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 영웅’ 칼날 위에 서다
  • 정락인 (freedom@sisapress.com)
  • 승인 2008.11.18 06:04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최열 환경재단 대표가 검찰 수사로 위기에 몰렸다. 그에게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그의 ‘돈줄’과 지난 행적 등을 추적했다.

▲ 지난 11월13일 검찰에 자진 출두한 최열 환경재단 대표. ⓒ시사저널 이종현

‘최열’이라는 이름은 국내에서 환경 아이콘으로 통한다. ‘환경운동’이라는 용어를 태동시킨 인물이자, 우리나라를 ‘깨끗하고 푸르게’ 만드는 데 기여한 일등 공신이다. ‘최열=환경’이라는 등식에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그는 국민으로부터 가장 사랑받고 존경받는 시민운동 지도자 중 한 사람이기도 하다. 최열 환경재단 대표(59)에게는 ‘환경운동의 대부’ ‘환경 영웅’이라는 별칭까지 붙었다. 이런 최대표가 ‘공금 횡령’ 의혹에 휩싸여 있다. 지난 11월13일에는 검찰에 불려가 조사를 받았다. ‘환경 전도사’ 역할을 해온 최대표의 횡령 혐의는 그 자체가 충격적인 일이다. 환경운동가가 갖추어야 할 덕목 중에 ‘도덕성’은 가장 으뜸이다. 환경운동을 하는 당사자가 부정에 오염되었다면 환경운동가로서는 ‘사형 선고’나 다름없다.

최대표는 지금까지 모든 혐의를 부인하고 있지만, 횡령 혐의가 사실로 드러날 경우 치명적인 상처를 입을 것으로 보인다. 자칫 그동안 쌓아왔던 공든 탑이 하루아침에 무너지는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다. 최악의 경우 ‘환경운동’ 자체를 포기해야 할지도 모른다. 이래저래 최대표는 자신이 걸어온 환경운동가의 인생에서 최대 시련기를 맞고 있다. 

“기부금도 식사비도 씀씀이 컸다”

지금까지 파악된 검찰 수사의 방향은 크게 세 가지이다. 최대표가 지난 1993년부터 2003년까지 환경운동연합(환경련) 사무총장을 지내면서 100여 개의 차명계좌를 이용해 정부나 기업에서 받은 보조금을 개인적으로 사용했다는 의혹이다. 검찰은 또 최대표가 환경련 자금을 환경재단으로 빼내 개인적 용도로 사용했는지도 집중 조사하고 있다. 최대표가 일부 정치인들에게 후원금을 납부한 경위와 후원금의 출처 등도 석연치 않게 보고 있다.

이 중 검찰 수사의 핵심은 지난 2002년 환경련 계좌에서 최대표 계좌로 빠져나간 7천만원의 출처이다. 최대표는 “1996년 환경센터 건립 때 환경련에 3억원을 빌려준 후 활동가 자녀의 장학기금으로 쓰려고 환경련 명의의 통장에 넣었다가 이자가 8백만원밖에 불어나지 않아 주식으로 대체하고 7천만원을 회수한 것이다”라고 설명했다. 최대표는 7천만원 가운데 2천만원을 딸의 해외 어학 연수 등에 쓴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최대표가 검찰에 출두하기 전날 그가 구여권 정치인들에게 후원금 명목으로 정치자금을 제공했다고 언론에 흘렸고, 최대표는 “개인 돈으로 여야 정치인에게 후원금을 주었을 뿐 공금은 전혀 횡령한 사실이 없다”라며 결백을 주장했다. 더 나아가 ‘정권에 의한 표적 수사’ ‘최열 죽이기’라며 반발하고 있다. 

<시사저널>은 검찰 수사와는 별도로 최대표의 ‘돈줄’에 대해 집중 취재했다. 우선 최대표의 재산과 수입, 평소 돈 씀씀이 등을 알아보았다. 현재 최대표는 서울 용산구 도원동에 있는 ㅅ아파트(42평형)에 살고 있다. 원래는 강동구 길동에 있는 아파트에 살았으나 최대표의 딸이 ㅅ대학원에 입학하면서 전세로 내놓았다. 현재 살고 있는 아파트에는 수년 전 전세로 들어왔다가 지난해 12월 매물로 나오자 직접 구입했다.

이전에 길동 아파트를 팔려고 부동산에 내놓았으나 쉽게 팔리지가 않자 은행에서 4억원을 융자해서 아파트 매입 자금으로 썼다. ㅅ아파트 근처 부동산 업소에 확인해보니 이 아파트의 시세는 7억5천만원 정도라고 한다. 길동 아파트는 ㅅ아파트를 산 지 6개월 뒤에 팔렸다. 현재 ㅅ아파트에는 최대표와 부인 그리고 대학원에 다니는 외동딸 등 셋이 살고 있다.

최대표 주변 사람들은 이구동성으로 최대표의 돈 씀씀이가 아주 컸다고 말한다. ‘너무 잘 쓴다’라고 말할 정도이다. 예를 들어 중요 프로젝트를 수행할 때 연구원들에게 슬쩍 돈을 주기도 하고, 기념일은 사소한 것도 꼭 챙긴다고 한다. 생일, 결혼기념일, 입학 등은 물론이고 기념될 만한 것은 그냥 지나치는 법이 없다고 할 정도이다. 연말에는 각 지방에 있는 사무처장들에게 100만원씩 주는 일도 있었다고 한다. 지인들 모임에 가도 돈을 내는 쪽은 주로 최대표라고 한다. 재단에서 새로운 프로그램을 만들려고 하면 최대표가 먼저 1천만원 정도를 기부했다. 환경운동연합에는 지금까지 1억원 정도를 기부했다고 한다.

환경재단 이미경 사무총장은 “예전에는 최대표가 식당을 정해놓고 직원들에게 ‘내 이름을 대고 먹어라’라고 한 적도 있다. 그렇다고 최대표가 공공 자금을 함부로 쓰는 것은 아니다. 공금은 엄격하게 쓰고 개인 자금은 막 퍼주는 스타일이다”라고 말했다. 최대표 스스로도 “나는 평소에 돈이 있으면 막 준다”라고 밝혔다.

그렇다면 최대표의 이런 씀씀이는 어디에서 나오는 것일까. 혹시 믿을 만한 ‘돈줄’이 따로 있는 것은 아닌지 의심해볼 수 있다. 최대표가 환경재단에서 받는 월급은 4백만원이 조금 안 된다. 판공비로 쓸 수 있는 법인카드가 있지만 거의 사용하지 않고 있다. 재단에서 받는 월급만 가지고 보면 자신의 집안 살림하기에도 빠듯한 돈이다. 최대표의 부인은 가톨릭여성농민회 총무로 일했으며 지금은 전업주부이다.

<시사저널>이 파악한 바에 따르면 최대표는 월급 외 부수입이 많았다. 2002년 이후에 펴낸 <최열 아저씨> 시리즈는 연간 5만권 이상 팔리고 있다. 인세만 해도 1년에 최하 3천만원 이상이다. 여기에다 강연료가 연간 수천만 원에 이른다. 최대표는 거의 매일 강연 일정이 잡혀 있다. 검찰에 출두하기 전인 지난 10월12일에도 경원대와 LG전자에서 두 건의 강의가 있었다. 1년에 100번(1회 30만원 기준)만 강의를 나간다고 해도 강의료 수입만 3천만원이다. 여기에다 기아자동차 사외이사 월 급여 3백50만원 등을 합치면 월급 외에 벌어들이는 부수입은 최소 월 1천만원이 넘을 것으로 추정된다. 최대표는 “나는 환경련 사무총장을 할 때도 판공비는 거의 쓰지 않고, 개인 돈을 썼다. 기업체의 사외이사를 하면서 받은 돈도 내 개인이 가져간 적은 없다. 내 개인 소유의 차도 없고, 대중교통을 이용해서 다닌다”라며 청렴을 강조했다.

“기업체 후원금 받은 것이 화근 되었을 것”

▲ 최대표의 검찰 수사에 대해 시민 사회 인사들이 ‘표적 수사 중단’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연합뉴스

최대표는 환경련 사무총장 재직시 월 100만원이 안 되는 급여를 받았다. 10년 동안 사무총장을 하다가 그만두고 받은 퇴직금이 8백만원이었다고 한다.

최대표는 지난 2000년 기아자동차 사외이사를 하면서 1만5천주의 주식을 스톡옵션으로 받았다. 이 주식은 지금도 보유하고 있다. 그는 “상근자들의 자녀 장학금을 만들기 위한 종자돈으로 사용될 것이다”라고 밝혀왔다. 외형적으로 보면 최대표는 돈 때문에 쪼들린 생활을 한 것 같지는 않다. 그렇다고 호화 생활을 하는 것도 아니다. 또 주변 사람들에게 인색하지도 않았다.

최대표가 ‘횡령 혐의’로 검찰 조사를 받자 일각에서는 ‘스스로 자초한 것’이라고 보는 시각도 있다. 최대표가 기업체의 후원금을 받고 사외이사를 맡은 것이 결국 ‘돈’ 문제로 연결되지 않았냐고 하는 것이다. 

이에 대해 최대표는 “지난 30년간 환경운동을 하면서 정부나 기업과 많이 싸웠다. 국민의 건강과 생명이 위협받고 소중한 자연 환경이 파괴되고 있을 때, 누구보다 먼저 달려갔다. 하지만 사고가 터진 뒤에 싸우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기업에 환경 의식을 심어주고 예방하는 것이 중요했다. 다행히 기업들도 환경에 대한 인식이 바뀌고, ‘환경 경영’을 실천하는 기업들이 많다”라고 말했다.

만약 최대표가 공금 횡령 혐의를 벗는다고 해도 도의적인 책임은 모면하기 힘들 것으로 보인다. 일단 눈에 띄는 것은 최대표가 설립한 환경련의 운영 실태이다. 최대표는 1993년 환경련을 설립해 이후 10년간 사무총장을 맡았다. 2003년까지 환경연합 대표를 지낸 뒤 2004년 환경재단 대표에 취임했고, 지금은 명예직인 고문으로 활동하고 있다.

최대표는 자신 명의의 통장 개설에 대해 “초창기 임의 단체여서 통장 개설이 안 되었다”라고 해명했다. 그렇다고 해도 환경운동연합 명의의 통장 개설이 가능해졌을 때 정리를 했어야 하는데도 하지 않았다. 환경련 운영에서 완전히 손을 떼고 환경재단의 대표가 되었는데도 개인 명의로 공금이 오갔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힘들다. 환경련측에 “빨리 정리하라”라고 종용했다고 해서 면죄부를 받을 수는 없다는 것이다. “남의 흠집은 보여도 자신의 흠집은 보지 못했다”라는 비난을 피할 수 없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환경련 횡령 사건이 터지자 최대표는 “내가 물러난 2004년 이후에 생긴 일이다”라며 애써 무관함을 강조했다. 하지만 결국 부메랑은 최대표를 향하게 되었다. 검찰은 최대표를 몇 차례 더 소환 조사한 뒤 사법 처리 여부를 결정할 방침이다. 그동안 국민에게 ‘환경 영웅’으로 추앙받던 최열 대표가 생과 사의 칼날 위에 서 있는 것만은 틀림없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