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따뜻한 시선 탄탄한 스토리로 네티즌을 녹이다
  • 안성모 (asm@sisapress.com)
  • 승인 2008.12.15 2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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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 만화가 강풀, 대중문화 전반에 영향력

▲ 강풀 ㅣ 온라인 만화가 1세대로 ‘칸 없는 만화’의 국내 창시자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매 작품이 연극·영화·드라마로 재탄생하는 등 대중문화 전반에 걸쳐 활동 영역을 넓혔다. ⓒ그림 최익견

만화가 강풀(34·본명 강도영)의 활약상은 말 그대로 눈부시다. 젊은 층으로부터 폭발적인 인기를 얻고 있는 강풀은 그동안 만화계를 넘어 대중문화계 전반으로 활동 영역을 넓혀나갔다. 2003년 인터넷을 뜨겁게 달구었던 <순정만화>는 책으로 출간되더니 2005년 10월 연극 무대에 처음 올라 4년째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또, 올해 들어 <그대를 사랑합니다> <바보> 등 두 편의 연극이 새롭게 무대에 올라 관객과 호흡을 같이하고 있다.

강풀 작품이 인터넷을 빠져나와 스크린에서 재탄생하는 경우는 이제 일반화되었다. 2006년 고소영 주연의 <아파트>를 시작으로, 2008년 차태현·하지원 주연의 <바보>가 이미 관객을 만났고, 유지태·채정안 주연의 <순정만화>가 현재 상영 중에 있다. 그 밖에 <타이밍> <이웃사람>도 영화화가 예정되어 있고, 5·18 광주민주항쟁을 다룬 <26년>도 제작 직전 단계이다. 안방 극장에도 곧 진출한다. 윤손하 주연 드라마 <그대를 사랑합니다>가 2009년 3월 전파를 탈 예정이다.

강풀 만화가 이렇게 연극·영화·드라마 등 대중문화 전반에서 맹활약을 하는 것은 인간에 대한 따뜻한 시선이 탄탄한 스토리 속에 녹아 있기 때문이다. 스릴러와 멜로물을 번갈아가며 내놓고 있는 그의 작품 전반에 흐르는 감정은 현대인의 아픔인 ‘소외’와 이를 극복하게 만드는 ‘사랑’이다. 그래서 강풀 작품은 때로는 쓸쓸하지만 항상 따뜻하다.

스토리의 탄탄함은 이러한 주제의식을 뒷받침하기에 충분하다. 그는 작품을 시작하기에 앞서 먼저 전체 스토리를 정리하고 나서야 펜을 들기로 유명하다. 지난 12월3일 한국문화콘텐츠진흥원의 대담 프로그램 <아트샤워>에 출연한 그는 “아내가 재미있다고 할 때까지 스토리를 바꾼다”라고 밝혔다.

원작의 인기를 타고 성공적인 무대를 올리고 있는 연극과 달리 영화로 제작된 두 편의 작품은 흥행에서 실패했다. 등장인물끼리 얽히고설킨 사연을 2시간짜리 카메라에 담기에 버겁기 때문일까. 강풀은 “많은 사람들이 이미 봤기 때문에 홍보에는 도움이 될지 몰라도 시나리오 작가들은 ‘원작과의 비교’라는 독자의 눈에 부담을 느낀다. 독자가 많다는 것이 영화를 제작하는 과정에서는 ‘양날의 검’이 될 수 있다”라고 설명했다.

인터넷 공간에 ‘제2의 강풀’ 꿈꾸는 후배들 ‘와글와글’

세 번째 영화 <순정만화>는 직접 카메오로 출연하는 등 이전 영화보다 더 애착을 보였다. 강풀은 포털 사이트 다음에 올린 영화 리뷰에서 “내 만화의 주인공들이 다른 장소에서 우연히 만나 다시 사랑을 시작하는 것 같았다”라며 원작자로서 만족감을 드러냈다. 앞선 두 영화에 대해서는 “하나는 너무 달랐었고, 하나는 너무 닮았었다”라며 아쉬움을 표현했다.

온라인 만화가 1세대로서 ‘칸 없는 만화’의 국내 창시자라는 평가도 받고 있다. 기존 만화가 가졌던 형식의 틀을 벗어난 강풀 작품은 인터넷 만화의 새로운 형식으로 자리 잡았다. 컴퓨터 마우스가 상하 공간으로 움직이기 편하다는 점을 착안해 길게 펼쳐지는 만화를 그린 것이 주효했다. 그는 “만화 그리는 것을 배운 적이 없어 칸 만화 연출법을 몰랐던 것이 가장 큰 이유이다. 그래서 더욱 스토리에 매진하자고 다짐했다”라고 밝혔다.

유명세를 타면서 책임감도 그만큼 커졌다. ‘공짜 만화’라는 인식이 확산된 데 대해 그는 “만화가로서 가장 가슴 아픈 부분이며 일정 부분 책임을 통감한다”라고 말했다. 그렇지만 “인터넷이라는 환경의 변화를 거스를 수 없다면 만화가들 역시 그러한 추세에 맞출 필요가 있다”라고 밝혔다. 독자들이 소장본을 꼭 사게 만들겠다는 포부도 변함없다.

현재 인터넷 공간에는 제2, 제3의 강풀을 꿈꾸는 후배 만화가와 지망생이 즐비하다. 그는 “만화를 배운 적도 없는 나 같은 사람도 성공했다. 100번의 습작보다는 한 번의 실전을 위해 당당하게 자신의 작품을 내보이기를 바란다”라고 조언했다. 대학에서 국문학을 전공한 강풀은 현재 상지대 문화콘텐츠학과 초빙교수로 있다.

만화계 차세대 리더로는 강풀 이외에도 여럿이 있다. 1969년생 동갑내기인 강도하(본명 강성수)와 윤태호가 어깨를 나란히 했다. 강도하는 1987년 보물섬 신인만화가상으로 데뷔한 20년 경력의 베테랑 작가이다. 인터넷을 통해 연재된 <위대한 캣츠비>는 폭발적인 인기에 힘입어 2005년 단행본으로 출간되었다. 그해 한국문화콘텐츠진흥원 대한민국 만화대상을 수상한 그는 현재 만화 웹진 대표로도 활약 중이다.

윤태호도 1988년 어린 나이에 만화계에 입문했다. 젊은 작가들에게 있어 선망의 대상인 허영만·조운학 문하에서 만화를 배웠다. 1993년 잡지 <점프>에 <비상착륙>을 연재하면서 본격적으로 작품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수상한 아이들>을 발표한 1999년 문화관광부 오늘의 우리 만화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첫 작품 <누들누드>로 만화계에 신선한 충격을 가져온 양영순(37)도 국내 만화가 중 가장 영향력 있는 차세대 리더로 꼽혔다. 에로물을 코믹하게 표현한 그의 작품은 예전에 볼 수 없던 독창성으로 많은 독자의 사랑을 받았다. 카메라로 찍은 듯 다양하고 독특하게 구성된 컷 구도를 선보인 작품은 이후 애니메이션으로도 제작되었다. 2002년 출판만화대상 인기상, 2006년 대한민국 만화대상 등을 수상하면서 한국 만화계를 이끌 차세대 주자로 각광받았다.

2004년 현실 세계에 살게 된 어른 공룡 둘리의 이야기를 담은 <공룡 둘리에 대한 슬픈 오마주>로 화제를 모았던 최규석(31)도 이름을 올렸다. 데뷔 당시부터 덧칠한 밀도 높은 그림과 함께 유머와 위트와 페이소스가 버무려진 독특한 내용으로 주목받았다. 2002년 동아 LG 국제만화페스티벌 극화부문 대상, 2003년 21세기를 이끌 우수인재 대통령상을 수상하며 일찌감치 만화계 새로운 리더로서 재능을 인정받았다.

조회 수 1천만회 기록한 <삼봉이발소>의 하일권도 ‘젊은 피’

1980년대 생인 하일권(27)과 조석(25)은 새롭게 떠오른 신예 중 가장 활발하게 활동 중인 작가이다. 조회 수 1천만회를 기록하며 최고의 화제작 중 하나가 된 <삼봉이발소>의 하일권은 이 작품으로 2008년 한국 만화대상 신인상을 수상하는 등 ‘만화계의 젊은 피’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엽기적인 그림체로 소심한 일상을 솔직담백하게 그려낸 <마음의 소리>의 조석은 독특한 캐릭터와 그만의 개그 언어로 주목받고 있다.

양경일(38)은 신화와 전설을 차용해서 작품의 스토리를 연결해내는 고전 판타지 분야를 새롭게 개척한 작가이다. 1993년 <소마신화전기>로 데뷔한 그는 <신암행어사>를 일본 대형 출판사를 통해 연재했다. 이는 애니메이션으로도 제작되어 2004년 한·일 양 국가에서 동시에 개봉되기도 했다. 일본 만화와 비교해 전혀 뒤지지 않는다는 평가를 받았다.

40대 작가 그룹에서는 원수연(47)과 김진(48)이 후배 작가들을 이끌어갈 리더로서 주목을 받았다. 1987년 <그림자를 등진 오후>로 데뷔한 원수연은 인기 드라마 <풀하우스>의 원작자로 유명하다. 동료 작가인 강도하의 아내이기도 하다. 현재 방송 중인 드라마 <바람의 나라>의 원작자인 김진은 한국만화가협회 부회장을 맡고 있으며, 명지대 사회교육원 만화창작학과 전임강사로도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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