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소설과 영화 ‘찰떡궁합’ 좋을시고
  • 명운화(소설가) ()
  • 승인 2008.11.18 0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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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의 국내 영화계, 베스트셀러 영화화 부쩍 늘어

▲ 올해 개봉한 한국 소설 원작의 영화들. 왼쪽부터 .

한국 소설에 모처럼 훈풍이 불고 있다. 훈풍의 진원지는 영화 산업이다. 국내 영화사에서 우리나라 소설에 본격적인 관심을 갖고 판권을 사들여 영화를 제작하고 있다는 소식이 곳곳에서 들려오고 있다. <아내가 결혼했다> <모던보이> <그 남자의 책 198쪽> <미인도> 등의 영화들이 그렇다.

소설이 영화의 원작으로 활용되는 것은 새삼스러운 일이 아니다. 1970년대 화제작이었던 조세희의 <난장이가 쏘아올린 공>을 비롯해 황석영의 <오래된 정원>, 김영하의 <나는 너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 이만교의 <결혼은 미친 짓이다> 등등이 이미 영화로 제작되어 개봉되었다. 근래에는 공지영의 소설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이 영화로 개봉되어 관객을 찾아간 적이 있었다. 그런데 예전에는 베스트셀러 소설 위주로 간헐적으로 제작되던 영화가 최근 들어 그 양이 많아지고 선택의 폭 또한 넓어지고 있다. 왜 국내 영화사들이 예전같이 않게 국내 소설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일까.

현재 국내 영화 산업은 침체를 넘어 위기로 치닫고 있다. 민주당의 전병헌 의원이 11월12일 국회 문방위 회의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올해 한국 영화 제작 편수는 2006년에 비해 40% 정도 줄어든 30여 편에 불과하고 전체 관객 수도 급감해 최고치를 기록한 2006년에 비해 3천6백만여 명이 줄어들었다.

이처럼 영화가 위기를 맞은 이유로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가장 큰 원인은 관객들이 국내 영화를 외면하는 데 있다. 할리우드 영화는 막강한 자본력을 바탕으로 한 블록버스터 위주이다. 이에 맞서기 위해 한국 영화는 참신한 소재와 탄탄한 스토리로 무장해 대응할 수밖에 없다. 소재와 스토리 구성이 치밀하게 짜여진 소설에 관심을 갖는 것은 영화사 입장에서 당연해 보인다. 한국 영화가 원작에 관심을 갖는 데는 감독이 시나리오를 쓰는 등 시나리오 작가 시스템이 부족한 현실도 한몫하지만, 검증된 원작을 통해 모험과 손실을 줄이려는 제작사의 의도도 적잖이 깔려 있다.

모험·손실 줄이려는 의도도 작용

관객들이 국내 영화를 외면하는 요인은 여러 가지이다. 그중 가장 큰 것은 한국 영화가 소재의 다변화에 실패했기 때문이다. 인터넷과 각종 미디어를 통해 언제든지 원하는 소재에 접속할 수 있는 현대인들을 고전적인 코믹과 조폭 영화로 붙잡겠다는 것은 시대착오적인 발상이다. 소재의 다변화는 예전부터 우리 영화에서 절실한 문제였다. 그러나 획일적인 문화와 기초가 부실한 대중문화로 인해 우리나라에서 다양한 소재를 발굴하기란 요원한 일이었다. <올드보이> <괴물> <왕의 남자> 같은 흥행작들의 공통점은 바로 소재의 다변화에 성공했다는 점이다.

우리나라 드라마들이 만화를 원작으로 해서 각색해 방영하고 있다는 것은 누구나 다 아는 이야기이다. 하지만 영화는 드라마와는 다른 깊이와 감동이라는 차별성을 요구하고 있다. 때문에 만화보다는 소설을 찾는 경향이 있고 그로 인해 국내 영화사들이 하나 둘 소설에 눈을 돌린 것이다.

하지만 처음부터 국내 소설에 눈길을 돌린 것은 아니다. 한국 영화 제작사는 국내 소설보다 일본 소설에 관심을 두고 있었다.

영화사들이 일본 소설에 본격적인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올드보이> 때문이었다. 일본 만화를 원작으로 한 <올드보이>가 흥행과 작품성에 성공하자 영화 제작사들은 일본 소설 판권을 구입하기  위해 대거 일본으로 건너갔다. 영화 제작사인 싸이더스의 경우 일본에 에이전시를 두고 일본 원작을 사들일 정도였다. 국내 영화사들이 너도나도 일본 소설 원작 판권을 구입하기 위해 뛰어들면서 일본 소설 <푸른 불꽃>을 둘러싸고 국내 영화사들끼리 경쟁을 벌이는 일이 벌어지기도 했다. 그 결과 <화차> <모방범> <백야행> <레몬> <공중 그네> <남쪽으로 튀어> 등 많은 일본 소설들이 국내 영화사와 판권 계약을 했다. 뿐만 아니라 일본 소설이 급속하게 우리나라 서점을 점령하는 계기가 되었고 서점에서는 일본 신간 소설 코너가 국내 신간 소설 코너보다 좋은 자리를 차지하게 되는 일이 벌어졌다. 또한 <사랑따윈 필요없어> <소년은 울지 않는다> 같은 일본 소설 원작을 바탕으로 한 작품이 개봉하기도 했다. 그러나 일본 만화를 원작으로 한 <미녀는 괴로워>와 일본 소설을 원작으로 한 <검은집> 등이 흥행에 성공하거나 주목을 받았지만 일본의 베스트셀러 소설이 영화의 흥행과 직결된 것은 아니었다.

시나리오·소설 모두 집필 여건은 황폐화

게다가 일본측이 한국에서 마구잡이로 자국 소설 판권을 사들이자 자국의 원작을 보호하기 위해 보호 장벽을 설치하는 바람에 일본 소설 판권을 사들이는 일이 예전처럼 쉽지만은 않게 되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일본 베스트셀러 소설이 흥행과 직결되지 않자 제작사들은 일본 소설에 흥미를 잃은 모습이다. 이런 여러 가지 요인으로 국내 영화사들이 한국 소설에 대해 비로소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하지만 국내 영화사들이 원하는 한국 소설은 태부족이다. 영화사들이 무조건 국내 소설 판권을 사들이는 것이 아니라 이미 시장에서 검증이 되어 있는 소설을 원하고 있기 때문이다. 베스트셀러 소설이 검증된 소설은 아니다. 그럼에도 작품성보다 베스트셀러 소설이 흥행 영화가 된다는 고루한 인식이 아직도 영화계에 널리 퍼진 것은 사실이다.

그리고 한국 소설은 이미 오래전에 황폐화되어 있는 실정이다. 인기 작가의 소설이 베스트셀러에 올라와 있는 등 일견 한국 소설이 양호한 것 같아 보이지만 이미 한국 소설은 기초가 무너져 있는 상황이다. 이순원, 구효서, 성석제, 김영하 등 한국 문단의 견인차 구실을 하던 남성 작가들의 생산은 현재 끊겨 있다. 그들은 어린이 관련 도서, 혹은 여행기를 써가며 근근이 작가로서의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작가에게 작가의 책무만을 내세울 수는 없다. 소설이 팔리지 않아 출판사에서 출판을 외면하지만 작가 스스로도 출판을 꺼려하고 있다. 또 영화사가 선호하는 소설은 젊은 신세대들이 소재 지향적인 가벼운 작품과 베스트셀러, 그리고 몇몇 인기 여성 작가에 국한되어 있다.

장르 소설 쪽도 상황은 좋지 않다. 특히 국내 추리소설과 스릴러, SF 같은 분야는 작가군이 아예 사라져버렸다. 일본 소설들이 대거 몰려들면서 추리소설과 SF 분야의 작가들은 집필 활동을 중단했고, 이 과정이 심화되면서 지금은 작가들이 대부분 자취를 감추어버린 것이다.  

소설은 쌀농사와 같다. 소설을 생산하기 위해서는 작가가 적어도 1년 이상을 작품에 매진해야 한다. 또, 한 사람의 소설가가 세상에 나오기까지는 수십 년의 세월이 필요하다. 뒤늦게나마 한국 영화가 한국 소설에 눈을 돌렸지만 이미 작가들은 사라져버렸고 일부 젊은 인기 작가에게 매달려 있는 상태이다. 하지만 이 상황이 오래가지 못한다는 것은 누구나 짐작할 수 있다. 결과적으로 한국 소설에서 탈출구를 찾아보려는 한국 영화의 시도가 성공할 가능성은 희박하다. 영화사와 일부 유명 출판사가 손을 잡고 사라진 작가들을 불러오기 위해 콘텐츠 문학상을 신설하는 등 노력을 하고 있지만 과연 작가들이 다시 펜을 들 것인지는 미지수이다. 하지만 뒤늦게나마 잊혀진 소설에 대해 대중적인 관심이 고조된다는 것만은 반가운 일임에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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