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래저래 추운 시민단체의 겨울
  • 정락인 (freedom@sisapress.com)
  • 승인 2008.11.18 05: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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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련 ‘횡령’ 사건으로 재정 운영 문제 도마에 올라…정부 지원 예산도 대폭 감액 예상

▲ 환경운동연합 전 ·현직 활동가들이 공금 유용 사건에 대해 고개 숙여 사죄하고 있다. ⓒ연합뉴스

환경운동연합(환경련)의 ‘공금 횡령’ 사건이 터지면서 시민단체들의 재정 운영이 도마에 올랐다. 환경련은 전국 회원 8만명, 상근 활동가 2백명에 달하는 국내 최대의 시민단체이다. 매월 회비를 납부하는 회원만 해도 3만명이고, 회비로 걷어들이는 수입도 월 3억원에 이른다.

그동안 환경련은 회원들의 회비를 주먹구구식으로 관리했다. 일부 간부 직원들은 아예 ‘눈먼 돈’ 쓰듯이 했다. 이미 알려진 대로 환경련 간부들의 도덕적 해이는 도를 넘어섰다. 기업 후원금을 빼돌리고 이 돈으로 애인의 빚을 갚고 차를 샀다. 서해안 살리기 기업 성금도 빼먹었다. 이미 종료된 ‘어린이 산림교육 뮤지컬’을 계속 공연하는 것처럼 속여 산림조합으로부터 1억8천여 만원을 받고, 정당하게 사용한 것처럼 가장하기 위해 허위 세금계산서를 제출하기도 했다.

검찰이 수사에 들어가자 자체 감사 실시

그런데도 환경련은 지금까지 이런 사실을 까맣게 모르고 있었다. 검찰이 수사에 들어가자 그때서야 자체 감사를 통해 ‘공금 횡령’ 사실을 밝혀냈다.

‘눈 뜬 장님’이 아니고서는 이렇게 허술할 수가 없다. 이번 사건은 환경련의 내부 회계감사 시스템이 엉망이라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이다.

환경련은 문제가 커지자 서둘러 임시 비상 대책을 내놓았다. 대국민 사과문을 발표하고 특별대책위원회를 꾸려 전면 쇄신 작업에 착수한다고 밝혔다.

환경련이 발표한 ‘대국민 사과’에는 환경련뿐만 아니라 시민단체들의 문제가 적나라하게 나타나 있다. 환경련은 △부실한 회계 관리와 주먹구구식 운영 △기본과 원칙 무시하고 회원을 뒷전에 두는 운영과 활동 방식 △윤리 정책과 투명성 체계 방치 △초심을 잃고 시민의 생각과 멀어진 결과 등이 맞물려 총체적인 문제로 나타났다며 사과했다. 환경련은 앞으로 정부 보조금과 기업 후원금을 받지 않겠다고 했다.
환경련의 특별대책회의는 중앙집행위원회 의장인 이시재 가톨릭대 사회학과 교수 중심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의장은 “지금은 환경련을 어떻게 쇄신할지 방향을 정하고 있다. 구체적인 방안이 나올 때까지는 조용히 있는 것이 바람직하다”라며 말을 아꼈다.

환경련을 설립한 최열 환경재단 대표의 심정은 어떨까. 최대표도 결국 환경련 사무총장 재직 시절 ‘공금 횡령’ 혐의로 검찰의 조사를 받고 있다.

최대표는 “환경운동은 현장성이 생명이다. 그 다음으로 전문성이다. 환경련이 현장성을 강조하다 보니 내부 전문성에 소홀했던 것 같다. 이번 사건으로 다시 거듭나는 계기가 되어야 한다”라고 말했다.

환경련 홈페이지(www.kfem.or.kr)에는 환경련을 성토하는 회원과 일반 시민들의 글이 넘쳐나고 있다. 김하선씨는 환경련의 후속 조치에 대해 ‘관련자 처벌이 이 정도에서 끝나는가. 그러면 당신들은 앞으로 정부나 정치권에 아무런 말도 하지 마라. 비판할 때는 칼을 들더니 내부 문제는 사과문이나 내고 적당히 넘어가려 하고 있다. 나 같은 시민이 그랬으면 용서해주었을까. 가장 청렴해야 할 시민단체가 참 어이가 없다’라며 환경련을 성토했다. 

시민단체 재정 운영의 문제점은 환경련만의 일이 아니다. 도덕성이 생명인 시민단체들이지만 정작 재정 운영 상태는 철저하게 베일에 가려졌다. 회원들의 회비와 외부 후원금 등을 받고 있으나 회비가 얼마나 들어왔고, 누구에게 얼마를 후원받았는지 내부 직원들조차 모르는 경우가 허다하다.

<세계일보>가 최근 국내 주요 시민·사회 단체 25곳을 대상으로 재정 공개 여부를 조사한 바에 따르면 6곳만 홈페이지에 재정을 공개하고 있었다.

나머지 단체들은 소식지나 연례 총회 등을 통해 회원들에게 재정 상황을 공개한다고 밝혔다. 군소 시민단체들의 재정은 더욱 빈약하고 불투명할 것으로 보인다.

“현장성 강조하다 이런 일 벌어졌다”

현재 홈페이지에 재정을 공개하고 있는 단체는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녹색소비자연대 △문화연대·참여연대 △아름다운재단 △함께하는 시민행동 등이다. 환경재단은 지난 11월12일에 2006·2007년도 감사 보고서 등 살림살이를 공개했다.

환경련의 공금 횡령 사건은 당장 시민단체의 살림살이에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 이탈하는 회원이 늘어가고 있는가 하면 정부는 당장 내년도 지원 예산을 대폭 줄이겠다는 입장을 밝히고 있다.

행정안전부는 내년 ‘비영리민간단체 공익사업’의 지원금을 대폭 줄일 방침이다. 행안부 안전정책협력과 신수영 사무관은 “현재 국회에서 예산 편성에 대한 논의가 진행 중에 있지만 올해보다 50% 삭감되는 선에서 논의되고 있다”라고 말했다.

행정안전부의 비영리민간단체 지원 사업은 김대중 정부가 들어선 1999년에 시작되었으며, 2004년까지 1백50억원이 지원되었다. 2004년부터는 50억원이 삭감되어 올해까지 100억원이 책정되었다. 내년에 50%가 삭감되면 50억원을 가지고 단체들이 나누어가져야 한다.

시민단체들의 추운 한 해가 예고되고 있다. 행안부에 따르면 ‘2007년 공익사업 평가 우수 비영리단체’는 한국여성민우회, 참교육을위한전국학부모회, 곰두리봉사회, 우리밀살리기운동본부 등 37곳이다.

박병상 인천도시생태연구소 소장은 “환경련의 문제를 전체 시민단체로 확대하는 것은 곤란하다. 몇몇 간부의 소행은 개인적으로 저지른 것이다. 이번 사건은 환경운동연합이 흐트러졌던 내부 기틀을 마련하기 위한 성장통으로 보아야 한다”라고 말했다.

한편, 한국시민단체네트워크가 NGO 담당 기자와 활동가 등 2백명을 상대로 한 시민단체 신뢰도 평가 조사 결과를 보면, 시민 사회 전문가 집단의 10명 중 7명이 ‘한국의 시민단체들이 신뢰의 위기에 처했다’라고 밝혔다. 조사 대상의 70.5%는 ‘시민단체가 신뢰도 저하의 위기에 처했다’는 데 동의한다고 답했다. 위기 원인에 대해서는 ‘시민 없는 단체 중심의 시민운동’(22.2%)이라는 지적이 가장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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