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조 조정 ‘핸들’은 어디로?
  • 심정택 (자동차산업 전문가) ()
  • 승인 2008.12.15 20: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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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차업계, 11월 판매 실적 -27%로 ‘급적직하’해 위기감 고조

▲ GM대우는 자동차 생산량 조절을 위해 인천 부평구 청천동 본사 안에 있는 부평2공장의 조업을 중단했다. ⓒ연합뉴스

자동차 산업이 고용 창출 및 전후방 산업 연관 효과가 크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한국 자동차업계의 종사자는 1백20만명으로 전체 경제활동 인구의 6.7%, 사업장 취업자의 10.4%를 차지한다. 따라서 자동차 산업의 침체는 실물 경제에 막대한 타격을 주게 된다. 미국발 불황은 벌써 국내 자동차업계의 목줄을 죄어가고 있다. 특히 북미 수출 비중이 높은 현대차그룹에게 엄청난 영업 손실을 입힐 것으로 전망된다. 현대차와 기아차의 미국 시장 판매량은 지난 11월 각각 1만9천2백21대와 1만5천1백82대로 전년 동기보다 39.7%, 37.2%씩 줄어들었다. 현대·기아차의 중소형차 판매 감소율도 19%나 된 것으로 나타났다.

국내는 지난 10월까지만 해도 시장의 위기감이 별로 크지 않았다. 10월 국내 완성차의 내수 판매는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0.3% 감소하는 데 그쳤다. 그러나 11월 들어서는 상황이 급반전해 판매 실적이 지난해 동기 대비 마이너스 27.8%를 기록했다.

“회생시키는 것도 좋지만, 한계점에서는 시장 원리에 맡겨야”

GM대우, 르노삼성차, 쌍용차 등 외국계 자본의 국내 완성차업체들은 11년 전 외환위기 이후 자동차 산업의 구조 조정 과정에서 외국 자본에 넘어간 기업들이다. 이들 업체는 그동안 한국 사회에 일정하게 기여한 부문도 있지만 르노그룹나 SAIC는 인수 자금 외에는 별도로 해당 기업에 투자하지도 않았고, 그래서 글로벌 핵심 기업으로 육성하는 데도 실패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같은 외국계이면서 그동안 GM대우 및 르노삼성차는 쌍용차에 비해 상대적으로 경쟁 우위에 있었다. GM은 GM대우의 낮은 인건비를 활용해 철저하게 글로벌 생산 기지로 이용하는 데 성공했다. GM그룹 전체의 연간 생산 물량 9백60만대 중 GM대우가 차지하는 생산량 비중이 1백80만대(CKD 포함)로 19% 선에 육박하고 있다. 하지만 올해 들어서는 GM 본사의 브랜드 가치 하락으로 주력 수출 부문인 소형차 시장이 타격을 입어 국내 공장이 감산에 들어갔다.

가톨릭대학의 김기찬 교수는 세계 자동차 산업의 재편기를 맞아 현대·기아차가 빅 3와 손잡고 중소형차를 OEM(주문자 상표 부착 생산) 방식으로 공급하는 대안을 제시하고 있으나, OEM 생산의 결과가 어떤지는 GM대우의 예가 잘 드러내준다. 즉, 자기 사업 부문에서 아무리 열심히 해도 본사 브랜드의 경쟁력이 하락할 경우에는 OEM업체도 그 운명을 같이한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준다.

르노삼성차는 SM3를 닛산 브랜드로 OEM 생산을 해왔으나 해외 시장의 수요 감소로 최근 생산량을 감축하고 있다. 르노삼성차는 SM3의 해외 수요 증가를 배경으로 설비 확장을 르노측에 요청해왔으나, 결과적으로 설비 확장을 하지 않은 것이 천만다행인 결과로 나타나고 있다. 르노삼성차는 삼성이 국내 은행에서 대규모로 차입한 돈으로 투자한 설비 및 2010년까지 사용 허가를 받은 삼성 상표를 철저하게 활용했다.

르노는 삼성차 인수 이후 경영 실적 호조로 클린 컴퍼니(금융 기관으로부터 무차입)를 지향했으나 실적 하락으로 최근 차입 경영을 시작했다. 내수·수출 동반 부진을 겪으면서는 본부장급(전무~부사장) 3명을 포함한 관리직에 대해 희망퇴직 신청을 받기 시작했다. GM대우와 르노삼성차의 성장에는 양사에 목을 메고 있는 부품업체들의 희생 또한 컸다.

쌍용차의 대주주인 중국 SAIC그룹은 쌍용차 인수 후 국제적인 사업 경영 능력이 없으면서도 한국인 경영자들을 철저하게 불신한 것이 시장에서의 실패를 불러왔다. 물론 한국측 경영자들의 도덕적 해이도 SAIC측의 의구심을 불러일으켰다. 고유가의 직격탄을 받은 SUV 전문 메이커 쌍용차는 내년에도 깊은 수렁에서 헤어나지 못할 것으로 보인다. 쌍용차 소식통에 따르면 “쌍용차의 난제를 해결하는 유일한 방책은 중국 내 합작법인 설립을 통해 수요를 대폭 확충하는 것이다. 그때까지는 SAIC가 쌍용차의 유동성 해결을 위해 노력할 것이다”라고 언급했다.

자동차시장이 공급 과잉인 점을 감안하면, 국내 완성차업체 수가 너무 많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업계에 정통한 한 관계자는 “현대차그룹이든 외국계 업체이든 국내에 사업장이 있는 완성차 업체들은 직접 고용 면이나 산업 면에서 연관 효과가 크기 때문에 가능한 한 모두 회생시키는 것이 좋다. 그러나 한계점에 이른 것으로 보이는 쌍용차는 적자생존의 시장 원리가 적용되도록 두어야 되고, GM대우는 모기업인 GM의 사업 방향과 같이 갈 수밖에 없다”라고 말했다. 

한편, 현대차의 경쟁력 강화를 위해 현대차와 기아차를 분리하기에는 이미 시기를 놓쳤다는 것이 업계의 일반적인 평가이다. 양사의 구매, 연구·개발 부문 등이 통합되어 있기 때문인데, 2006년 현대차 수뇌진에서는 기아차 분리 작업을 검토했으나 정몽구 회장의 비자금 사건으로 실기했다는 것이 업계의 분석이다.     

 한편, 자동차 산업 개편 때마다 ‘약방의 감초’처럼 삼성그룹 역할론이 등장한다. 이대원 전 삼성자동차 부회장은 자신의 저서 <삼성기업 문화탐구>에서 “경영 책임을 대주주에게 금전적 보상으로 물을 바에는 그 자금을 삼성차의 투자 자금으로 돌려 자동차 사업을 계속 영위하도록 하는 편이 삼성은 물론 국가 경제에도 유리했을 것이다”라고 주장한 바 있다. 또 다른 전직 임원은 “삼성이 자동차 사업을 포기하지 않았다면 채권단과 부채 정산을 둘러싼 다툼도 없었고, 빅 3가 무너지는 세기적인 기회를 잡아 그룹이 자동차 사업을 기반으로 한 차원 다른 단계로 도약할 수 있었다. 삼성그룹은 아직도 어설픈 자동차 사업 포기와 관련해 책임지는 경영진이 없다”라고 비난을 퍼부었다. 이런 부정적인 견해들과 함께 1998년 자동차 사업 퇴출 결정에 따른 채권단과의 퇴출 비용이 정산되지 않았기 때문에 삼성차 역할론은 부적절하다는 논리가 지지를 얻고 있다.

정부의 할부금융 활성화 지원에는 ‘현대차 중심’이라는 비판도

한편, 포스코는 당초 연관 사업(후판) 수요 유지 및 증대를 위해 대우해양조선 인수를 검토했었다. 컨소시엄 구성 업체였던 GS와의 입찰 가격에 따른 이견으로 조선업 진출을 포기한 포스코는 여유 자금으로 철강(냉연강)과 관련 많은 자동차업에 진출할 가능성이 거론되고 있다.  

현대차그룹의 정몽구 회장은 세계 자동차업계 구조 조정 격랑을 뚫고 현대차를 글로벌 업체로 자리 잡게 하고 경영권 승계라는 두 가지 난제를 동시에 해결해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세계적인 불황은 현대차의 경영 리스크로 꼽히고 있는 노조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호기이기도 하다. 절체절명의 위기에 빠진 쌍용차 노조가 비정규직 노조의 구조 조정을 사실상 인정하는 선례를 남김으로써 현대차는 구조 조정의 호기를 맞고 있다. 노동계는 현대차 사측이 세계 경제의 불황을 빌미로 비정규직을 대량 정리해고하고, 정규직을 비정규직 공정에 배치함으로써 현재의 비정규직 작업 물량을 고스란히 정규직이 떠맡도록 하는 방안을 강구할 것으로 보고 있다.

정부는 완성차업계의 가장 큰 문제를 할부금융 부문의 활성화로 보고 이에 대한 지원을 강화하겠다고 밝히고 있으나, 이는 현대차그룹 중심의 지원이라는 비판에 직면하고 있다. 할부금융사에 대한 지원이 외형적으로는 소비자에게 신용도의 범위를 늘려주는 것으로 볼 수 있으나 실제로는 자동차 할부금융 시장 1위 업체인 현대캐피탈의 대주주인 현대차를 지원하는 결과를 낳을 수 있기 때문이다. 당연한 얘기이지만 정부의 지원은 미국 정부의 빅 3에 대한 지원처럼 전제 조건을 달아 자동차업계의 공정한 구조 조정을 유도해야 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일치된 의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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