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가톤급 ‘로비 리스트’ 정대근이 쥐고 있다
  • 감명국·김지영 기자 (kham@sisapress.com)
  • 승인 2008.12.15 2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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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지 단독 입수한 농협 비리 관련 문건에서 정치권 유착·비자금 조성 흔적 엿보여

▲ 2006년 5월12일 정대근 당시 농협중앙회장이 뇌물 수수 혐의로 구속되고 있다. ⓒ연합뉴스

초미의 관심사로 떠올랐던 ‘박연차 리스트’가 ‘잠시’ 뒤로 밀려난 형국이다. 그 자리를 정대근 전 농협 회장으로부터 금품을 받은 것으로 의심되는 인사들의 명단인 이른바 ‘정대근 리스트’가 밀고 들어왔다. 폭발력 면에서도 정대근 리스트가 박연차 리스트보다 훨씬 클 것이라는 관측이 적지 않다. 현재 구속 상태인 정 전 회장이 검찰 수사에 비교적 순순히 협조하고 있어 리스트의 신빙성을 더해준다. 검찰에서 이미 내용을 확보한 상태에서 일부 계좌 추적 작업에 들어갔다는 얘기도 전해진다.

검찰은 현재 정 전 회장의 로비 규모에 대해 세종증권 인수 대가로 받은 50억원을 포함해 약 100억원 정도로 보고 있지만 실제 농협 주변의 관계자들은 그 규모에 대해 수백억 원이 훨씬 넘을 것이라고 입을 모으고 있다. 각 지역 농협 본부장의 관행적인 상납 고리와 자회사 및 용역 회사를 동원한 비자금 조성 등의 수법에 대한 제보가 끊이지 않고 있다. <시사저널>은 농협 관계자의 제보로 2004~07년 사이의 농협 내부 비리와 관련된 여러 내부 문건들의 상당 부분을 단독으로 입수했다. 

여야 인사와 사법부까지 포함돼 폭발력 클 듯

정 전 회장이 자신의 구명 로비를 위해 가장 활발한 활동을 펼친 시기는 2006년 8월부터 이듬해 7월까지 약 1년간이다. 그는 농협 소유의 양재동 하나로마트 부지 2백58평을 현대자동차에 66억2천만원에 매각하는 대가로 3억원을 수뢰한 혐의로 2006년 5월 구속 기소되었다가, 8월에 병보석으로 풀려나왔다. 그리고 2007년 7월 다시 2심에서 법정 구속을 당하기 전까지 그는 정치권에 상당한 돈을 뿌린 것으로 알려졌다. 자신의 핵심 측근인 남경우 전 농협사료 대표와 최측근 김 아무개씨 등을 비롯한 간부들도 총동원되었다는 전언이다. 특히 남 전 대표가 정 전 회장 구명 로비에 핵심적인 역할을 담당했다는 얘기가 나오고 있다. 한 소식통은 “정 전 회장이 병보석으로 풀려나 다시 구속되기 전까지 1년 동안 여의도에 사무실을 마련했다. 당시 남 전 대표가 수시로 이 사무실을 드나들며 정 전 회장과 함께 구명 로비 전략을 짰고, 실제로도 로비 활동을 벌였던 것으로 알고 있다”라고 말했다.

그렇다면 정 전 회장이 거액의 불법 자금을 누구에게 얼마나 뿌렸느냐가 핵심 의문이다. 리스트에 관심이 쏠리는 것도 이 때문이다. 정 전 회장은 세종증권 인수 대가로 받은 50억원에 대해 “내 돈이 아니다. 내가 사용한 것이 아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과 가까운 사람들한테 갔다”라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같은 진술이 사실이라면, 노무현 정권의 핵심 실세들에게 불법 정치자금이 전달되었다는 것이다. 박연차 회장이 여야를 가리지 않고 전방위적으로 돈을 뿌린 것과는 달리 정 전 회장의 로비 대상은 구 여권에 집중되었다는 얘기이다.

하지만 실제 정 전 회장 역시 구 여권에만 그치지 않고 당시 야권(한나라당)에까지 그 범위가 넓혀진 것으로 알려졌다. 농협의 한 노조 관계자는 “정 전 회장의 경우 자신의 두 번째 회장 임기가 종료되는 시점인 2008년 4월 총선에 출마할 것이라는 얘기가 무성했고, 열린우리당보다는 오히려 한나라당 비례대표로 나올 것이라는 얘기가 더 많았다”라고 전했다. 자신의 지역 기반이 경남 밀양인 점을 감안해볼 때, 그 역시 박회장과 마찬가지로 친한나라당 성향에 더 가까웠다는 증언이 나오고 있는 것이다.

이와 함께 농협 내부 사정에 정통한 소식통은 “정 전 회장은 호남 지역 출신인 ㄱ의원, ㅅ의원 등과 상당히 절친했을 뿐만 아니라 영남의 ㄱ의원과도 상당히 가까웠다”라고 말했다. 호남 출신은 열린우리당, 영남 출신은 한나라당 소속의 전·현직 의원들이다.

정 전 회장과 정치권의 결탁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은 본지가 입수한 내부 자료에서도 발견된다. 2007년 1월2일 농협 홈페이지 게시판에 올랐다가 곧바로 삭제된 농협중앙회 노조의 성명서도 그중 하나이다. 여기에는 정 전 회장이 자신의 구명을 위해 정치권에 얼마나 많이 의지했는지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당시 정 전 회장은 병보석으로 풀려난 이후 농협중앙회의 연말 내부 인사를 단행하는 등 사실상 회장으로서의 직무를 수행했다. 이에 대해 크게 반발했던 노조는 “노동조합에서 끝내 유보해왔던 ‘회장 퇴진’이라는 극단의 카드를 꺼내 들었음에도 회장은 인사를 강행했다. 그만큼 ‘회장도 어찌할 수 없는 인사가 있다’라는 소문이 사실로 드러나는 방증이다. 인사 며칠 전부터 정치권 중진인 ㄱ·○ 씨 그리고 실세인 ○국회의원이 밀고 있다고 떠돌던 인사들이 실제 지역본부장과 상무대우로 임명되었다. 이는 회장 구속 이후 그리고 선고 공판을 10여 일 앞둔 상황에서 청와대 국회·법원·검찰 등에 영향력을 행사해준 정치인들의 청탁을, 지푸라기라도 잡을 회장이 어찌 거부할 수가 있었겠는가? 이와 같이 인사권자인 전무·대표이사도, 수장인 회장도 넘어 국회의원이 좌우하는 복마전과 같은 인사 구조가 바로 우리 조직의 서글픈 자화상인 것이다”라고 밝힌 바 있다.

일각에는 정 전 회장의 로비가 정치권을 넘어 검찰과 법원에까지 미친 것이 아닌가 하고 의심하는 눈초리도 있다. 정 전 회장이 병보석으로 풀려난 것과 2007년 2월 1심에서 ‘농협 임직원을 공무원으로 볼 수 없다’라는 논지로 무죄를 선고받은 것 등을 두고 당시에도 검찰은 물론 법조계에서 상당한 논란이 뒤따랐다.

“비리 인사가 아직도 고위직이라 수사 부진”

검찰의 수사에 대해서도 의혹의 눈초리를 보내는 농협 관계자들이 적지 않다. 농협 내부 비리를 알려온 한 제보자는 “지난 정부에서 검찰이 농협 내부 비리에 대한 구체적인 자료와 정황을 모두 확보해놓고도 사실상 수사를 하지 않았다. 일부 농협 고위 관계자의 경우 수사 직계 라인에 있던 검찰 고위 인사와 상당한 친분을 과시하기도 했고, 또 동문 관계가 밝혀지기도 했다. 그런 인사가 지금의 검찰에서도 수사를 책임질 만한 상당한 고위직에 있어 현 정부에서도 처음에 농협 비리 수사가 제대로 진행되지 않고 있다는 의견이 많았다. 또 아직도 여러 비리 가운데 일부 밝혀지지 않고 있는 것도 있다”라고 밝혔다. 

실제 이를 뒷받침할 만한 구체적인 사례는 내부 문건에서 많이 나온다. 특히 2006년 2월 불거진 농협중앙회교류센터 비자금 사건은 사실상 농협 비리의 첫 물꼬였지만 이 사건과 관련된 의혹은 지금도 명쾌하게 밝혀지지 않고 있다. 농협의 거액 비자금 저수지로 의심받고 있는 한 자회사에 대한 수사 역시 검찰은 애써 “수사 대상이 아니다”라며 외면하고 있다.

‘정대근 리스트’ 뇌관의 폭발력이 엄청날 것이라는 근거는 농협의 거대한 비리 구조와 연결된다. ‘판도라 상자’의 뚜껑이 ‘제대로’ 열리는 순간, 여야 정치권뿐만 아니라 관계, 심지어 사정당국과 법조계에까지 큰 파장을 불러일으킬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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