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땅에 ‘양심의 소리’를 울리고 싶었다
  • 박권상 전 <시사저널> 편집인 겸 주필 (sisa@sisapress.com)
  • 승인 2008.12.15 2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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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저널> 창간은 ‘참언론의 역사적인 창조’… 의견 아닌 사실 전달에 충실한 매체 지향

▲ 박권상 전 편집인 겸 주필

오랜 세월이 흘렀다. 20년 전 가혹한 투쟁의 결과로 6·29를 쟁취했고 민주화의 길이 열렸다. 그보다 7년 전 1980년 8월9일, 나는 전두환 정권의 폭거에 밀려 28년간 몸담았던 언론계를 떠났었다. 세상이 달라졌으니 쫓겨났던 옛 신문사, 옛 자리에 돌아가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었다.

그러나 세상 일이란 그렇듯 순탄하지 않았다. 7년이라는 긴 세월이 사정을 바꿔놓고 일을 몹시 꼬이게 했다. 그래서 구차스럽게 옛 자리에 연연할 처지가 아님을 깨닫고 설사 복직이 된다 한들 내가 꿈꾸고 믿었던 언론 철학을 실천할 수 있을 것 같지도 않았다. 나는 얼마 남지 않은 나의 인생을 좀더 보람 있게, 좀더 가치 있게 살고 싶었다.

좀더 보람 있고, 좀더 가치 있는 언론 철학이란 무엇인가. 내가 좋아하는 외국의 권위지 가운데 영국에서 나오는 가디언이라는 신문이 있다. 영국은 신사의 땅이지만 지저분한 선정·선동지가 수백만 부씩 팔린다. 그러나 영국의 민주주의를 지탱하는 것은 그런 지저분한 대중지가 아니다. 뚜렷한 두 개의 일간지가 있는데, 하나는 ‘신의 목소리’라고 불리는 더타임스이고, 또 하나는 ‘양심의 소리’라고 불리는 가디언이다. 전자는 보수 성향이고 후자는 진보적인 빛깔이라는 차이가 있다. 그러나 만인이 믿고 따르고 존경하는 진정한 언론이라는 데에서는 빛깔 차이는 의미가 없다. 신이냐 양심이냐, 모두 소중했지만 나는 어느 쪽이냐 하면 양심 쪽을 선호했다.

그 가디언을 양심의 소리로 키운 찰스 스카트라는 언론인이 후세에 남긴 어록이 있다. “신문에서 가장 중요한 일은 뉴스를 작성·보도하는 것이다. 그리고 뉴스를 그릇된 길로 타락시키지 않게 심혈을 기울여 뉴스의 순수성을 지키는 것이다. 왜냐하면 의견은 자유롭지만 사실(fact)은 신성하기 때문이다.”

가디언 편집인 찰스 스카트의 교훈적 어록

그는 명문 옥스퍼드 대학을 나온 후 가디언에 입사해 1년 만에 편집인 겸 주필이 된 천재이다. 그리고 장장 59년간 같은 자리에서 가디언을 양심의 소리로 만들었다. 그의 근본 철학은 뉴스의 순수성에 있었다. 뉴스의 정직성, 뉴스의 공정성, 뉴스의 진실성에 충성을 다해 격조 높은 양심의 소리로 승화시켰다. 뉴스만 완전하고 정직하면 의견은 절로 뒤따른다는 확신이었다. 실제로 당시 영국의 기라성 같은 지성들이 구름처럼 그를 따랐다. 계관시인 존 메이스필드, 경제학의 대가 존 케인즈, 역사학도 아놀드 토인비 등 당대의 석학들이 구름처럼 모여들어 양심의 소리를 높였다. 가령 아일랜드의 독립이라든가, 식민지 청산에 목청을 높였다. 사실은 신성하다는 언론의 본질을 입증한 것이다. 예컨대 1956년 영국·프랑스·이스라엘이 이집트를 급습해 스웨즈 운하를 점령했을 때 가디언은 불붙은 영국 여론을 정면으로 거부하고 침략군이 철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일시적으로 비난을 받아야 했으나 역사는 가디언의 편이었다.

사실을 사실 그대로 정직하게 그리고 포괄적으로 전달한다면 독자는 사실에 입각해 올바르게 판단하기 마련이고 그 판단이 곧 대의 정치에 반영되기 마련이다. 여기서 제일 큰 걸림돌은 국가적 권력의 용훼요, 상업주의 권력의 억압이다. 무엇보다 부정·부패에서 완전히 독립하는 것이다.

6·29 후 나는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 다시 기회가 눈앞에 아른거렸다. 가능한 대로 이 땅에 양심의 소리를 제도화하는 것이다. 그래서 택한 것이 <시사저널>의 창업이었다. 일간 신문이나 방송에서도 가능한 일이었으나 나의 현실로서는 불가능했다. 엄청난 자본이 소요되기 때문이다. 어떠한 한 사실을 횡적으로, 종적으로, 포괄적으로 초연한 입장에서 파악하려면 시간 단위, 날짜 단위로 접근한다는 것은 시간적인 제약으로 완성도가 떨어진다. 1988년 봄, 뜻을 같이하는 자본가 최원영 선생을 만나 2년 가까운 준비 기간을 거쳐 1989년 10월29일 <시사저널> 제1호가 발간되었다. 창간호 목차에 굵은 활자로 ‘시사저널은 사실과 진실의 등불을 밝히고 이해와 화합의 광장을 넓히며 자유와 책임의 참언론을 구현합니다’라는 발행인 최원영씨의 짧은 창간사가 눈에 띄었고, 나는 80쪽에 달하는 잡지 말미에 쓴 칼럼에서 고대 그리스의 철인 디오게네스가 대낮에 등불을 들고 햇빛(진실)을 추구한 에피소드를 소개했다. 한낮 주간 잡지였는데도 창간 때부터 올바른 생각을 가진 인재들이 모여들었다. 마음과 뜻을 같이하여 순수한 뉴스를 작성·보도하는 데 힘을 쏟았다. 출신 배경이 모두 다름에도 불구하고 놀라울 정도로 화해·협력을 시범했다. 독자의 반응은 가히 폭발적이었다. 1년 만에 10만5천부가 팔리는 승전보였다. 세계적인 명성을 가진 빌리 브란트 전 독일 총리, 자크 시라크 전 프랑스 대통령, 세계적인 물리학자인 스티븐 호킹 박사 등이 <시사저널>을 위해서 한국을 찾았다.

지금 생각해도 감격스러운 참언론의 역사적인 창조, 그것이 곧 <시사저널>의 출범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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