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 좋은 골프’에 허덕이는 인생들
  • 반도헌 (bani001@sisapress.com)
  • 승인 2008.11.11 1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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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골퍼들, 일자리·수입 갈수록 줄어 ‘막막’…“연습장 강사 자리도 하늘의 별 따기”

▲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대학 진학까지 긴 세월 동안 골프 선수로 지냈던 박영식씨(가명)가 지금은 허드렛일까지 하게 된 사연을 취재진에게 공개하고 있다. ⓒ시사저널 임영무

‘박세리 선수가 미국 LPGA에 진출해 1998년 맥도날드 챔피언십에서 우승하며 그해 올해의 신인상을 수상한 지도 10년이 되었다. 귀족 스포츠로 불리던 골프는 그 10년 동안 많이 대중화되었다. 여전히 서민이 골프를 즐기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지만 최소한 보는 스포츠로서는 대중에게 친숙해졌다.

지난 10월13일에는 LPGA 투어에서 또 한 번의 승전보가 울렸다. 롱스 드럭스 챌린지에서 김인경 선수가 우승하며 또 한 명의 ‘박세리 키드’로 이름을 올린 것이다.

‘박세리 키드’는 LPGA에서 성공을 거둔 박세리 선수의 모습을 보고 프로 골퍼의 꿈을 키운 세대들을 일컫는 말이다. 김인경 선수 외에도 이선화, 신지애, 박인비, 지은희 선수 등 국내외 각종 골프 대회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는 ‘박세리 키드’들이 즐비하다. 여자들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남자 골퍼 지망생들에게는 미국 PGA 투어에서 당당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최경주 선수가 롤 모델이다.

두 선수의 성공으로 프로골퍼에 대한 관심이 늘어났고 많은 부모들이 자녀를 골프 선수로 만들기 위해 아이 손에 골프채를 쥐어주었다. 이제 골프장과 골프 연습장에서 골프채를 부여잡고 스윙하고 있는 어린 학생들을 찾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많은 ‘박세리 키드’ ‘최경주 키드’들이 제2의 박세리, 제2의 최경주를 꿈꾸며 구슬땀을 흘리고 있다.

신문·방송에서 비치는 프로골퍼의 모습은 화려하기 이를 데 없지만, 프로골퍼가 되기 위해 모든 것을 쏟아부은 프로골퍼 지망생들의 현재가 밝기만 한 것은 아니다. 프로골퍼로서 성공을 거두지 못한 많은 골퍼들은 경제적인 문제로 생활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2부 리그는 참가 비용 빼면 남는 것 거의 없어

일반적으로 프로골퍼의 수입원이라고 하면 투어 대회에 출전해서 상금을 얻는 경우를 떠올릴 것이다. 한국프로골프협회에서 주관하는 KPGA 코리안 투어는 연 21회 열리며 대회당 총 상금이 3억원에서 5억원에 이른다. 하지만 2부 투어격인 베어리버 투어, 챔피언스 투어, 캘러웨이 투어는 대회가 적게 열리고 상금 규모도 작다. 1년에 10회 열리는 베어리버 투어는 총 상금이 6천만원이고 다른 투어도 비슷한 수준이다. 2부 리그의 경우에는 대회에 참가하기 위한 비용을 제외하면 남는 것이 별로 없는 실정이다.

대다수 프로골퍼는 골프 강사 수입에 의존하고 있다. 문제는 골프 붐으로 인해 골프를 업으로 삼는 사람의 수가 증가하면서 골프 강사 자리가 더 이상 안정적인 수입원이 되지 않고 있다는 데 있다.

한국프로골프협회의 관계자에 따르면 KPGA 투어에 참가할 자격이 있는 투어 프로가 8백70여 명, 2부 리그 투어에 참가할 수 있는 세미 프로가 3천4백여 명, 투어에는 참가하지 못하지만 강사 자격이 주어지는 티칭 프로 4백60여 명이 협회에 등록되어 있다. 투어 프로는 1년에 60~70명, 세미 프로는 1백20여 명, 티칭 프로는 40명이 새롭게 배출된다. 여기에 학창 시절 골프 선수로 활동했지만 자격증은 취득하지 않은 사람들까지 포함하면 골프 강사 시장은 포화 상태라고 할 수 있다.

지난 3월 골퍼로서의 삶을 포기하고 8월부터 한 환경산업체에 근무하고 있는 박영식씨(26·가명)는 “프로골퍼가 발에 치일 정도로 많다. 그러다 보니 골프연습장에서 강사 자리를 얻는 것도 어려워졌다. 이름을 날릴 정도로 실력이 있거나 연줄을 동원하지 않으면 취업도 어려울 지경이다.

결국 그 때문에 골프연습장 업주들의 기세가 등등해지고 골퍼들의 처우는 예전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열악해졌다”라고 말했다.

그는 “내가 스무 살 때만 하더라도 오전반 8시간, 저녁반 8시간 근무에 각각 1백80만원에서 2백만원 정도를 받았었는데 지금은 오전·저녁 구분 없이 계속 근무를 시키고 1백30만원만 지급하는 골프연습장도 있는 상황이다”라고 설명했다.

박영식씨는 초등학교 5학년 때 아버지의 손에 이끌려 골프장을 찾으며 선수의 길로 들어섰다. 그는 중학교 시절 전국 대회에서 우승을 한 경력이 있을 정도로 재능 있는 선수였지만 대학 1학년 때 아버지 사업이 어려워지고 경제적 지원이 끊기면서 선수 생활을 지속하기가 힘들어졌고 이후 골프연습장에서 강사 일을 해왔다. 강사 일을 하면서도 골프 연습은 꾸준히 했지만 벌어진 격차를 해소할 수는 없었다.

“아줌마 모으려고 외모부터 본다”

박씨처럼 학창 시절 골프 선수로 활약했지만 투어 프로로 성장하지 못하고 골프 강사로서도 경제적인 어려움을 호소하는 프로골퍼들은 의외로 많았다. 박씨는 “주변의 선배들도 일자리가 없어 다른 일을 알아보는 경우가 많다. 일부 골프연습장에서는 강습 능력보다 외모와 나이로 강사를 선발하는 경우도 있다. 특히 낮 시간의 아주머니들을 공략하기 위한 것이다. 때문에 나이가 들었거나 외모가 빼어나지 않은 사람은 밀려나기 일쑤이다”라고 말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많은 골프 강사들이 골프를 계속할지 포기할지에 대해 고민하고 있다. 골프 강사인 한 아무개씨(27)는 오전·저녁 강습에 모두 나가고 있다. 서른 살 이후에 강습을 계속할 수 있을지 의문이 들기 때문이다. 그는 그 전까지 악착같이 벌고 난 다음에 다른 길을 찾을 것이라고 했다. 골프를 그만두고 직장에 취업한 박씨에게 일자리 추천을 부탁하는 선후배들도 많이 있다고 한다.

하지만 대다수는 어려운 여건에도 골프에서 쉽게 손을 놓지 못하고 있다. 공만 치던 손으로 다른 일을 시작한다는 것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다. 다른 종목과 마찬가지로 학생 선수 시절 학교 생활을 거의 하지 않아 골프 외에 배운 것이 전혀 없다는 사실이 두려움을 증폭시킨다. 박씨는 “대학 졸업 때까지 학교를 가본 기억이 거의 없다. 우리나라 여건상 운동을 하면서 공부를 병행하는 것은 어렵다. 출석하지 않고 시험도 보지 않았지만 별 탈 없이 졸업장은 나왔다”라고 말했다. 운동에 ‘올인’하는 대한민국 학원 스포츠의 현실이 골프라고 예외는 아닌 것이다.

그는 “지금 직장에서 허드렛일에 가까운 일을 하지만 골프에 대한 미련은 없다. 기술을 배워가는 과정이 새롭고 즐겁기 때문이다”라며 학창 시절 배움의 즐거움을 누리지 못한 것을 아쉬워했다.

▲ 최경주 선수(맨 오른쪽)가 다른 골퍼들과 얘기를 나누고 있다. ⓒ연합뉴스

골프는 개인 스포츠이다 보니 개인 강사를 섭외해야 하는 등 경제적으로 많은 투자가 필요하다. 대부분의 프로골퍼 지망생 부모들은 자녀에게 한 달에 수백만 원의 비용을 들이고 있다. 대회에 입상할 정도의 실력을 만들려면 프로 레슨비 6백만원을 포함해 1천만원이 넘는 돈이 필요하다는 말이 나올 정도이다. 박씨는 “인조 잔디에서 천 번 치는 것보다 천연 잔디에서 백 번 치는 것이 더 좋다는 것이 골프이다. 좋은 훈련 여건을 갖추려면 돈은 기하급수적으로 들어간다. 자녀에게 골프를 시키려는 부모들이 있다면 빛의 반대편에 있는 어두운 곳을 돌아보며 그럴 만한 가치가 있는지 생각해보기를 권한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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