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님’만 밥 먹고 ‘동생’은 굶고 지방이 ‘부르르’
  • 김지훈 (서울신문 기자) ()
  • 승인 2008.11.18 05: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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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권 규제 완화 발표 이후 당·정·청 곤혹 “2천5백만 지역 주민은 받아들일 수 없다”

▲ 11월10일 오전 여의도 렉싱턴 호텔에서 열린 한나라당-시도 지사 정책협의회. ⓒ시사저널 이종현

일단은 휴지기에 들어갔다. 정부가 내놓은 수도권 규제 완화에 대해 금방이라도 정면 충돌할 것 같던 한나라당이 한 발짝 물러섰다. 정부가 11월27일 발표하기로 한 지방발전 종합 대책을 보고 판단하기로 한 것이다. 하지만 ‘작전상 후퇴’일 뿐 불씨는 여전히 살아 있다. 한때 한나라당 소속 비수도권 의원들은 ‘수도권 규제 철폐 반대 국회의원 비상모임’에 참석해 거세게 반발하기도 했다. 한나라당 소속인 아홉 명의 지방 시도 지사들도 뿔난 지역 민심을 등에 업고 분기탱천하고 있다.

‘지방 홀대론’을 잠재워야 하는 정부로서는 여간 고민이 아니다. 지난 노무현 정부에서는 국토 균형 발전을 국정의 주요 지표로 설정했지만 이명박 정부는 국토 동반 발전 개념으로 전환했다. 그 핵심은 수도권의 규제를 풀어 경쟁력을 높이겠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 싸움이 수도권과 비수도권의 제로섬(zero-sum) 게임으로 인식되고 있는 것이다.

국토 동반 발전 개념에 수도권만 들어가

수도권 규제를 풀면 지방이 죽고, 지방을 살리자니 수도권이 “우리 죽는다”라고 아우성이다. 한 정치 전문가는 “큰 형님(수도권)이 밥 먹으려고 하니 동생(지방)들이 ‘우리 굶어 죽는다’고 하는 것과 똑같다”라고 말했다.

지방에서는 정부가 수도권 규제를 대폭 완화한 것에 상응하는 지방발전 종합 대책을 마련해야 된다고 촉구하고 있다. 종합 대책이 아직 확정되지 않았지만 지방의 사회간접자본(SOC) 사업 확대와 수도권 규제 완화에 따른 개발 이익 환원 등이 주요 내용이 될 것이라는 전망이다. 한나라당 정책위의 한 핵심 관계자는 “지방 종합 대책은 경제와 재정 정책이 중심이 될 것이다”라고 말했다.

정부는 지난 11월3일 발표한 경제 난국 극복 종합 대책에서 내년에 재정 지출을 14조원 늘리기로 하고 이 중 4조6천억원을 사회기반시설을 확충하는 데 쓰기로 했다. 늘어나는 SOC 예산의 90% 이상을 ‘광역 경제권 선도 프로젝트’ 사업에 투입한다는 것이 정부의 구상이다.

 이미 정부는 지난 9월 열린 제2차 국가균형발전위원회에서 30대 광역 경제권 선도 프로젝트를 선정해 향후 5년간 50조원을 투자하기로 방침을 정한 바 있다. 수도권 규제 완화에 따른 개발 이익을 지방에 환원하는 방안도 구체화될 전망이다. 이명박 대통령은 지난 11월3일 “수도권 개발 이익을 지방 발전 사업에 활용하는 방안을 내년 상반기에 마련해 2010년까지 지원할 예정이다”라고 밝힌 바 있다.

이런 가운데 여권은 전방위적으로 지방 민심 달래기에 나섰다. 이미 종합 대책을 마련하는 데 지방의 의견을 폭넓고 다양하게 반영한다는 방침을 세워놓았다. 그동안 찔끔찔끔 흘리듯 발표한 지방 대책을 종합해 확실한 당근을 제시할 계획이다. 한나라당 지도부는 지난 11월10일 16개 시도 지사 정책설명회를 열어 지방의 목소리를 경청한 데 이어 12일에는 이한구 국회 예결특위원장이 시도 지사들을 상대로 예산 설명회를 개최하는 등 바쁜 행보를 보이고 있다.

하지만 당 지도부와 시도 지사들의 정책설명회에서는 냉랭한 분위기만 연출했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수도권의 규제를 철폐하는 것이 세계적인 흐름임을 지적하며 “서울은 월드스타급 도시에 비해 경제성장률이 절반에 머무르고 있다”라고 지적했다. 수도권 규제에 강경 목소리를 쏟아내고 있는 김문수 경기지사는 “수도권을 묶어두자는 것은 시대착오적이다”라고 말했다.

지방 광역단체장들 “확실하고 특별한 대책 내놓으라”

반면 지방의 광역단체장들은 “수도권 규제 완화는 지방을 죽이는 것이다”라며 반발했다. 김진선 강원지사는 “이명박 정부의 동반 발전은 서로 힘이 비슷해야 하는 것이다. 규제를 완화하면 자원이 몰려 있는 수도권에 일방적으로 끌려갈 수  밖에 없다”라고 말했다. 박맹우 울산시장은 “수도권을 완화하면 지방은 그 이상의 완화가 필요하다. 확실하고도 특별한 대책이 없으면 (지방은) 끝이다”라고 응수했다.

국회 예결산특위가 마련한 예산 설명회는 국회 차원에서 이루어진 것이지만, 한나라당 소속인 이위원장이 지방을 달래기 위해 움직인 것으로 이해되면서 관심을 모았다. 예산 설명회에는 광역단체장뿐 아니라 예결특위 여야 간사, 기획재정부의 배국환 차관과 이용걸 예산실장 등이 참석했다. 국회가 예산 심의에 앞서 광역단체장들과 설명회를 가진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심의에 앞서 지방의 의견을 적극 수렴한다는 차원이었지만 그만큼 여권으로서는 ‘지방 달래기’에 몸이 달아 오른 상태이다.

이위원장은 이 자리에서 “예산의 최대 수요자가 지방자치단체이기 때문에 현장에서 예산을 쓰는 시도 지사의 입장을 국회가 공유하는 것이 공평한 예산 심의를  위해 중요하다. 지방에서 우선순위에 올려놓은 사업 등을 소상하게 설명해달라”라고 말했다. 광역단체장들은 정부의 사회 기반 시설 등 재정 지출이 늘어난 만큼 자기 지역에 더 많은 예산을 배정받을 수 있게 해달라고 호소했다. 한 참석자는 “시도 지사들이
‘예산철’에 예산실장을 만난다는 것은 하늘의 별따기와 마찬가지이다. 참으로 유익한 자리였다”라는 반응을 보였다.

한승수 국무총리도 지난 11월13일 정부 중앙청사에서 열린 국가정책조정회의에서 “수도권 규제 합리화 계획은 수도권과 지방의 대립 구도를 만드는 것이 아니고 국가 균형 발전을 위한 것이다. 앞으로 지역별 특색에 맞는 지역 발전 전략을 수립해 국가경쟁력을 높일 수 있도록 하라”라고 지시했다. 한총리는 “조만간 개최될 국가균형발전위원회에서 발표할 보완 대책은, 지방의 현안은 무엇인지, 무엇을 원하는지 의견을 충분히 듣고 반영해 현실성 있고 구체적인 종합 대책이 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이것은 수도권만이 아닌 지방 균형 발전을 위한 것이라는 점을 적극 알리는 노력을 병행하라”라고 주문했다.

한승수 총리도 발벗고 ‘진화’ 나서

청와대도 발 벗고 나섰다. 청와대는 최근 수도권 규제 완화 조치에 반대하고 있는 한나라당 의원들과 조찬 모임을 갖고 비수도권이 요구하는 다양한 의견을 청취했다. 이 모임이 성사됨에 따라 ‘13+13’(13개 비수도권 광역자치단체장과 13명의 지역 국회의원 모임) 등 수도권 규제 완화에 반대하는 한나라당 의원들과 시도 지사들은 지난 11월12일 서울 여의도에서 열린 ‘수도권 규제 완화 규탄’ 집회에 참석하지 않았다. 

하지만 수도권 규제 완화 반대를 주도하는 김성조·서상기·정희수·이인기·조원진·정해걸·이철우 의원 등은 여전히 “국가경쟁력을 저하시키는 정부의 수도권 규제 완화 발표에 2천5백만 지역 주민과 같이 안타까움을 금할 수 없으며, 이러한 정부의 정책은 받아들일 수 없다”라는 뜻을 밝히고 있다. 정부가 11월 말 발표할 지방 달래기 대책이 기대 수준에 못 미칠 경우 여권 내에 불어닥칠 후폭풍은 상당할 것으로 예상된다. 


▲ 김문수 경기지사(왼쪽)와 이완구 충남지사. ⓒ시사저널DB(왼쪽),시사저널 이종현(오른쪽)

규제 완화를 둘러싼 수도권과 비수도권의 갈등 이면에는 차기 또는 차차기 대선 주자들의 계산도 복잡하게 얽혀 있다. 자신이 처한 위치에 따라 들끓는 민심을 잡아채지 못하면 내후년 지방선거는 물론 정치적인 미래를 열어가는 데도 불리하다고 보기 때문이다.

수도권 규제 철폐 선봉에 선 김문수 경기지사는 “균형 발전은 공산당도 못하는 것이다”라며 이명박 정부와 대립각을 세웠다. 같은 한나라당 소속이면서도 김지사는 거친 언사를 쏟아내며 연일 각을 세우고 있는 것이다. 정치권에서는 이를 두고 의외라는  반응과 함께 “김지사가 차기 대선을 염두에 두고 행보하는 것 아니겠느냐”라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그도 그럴 것이 김지사는 이재오 전 의원과 홍준표 원내대표와 함께 이명박 대통령이 서울시장 재임 시절 측근 3인방으로 불리던 인물이다. 본인의 부인에도 불구하고 김지사가 자신의 대권 플랜을 위해 차별화에 나선 것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일각에서는 이미 김지사의 대선 캠프팀이 꾸려졌다는 말도 들린다.

영남(경북 영천) 출신인 김지사가 영남 표는 물론이고 수도권 표까지 노릴 수 있어 지금 당장 수도권 입장에서도 나쁠 것이 없지 않느냐는 분석도 제기된다. 본인이 의도했든 아니든 선봉에 선 김지사는 인지도가 상승하면서 이미 전국적인 인물로 떠올랐다.

수도권과 비수도권 갈등에서 가장 극적인 인물은 이완구 충남지사이다. 재선 의원 출신인 그는 국회의원 시절보다 수도권과 각을 세우고 있는 지금이 상한가이다. 김문수 경기지사와 분명한 대립각을 세움으로써 그의 인지도도 껑충 뛰어올랐다.

지역에서는 벌써부터 ‘이완구 대망론’도 떠오른다. 이지사는 한나라당 소속이지만 차기를 위해 지역 맹주인 자유선진당에 입당할 것이라는 소문도 떠돈다. 이에 대해 이 지사는 언론 인터뷰를 통해 여러 차례 “탈당할 의사가 없다”라고 밝혔다. 하지만 이지사는 2010년 지방선거에 출마할지, 다른 길을 갈지에 대해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고 생각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정우택 충북지사도 이에 질세라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지난 11월11일 긴급 기자설명회를 가진 정지사는 “대통령의 지방 발전에 대한 인식이 잘못되어 있다. 단식 투쟁이라도 하고 싶다”라고 말했다. 김태호 경남지사도 “정치적 배경이 있지 않나 의심스럽다”라며 수도권 규제를 완화해야 한다는 주장을 강력하게 비판하며 정치적인 성장을 도모하고 있다. 지난 대선 당시 친이와 친박 사이에서 중립을 지킨 김지사는 향후 행보를 고민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서울시장 연임을 염두에 두고 이미 ‘연임 프로젝트’를 가동하고 있다. 서울시장으로서 전임 이명박 서울시장처럼 확실한 브랜드와 업적을 남기는 것이 급선무이다. 서울시장에 연임한다면 그는 강력한 차차기 주자가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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