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위기보다 정치 공세가 더 문제다
  • 염재호 (고려대 행정학과 교수) ()
  • 승인 2008.11.18 03: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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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염재호 (고려대 행정학과 교수)

미국 44대 대통령으로 선출된 오바마 당선인의 연설은 감동적이었다. “진보주의자의 미국은 없고, 보수주의자의 미국도 없고, 흑인의 미국은 없고, 히스패닉의 미국은 없고, 아시아계의 미국도 없다. 오직 연합된 미합중국만 있을 뿐이다.” 선거 과정에서 반복적으로 보여준 그의 4년 전 민주당 전당대회의 연설은 그를 일약 미국 정치계의 스타로 만들었다. 실제로 대통령에 당선된 다음에도 그는 민주당의 대통령이 아니라 미국의 대통령으로 단합을 강조했다.

이번의 경제 위기는 10년 전 IMF 외환위기보다 더 심각하다고 한다. 당시의 위기는 한국과 아시아 일부 국가의 외환 위기였지만 지금은 전세계가 경제 위기에 직면하고 있다. 이러한 위기는 짧게는 2년, 길게는 3년을 넘길지 모른다고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주식시장의 붕괴와 환율의 급등으로 일반 시민들도 경제 위기를 서서히 체감하고 있다. 신성건설이 법정관리를 신청했다. 100위 이내의 건설업체 중 20여 개가 유동성 문제로 도산에 직면하고 있다. 경제 위기는 이미 시위를 떠난 화살처럼 현실화되고 있다.

여야 모두 당리당략에만 매달려

경제 위기라는 공룡이 다가오는데 우리의 정치권은 하나의 한국을 강조하기보다는 연일 분열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야당은 다가오는 경제 위기를 이명박 정부의 경제 정책 실정을 부각시키기 위한 좋은 기회로 보고 정치 공세를 늦추지 않고 있다. 여당도 정부와 머리를 맞대고 경제 위기 극복을 고민하기보다는 대선 끝난 지가 언제인데 아직도 친박이니, 친이니 하는 갈등으로 혼란스럽다.

국민은 바로 10년 전 스산한 경제 위기로 고통스러웠던 일들을 몸서리치게 회상하고 있는데, 정치권은 10년 전 경제 위기 이전의 태평스러운 정치 싸움을 재방송하고 있다. 10년 전 IMF 외환위기에 대한 다양한 원인 분석이 있지만, 당시 대선을 앞둔 정부와 정치권의 책임이 막중했다는 사실을 부인하는 사람은 별로 없다. 정부는 아시아의 외환 위기가 서서히 다가오고 있는데도, 대선을 앞두고 OECD 가입으로 경제 선진국이 되었고 우리 경제의 기초는 튼튼하다고 자신했다. 야당은 우리 경제의 모순을 밝히기 위해 안간힘을 쏟았고, 외환 위기의 가능성을 부풀려 여당 대통령 후보에게 불리하게 하려고 정치적 공세의 끈을 놓지 않았다.

경제 위기는 객관적 사실의 위기보다는 신뢰의 위기로 확대 재생산되고 증폭되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즉, 국가를 이끌어가는 정치 지도자들이 국내외적으로 얼마나 신뢰를 주느냐에 따라 객관적인 경제 위기가 비켜 지나갈 수도 있고 직격탄을 맞을 수도 있다. 자신의 입장에 따라 어제 자신이 추진했던 정책을 오늘 반대하고, 어제 극렬하게 반대하는 논리를 주장하다가 오늘 입장을 바꿔 적극적으로 찬성하는 정치 지도자들이 난무하고 있다. 국가적 위기를 정략적으로 활용하는 정치 지도자들에게 국민은 무엇을 기대할 수 있는가? 지금 경제 위기보다 정치 위기가 더 심각한 것은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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