품이 많이 있다고 해서 인적 자원 감축은 크지 않을 것이다. 내부 인력에 대한 방만한 경영은 없었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제작비 상승의 주 원인이 출연료에 있다는 이야기이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배우들도 어느 정도 공감하고 있다. 연예매니지먼트업계의 한 관계자는 “영화시장의 불황으로 제작 편수가 확 줄어든 상황에서 드라마까지 축소 편성되어 배우들의 입지가 많이 좁아졌다. 그동안 톱스타의 몸값 높이기가 경쟁적으로 이루어졌던 것이 사실이지만 이제는 공생의 길을 찾아야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김승수 사무총장은 “제작비에서 출연료가 차지하는 비중이 70~80%이다. 세계적으로 적정한 출연료 비중은 30~40%이다. 그래야 스태프, 조명, 소도구, 미술 등이 먹고살 수 있다. 많은 배우들의 출연료에 거품이 많다. 한국예술인노조, 탤런트 협회 등과 협의를 통해 이 문제를 해결할 계획이다”라고 말했다. 

저작권 문제도 외주 제작사가 해결해야 할 숙제이다. 저작권은 외주 제작사가 수지타산을 맞출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창구이다. 하지만 한국방송영상산업진흥원 산업연구팀 윤재식 팀장이 발표한 ‘한국드라마제작환경변화’에 따르면 지상파 방송사의 외주 드라마 제작사 저작권 인정 비율은 KBS가 57.6%, MBC가 3.7% 이고 SBS는 전혀 없었다. 그나마 저작권이 인정된 경우는 대부분 해외 수출 가능성을 인정받은 경우이다. 드라마를 위해 특수 목적 법인을 만들어 법인이 저작권을 소유하는 제작위원회 방식을 도입한 <바람의 나라>가 한 예이다. 외주 제작사의 한 관계자는 “가장 중요한 것은 기획을 누가 했고, 발전을 누가 시켰느냐이다. 예전에는 A4 10장 시놉시스를 가지고 드라마 편성을 논의했지만 지금은 대본까지 만들고 편성되는데 저작권을 방송사가 가져가는 것은 문제가 있다”라고 주장했다.

외주 제작사들에게 내년은 중요한 해가 될 것이다. 외주 제작사들은 살아남기 위해 허리띠를 졸라맬 것이고, 메이저 제작사와 영세한 제작사 간에 구조 조정도 활기를 띌 것으로 보인다. 인수·합병을 통해 대형 제작사가 생기면 저작권 협상에서도 힘이 생기고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을 찾는 것도 수월해질 것이다. 현 상황에서는 외주 제작사의 경쟁력이 강해져야 시청자들이 더 좋은 드라마를 볼 수 있는 기회는 많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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