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정 지출 늘리기 전에 ‘건전성’ 먼저 따져라
  • 안종범 (성균관대학교 경제학과 교수) ()
  • 승인 2008.11.18 0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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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금융 위기 극복 위한 정책이 실효를 거두기 위해 선결할 과제 많아…냉철한 판단력으로 ‘재정 개혁’도 병행해야

▲ 안종범 (성균관대학교 경제학과 교수)
지금 우리 앞에 있는 글로벌 금융 위기는 미래의 역사책에 21세기 초반에 발생한 중대 사건으로 기록될 것이다. 미국의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로 시작된 금융 위기가 전세계 모든 국가의 주가를 동시다발적으로 폭락시킴과 더불어 실물 경제의 침체를 야기하는 등 세계 경제를 큰 충격에 빠뜨렸기 때문이다.

세계인이 글로벌 금융 위기를 대공황과 비교하는 반면, 우리 한국인은 외환위기와 비교한다. 그만큼 우리에게는 외환위기가 다시는 겪고 싶지 않은 고통의 기억으로 새겨져 있다. 그러나 좀더 정확한 이해와 대처를 위해서는 외환위기와 현재의 상황을 비교해야 한다. 첫째로 원인 면에서 본다면 외환위기와 글로벌 금융 위기는 서로 다르다. 외환위기는 오랜 기간 지속된 관치 경제가 그 주된 원인인 반면 이번 위기는 금융 감독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은 지나친 방임이 원인이다. 둘째로 파급 효과 면에서 차이가 있다. 외환위기는 국지적인 위기인 데 반해, 글로벌 금융 위기는 전세계적인 위기이다. 우리는 세계 경제의 호황에 힘입어 외환위기를 단기간에 극복할 수 있었다. 그러나 글로벌 금융 위기가 앞으로 가져올 세계 경제 침체로 우리 경제가 입게 될 피해는 더욱 크고 오래갈 것이다. 우리 경제의 대외의존도가 세계 최고 수준이라는 점이 이런 비관적인 전망을 할 수밖에 없게 만든다.

총 33조원 규모 예상…원칙 세우고 국정 운영 목표도 지켜야

이런 상황에서 정부는 11월3일 위기 대책을 발표했다. 11조원의 재정 지출 확대와 3조원의 추가 감세를 합해서 14조원의 확대 재정 대책을 발표했다. 고유가 대책 등을 포함하는 올해 추경예산 9조원과 기존 감세 규모 10조원을 합하면 총 33조원 규모의 재정 지원이 글로벌 금융 위기 대책으로 이루어지는 셈이다.

당초 2009년 예산안은 GDP 대비 1.1%의 적자 재정을 기초로 편성되었지만, 이번 대책으로 내년도 적자 재정은 2.1%로 대폭 확대되었다. 국가 채무 수준 역시 GDP 대비 32.3%에서 34.3%로 늘어날 것이라는 전망이다. 외환위기 이후 2년 동안 각각 4.17%와 2.7%의 재정 적자 수준에 비하면 크지 않은 규모이다. 그러나 외환위기 직후 국가 채무가 GDP 대비 13% 수준이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지금의 국가 채무 수준은 우려할 정도로 크다고 할 수 있다. 다시 말해서 지금은 확대 재정이 가져올 재정 건전성의 악화를 우려해야 한다는 것이다. 더욱이 벌써부터 확대 재정 규모가 위기 극복에는 부족하다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고, 또한 앞으로 발생할지 모르는 각종 도산과 대량 실업을 감안하면 추가적인 재정 지출 확대가 필요할지도 모른다는 점에서 재정 건전성이 또 다른 문제로 부각될 수 있다.

그러나 지금 우리 앞에 있는 위기는 재정 건전성을 다소 훼손하더라도 조기에 극복해야 할 만큼 심각하다. 다시 말해서 위기 극복을 위해서는 재정 지출 확대가 유일하면서도 확실한 대안이라는 것이다. 다만, 재정 건전성 문제를 일단 포기할 때는 반드시 내수를 살리고 서민을 보호해야 한다는 점에서 지금의 재정 확대 실효성을 담보해야 한다. 이를 위한 다섯 가지 과제를 제시해 본다.

정치 논리·이념에 오염되지 않는 사후 관리와 검증도 중요

▲ 한 재건축 아파트에서 마무리 공사가 한창인 가운데 공사장 주변에 건설 자재가 쌓여 있다. ⓒ시사저널 유장훈
첫째, 재정 지출 확대에서 원칙을 세워야 한다. 무조건 늘리는 것이 아니라 국민 경제에 가장 큰 도움이 되는 부분의 지출을 늘리는 것이 중요하다. 투자를 유인하고 소비를 진작하는 감세와 지출 확대가 내수 진작을 위한 최선의 대책이기 때문이다. 성장 동력 확충에 가장 도움이 되는 재정 지출 부문을 찾아내 집중적으로 재정 자금을 투입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과거처럼 사회간접자본(SOC) 투자나 연구·개발(R&D) 투자가 경기 활성화에 도움이 된다는 막연한 사고보다 세부 프로그램 하나하나에 대한 철저한 타당성 분석과 실효성 분석을 통해 지출 효과 극대화를 도모해야 한다. 이번 추가예산에서도 재정 자금이 투입되는 프로그램별로 사전 타당성과 실효성 평가가 철저히 이루어져야 하며 이를 통해 예산 지원 규모의 조정이 필요하다고 하겠다.

둘째, 작은 정부라는 이명박 정부의 국정 운영 목표는 지켜져야 하고 또 이를 위한 구체적 전략과 대안이 나와야 한다. 재정 지출을 확대하는 이번 대책이 작은 정부를 포기하는 것으로 비쳐서는 안 된다. 낭비 요인이 심하고 생산성이 낮은 공공 부문을 바로잡고 축소하는 노력이 약해져서는 안 된다는 뜻이다.

셋째, 부실 부분에 재정 자금이나 보증이 제공될 경우 반드시 철저한 사후 관리 근거 마련이 선행되어야 한다. 외환위기 극복 과정에서 금융 기관 구조 조정과 실업 대책으로 막대한 공적자금이 투입되었다. 그러나 그 후 10여 년이 지난 지금 우리의 금융 기관은 여전히 위기 관리 능력이 부족하다는 사실이 이번에도 여실히 드러났다. 지난 10월 한달 동안 원화 가치와 주가가 어느 국가보다 큰 폭으로 떨어졌다는 사실만 보더라도 우리 금융시장이 가진 취약성은 심각한 수준임을 알 수 있다. 따라서 더 이상의 재정 자금 투입이 없을 것이라는 확신을 갖고 금융권에 대한 철저한 감독 체계와 사후 관리 체계를 마련해야 할 것이다.

넷째, 재정 개혁을 위한 노력은 지속되어야 한다. 지난 노무현 정부 당시 재정 건전성과 재정 효율성 제고를 위한 4대 개혁 과제가 수립되고 추진되었다. 재정 운용을 중·장기적으로 한다는 국가 재정 운용 계획 수립, 예산 편성의 책임성을 강화하는 톱-다운 예산 제도, 재정 사업의 효율성 제고를 위한 재정사업 자율 평가 제도 운영, 그리고 공공 부문의 범위를 규정하고 파악하는 디지털 예산 회계 시스템 구축의 4대 재정 개혁 과제가 그것이다. 이러한 재정 개혁 과제의 추진 실적이 지극히 미진한 상태에서 정권 교체가 이루어졌다. 그러나 새 정부가 출범했다고 지난 정부의 개혁 과제를 경시해서는 안 된다. 재정 개혁 과제의 재검토와 내실화가 현 시점에서 반드시 필요하다.

다섯째, 재정 지출을 엄격하게 관리해야 한다. 그 핵심은 정부의 재정 사업에 대한 사전·사후 평가를 제대로 하는 것이다. 그러나 현행 평가 체제 하에서는 평가가 중복되고 평가 결과가 차후 사업의 개선에 반영되지 못함에 따라 평가의 실효성이 지극히 저조한 실정이다. 따라서 우선 산재되어 있는 평가를 일원화해 중앙 집중 관리하고 평가 결과의 환류 체제(feedback system)를 마련해야 한다. 아울러 재정 건전성에 악영향을 끼치는 공기업의 경영 효율성 제고와 민영화 추진, 각종 기금의 통폐합 및 연금 개혁이 반드시 이루어져야 한다.

이번 위기를 기회로 바꾸자고 한다. 지금의 위기를 진정 기회로 만들기 위해서는 지금 내놓는 각종 정책 대안에 대한 철저한 검증이 필요하다. 이러한 검증 과정이 정치 논리나 이념으로 오염된다면 위기 극복을 위한 처방이 오히려 독이 될 수도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 지금은 외환위기 당시 금 모으기 정신 대신 정치나 이념에 흔들리지 않는 국민의 냉철한 판단력이 요구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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