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산 현장의 힘이 불황과 싸워 이겼나
  • 반도헌 (bani001@sisapress.com)
  • 승인 2008.12.15 2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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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모비스, 지난해보다 매출·영업이익 늘어날 듯

▲ 에어백 충돌 시험 준비를 위해 SLED에 더미를 장착하고 있다. ⓒ시사저널 임영무

미국발 금융 위기와 함께 불어닥친 세계적인 경제 불황이 국내 산업 현장에도 직격탄을 쏟아붓고 있다. 특히 자동차 산업은 미국 시장 의존도가 컸던 만큼 불황의 그림자가 짙을 수밖에 없다. 살기 위해서는 이 위기를 넘어서거나 아니면 문을 닫거나 양자택일이 있을 뿐이다.

국내 최대의 자동차 부품 및 모듈 생산업체인 현대모비스는 위기를 뛰어넘는 길을 택했다. 불황을 뛰어넘기 위해 힘을 모으고 있는 현대모비스의 생산 현장에 가보았다.

현대모비스는 국내 부품 사업과 모듈 사업을 통해 2008년 9조2천9백74억원의 매출과 9천91억원의 영업이익을 기록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매출액에서 지난해보다 9.5%, 영업이익에서 3.8%가 상승한 수치이다. 불황 속에서도 매출과 이익이 늘어났다.

불황 속의 매출 신장은 생산 현장의 힘에서 비롯된 듯하다. 현대모비스 아산공장의 탄력적인 운용 체제는 불황에서 힘을 발휘하고 있다. 현대모비스의 아산공장은 이웃한 현대자동차 아산공장에 중·대형 세단인 NF소나타와 그랜저TG의 샤시 모듈, 운전석 모듈, 프론트엔드 모듈을 생산해 납품한다. 현대모비스 아산공장 모듈생산팀의 유연섭 부장은 “경기가 침체되면서 중·소형차 생산 라인보다 중·대형차 생산 라인이 먼저 영향을 받고 있다. 특근이 없어졌고 10시간 2교대에서 8시간 2교대로 조업 시간을 단축하는 등 상황에 맞추고 있다”라고 밝혔다. 그는 “자동차 핵심 부품에 불황이 바로 오는 것은 아니다. 지금은 오히려 더욱 공격적으로 투자하고 있다. 불황이라고 인재 채용을 줄이지 않는다. 오히려 우리는 연구 인력을 더 뽑고 있다. 어려울 때가 기회이기도 하다. 선두 업체와의 격차를 줄이고 후위 업체와의 격차는 더욱 늘릴 수가 있기 때문이다. 2~3년 격차를 1년으로 줄일 수도 있다”라고 말했다.

실제로 아산공장에는 품질 경쟁력과 가격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개선된 생산 시스템이 계속 적용되고 있다. 트롤리 컨베이어 시스템, 직서열 생산 시스템, 자동 출하 시스템 등이 바로 그런 예이다. 현대모비스는 이런 공정 라인의 개선으로 경인 지역에서만 3년간 6백명의 인력 절감 효과를 보았다.

품질·가격 경쟁력 높이기 위해 생산 시스템 개선

▲ 현대모비스 아산공장 생산 라인에서 조립 작업이 진행 중이다. ⓒ시사저널 임영무

트롤리 컨베이어 시스템은 천장에 설치된 레일을 따라 트롤 리가 움직이면서 물류를 운송하는 것이다. 인형 뽑기 장치의 인형 집게손이 여러 개 달려 있는 모습을 연상하면 된다. 트롤리 컨베이어는 작업장 복도를 분주하게 돌아다니던 견인차를 없앴다. 유연섭 부장은 “트롤리 도입으로 공장 내 물류 동선에서 불필요한 움직임을 없애 번잡함을 줄였다. 안 쓰는 공간인 천장에 물류를 보관하는 효과도 얻을 수 있었다”라고 말했다.
현대자동차 아산공장 생산 라인과 모비스 아산공장 생산 라인을 네트워크로 연결하는 직서열 생산 시스템도 구축하고 있다. 현대자동차 공장에서 차 한 대의 의장조립이 시작되면 현대모비스에서도 동시에 모듈 생산이 들어가는 것이다. 동시에 생산에 들어가기 때문에 자동차 의장조립이 완료되는 시점에 모듈의 생산, 조립, 상차, 운반 및 투입이 같이 이루어진다. 다시 말하면 차체가 완성되는 순간 내부 구성 설비가 그 앞에 도달해 바로 완성차를 만들어내는 시스템이다. 

ECOS(Electric Check Out System) 시스템은 불량이나 조립의 오류를 줄여주는 역할을 한다. 공정마다 진행 상황과 설비, 부품에 대해 설명해주는 모니터가 달려 있어 정확한 작업을 하는지 공정 직원이 한눈에 확인할 수 있다. 잘못된 경우에는 공정이 멈춰 수정된 다음에나 다시 돌아간다. 김광조 차장은 “예전에는 정상 여부를 판별하기 위해서는 차체가 완성되고 배터리가 장착된 이후에나 가능했다. 그러다보니 불량이나 조립 오류가 발생했을 경우 시간과 비용이 많이 소모되었다. ECOS 시스템으로 작은 오류의 가능성도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게 되었다”라고 설명했다.

현대모비스는 공정 개선을 위해 직원들에게 개선안에 대한 아이디어를 꾸준히 모집하고 있다. 공정 클리닉이라는 이름으로 소장이나 관리자가 공정별로 면담을 가져 직원들의 심리적 불만, 공정의 불편 요소, 환경 개선에 대한 의견들을 수렴한다. 팀장급 이상의 간부들은 1주일에 두 번씩 가지는 중역회의에 참석한다. 화상을 통해서 세계 각지에 흩어져 있는 지사들이 모두 함께 개선 사례, 핵심 테마 등에 대해 발표하고 토론한다. 유연섭 부장은 “지속적인 개선은 경쟁력의 원천이다. 갑작스런 혁신은 힘들지만 조금씩 지속적으로 바꾸다 보면 결국에 혁신적인 변화가 오게 된다”라며 꾸준한 변화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경쟁력 강화는 생산 라인 개선도 한몫하지만 원천적으로는 기술 개발에 달렸다. 현대모비스 기술연구소는 경기도 용인에 있다. 현대모비스는 미국과 유럽에도 각각 하나씩의 연구소를 두고 있다. 현대모비스 기술연구소 연구지원부 박정은씨는 “친환경적 소재 개발, 경량화를 위한 소재 개발, 고속에서 무게감을 주어 안전 주행을 돕는 MDPS 조향장치, 눈길에서도 차의 미끄럼을 잡아주는 ESC브레이크 장치 등의 개발에 주력하고 있다”라고 밝혔다.

용인 기술연구소의 설비 중 눈에 띄는 것은 다양한 충격 발생에 에어백이 잘 작동하는지 알아보기 위한 SLED 시험기, 전파 간섭과 소음을 제어하기 위한 전파 무향실과 음향 무향실 등이다.

SLED 장치를 위한 에어백 충돌 시험을 볼 수 있었다. ‘빵’ 하는 굉음과 함께 SLED가 앞으로 튀어나갔다. 한 번 시험을 준비하는 데만 4시간이 걸린다. 시행할 때마다 드는 비용도 5백만원. 신에어백 개발 시험시 일반적으로 내수 판매용은 40회 정도, 북미 판매용은 100회 정도를 시험한다. 횟수에 차이가 있는 것은 에어백에 대한 법규가 국내와 북미 지역의 기준이 다르기 때문이다. 현대모비스 기술연구소 기능시험팀의 이동형 차장은 “경제 상황이 안 좋아지면서 시험 방식과 횟수에도 변화를 주고 있다. 비용 최적화를 위한 것이다. 이전에는 목표 기준치를 만족하더라도 그 외의 여러 상황을 가정해 추가적으로 시험하고는 했는데, 지금은 기준에 적합한 제품을 만드는 최적의 방법을 찾으려고 한다. 잉여 시험이 없도록 한다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경제 상황은 신제품 개발의 방향도 바꾸고 있다. 개발에 주력하는 설비의 분야도 고가의 고사양에 대한 기술보다는 원가 절감을 위한 신소재 개발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실제 부품을 제작할 때 드는 비용을 줄이면서 기능의 효율성은 높여가고 있다. 자동차시장이 거대 글로벌 업체 위주로 재편되면서 원천 핵심기술 확보의 중요성은 더욱 커지고 있다. 세계 최고의 자동차업체로 떠오른 도요타에는 전장업체인 덴소와 변속기업체인 아이신의 밀접한 협력 관계가 버티고 있다. 현대모비스의 경쟁력이 세계 최고가 되어야 현대차의 경쟁력도 세계 최고가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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