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하늘에 떠도는 ‘발암 먼지’들
  • 이은지 (lej81@sisapress.com)
  • 승인 2008.12.09 0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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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종 공사장에서 관리·감독 없이 석면 가루 노출…노동부 등 “인력 없다”며 거의 방치

▲ 서울역 앞 대우건설 리모델링 현장. 건축 폐자재들을 운송하기 위해 작업을 하고 있다. ⓒ시사저널 임준선

서울 도심이 석면 공포에 휩싸이고 있다. 광화문과 종로1가, 을지로 입구 삼각동 일대, 종로4가 세운상가 등지에서 재개발 공사가 한창이고 서울시청과 삼성 본관의 리모델링이 동시에 이루어지면서 서울 도심에는 거대한 공사판이 펼쳐지고 있다. 문제는 이 거대한 공사판을 지나는 시민들이 아무런 대책도 없이 치명적인 발암 물질인 석면에 노출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한 시민단체의 조사에서 이런 무감각한 현실 대응에 경종을 울려줄 만한 결과가 나왔다. 리모델링에 들어간 삼성 본관의 석면 해체 및 제거 준비 과정에서 석면가루가 나왔다는 것이다. 환경연합 시민환경연구소 최예용 부소장은 “본격적인 석면 제거 작업도 하기 전인 준비 과정에서 석면이 비산할 정도로 허술하게 공사가 진행되고 있다. 대기업도 이럴진대 소규모 일반 사업장에서는 오죽하겠느냐”라고 개탄했다.

아니나 다를까. 환경부가 소규모 건축물 철거가 이루어지는 1백79개 시설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36개 시설(20%)에서 석면이 환경 기준을 초과해 검출된 것으로 조사되었다. 이 조사 결과도 한 언론사가 지난 12월1일 보도하자 부랴부랴 환경부가 “일반 시민들이 석면에 얼마나 노출되고 있는지 모니터링하면서 중간 점검한 내용이다. 정확한 내용은 정밀 분석 결과가 나오는 12월 말에나 알 수 있다”라고 해명하는 과정에서 알려졌다.

정부의 대응은 이처럼 사후약방문격으로 미온적이다. 노동부는 삼성 본관의 석면 문제가 붉어지자 “시료를 채취해 확인 조사하고 있는 중이다”라고 입장을 밝힌 것이 전부이다. 이런 문제의 재발을 막으려는 적극적인 노력은 찾아보기 어렵다. 노동부 근로자 건강보호과 김광석 사무관은 “석면 제거 허가 신청이 들어오면 현장 검사를 통해 허가 여부를 결정하고 공사 중에도 불시에 점검을 나간다”라고 밝혔다.

그러나 감시·감독이 소홀해서 이런 문제들이 발생하는 것 아니냐고 묻자 “올해 공사장 석면 제거 허가 건수가 8천건이 넘는다. 지난해에 비해 8배 급증했다. 근로감독관이 탄력적으로 늘지 못해 한계가 있다”라는 군색한 답이 돌아왔다. 공사 현장에 지도 점검을 나가는 부서인 산업안전과 직원은 총 3백명. 하지만 다른 업무를 겸하다 보니 현장 실사를 나가는 경우는 손에 꼽을 정도이다. 산업안전과 직원들 사이에서 “석면 제거 허가 여부를 결정할 때 업체의 시연 장면 정도밖에 볼 시간이 없다”라고 볼멘소리가 나올 정도이니 사후 관리·감독이 제대로 이루어질 리 없다.

서울대학교 보건대학원 백남원 명예교수는 “석면 문제에서 한국은 여전히 후진국이다. 환경부나 노동부에서 석면 문제를 감시·감독하도록 법이 마련되어 있으나 시행할 능력이 없다. 정부의 인력이 달리면 민간 전문 연구기관이라도 활성화시켜 이런 문제점을 예방해야 하는데 그런 노력조차 보이지 않는다”라고 지적했다.

시민단체가 적극적으로 나서 감시 활동을 하려고 해도 정부가 정보 공개를 꺼리는 경우가 많아 석면 문제 해결을 막고 있는 실정이다. 대표적인 사례가 대우센터빌딩 리모델링이다. 지난 4월, 환경단체에 의해 석면을 함유한 건축 자재가 부서진 채 방치되는 현장이 발각되었다. 그나마 본격적인 석면 해체 작업이 이루어지기 전이라 현장 방문이 가능했지 실제로 작업이 시작되고 나서는 접근조차 불가능했다.

감시 활동하려 해도 정부가 정보 공개 꺼려

당시 문제를 제기했던 강남서초환경운동연합 김영란 사무국장은 “노동부는 석면 폐기물 처리가 환경부 소관이라며 미루었다. 정작 환경부는 현재 상황에서 취할 수 있는 조치가 없다며 방관하더라. 현장 접근이 불가능하다 보니 더 이상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라고 털어놨다. 이뿐만이 아니다. 김사무국장은 지난 6월 고속버스터미널 지하상가 리모델링 과정에서 석면 제거 작업이 3일밖에 걸리지 않아 문제를 제기했다. 현실적으로 이렇게 짧은 기간 안에 석면 제거 작업이 제대로 이루어질 수 없다고 판단한 그녀는 노동부에 정보 공개를 청구했다. 어떻게 석면 제거 작업이 진행되었고 관리·감독은 제대로 이루어졌는지 확인해보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돌아온 답변은 개별 기업의 공사 상황이기 때문에 정보를 공개할 수 없다는 어이없는 내용이었다. 김사무국장은 “하루 유동 인구가 15만명에 달하는 다중 이용 시설인데도 개별 시설 공사로 치부하는 것이 말이 되느냐. 석면 문제에 대해 정부가 얼마나 안일하게 대응하고 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라고 비난했다. 환경연합은 결국, 이 문제를 검찰에 고소했고 12월 말 재판이 열릴 예정이다.

이처럼 석면 제거 작업 과정을 공개하고 검증하는 과정이 생략되다 보니 어떻게 석면을 제거하는 것이 가장 안전한가에 대한 논의도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한국석면환경협회는 대우센터빌딩이 석면을 제거하면서 사용했던 워터젯 방식(고압으로 물을 쏴 석면을 제거하는 것)의 위험성을 경고하고 나섰다.

한국석면환경협회 구기영 이사장은 “워터젯 장비를 수출하고 있는 일본에서조차 이 장비로 석면을 제거하지 않는다. 물을 고압으로 쏘는 과정에서 석면이 다량으로 비산하는 데다가 이때 사용된 물이 석면으로 인해 오염되는 2차 피해도 발생하기 때문이다. 또한 워터젯으로 작업을 하면 습도가 높아 오염 공기를 포집·정화시키는 음압기 필터를 30분마다 교체해야 하는데도 그렇게 하는 작업장이 없어 대단히 위험하다”라고 주장했다. 비용 절감 차원에서 워터젯 방식을 사용하지만 가장 안전하게 제거할 수 있는 방법은 수작업밖에 없다는 것이 구이사장의 지적이다.

석면으로 인한 악성종피증 환자, 한 해 5백명

환경연합 김사무국장도 “워터젯 방식이 옳지 않다고 말할 수는 있지만 문제가 얼마나 심각한지는 알 수 없다. 대우센터빌딩 주변을 측정해서 석면 비산 정도와 폐수의 오염 여부를 확인하는 과정을 거치지 못했기 때문이다. 논쟁의 여지가 있는 것들은 공개를 통해 기술 평가 과정을 거쳐야 한다”라고 말했다.

현재 대우센터빌딩은 이런 평가 과정을 거치지 않은 채 제거 작업을 모두 끝냈다. 어처구니없는 사실은 석면 제거 작업이 이루어졌던 4월부터 9월까지 대우센터빌딩에서 직원들이 일을 했었다는 점이다. 석면 문제의 심각성을, 관리·감독 업무를 맡고 있는 정부뿐만 아니라 일반인들도 제대로 인지하지 못하고 있다는 반증이다. 외국 같으면 이런 무감각한 일 처리는 대규모 소송으로 이어질 만한 사안이다.

한국석면환경협회 구기영 이사장은 “한국에도 석면으로 인한 악성중피종 환자가 한 해 5백명에 달할 정도로 급증하고 있다. 하지만 인과 관계를 인증하기가 어려워 역학 조사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피해 구제 대책도 없다. 이제라도 정부는 구체적인 피해 대책을 마련하고 근로감독관을 대상으로 석면 교육을 철저하게 실시해야 한다”라고 지적했다. 석면 전문가 육성을 위한 지원도 반드시 이루어져야 할 부분이다.

서울대학교 보건대학원 백남원 명예교수는 “한 해 산업위생기술사가 1백50명 정도 배출된다. 석면에 대해 전문적인 지식을 갖췄음에도 정부가 이들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해 다른 분야로 빠져나가고 있는 실정이다. 정부가 이들을 제대로 대우해주고 지원해준다면 석면 문제가 대재앙으로 다가오는 것을 막는 데 크게 기여할 수 있을 것이다”라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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