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의 화원>에 웬 ‘빨간’ 바람?
  • 하재근 (문화평론가) ()
  • 승인 2008.11.25 0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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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파 논객 지만원씨, 문근영 선행 싸고 ‘음모론’ 제기…드라마에도 이념 잣대 들이대

▲ 드라마 에 출연 중인 문근영(왼쪽)의 선행이 알려진 후 ‘악플’ 논란이 일고 있다. 위는 영화 에 출연한 김민선. ⓒSBS 제공(왼쪽), 시사저널 박은숙(오른쪽)

원래 드라마 <바람의 화원>에 대해 쓸 생각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이 작품과 주연 배우가 색깔론에 휘말려버렸다. 인터넷 세상이 떠들썩하다. 색깔론에 의하면 <바람의 화원>을 언급하는 것 자체도 ‘국가를 뒤엎자는 정신을 불어넣으려는 고도의 심리전’이라고 한다. 거기까지는 내 상상력이 미치지 못했었다. 이 드라마를 보고 그런 수준의 상상까지 할 수 있는 우리 사회의 이념적 강박증에 찬사를 보내고 싶다. 이야말로 상상할 수 없는 데까지 뻗어나간, 한계를 깨친 무한대의 상상력이다.

이런 경천동지의 상상력이 횡행하는 나라에서 한가하게 드라마 내용에 대해서나 논하고 있을 수는 없다. <바람의 화원> 정도의 드라마에도 색깔론이 적용될 정도라면 이미 사회적으로 제정신이 아닌 상태이다. 이런 상태를 방치한다면 이 나라에서 문화는 점점 사멸해갈 것이다. 이념적 경직성이 지배할 때 그 사회의 문화가 어떻게 되는지는 북한을 보면 알 수 있다. 색깔론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한국 사회의 문화 수준을 북한처럼 만들려 하는 것이다. <바람의 화원>의 드라마 내용이 문제가 아니다. 이 문제는 반드시 짚어야 한다.

‘빨갱이’ 자손은 선행도 해서는 안 되나

문근영이 남몰래 했던 기부 사실이 알려진 것이 화근이었다. 얼마 전 사회복지공동모금회가 지난 10년간 개인 기부액 1위에 해당하는 사람이 익명의 여자 연예인이라고 발표했다. 그 연예인의 정체가 사회적 관심사로 떠올랐고, 이내 문근영이 주인공으로 밝혀졌다.

여기까지는 가끔 벌어지는 일들이다. 어떤 연예인이 익명으로 선행을 한 것이 뒤늦게 밝혀지면 사람들은 찬사를 보낸다. 얼마 전에는 <무릎 팍 도사>에서 션, 정혜영 부부가 그간의 선행을 밝혀 시청자들의 찬사를 받았다. 그들을 보고 비난한 사람은 거의 없었다. 상식적으로 착한 일을 한 사람에게 비난이 가당키나 한 일인가?

그런데 문근영의 선행이 밝혀지자 사태가 비상식적으로 흘러가기 시작했다. 문근영이 방송에 출연해 자기 입으로 말한 것도 아니고, 보도자료를 돌린 것도 아니었다. 일회적인 선행을 하고 은근히 소문을 낸 것도 아니었다. 오랜 세월을 남몰래 기부했던 것이 밝혀진 사건이었다. 하지만 TV에서 스스로 자신의 선행을 밝힌 사람에게도 없던 비난이 문근영에게는 쏟아졌다.

이른바 ‘악플’이었다. ‘돈 몇 푼 쥐어주고 생색낸다’ ‘몸값 올리려는 언론 플레이이다’라는 식이었다. 그리고 문근영의 가족사까지 악플로 등장했다. 문근영의 외할아버지는 비전향 장기수(이른바 빨갱이)이고, 작은 외할아버지는 광주항쟁 당시 계엄군의 총탄에 숨을 거두었다. 그런 집안의 사람이라면, 선행을 해도 예쁘게는 못 봐주겠다는 심리였다.

이것은 연좌제이다. 과거 봉건사회 때 있었던 악습이다. 그 당시에 누군가가 대역죄를 저지르면 아무 상관도 없는 친척들까지 화를 입었다. 3족을 멸한다거나, 9족을 멸한다는 표현이 그래서 나왔다. 중죄인의 후손은 출사길이 막히기도 했다.

일부 네티즌들이 그런 봉건적 의식을 갖고 있다는 것이 이번에 드러났다. 할아버지가 빨갱이인 사람은 사랑받는 연예인이 되면 안 되나? 그런 사람은 선행을 해도 ‘색안경’을 끼고 봐야 하나? 문근영에게 죄가 있다면 오랫동안 기부해온 일밖에 없다. 그것조차 비난의 대상이 될 정도로 ‘빨갱이 자손’이라는 주홍 표지는 무서웠다.

아직도 살아 있는 연좌제에 경악

일이 더 커진 것은 지만원씨의 글 때문이다. 네티즌의 악플이야 그렇다고 친다 해도, 지만원씨는 공론의 장에서 활동하는 지식인이다. 한국의 우파 지식인 지형도를 그릴 때면 빠지지 않는 인물이기도 하다. 그렇게 책임 있는 인사까지 문근영 색깔론을 거들고 나섰다. 아니, 거든 수준이 아니라 네티즌보다 한 술 더 떴다.

지만원씨는 신묘한 상상의 나래를 펼쳤다. 김대중-노무현 쪽 사람들이 최근의 수세 국면을 돌파하고자 빨치산의 손녀를 기부천사로 띄워, ‘빨치산은 뿔 달린 사람이 아니라 천사와 같은 사람이라는 것을 이미지화하려는 심리전’이라는 것이다.

물론 지만원씨는 문근영 개인에 대한 악감정은 없다고 했다. 기부 행위도 선행인 것은 분명하다고 했다. 그러나 문제는 ‘빨치산 자손’이 선행을 했다는 데 있었다. ‘빨갱이’의 집안 인사가 좋은 이미지를 갖게 되면, 그것은 곧 빨갱이의 좋은 이미지로 연결되므로 문제가 있다는 얘기이다. 이것은 빨갱이 자손은 대중의 사랑을 받아서는 안 된다는 논리로 연결된다. 빨갱이 자손은 무슨 일을 해도 집안이라는 굴레로부터 벗어날 수 없는 것이다. 지만원씨 본인은 자신이 연좌제를 주장하는 것은 아니라고 했지만, 이미 논리적으로 완벽한 연좌제의 구조이다.

더 나아가 호남에 대한 호의적 정서를 이끌어내려는 다목적 심리전이라고도 했다. 빨갱이로도 모자라 호남까지 엮었다. 한 집안의 차원을 벗어났다. 한 지역을 통째로 문제 삼고 있다. 호남 차별이다. 이런 논리대로라면 앞으로 호남 사람의 선행이 알려져서는 안 된다. 호남의 심리전일 테니까. 이게 말이 되나? 호남 출신 연예인은 죽은 듯이 지내라는 말인가?

여기서 끝이 아니다. 지만원씨는 ‘이상한 배우들’이라며 문근영과 영화 <미인도>에 나오는 김민선을 동시에 문제 삼았다. 김민선이 걸려든 이유는 지난 광우병 쇠고기 파동 때 촛불 시위를 지지하는 발언을 했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이상한 배우들이 되었고, 이런 이상한 배우가 나오는 영화가 흥행을 하니, ‘대한민국이 참으로 어지럽다’고 한탄하고 있다. 정부 시책에 반대했던 배우는 흥행 영화의 주연도 되지 못한다는 말인가?

드디어 불똥은 ‘신윤복’과 <바람의 화원>으로 튄다. 갑자기 신윤복이 뜨는 이유는 역사에 기록되지 못한 인물을 띄워 정통 사관을 뒤집으려는 시도라고 한다. 이것은 ‘패자의 역사를 정사로 만들고 기득권에 저항하는 민중의 저항을 아름답게 묘사’해서 ‘국가를 뒤엎자는 정신을 불어 넣으려는 고도의 심리전’이라는 것이다. 이것이 ‘기득권 세력에 저항하고 기득권 세력으로 이루어진 국가를 전복’하려는 5·18 정신이라고 한다.

<바람의 화원>은 졸지에 반국가 음모의 선전 도구가 되었다. 그리고 문근영은 국민을 상대로 공작을 펼치는 세력의 ‘꽃’으로 활약하고 있는 셈이다. 이런 판국이니 지금 드라마 내용이나 한가하게 논하고 있을 때가 아닌 것이다.

그리고 지만원씨는 김일성의 교시를 인용한다. ‘남조선의 작가 예술인들을 더 많이 포섭해 혁명가로 만들고… 총칼이 미치지 못하는 곳에서는 우리의 혁명적 노래가 적의 심장을 꿰뚫을 수 있다.’ 명시하지는 않았지만, <바람의 화원>과 <미인도>와 문근영과 김민선이 갑자기 김일성과 엮이는 구도이다.

이렇게 연좌제와 색깔론이 횡행하는 나라에서 문화 창조가 이루어진다는 사실이 기적이다. 물론 유럽에도 여전히 나치 등의 극단적인 우익 세력이 존재한다. 그러나 그곳에서 그들은 철저한 소수파이다. 한국에서 보수 우파는 흔들리지 않는 주류이다. 주류 우파 지식인에게서 차마 들을 수 없는 극단적인 말이 나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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