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년 군림한 ‘막강 의견’‘신뢰 상실’로 흔들리나
  • 김회권 (judge003@sisapress.com)
  • 승인 2008.12.09 0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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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과 일본에 대해 ‘부정적’인 국가 신용등급 전망을 내놓아 원성을 듣기도 한 세계 3대 신용평가사에 대한 규제 논의가 세계적으로 일고 있다.

바야흐로 ‘신용평가 시대’이다. 민간 기업뿐만 아니라 대학, 병원, 지자체 등 사회의 각 분야에서 신용평가가 이루어지고 있다. 신용등급은 기업의 성장 가능성, 대학의 교육 수준, 병원의 치료 능력 등을 알려주는 지표가 아니다. 채무를 불이행할 위험 정도를 판단하는 데 도움을 준다. 하지만 요즘은 신용등급이 신뢰의 문제와 연결되면서 신용등급 ‘A’가 그 조직의 종합적인 능력을 평가하는 것처럼 비치고 있다. 이런 시대가 지속될수록 신용평가를 시행하는 신용평가사들은 절대적인 지위를 얻을 수 있다. 아니, 이미 얻고 있다.

“국제 신용평가사의 평가에 의구심이 들더라도 ‘묻지마’라는 것이 이전의 분위기였다면 이제는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알아볼 것은 알아보고 대응할 것은 대응해야 할 시기가 왔음을 알리는 신호탄이 될 것 같다.”

한 애널리스트가 지난 11월26일 국내 토종 신용평가사인 ‘한신정평가’의 기자회견에 대해 내놓은 평가이다. 세계 3대 신용평가사 중 하나인 피치IBCA는 지난 11월10일 우리나라의 국가 신용등급 전망을 ‘부정적’으로 하향 조정했다. 피치측은 “경기 침체에 따라 금융권의 자산 건전성이 악화될 가능성이 높고 차입금의 부담이 증가하면서 신용도가 악화될 것이 우려된다”라고 하향 조정의 이유를 밝혔다. 여기에 국내 토종 신용평가사인 한신정평가가 반기를 들고 나선 것이다. 남욱 한신정평가 상무는 “6월 말 현재 총 대외 채무 4천1백98억 달러 중 상환 부담이 거의 없는 외채가 1천5백18억 달러이다. 질적 측면을 고려할 경우 피치가 한국의 외채 부담을 과도하게 해석한 측면이 강하다”라고 지적했다.

무디스, 스탠더드앤푸어스(S&P), 피치IBCA 등 세계 3대 신용평가사가 가진 특권 중 하나는 국가 신용등급을 평가한다는 데 있다. 일명 소버린 신용등급이라고 한다. 국가 재무 위험을 분석해서 신용등급을 산정한다. 한마디로 ‘컨트리 리스크 측정’이다. 신용평가사의 국가 등급 산정에는 양적 지표와 질적 지표가 함께 쓰인다. 양적 지표는 쉽게 말해 수치이다. 객관적인 경제 지표를 여기에 활용한다. 이것은 대상 국가의 경제적 체질을 조사하는 데 유용하게 활용된다. △소득 △경제성장 전망 △세수를 포함한 국가 재정 △국가 채무 등이 대표적이다. 여기에 덧붙여 역사적·정치적 요인들을 질적 지표로 사용한다. S&P의 경우 정치적 위험도 등을 신용등급에 포함시킨다. 현 정권이 안정하고 정당한지, 국민의 정치 참여도는 높은지, 안보와 치안은 확립되어 있는지, 지정학적인 위험은 없는지 등을 고려한다.

신용을 평가하는 것은 현재의 순위를 매기는 것이 아니라 미래의 위험도를 측정하는 작업이다. 따라서 주관적인 요소가 배제될 수 없다. 특히 질적 지표에는 논란이 많다. ‘코리아 디스카운트’가 대표적이다. 한반도의 지정학적 불안에 대해서 우리와 신용평가사 사이에는 온도 차가 있다. 상대적으로 우리의 신용등급이 저평가받고 있다는 불만이 제기되는 이유이다.

이것은 일본의 오래된 불만이기도 했다. 1998년 대장성 산하 국제금융정보센터(JCIF)는 “무디스, S&P, 피치 등이 검증되지 않은 방법을 써서 장기 신용등급을 평가하고 있다”라며 신용평가사를 재평가하겠다고 밝혔다. 1998년 4월7일 무디스가 일본의 장기 신용등급 전망을 ‘안정적’에서 ‘부정적’으로 하향 조정한 것이 계기였다. 무디스의 발표를 놓고 엔화·주가·채권 등이 동반 폭락하면서 일본 경제가 요동쳤기 때문이다.


미국 하원, 신용평가사에 미국발 금융 위기의 책임 물어

일본의 신용평가사를 재평가했던 시도는 결국, 하나의 해프닝처럼 되어버렸다. 10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신용평가사들의 힘은 막대하다. 무디스의 경우 국가 신용도를 포함해 그들이 평가하는 대상은 기업, 금융 기관, 유가증권, 지방자치단체 등 13만여 종이 넘는다. 

일본의 신용평가사를 재평가했던 시도는 결국, 하나의 해프닝처럼 되어버렸다. 10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신용평가사들의 힘은 막대하다. 무디스의 경우 국가 신용도를 포함해 그들이 평가하는 대상은 기업, 금융 기관, 유가증권, 지방자치단체 등 13만여 종이 넘는다. 

▲ 무디스, S&P, 이건존스레이팅의 대표들이 미국 주택 감시 정부 개혁 위원회에서 선서를 하고 있다. ⓒAP연합

다만, 신용평가사에 대한 규제 논의가 세계적으로 벌어지고 있다는 것이 10년 전과 다른 점이다. 미국발 금융 위기의 책임을 묻기 위한 자리가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지난 10월22일 미국 하원의 정부 개혁위원회에서 열린 청문회에는 무디스, S&P, 피치IBCA의 CEO가 출석해 실패의 변을 늘어놓고 있었다. 무디스의 CEO인 마크 다니엘은 “무디스의 등급 설정은 상업적인 동기에 좌우되지 않는다. 이해가 충돌될 경우 적절히 관리되고 있다”라고 말했지만 신용평가사인 이건존스레이팅의 CEO 숀 이건은 “이번 금융 위기는 미국 근대사에서 가장 광범위하게 나타나 피해 규모도 매우 크다. 그리고 이 위기를 가져온 주된 책임은 신용평가사에게 있다”라며 상반된 견해를 펼쳤다.

국제증권감독기구(IOSCO)는 지난 5월에 신용평가사의 행동 강령 개정안을 발표했고,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는 지난 6월에 감독·규제 안을 내놓았다. 금융 위기가 본격적으로 터지기 직전부터 신용평가사에 대한 불신이 커지고 있었다는 이야기이다.

증권업계의 한 관계자는 “당시 국제 신용평가사들이 CDPO(고정비율부채증권)를 제대로 평가하지 못하면서 권위가 실추된 측면이 있다. 실수이면 바로잡아야 하는데, 오히려 버티다가 과거의 평가들까지 도매금으로 의심받은 셈이다”라고 말했다. CDPO는 신용디폴트스왑(CDS)에 투자하는 파생 상품으로 CDPO를 가진 사람은 CDX나 iTraxx지수와 같은 부채증권지수에 들어 있는 여러 회사채로 바스킷을 구성해서 부도 가능성에 베팅해 일정 프리미엄을 받을 수 있다.

사건의 발단은 지난 5월21일 영국의 파이낸셜타임스가 “신용평가사인 무디스가 파생 상품의 일종인 CDPO의 신용등급을 산정하는 데 오류가 있었다”라고 보도하면서 시작되었다.

금융 위기 터지기 직전부터 등급 산정 모델 오류 지적돼


7월1일, 무디스는 자체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파이낸셜타임스가 지적한 등급 산정 모델의 오류를 숨기기 위해 등급 설정의 수법을 변경하는 일은 없었다”라는 주장이 “모니터링 위원회의 멤버가 재검토를 하면서 등급 설정 프로세스에서 부적절한 요소를 발견했다”로 수정되었다. 당시 10억 달러 미만의 CDPO가 Aa 등급을 받아야 하는데 Aaa를 부여받았다고 한다. 이런 CDPO는 최소 40억달러 이상이 판매된 것으로 추산되는데 주 판매처 중 하나가 이번에 파산한 리먼브러더스였다.

무디스는 관계 부서의 직원을 해고하고 구조 금융 부문의 책임자를 퇴진시킨다고 발표했다. 이미 서브프라임 모기지 증권 문제가 본격화되자 5월7일 무디스는 사장을 교체한 바 있었다. 2007년 8월에는 S&P의 캐서린 코벳 사장도 같은 이유로 책임을 지고 사퇴한 바 있다. 불과 1년 사이에 세계 3대 신용평가사의 수장 두 명이 갈리는 이상 기류가 흘렀다. 비슷한 문제가 또다시 부각되면서 ‘꼬리 자르기 논란’과 함께 신용평가사의 신뢰도가 본격적으로 도마에 올랐다.

신뢰 문제는 시장에 곧바로 반영되었다. 7월1일 무디스의 발표가 있기 직전인 6월30일, 무디스는 “일본의 엔화 국채의 신용등급을 Aa3로 한 단계 상향 조정한다”라고 발표했다. 금리 상승으로 재정 적자의 위험도가 높아지고 있던 상황에서 나온 무디스의 발표에 의문이 따를 수도 있었지만 시장은 오히려 잠잠했다. 신용등급 상향 발표로 엔화 강세가 예상되었지만 생각보다 상승 폭이 작았다. 증권업계의 한 관계자는 “당시 뉴욕 증시가 강했던 이유도 있었지만 시기상 무디스의 발표가 예전만큼 신뢰도를 가지기 어려웠다”라고 말했다.
신용평가사는 2001년의 엔론 사 사건 때 제대로 경고 기능을 하지 못했다고 비난받은 경험이 있다. 하지만 당시 1차적인 책임은 분식회계를 행동에 옮긴 엔론 사와 회계법인 아서 앤더슨이 지는 것이 마땅했다. 결국, 두 회사는 파산했다. 엔론 사가 파산하기 직전까지 투자적격 판정을 내렸던 신용투자사들은 소나기만 잠시 피하면 되었다.

하지만 이번 금융 위기는 미국을 시작으로 전세계를 휩쓸고 있다. 재난의 조짐이 보이던 지난 7월10일 미국 SEC는 무디스, S&P, 피치IBCA 등 세계 3대 신용평가사의 등급 평가 문제를 조사한 보고서를 발표했다. SEC의 크리스토퍼 콕스 위원장은 “신용평가사들에게서 심각한 결점을 발견했다. 정보의 공개나 등급 설정 과정을 관리하는 절차가 불분명하고 이해관계 문제에 대한 지침도 지키지 않았다”라고 말했다.

국내의 한 신용평가사 관계자는 “신용평가사들이 본연의 업무에서 범위를 확장하며 변화했다. 등급을 산정하는 사업부터 파생 상품을 서포트하는 일로 점점 말을 갈아탔다. 이익의 규모가 다르기 때문이다”라고 설명했다. 이번 금융 위기는 서브프라임 모기지 증권에서 시작되었다. S&P는 지난 2006년에 조성된 서브프라임 모기지 증권 중 98%의 등급을 평가했다. 무디스는 97%, 피치는 51%였다. 새로운 금융 상품이 등장했다는 말은 신용등급을 산정할 대상이 늘었다는 말과 같다. 신용평가사의 주된 수입은 신용평가 수수료로 알려져 있다. 파생 상품이 늘어나면서 신용평가사의 매출도 늘어났다.

신용평가사는 소버린 등급 외에 유가증권의 등급 업무에서도 절대적인 권위를 누려왔다. 최근 유행하고 있는 신탁우선주 등의 하이브리드 증권도 신용평가사들이 등급을 매겨왔다. 하이브리드 증권은 자기자본증권으로 만기가 없는 대신 수익률은 높다. 그러나 은행이 적자를 낼 경우 이자나 배당을 못 받을 수도 있고 중도 해약도 하지 못한다. 원래 자기자본 규제가 있는 금융 기관에서 자기 자본을 확충하기 어려운 경우에 차선책으로 사용하는 방법이다. 하지만 보험사까지도 이런 하이브리드 증권을 발행하기 시작했다. 신용평가사들은 하이브리드 증권으로 자기 자본이 증가한 발행사들의 신용등급을 올려주었다. 게다가 어느 정도를 자기 자본으로 인정할지 여부는 신용평가사의 기준에 달려있었다. 신용평가사들이 모든 칼자루를 쥐고 있는 셈이었다.

파생 상품에 신용평가사의 역할이 절대적이었던 것이 문제

이처럼 현재 문제가 되고 있는 구조 금융은 채권의 보유자인 발행회사, 중개자인 증권사와 함께 신용평가사가 파생 상품의 생산에 참가하는 모양새를 하고 있다는 점이 문제이다. 기업의 경우 투자를 하기 전에 평가보고서 등을 통해 사전에 가치를 분석할 수 있다. 반면 파생상품은 사후 평가인 수익률을 제외하고는 사전에 취할 수 있는 분석 방법이 거의 없다. 신용평가사가 붙이는 신용 등급이 절대적이다. 게다가 신용평가사들이 참가자가 되면서 자신들에게 이익이 되는 유가증권의 경우 문제가 생겨도 제때 경보음을 내지 않았다. 이번 리먼브러더스의 파산은 몇 년 동안 AAA 등급을 남발했던 MBS(모기지담보증권)의 신용등급을 불과 수개월 만에 투자 부적격 수준으로 강등시키면서 일어났다. 신용평가사들은 리먼브러더스에 대한 경고도 수개월 동안 지지부진하게 해왔다(그래프 참고).

그리고 이런 파생 상품은 2차, 3차로 가공을 반복하면서 만든 사람조차도 이해하기 어려울 정도가 되기도 한다. 전문가가 어떤 유가 증권의 문제를 지적하더라도 아마추어 투자자가 그 데이터를 검증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결국, 등급 설정을 믿고 계속 따라갈 수밖에 없다.

서브프라임 모기지 증권을 비롯해 각종 파생 상품이 빚은 재난에 1차적인 책임이 신용평가사에게 돌아가는 것을 보면 역사는 돌고 도는 것 같다. 엔론 사와 아서 앤더슨의 뒤에서 우산을 받치고 비를 피하던 신용평가사들의 CEO들은 미국 하원 청문회장에서 “신용평가사의 역사는 거대한 실패의 역사”라는 말을 들으며 폭풍우를 맞아야 했다. 하지만 그동안 신용평가사라는 민간 기관에 의존할 수밖에 없도록 시스템이 구축되어온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현재 미국에는 1백30여 개의 신용평가사가 있다. 그중 미국증권거래위원회(SEC)에서 NRSRO라고 불리는 신용평가 공인 인증을 부여한 곳은 7개사뿐이다. 하지만 실질적으로 전세계는 세 개의 회사만을 NRSRO로 인식하고 있다. 무디스, S&P, 피치IBCA는 1975년 최초로 NRSRO로 인증된 회사들이며 세계 신용평가 시장의 90%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NRSRO를 부여받은 민간 신용평가사의 평가 기준에 정부 당국은 개입하지 않았다. 단지 일임할 뿐이었다. 미국의 세계 시장 진출과 함께 이들 3개 사의 위력도 함께 커졌다. 나머지 4개사는 이들의 독점에 대한 우려가 본격화된 2000년대 들어서야 인증을 부여받았다. 하지만 이미 격차는 벌어져 좁히기 힘든 상태였다.

게다가 2004년 6월 신BIS협약이라고 불리는 ‘바젤Ⅱ’에 따라 은행의 자기자본비율이 강화되었다. 여기서 눈길을 끄는 조항은 외부 신용평가사의 신용등급에 따라 위험 가중치를 차등 적용하는 방법을 인정한 내용이다. 은행의 유동성 평가에 대한 보증문서를 신용평가사에게 줘버리면서 이들의 권위가 한층 높아진 상황이었다. 신용평가사들은 문제가 생길 때마다 “신용등급 평가는 하나의 의견일 뿐이다”라고 변명해왔지만 순수하게 받아들이기에는 이미 너무 막강해진 의견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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