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랑달랑…속 타는 금배지들
  • 안성모 (asm@sisapress.com)
  • 승인 2008.12.01 18:15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선거법 위반 의원들, 법원 판결 따라 희비 엇갈려…당선 무효, 17대보다 늘어날 듯

ⓒ그림 구본선

 임기 1년도 못 채울 금배지가 수두룩하다.” 4·9 총선이 치러진 이후 선거법 위반 혐의로 검찰에 기소되는 당선인이 줄을 잇자 나온 말이다. 법원 판결에 따라 당선 무효가 될 국회의원이 적지 않을 것이라는 의미이다. 현행 공직선거법상 징역 또는 100만원 이상 벌금형이 확정되면 의원직을 잃게 된다. 치열하게 펼쳐진 선거전이 남긴 후유증으로 매번 반복되는 일종의 통과의례이기도 하다.

18대 국회가 개원한 지 반 년 남짓 지나면서 법정에 선 의원들의 희비가 엇갈리고 있다. 당선 유·무효가 걸린 사건 수는 줄었다. 17대 총선에서 46명의 당선인이 기소된 반면, 18대에서는 33명에 그쳐 큰 폭으로 감소했다. 정당별로 보면 한나라당이 16명으로 가장 많으며, 민주당 7명, 무소속 4명, 친박연대 3명, 창조한국당 2명, 민주노동당 1명 순이다.

하지만 최근 재판에서 나타난 법원의 선거법 위반 판결이 예전보다 엄정해져 당선 무효가 선고되는 비율은 더 높아질 것으로 전망된다. 11월 말 현재 1심 이상 재판을 받은 25명의 현역 의원 중 절반이 넘는 13명이 당선무효형을 선고받았다. 항소심에서 관행처럼 이루어지던 ‘형량 깎아주기’도 자취를 감추었다. 항소심이 진행된 9건 중 1심에서 당선무효형을 선고받은 7건이 모두 기각되어 형이 그대로 유지되었다.

법원의 사건 처리 기간도 짧아져 ‘시간 끌기’도 힘들어졌다. 총선을 앞둔 지난 3월17일 법원행정처는 선거범죄 전담재판장 회의를 개최해 ‘항소심에서 1심 양형을 최대한 존중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과 함께 ‘당선인 유·무효 관련 사건은 신속하게 종결’하기로 결정한 바 있다. 남은 재판 결과를 지켜봐야 하겠지만 이런 추세라면 11명이 금배지를 떼인 17대 총선 때보다 더 많은 의원이 낙마할 가능성이 크다.

공천헌금으로 기소된 4명 모두 징역형

해당 의원들은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한나라당에서는 인천 부평구 을이 지역구인 구본철 의원이 1심에 이어 항소심에서도 벌금 4백만원을 선고받아 의원직을 상실할 위기에 놓였다. 대법원 상고심에서는 형량을 다루지 않기 때문에 무죄 취지로 파기되지 않는 한 당선 무효가 확정된다. 

서울 금천구가 지역구인 안형환 의원은 1심에서 벌금 1백50만원을 선고받았다. 검찰 구형보다 높은 형량이 내려져 초선 의원으로서 재판에 대한 대처가 너무 안일했던 것 아니냐는 지적을 받기도 했다. 검찰은 선거운동 기간에 학력을 부풀려 홍보한 혐의 등으로 안의원을 기소하면서 벌금 100만원을 구형했다.

이외에 울산 북구에서 3선을 한 윤두환 의원은 울산~언양 고속도로 통행료 폐지를 약속받았다는 발언 때문에 허위사실 공표 혐의로 기소되어 벌금 1백50만원, 수원 장안구가 지역구인 재선의 박종희 의원은 지난해 야유회를 통해 산악회원과 여성 당원들에게 명함을 돌리고 향응을 제공한 혐의로 벌금 5백만원을 각각 1심에서 선고받았다.

민주당에서는 전주 덕진구가 지역구인 김세웅 의원이 1심에 이어 항소심에서도 벌금 5백만원을 선고받아 대법원의 최종 판결만을 기다리게 되었다. 민선 초대부터 3차례에 걸쳐 무주군수를 지낸 김의원은 금품 제공과 사전 선거운동 혐의로 기소되었다. 비례대표 정국교 의원은 주가 조작 혐의로 징역 3년에 벌금 2백50억원, 사전 선거운동 혐의로 벌금 1천만원을 각각 선고받아 당선 무효가 될 위기에 놓였다.

공천 헌금 혐의로 기소된 의원 4명은 1심과 항소심 모두 벌금형이 아닌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올해 2월 말 시행된 공직선거법 47조 2항 ‘공천 관련 금품수수 금지’를 적용한 처벌이다. 법원은 친박연대 서청원 대표에게 1년6월, 비례대표 양정례·김노식 의원에게 징역 10월에 집행유예 2년과 징역 1년을 각각 선고했다. 창조한국당 비례대표 이한정 의원에게는 공천 헌금 혐의로 징역 2년, 학력 위조 혐의로 징역 6월형이 내려졌다.

내년 4월 예정된 재·보선 규모와도 연관

무소속의 경우 기소된 4명 중 3명이 당선무효형을 선고받았다. 경북 경주가 지역구인 김일윤 의원은 사조직을 통해 선거활동비 4천만원을 살포하고 경쟁 후보에 대한 허위사실을 유포한 혐의로 기소되어 1심과 항소심에서 징역 1년6월의 실형을 받았다. 전주 완산구 갑이 지역구인 이무영 의원에게는 허위사실 공표 혐의로 1심과 항소심에서 벌금 3백만원, 강릉이 지역구인 최욱철 의원에게는 1심에서 벌금 3백만원이 내려졌다.

법원의 판결이 이처럼 발 빠르게 전개되자 재판을 앞두고 있는 의원들의 움직임도 바빠졌다. ‘유죄냐 무죄냐’의 싸움보다는 ‘형량 낮추기’가 더 절박해 보인다. 현재까지 1심과 항소심을 통틀어 무죄 선고는 광주 남구가 지역구인 무소속 강운태 의원뿐이다. 이외에 당선 무효의 칼날을 피해간 의원들은 모두 100만원 미만의 벌금형을 선고받았다.

정치권 전반의 관심도 높아지고 있다. 사법부발(發) 정계 개편이 현실화하는 것 아니냐며 법원 판결을 예의주시하는 분위기이다. 재판 결과에 따라 내년 4월로 예정된 재·보궐 선거의 규모가 달라지기 때문이다. 특히 창조한국당 문국현 대표와 민주노동당 강기갑 대표에 대한 재판이 어떻게 진행될지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야당 대표가 갖는 위상도 위상이지만, 총선에서 낙마한 한나라당 유력 정치인의 정계 복귀 여부와도 맞닿아 해석되고 있어서이다. 문대표는 서울 은평구 을에서 친이계 좌장이던 이재오 전 최고위원을 상대로 금배지를 움켜쥐었고, 강대표는 사천에서 공천 실세이던 이방호 전 사무총장을 누르고 당선되었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