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리막길에 브레이크 걸릴까
  • 심정택 (자동차산업 전문가) ()
  • 승인 2008.11.18 0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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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10위권 자동차업체 구조 조정 돌입…침체기 접어든 국내 자동차 산업에도 ‘직격탄’

▲ 지난해부터 침체기에 들어간 국내 자동차 업계가 결국 구조 조정에 들어갔다. 아래는 썰렁한 자동차 판매장. ⓒ시사저널 임영무

미국의 서브프라임 사태에서 비롯된  금융 위기가 실물 경제로 파급되면서 자동차 산업을 파국으로 몰아넣고 있다. 미국의 빅 3인 GM, 포드, 크라이슬러는 물론 유럽의 자동차 거목인 BMW 등이 이미 실적 악화로 흔들리고 있고 글로벌 생산 거점을 갖춘 세계 10위권 자동차업체 상당수가 이미 구조 조정에 들어갔다.

지난해부터 경영 악화로 침체기에 접어든 국내 자동차업계 역시 직격탄을 맞고 있다. 

국내 자동차 산업의 대표 격인 현대·기아차의 경우 아직 구조 조정 움직임은 뚜렷이 나타나지 않고 있다. 물론 현대·기아차 노조가 민노총 금속노련의 핵심 세력인 만큼 회사측이 섣부르게 국내 생산 라인을 정비하겠다는 이야기를 꺼낼 수 없는 상황이다. 하지만 현대·기아차는 노조 영향을 받지 않는 해외 사업 부문에서 이미 구조 조정에 들어갔다. 미국 앨라배마 공장의 조업 단축설도 구체화되고 있다. 미국·인도·중국·동유럽 등에 현지 공장을 세우면서 최근 수년간 세계 자동차업계에서 가장 공격적으로 해외 투자를 해온 터라 금융 불안이 세계 실물 경제에 본격적으로 영향을 미치게 되는 내년 이후의 상황에 대비해 선제 조치를 취할 필요성을 절실하게 느끼고 있다.

생산 라인 멈춰 휴직 속출…조직 축소·대규모 감원 바람 예고

현대차는 지난 4월 중국 베이징에 제2 공장을 준공했다. 연산 30만대 규모이다. 기아차는 2007년 12월 장쑤 성에 연산 40만대 규모의 제2 공장을 완공했다. 현대·기아차는 아직 풀 가동을 못하고 있음에도 연말 인사 때 임원급 30%를 감축하고, 조직을 통폐합하거나 축소하는 방안을 고려하고 있다.     
  
지난 상반기 기아자동차는 주력 공장인 시흥 소하리 공장의 설비를 매각한 후 리스 방식으로 운영하고 있다. 리스는 비용으로만 따지면 감가상각으로 처리하는 투자 손실보다 유리할 수 있지만, 향후 나빠질 재무 상황에 대비한다는 의미로도 해석된다. 기아차가 글로벌 금융 위기와 상관없이 경영 악화에 대비해 추진해온 ‘가벼운 몸집 만들기’가 위기에 빛나고 있는 셈이다.

외국 자본과 제휴한 국산차 메이커들에도 비상등이 켜져 있다. 글로벌 금융 위기로 외국 자본이 한국 시장에서 철수하고 고환율이 지속되면서 완성차 메이커들이 겪는 환율 고통은 이만저만이 아니다. 수출에서 얻는 과실보다는 핵심 부품 수입으로 잃는 손실이 훨씬 크기 때문이다. 특히 달러화보다 엔화의 상승 폭이 커, 일본 닛산으로부터 엔진·변속기 등의 핵심 부품들을 수입하는 르노삼성차의 경우는 타격이 더 클 수밖에 없다.

르노삼성차는 생산 라인의 비정규직 일부 직원들에게 휴직 명령을 내렸고, 내수 판매 부진에 따라 영업 부서의 지역 본부 및 영업소를 축소할 채비를 하고 있다. 영업 부문의 특성상 내수 매출이 많지 않으면 영업직들의 수입이 줄기 때문에 자연 감소 인원이 많게 된다. 이 인력들을 보충하지 않는 방식으로 구조 조정을 해나갈 방침으로 알려져 있다.

르노삼성측에서는 관리직 사원의 경우 명예퇴직 신청을 받는 방안을 고려 중이다. 2000년 삼성자동차를 인수하면서 들여온 자금의 금융 이자만으로도 영업 이익을 냈던 르노삼성차였다. 그러나 최근 외부 자금을 차입하기 시작해 경영이 극도로 악화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르노삼성차의 한 협력 업체는 수급 불안으로 인해 전체 인력의 50%를 감원했고, 핵심 임원들에게도 6개월 유급 휴직 명령을 내렸다. 불황은 1, 2차 협력 업체로 이루어진 완성차 업체의 시스템을 총체적으로 흔들고 있다.

러시아의 자동차 생산 업체인 타가즈(TAGAZ)와 매각 협상을 벌이던 쌍용자동차는 금융 위기 와중에 협상이 중단되었다. 이로 인해 러시아 지역 수출이 끊기고 해당 생산 라인의 가동도 멈추었다. 쌍용차는 최근 생산 라인에서 협력 업체 직원들이 담당하던 부문을 정규직으로 교체했다. 비정규직인 협력 업체 직원들은 내년 9월 모노코크 타입의 컴팩 SUV가 생산될 때까지 휴직을 해야 될 처지에 몰리고 있다. 이 차종이 나와서 시장으로부터 호의적 반응을 얻는다는 보장도 없어 생산직 사원들의 불안감은 더욱 커지고 있다. 쌍용차는 최근 비정규직을 대상으로 희망퇴직자를 모집했으며 전체 3백50명 중 2백50명이 신청서를 냈다.

쌍용차 노조의 한 간부는 “내년도 생산 능력 제고를 위해서는 대주주인 중국 SAIC가 적극적으로 중국 시장을 개척해야 하지만 경기 상황이 좋지 않아 큰 기대를 하기 어렵다“라고 걱정했다.

내수 부문 의존도 약한 GM대우도 모기업 GM 위기로 ‘휴업’ 조치

쌍용차는 재무 구조 개선을 위해, 출고장으로 확보해두었던 포승 산업단지 내 10만평을 분할 매각한 것으로 알려졌다. 쌍용차 노조가 우려하는 것은 다시 상황이 호전되어 따가즈 등 해외 업체에 쌍용차가 매각되더라도 사업 전 부분이 쪼개져 분할 매각 될 가능성이다. 쌍용차 노조는 12월1일 신규 노동조합장 선거를 실시한다. 쌍용차 노조의 명확한 입장은 새 노조위원장이 선출된 다음에 나올 것 같다. 평택의 지역 경제는 극심하게 침체되어 있다. 쌍용차 공장 가동이 부진하고, 미군기지 이전 공사도 지지부진하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는 것이 쌍용차 노조 간부의 전언이다.

버스 전문 생산 업체인 대우버스에서는 지난 11월 초 판매가 급감하자 부산 공장의 생산직 근로자 35%, 사무관리직의 25%를 감원하고 임금을 동결한다는 구조 조정안을 노조측에 통보한 것으로 전해졌다.

최근 언론에서 많이 부각되는 GM대우의 경우는 국내 사업장에서 대규모 구조 조정을 유보한 채 임시로 조업을 단축하는 방안을 실행하고 있다. GM대우는 전략형 소형차인 라세티 프리미어를 발표하는 등 내수 시장에서 실지 회복을 선언하고 있지만, 오는 12월22일부터 2주간 휴업에 들어간다. 이는 GM대우의 모기업인 GM의 위기로 인한 조치이다.

GM대우의 부평공장에서는 생산 물량의 90% 정도를 GM계열인 시보레 브랜드 등으로 수출하고 있지만 최근 유럽 시장과 미국 시장 판매가 급감하면서 재고가 쌓이자 휴무라는 고육책을 내놓은 것이다. 내수 부문의 의존도가 약한 GM대우는 요즘 다른 완성차 업체에 비하면  치명타를 입을 정도는 아니다. 문제는 본사인 미국 GM이 미국 정부의 지원을 요청하며 생사의 갈림길에서 헤매고 있어 자칫 덩달아 화를 당할 우려가 있는 것이다.

미국 메이저 자동차회사들이 오바마 대통령 당선인에게 SOS를 요청하고 있고, 오바마도 부시 대통령과의 면담에서 자동차업계를 살리기 위한 특단의 대책을 제안한 바 있다. 아직은 미국 자동차 산업이 현재의 위기를 어떻게 극복해나갈지 알 수 없다. 만일 GM이나 포드, 크라이슬러 등이 주저앉는 최악의 시나리오가 펼쳐진다면 현대·기아차 등 국내 자동차 업계 역시 상상하기 어려운 후폭풍을 맞게 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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