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리도 못 가 발병 난 ‘꿈의 도시’
  • 이석 (ls@sisapress.com)
  • 승인 2008.11.11 13: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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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형 기업도시개발 사업, 현수막만 펄럭…무주·무안·해남 등 3년째 착공도 못해

▲ 6개 기업도시 중 처음으로 기공식을 가진 태안에서 노무현 대통령(왼쪽에서 다섯 번째)이 발파 버튼을 누르고 있다. ⓒ뉴시스

“기업도시에 기업이 없다.” 한국형 기업도시 개발을 추진하고 있는 한 대기업 간부의 푸념이다. 기업도시 사업이 시작된 지 벌써 3년이 넘게 흘렀다. 하지만 상당수 개발 업체들은 현재 금융 위기에 이어 실물 경기가 극심한 침체의 양상을 보이자 몸을 사리느라 삽질할 엄두조차 못내고 있다. 이로 인해 시범 지역으로 선정된 6개 지역에서 과연 몇 군데나 기업도시를 성사시킬 수 있을지 하는 비관론이 연일 쏟아지는가 하면  일부 지역에서는 사업 포기설까지 흘러나오고 있다.

대한전선이 사업 주체인 무주기업도시가 대표적인 예이다. 이곳은 2005년 7월 시범 사업 지구로 지정이 되었지만, 아직까지 사업 진척이 전혀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미국발 금융 위기가 닥치면서 투자 시장마저 꽁꽁 얼어붙었다. 대한전선은 현재 기업도시 사업 자체를 원점에서부터 다시 검토 중이라고 한다. 대한전선의 한 관계자는 “1조4천억원에 달하는 사업비 마련을 위해서는 금융 기관에서 대출을 받든지, 아니면 공동 투자자를 끌어들여야 한다. 그러나 최근 발생한 금융 경색 여파로 금리가 치솟으면서 사업에 참여하려는 기업들이 없다”라고 말했다.

경기 침체로 투자 시장도 ‘꽁꽁’

그나마 무주는 상황이 나은 편이다. 비슷한 시기에 시범 지역으로 지정받은 영암·해남 기업도시의 경우 중앙 정부(농림부)와 지자체(전남도) 간 이견으로 아직까지 개발 승인조차 받지 못하고 있다. 기업도시 예정 부지 인근에 위치한 간척지가 화근이 되었다. 전남도측은 “국토연구원의 사업 타당성 용역 결과에도 문제가 없었다. 농림부가 왜 발목을 잡는지 모르겠다”라고 반발하고 있다. 그러나 농림부는 “간척지를 기업도시용으로 사용하기 위해서는 별도의 타당성 검사를 해야 한다”라고 맞서고 있다. 농림부는 현재 사업 타당성이 입증될 때까지 중앙도시계획위원회 안건에 상정할 수 없다고 버티고 있어 사업의 장기 표류 우려마저 나오고 있다.

우여곡절 끝에 개발이 승인되어도 문제이다. 투자 기업이 온전하게 사업에 참여할지 장담할 수 없기 때문이다. 영암·해남 기업도시의 투자자로 참여한 기업 중 상당수가 건설업체이다. 두 개의 SPC(특수목적 법인) 중 서남해안레저㈜에는 금호산업(30%)과 대림산업(15%), 삼환기업(10%)이, 서남해안기업도시개발㈜에는 보성건설(31%), 금광기업(10%), 남해종합건설(10%) 등이 참여하고 있다. 그러나 부동산 경기가 워낙 어렵다 보니 이들 기업 중 상당수가 이탈할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는 실정이다.


관광레저형 기업도시를 꿈꾸고 있는 무안군의 경우 최근 주요 투자자인 프라임개발이 돌연 ‘투자 포기’를 선언해 곤욕을 치렀다. 프라임개발은 당초 6백30억원을 이 사업에 투자할 계획이었으며 지난해 5월 이미 2백억원을 출자했다. 하지만 최근 “나머지 4백20억원을 납입하지 못하게 되었다”라고 무안군에 통보했다. 
업계에서는 최근 착공식을 마친 태안이나 충주 기업도시 역시 사정이 다르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익명을 요구한 한 SPC 관계자는 “태안이나 충주, 원주 기업도시 역시 고민이 많은 것으로 알고 있다. 우여곡절 끝에 착공식까지 가기는 했지만 앞날이 순탄치 않을 것 같다”라고 귀띔했다.

이같은 상황은 국토해양부가 최근 한나라당 김태원 의원에게 제출한 ‘기업도시 시범 사업 중간 성과 분석 및 개선 방안 연구’ 보고서에서도 엿볼 수 있다. 해당 기업도시의 지자체 및 SPC 관계자를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벌인 결과 대다수가 사업 추진 성과나 결과에 대해 부정적인 답변을 내놓은 것이다. 그나마 착공식을 마친 태안이나 충주·원주 기업도시 쪽은 성사 가능성에 대해 4.0점(5점 만점) 정도를 부여해 비교적 양호했다. 무주나 무안, 영암·해남은 각각 2.40점, 3.13점, 3.18점으로 집계되었다. 기업도시 사업 주체인 지자체나 SPC조차도 사업이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점을 인정하는 것이다.

지역 경제 발전에 도움 안 된다?

이들은 기업도시로 인한 도시 활성화나 지역 경제 발전 가능성에 대해서도 비관적인 의견을 내비쳤다. 사업성과 측면에서 상대적으로 높은 만족도를 보였던 충주나 원주 등도 3.91점과 3.75점으로 무안(3.89점)과 비슷한 수치를 보였다.

보고서를 작성한 한국능률협회컨설팅(KMAC)측은 연관 사업과의 차별화 부재를 가장 큰 문제점으로 꼽고 있다. 경제자유구역이나 혁신도시, 지자체에서 운영하는 산업단지조차도 공공 부문 주도로 사업이 진행되고 있다. 덕분에 부지 매입이나 기반 시설 조성, 세제 혜택 등 다양한 지원을 받고 있다. 이에 반해 기업도시는 민간이 사업을 주도하기 때문에 적지 않은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다.

특히 관광레저형 기업도시의 경우 성공 가능성뿐 아니라 기대되는 사업 효과도 높지 않은 것으로 KMAC 조사 결과 나타났다. 산업교역형(무안)이나 지식기반형(충주·원주) 기업도시의 경우 성공 가능성이 3.31점(5점 만점)으로 혁신도시(3.70점)나 산업단지(3.68점), 경제자유구역(3.91점)에 비해 낮았다. 그러나 사업 효과는 각각 3.80점과 3.68점으로 경제자유구역(3.94점)을 제외한 나머지 중에서 가장 높게 나타났다. 성공 가능성은 낮지만, 일단 성공하면 그만큼 경제적 효과가 높다는 얘기이다. 관광레저형의 경우 이 경제적 효과마저 낮게 나타났다. 성공 가능성이나 사업 효과가 각각 3.31점과 3.40점으로 전체 표본 중 꼴찌였다.

최무일 KMAC 연구원은 “대표적인 IT 클러스터인 스웨덴의 시스타나 유럽 최고의 휴양지로 꼽히는 프랑스의 그랑모떼의 경우 기업도시를 추진하는 국가의 벤치마킹 대상으로 꼽히고 있다. 이들 지역은 중앙 정부와 지자체 기업들이 유기적으로 움직여 성과를 얻었지만 국내는 그렇지 못하다”라고 꼬집었다.

정성래 전경련 규제개혁팀 과장 역시 기업도시 성공을 위해서는 규제 개혁이 시급하다고 강조한다. 그는 “기업도시 사업 추진을 위해서는 총 62개 법률에 1백40여 개의 규제가 적용된다. 이같은 복잡하고 까다로운 절차를 거치는 동안 기업들은 진이 빠질 수밖에 없다”라고 지적했다.

정과장은 이어 “개발을 위한 신규 수요 창출이 기업도시 성공의 관건이다. 그러나 기업도시 주변에 경제자유구역과 관광단지 등 유사 성격의 단지가 조성 중이어서 사업의 성공 여부를 판단하기가 쉽지 않다”라고 설명했다.

업계 일각에서는 노무현 정부와 이명박 정부 간 엇박자 때문에 사업 자체의 추진이 어렵지 않느냐는 문제를 제기하기도 한다. 기업도시는 노무현 정부 시절 전 국토를 균형적으로 발전시키겠다며 내놓은 작품이다. 무안, 충주, 원주, 무주, 태안, 영암·해남 등 총 6개 기업도시의 사업비는 7조8천2백44억원 규모이다.

정부는 공사가 차질 없이 진행되면 19조9천5백48억원의 공사비 투자와 46조5천4백25억원의 생산 유발, 48만8천2백34명의 고용 유발 효과를 거둘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운영 단계에서도 1만4천10명의 상시 고용, 14만2천65명의 고용 유발, 11조1천3백33억원의 생산 유발 등의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했다.

▲ 무주기업도시 개발을 촉구하는 현수막 앞을 한 주민이 지나가고 있다. ⓒ시사저널 임영무


“조성 첫 단추부터 잘못되었다”

그래서 노무현 정부는 금방 기업도시를 세울 것처럼 밀어붙였다. 그런데 이명박 정부 들어 분위기가 급변했다. 이대통령은 후보 시절부터 지역 균형 발전보다는 경제 살리기나 신성장 동력을 강조해왔다. 균형 발전을 앞세운 기업도시 조성의 실효성에 근본적으로 의문을 제기했던 것이다.

 이와 관련해 최무일 KMAC 연구원은 “기업도시 사업은 첫 단추부터가 잘못 끼워졌다”라고 주장했다. 그에 따르면 지역 경제 발전을 위해서는 신도시처럼 민간에 의존하는 개발 방식이 적합하다.

또, 국토 균형 발전을 목표로 할 경우에는 행복도시나 혁신도시처럼 공적 지원에 의존할 필요가 있다. 그런데 기업도시는 민간에 의존하면서 지역 경제 발전을 표방하고 있어 출발의 전제부터 잘못되었다는 것이다. 그는 “개발 방식이 처음부터 잘못되었다. 잘못을 바로잡기 위해서는 정부 차원의 대책이 절실하다”라고 말했다.

김태원 한나라당 의원 역시 정부 지원 없이는 기업도시의 성공이 어려울 것으로 보고 있다. 그는 “기업도시의 어려움은 목표와 현실의 괴리에서 시작된다. 개발의 인허가 절차를 간소화하고, 세제상 인센티브를 확대해야 한다. 이를 통해 민간이 원활하게 기업도시 개발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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