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만의 잔치’ 벌이다 수렁에 빠진 은행들
  • 이석·정하성 한국금융신문 기자 (ls@sisapress.com)
  • 승인 2008.11.25 04: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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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최익견

그동안 장사를 너무 쉽게 했다. 요즘 대가를 톡톡히 치르고 있다.” 최근 전광우 금융위원장이 한국 시장 투자설명회(IR)에 참석차 해외 주요 시장을 순방하다 던진 말이다. 그는 지난 11월19일 미국 뉴욕에서 가진 기자간담회에서 유동성 위기를 겪고 있는 국내 은행의 문제를 조모조목 꼬집었다. 우선 은행권의 방만한 경영을 지적했다. 전위원장은 “지난 2~3년간 은행들은 외형 경쟁에 치우치면서 대출을 크게 늘렸다. 당시 성적표만 보고 스톡옵션과 같은 보상을 지나치게 많이 지급했다”라고 말했다.

문제는 리스크 관리가 전혀 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전위원장은 “문제가 생기면 대출을 줄이는 것이 당연하다. 그러나 은행들은 오히려 채권 등을 발행해 대출을 늘렸다. 은행권의 예대율(예금 대비 대출 비율)이 급격히 높아진 상황에서 금융 위기가 터지자 자금 사정이 악화되는 것은 뻔한 일이었다”라고 지적했다.

그럼에도 은행권은 매년 천문학적인 성과급을 지급했다. 자신들끼리 단기적인 성과를 자화자찬하며 ‘돈 잔치’를 벌인 것이다. 결국 이런 모럴 해저드가 은행권의 위기를 자초했다는 것이 전위원장의 주장이다.

은행권 안팎에서도 전위원장과 같은 시선을 던지고 있다. 결국 은행들 스스로가 위기를 불러들였다고 보는 것이다. 과거 외환위기 당시 은행권은 엄청난 액수의 공적자금을 지원받았다. 정부의 구제 금융으로 겨우 위기를 넘긴 은행들은 혁신을 부르짖었다. 그러나 개혁 의지는 공염불에 그쳤다. 각종 명목으로 거둬들인 수수료와 PF 대출 이자로 수익률이 개선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제 식구부터 챙기고 보는’ 과거의 비뚤어진 관행은 여전했다. 한 은행장의 경우 연봉만 20억원을 상회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렇게 흥청거리던 은행들이 최근 금융 위기가 가시화되면서 또다시 정부에 손을 벌리자 비난하는 여론이 고조되고 있는 것이다.

외화 차입해 대출 늘리다 부실 초래하기도

이와 관련해 은행권에서는 자신들에게만 모든 책임을 전가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말한다. 한 시중 은행 관계자는 “최근의 위기는 전문가들조차 예견하지 못한 사태였다. 미국발 서브프라임 모기지 부실에서 촉발된 만큼 은행뿐만 아니라 모두가 떠안고 풀어나가야 할 문제라고 본다”라고 강조했다. 

그러나 이런 주장을 놓고 책임을 엉뚱한 데로 전가하는 것이라고 못마땅해하는 견해가 적지 않다. 익명을 요구한 한 시중 은행 관계자는 “은행들이야말로 외환위기 직전의 대마불사론에 빠져 덩치 키우기에 열을 올리는 시대착오적인 경영에 몰입해왔다. 외부 차입을 통해 무리하게 대출을 늘린 것은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다. 현금 유동량이 부족하자 일부 은행은 외화까지 끌어들였다. 그러나 최근 환율과 금리가 동시 상승하면서 감당하지 못할 상황으로 번지고 있다”라고 지적했다.

특히 제2 금융권의 경우 은행들의 몸집 불리기 때문에 자신들이 함께 위험에 노출되게 되었다면서 노골적으로 불만을 드러낸다. 한 캐피탈회사의 관계자는 “정부가 은행권 지원에 몰두하면서 시장에서는 캐피탈채나 카드채를 쳐다보지도 않고 있다”라고 불만을 터뜨렸다.

신학용 민주당 의원이 최근 금감원으로부터 넘겨받은 자료를 보면 은행들의 변명은 설득력이 떨어지고 있다. 이 자료에 따르면 지난 2004~08년 상반기까지 은행권의 수수료 수입은 21조여 원에 달한다. 은행별로 보면 국민은행이 7조4천억원으로 가장 많았다. 뒤를 이어 우리은행(3조7천억원), 신한은행(2조9천억원), 외환은행(2조5천억원) 순이었다.

지난 2006년 이후 펀드 판매 수수료도 3조4천억원에 달한다. 판매율 또한 해마다 두 배 정도 증가세를 보였다. 최근 금융 위기로 우리 경제가 몸살을 앓고 있지만, 상반기 펀드 판매율은 오히려 예년 수준을 웃돌고 있다. 이로 인해 상당한 수수료 차익을 챙기는 등 은행권이 이른바 ‘돈이 되는’ 영업에만 치중했던 것이다.

오히려 은행들은 고객을 대상으로 자체 등급을 만들어 수수료 부과 여부나 부과 금액을 차등화하는 변칙 영업에 열을 올렸다. VIP 고객에는 특별 등급을 부여해 각종 수수료를 감면해주거나 아예 면제해주고 있다. 그러나 예금 잔액이나 거래 실적이 높지 않은 서민의 경우 오히려 더 많은 수수료를 물리고 있다. 은행이 공익은 제쳐놓고 오로지 수익만 좇고 있음을 드러내는 방증이라 할 수 있다.  

이런 식으로 땅 집고 헤엄치는 경영을 하면서 은행장이나 간부들에게 파격적인 연봉을 주다 보니 도덕성 논란이 제기되는 것은 불문가지이다. 지난해 말 기준으로 4대 은행 은행장의 평균 연봉은 11억5천5백만원이다. 국민은행이 20억2천5백만원으로 가장 많고, 그 다음은 하나은행(10억8백만원), 우리은행(9억4백만원), 신한은행(6억8천1백만원) 순이었다. 임원 연봉 역시 최대 5억원대에 달했다. 심지어 이를 감시해야 할 감사 연봉이 7억5천6백만원인 곳도 있다.


“과도한 위험 투자 유발한 잘못된 성과급 지급 구조 개선해야”

한 금융권 관계자는 “은행장들의 성과급 지급이나 스톡옵션 부여 등은 당기순이익, 자산규모, 총자산이익률 등에 의해 이루어지는 경향이 많았다. 이에 은행들이 그간 대출자산을 급격히 늘리면서 자산규모, 당기순이익, 총자산이익률 등이 크게 상승했다”라고 설명했다.

신학용 의원은 “은행들이 그동안 본연의 업무인 수신을 늘리기보다는 당장 돈이 되는 영업에만 치중해왔다. 최근 정부의 지급 보증을 계기로 은행업 전반에 대한 문제점을 철저하게 점검하고 시정책을 마련할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다”라고 말했다.

실제로 은행들은 외환위기 이후 공적자금을 받으면서 정부와 경영 개선 양해각서(MOU)를 체결했으나 계속 방만한 경영을 해왔고, 각종 편법을 동원한 성과급에서 그 실상은 여실히 드러난다. 외환위기 당시 7조9천억원의 공적자금을 받은 우리은행이 대표적인 예이다. 우리은행의 경우  2003년부터 지난해까지 인건비를 편법 인상하다가 여덟 차례나 금융 당국에 적발되었다. 임금을 동결하기로 해놓고 판매 관리비를 올려주거나 3백%가 넘는 특별 격려금을 지급하는 식으로 성과급을 남발한 것이다.

지방 은행도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다. 광주은행도 지난해까지 과도한 포상금과 특별상여금을 지급하다가 다섯 번이나 금융 당국에 걸려 시정조치를 받았다. 경남은행, 수협 등도 불합리한 특별상여금과 과도한 복리후생제도로 여러 차례 지적을 받았다.

진재희 한나라당 의원은 “정부는 최근 은행권의 유동성 공급을 위해 거액의 지원금을 투입했다. 이번에는 이런 조치가 제대로 이행되는지를 철저히 감독해 국민의 세금이 헛되이 낭비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일각에서는 은행 자본주의 폐해를 지적하기도 한다. 오너가 있는 기업의 경우 장기 성장을 위해 배당을 일시적으로 줄이거나 중단할 수 있다. 그러나 은행 주주들은 장기 성장보다는 단기 배당에 더 집착하고 있다. 결국 이런 은행 주주들의 제몫 챙기기로 인해 은행 경영의 파행이 되풀이되는 악순환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이 아니냐는 비난이 제기되고 있다.

경영 컨설팅 업체인 필립파트너스의 정양현 대표는 “주주 자본주의보다 이익이 나면 나눠 먹고 보려는 직원들의 도덕적 해이가 더 큰 문제이다”라고 지적했다. 정대표는 “은행들은 어차피 적자가 날 수 없는 경영 구조를 지니고 있다. 그러나 각 은행들을 들여다보면 유보금이 거의 없다. 상당액이 내부 직원들의 복리 증진에 쓰여지고 있기 때문이다. 경영진도 고객의 이익이나 주주 배당보다는 내부 직원들에게 얼마나 돌려줄 것인가를 놓고 더 고심한다. 은행의 경영 개선을 위해서는 이런 잘못된 관행을 시급하게 없애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전문가들 역시 금융권의 지나친 성과급 지급 제도를 고쳐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특히 내년 2월이 되면 자통법이 시행된다. 그렇게 되면 그동안 국내에서 금지되었던 공모 펀드의 성과급 지급이 봇물처럼 이루어질 것으로 보인다. 사회 곳곳이 가뜩이나 어려운데 눈총을 받고 있는 은행권에서 또 한 차례 돈 잔치가 벌어질 수도 있다.

여은정 한국금융연구원 연구위원은 “이번 서브프라임 모기지 부실 사태에서도 드러났듯이 잘못된 성과급 지급 구조는 과도한 위험 투자를 유발해 금융 안전성을 위협할 가능성이 있다. 이를 방지하기 위한 성과급 보상 체계의 개선이 필요하다”라고 말했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은행장들의 성과급 지급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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