텅 빈 도로 위를 ‘돈 먹는 하마’가 달리고 있다
  • 안성모 (asm@sisapress.com)
  • 승인 2008.11.25 05:02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민자 사업, 잘못된 수요 예측으로 해마다 수십억~수백억 원 혈세 낭비…정부 실적 올리기에 사업자 배만 불려

▲ 인천광역시 서구 석남동과 부평구 청천동, 산곡동을 연결하는 천마터널. ⓒ시사저널 유장훈

인천시의회의 한 의원이 소송을 준비 중이다. 지난 몇 년간 벼르며 준비해온 일이다. 건설교통위원회 소속인 허식 의원은 민자 사업으로 건설된 인천 지역 터널 세 곳에 매년 수십억 원의 시민 혈세를 쏟아붓게 된 경위를 따져묻겠다고 나섰다. 가뜩이나 열악한 지방 재정에 적지 않은 부담을 떠안게 만든 책임을 법적으로 규명해보자는 것이다.

문학터널, 천마터널, 만월산터널 등 민자 터널은 최근 몇 년 사이 인천의 ‘애물단지’가 되었다. 인천시는 2005년부터 올해까지 적자 보전금으로 해당 민간 사업자에게 3백14억2천100만원을 지급했다. 협약 체결 당시 추정 통행료 수입의 90%를 보장해주는 ‘최소수입운영보장’을 한 데 따른 것이다. 보장 기간도 20~30년이나 된다. 이에 따라 터널 세 곳에 들어가는 적자 보전금은 총 6천1백80억원에 이를 것으로 예상된다.

이처럼 민자 터널이 ‘돈 먹는 하마’가 된 것은 당초 추정했던 교통량과 실제 교통량의 차이가 너무 크기 때문이다. 사업 타당성을 살피는 결정적인 요인이자 수입 보장의 기준이 되는 수요 예측 자체가 잘못된 것이다. 2007년 기준으로 문학터널의 경우 하루 평균 5만6백6대가 통행할 것으로 추정했지만 실제 통행량은 2만5천8백37대에 그쳤다. 절반 수준을 가까스로 넘긴 수치이다.

다른 터널의 사정은 더 심각하다. 3만1천8백95대가 통과할 것으로 예상한 천마터널은 고작 8천5백92대만 통과해 추정 통행량의 26.9%에 머물렀다. 이로 인해 천마터널은 국내에서 수요 예측이 가장 크게 빗나간 터널이라는 오명을 갖게 되었다. 만월산터널도 4만6천3백54대가 통과할 것으로 추정했지만, 실제 통행량은 1만6천72대에 그쳐 34.7% 수준으로 나타났다.


개통되지도 않은 주변 도로까지 추정치에 넣어 계산

수요 예측은 민간 사업자가 용역업체에 맡겨 조사한 추정 통행량을 공공투자관리센터(PIMAC)의 전신인 민간투자지원센터(PICKO)에서 검증하는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군인공제회가 출자한 문학개발㈜은 ㈜청해이앤씨, 교원공제회가 출자한 천마개발㈜은 ㈜동림코퍼레이션, 대림컨소시엄이 출자한 만월산터널은 ㈜다산컨설턴트에 각각 추정 통행량 산정 용역을 맡겼다.

그런데 이해하기 힘든 부분은 터널 준공 시 개통되지도 않은 주변 도로가 개통된 것으로 전제해 교통량을 추정했다는 점이다. 문학터널의 경우 송도지식정보산업단지 진입로가 개통된 것으로 가정해 교통량을 산출했는데, 당시 이 도로의 개통 시기는 터널 준공 시점보다 5년 늦은 2007년으로 예정된 상태였다. 송도산단 진입 도로는 준공 예정일이 훨씬 지난 현재까지도 공사가 진행 중이며 내년에나 개통이 가능하다.

2004년 준공된 천마터널도 부평구에서 인천북항으로 연결되는 석남~원창동 도로 개설을 비롯해 공병로 확장 공사 등이 같은 해에 완료되는 것으로 가정해 교통량을 산정했다. 하지만 협약 체결 당시 인천북항은 개발 사업 초기 단계였고, 이들 도로의 개설·확장은 올해에 공사가 마무리되었다.

결국 통행량을 측정한 용역업체, 이를 검증한 민간투자지원센터 그리고 인천시와 사업 시행자 모두가 사실 관계가 잘못된 ‘엉터리 수요 예측’을 해놓고는 이를 기준으로 수입 보장을 협약한 것이다. 허의원은 이같은 내용이 지난해 감사원 감사 결과 이미 지적된 사항이며 관련된 시 공무원이 확인서까지 작성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1년이 넘도록 처분 명령이 내려지지 않았고, 단 한 명의 공무원도 징계를 받지 않았다고 한다.

이처럼 수요 예측이 잘못되어 재정이 낭비되고 있는데도 책임은 아무도 지지 않는 관행을 바로잡기 위해서 소송을 추진하게 되었다는 것이 허의원의 설명이다. 현재 시의회 고문변호사들이 관련 내용을 살피는 중이며, 원고를 누구로 하고 손해배상 청구 대상은 어디로 할 것인가 등을 검토하고 있다고 한다. 의원 개인이나 시의회가 원고가 될 수도 있고, 시민이나 시민단체가 나설 수도 있다. 청구 대상도 정부나 인천시, 사업 시행자나 용역회사 중에서 결정할 수 있다. 허의원은 12월까지 이러한 법률 검토를 마무리 짓고 내년 초 소송을 본격적으로 진행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인천시 허식 의원 “누군가는 책임져야 한다” 소송 준비 중

이번 소송이 진행되면 수요 예측이 잘못되어 혈세가 낭비되고 있다는 지적을 받아온 다른 민자 사업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어 주목된다. 민자 사업으로 인해 골머리를 앓고 있는 곳은 인천시만이 아니다. 광주시의 경우 제2 순환도로 민자 사업 구간이 ‘돈 먹는 하마’로 지적되어왔다. 수요 예측과 불리한 계약 체결로 그동안 7백79억원의 적자 보전금이 사업자에게 지급되었다는 것이다.

부산시도 2002년 개통된 수정터널의 실제 통행량이 예상의 70% 수준에 머물러 연간 50억원을 지원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2010년 이후 개통 될 부산~거제 간 연결도로, 북항대교, 명지대교 등 3개 민자 사업이 예측 수요에 미치지 못할 경우 수천억 원의 시 재정을 투입해야 할지도 모른다는 우려도 제기되고 있다.

중앙 정부에서 추진한 민자 사업은 규모가 큰 만큼 들어가는 예산도 엄청나다. 현재 운영 중인 민자 고속도로 4개 중 일산~퇴계원 노선을 제외한 3개 노선이 매년 수백억 원의 운영 수입을 보장받고 있다. 그동안 인천공항 고속도로에 6천4백30억원, 천안~논산 고속도로에 1천9백74억원, 대구~부산 고속도로에 6백68억원의 재정이 투입되어 이를 모두 합한 금액이 이미 9천억 원을 넘어선 것으로 조사되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민자 고속도로는 국회 국정감사가 열릴 때마다 ‘혈세 낭비’의 대표적 사례로 거론되어왔다. 올해 국감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여야를 막론하고 민자 사업의 문제점을 한목소리로 지적하며 정부에 해결 방안을 촉구했다. 특히 현재 운영 중인 민자 고속도로의 경우 20년 동안 적게는 77%에서 많게는 90%까지 협약 수입의 미달분 전액을 보장하기로 협정을 맺었기 때문에 해가 거듭할수록 정부의 재정 지출액은 쌓여만 가고 있다. 

이렇게 ‘밑 빠진 독에 물 붇기’를 계속하게 된 배경은 역시 잘못된 수요 예측에 있다. 국토해양부가 정희수 한나라당 의원에게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2002년 개통된 인천공항 고속도로의 경우 2007년까지 일 평균 협약 교통량이 12만9천6백34대였으나 실제 교통량은 6만1천77대로 예상치의 절반에도 못 미쳤다. 2003년 개통한 천안~논산 고속도로도 협약 교통량이 일평균 5만8백32대였지만 실제 교통량은 2만7천3백96대로 절반 수준을 가까스로 넘겼으며, 2006년 개통한 대구~부산 고속도로도 일평균 협약교통량 5만3천6백76대의 58% 수준인 3만1천6백25대가 실제 교통량인 것으로 나타났다.

중앙 정부에서 추진한 민자 사업의 수요 예측 역시 지방과 마찬가지로 민간 사업자가 용역업체에 맡겨 예측한 교통 수요를 한국개발연구원(KDI) 공공투자관리센터 등에서 검토 및 협상을 거친 후 확정된다. 인천공항 고속도로는 ㈜유신설계공단, 천안~논산 고속도로는 URS Greiner Woodward clyde, 대구~부산 고속도로는 유신코퍼레이션에서 각각 용역을 맡았다. 일산~퇴계원 서울외곽고속도로의 경우 ADL에서 수요를 예측했다.
정희수 의원은 “수요 예측 결과는 사업의 추진 여부와 최소 운영 수입 보장금 등을 결정하는 중요한 기초 자료가 되지만 현재 일관성 있는 수요 예측을 보장하기 어려운 실정이다”라고 밝혔다. 정의원은 “사업권을 따내기 위해 수요 예측을 고의적으로 부풀리거나 잘못 산정해 정부가 막대한 재정을 부담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라고 지적했다.  

이같은 지적은 지난 2월 발표된 한국개발연구원 정책포럼 자료에도 잘 나타나 있다. 김강수 연구위원이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도로 부문 타당성 평가에서 교통량은 평균 약 22% 과다하게 예측되었는데 민자 도로의 경우 평균 약 50%의 교통량이 과다하게 추정되었다. 민자 사업의 교통량 추정이 정부 재정 사업보다 배 이상 높게 나타난 것이다.


민자 사업의 수요 예측이 더 부풀려진 데는 수익성을 우선 고려하는 사업자의 이해와 실적 올리기에 바쁜 정부의 이해가 맞아떨어졌기 때문이라는 지적이 많다. 민간 사업자는 교통 수요를 최대한 높게 책정하는 방식으로 보전받을 금액을 올려 안정성을 도모하고, 각 주무 관청은 미래에 발생할 재정 지출보다는 당장 지급해야 할 지출 규모를 줄여 사업의 경제적 타당성을 확보하려 했다는 것이다.

용역업체 엉터리 예측, 처벌도 쉽지 않아

▲ 정종환 국토해양부장관이 국회에서 열린 국토해양위원회에서 추가 경정 예산에 관한 의원들의 질의에 답하고 있다. ⓒ연합뉴스

실제 수요 예측 작업을 한 용역업체의 경우 분석 방법이 유용하지 않았거나 사용된 기초 자료가 정확하지 않은 측면도 있지만, 기본적으로 고객인 사업자의 요구에 따라 교통 수요를 맞추려는 경향이 있을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특히 장시간이 지난 후에야 결과가 나타나기 때문에 주변 지역 개발 계획을 과장해서 반영하거나 현실성보다 당위성에 입각해 낙관적인 전망을 내놓을 가능성이 높다. 이를 검증해야 할 기관은 자료상에 나타난 수치만 검토한 채 추정한 교통량의 현실 가능성을 살피는 데는 소홀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지난 2004년 4월과 2006년 9월 두 차례 실시된 감사원의 감사 결과에서도 이러한 문제점이 제기되었고 이에 따라 정부도 제도를 개선하고 관련법을 개정했다. 운영 수입 보장으로 인한 재정 부담을 줄이기 위해 2006년 민간 제안 사업의 경우 수입 보장 제도를 폐지하고 정부 고시 사업의 경우도 보장 기간과 비율을 축소했다. 또, 지난해에는 건설기술관리법을 개정해 수요 예측을 고의 또는 중대한 과실로 부실하게 수행해 발주청에 손해를 끼친 경우 1년 이내 용역 업무 수행을 정지할 수 있도록 했다.

하지만 이미 막대한 재정이 투입되고 있거나 투입될 것으로 우려되는 기존의 민자 사업에 대해서는 이렇다 할 대안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어 ‘사후 약방문’이나 다름없다. 이에 따라 일각에서는 해당 사업을 정부나 공기업에서 인수하는 방안이 제기되고 있지만 국토해양부 입장은 회의적이다. 재정 부담이 더 많거나 비슷한 수준이며 민자 제도의 근간이 훼손될 수 있다는 것이다. 소송을 통한 해결책도 비슷한 이유에서 부정적이다.

그렇다고 정부가 제시한 개선책이 향후 민자 사업에서는 효율성을 발휘할 수 있는 근본적인 해결책으로 보이지도 않는다. 민간 사업자가 민자 사업에 뛰어드는 가장 큰 요인이 수익성 확보에 있다는 측면에서 수익이 높은 알짜 노선에만 더 관심을 가질 것이기 때문이다. 결국 실익이 없는 비수익 노선의 경우 정부가 사업을 제안해 수익 일부를 보전해주거나 직접 사업을 떠안을 수밖에 없는 구조가 형성될 수 있다. 실제 2006년 이후 민간 사업자들은 수익성이 있는 대도시 지역 인근에만 집중적으로 사업을 제안하고 있으며, 그 결과 현재 건설·계획 중인 22개 민자 고속도로 중 17개 사업이 수도권에 집중되어 있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엉터리 수요 예측’을 용역업체에 대한 법적 규제로 해결하려는 것도 현실성이 떨어진다. 수요 예측에 대한 ‘고의 또는 중대한 과실’을 입증하는 것 자체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이보다는 정부 차원에서 기준과 절차를 엄격히 하고 정교한 수요 추정 모형을 개발하는 일이 우선되어야 한다는 지적이다. 정희수 의원은 “민간 사업자가 제안한 수요 예측 결과에 대해 면밀히 검증할 수 있는 시스템 마련이 절실하다”라고 지적했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