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어둠 속에도 ‘보석’은 빛났다
  • 반도헌 (bani001@sisapress.com)
  • 승인 2008.12.23 0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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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반적 침체 속 <추격자> 등 의미 있는 성공…<맘마미아> <테이큰>도 의외의 수확

▲ 12월18일 오후 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평일에 종로의 한극장을 찾은 관객들이 영화를 고르기 위해 포스터를 바라보고 있다. ⓒ시사저널 임영무

2008년의 한국 영화계는 어려운 경제 상황만큼이나 암울했다. 기대작들은 연거푸 흥행에서 쓴맛을 보았고, 흥행작들도 막대한 예산을 퍼부은 것에 비하면 만족할 만한 수준이 아니었다. 천만 관객은커녕 최고 흥행작인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이하 놈놈놈)>마저 7백만 관객을 넘어서지 못했다. 영화진흥위원회가 집계한 올 1월부터 11월까지 전국 관객 수 기준 한국 영화 점유율은 41.6%에 머물렀다.

그렇다고 암울한 일들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11월27일 <초감각 커플>이 개봉하면서 3년 연속 한국 영화 개봉 편수 100편을 기록했고, <추격자>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 등 의외의 흥행작이 등장했으며 <영화는 영화다> <미쓰 홍당무> 등은 저예산 상업영화의 성공 가능성을 열어놓았다.

한국 영화와 외국 영화를 굳이 가릴 필요가 없는 관객의 입장에서도 그리 나쁜 한 해는 아니었다. <쿵푸팬더> <아이언맨> <인디아나 존스4> <미이라3>, <다크 나이트> 등 전세계의 여름을 강타한 할리우드 블록버스터를 만날 수 있었고, <맘마미아> <테이큰> 등 의외의 수확도 얻을 수 있었다. 흥행 대작들 사이에서 <렛미인> <구구는 고양이다> <아임 낫 데어> <우린 액션배우다> 같은 새롭고 완성도 있는 다양한 영화들을 접할 수 있는 기회도 있었다.

그렇다면 2008년 최고의 영화는 무엇일까?

▲ 관객과 평단의 고른 지지를 받은 .

사실 최고의 영화를 꼽는 데 대중의 선택과 평론가의 선택이 서로 다른 경우가 많이 있다. 영화를 보는 마음가짐과 시선에서 차이가 날 수 있기 때문이다. 둘 중 어느 한쪽이 옳다고 단언할 수는 없기에 대중과 평론가의 선택을 모두 존중할 필요가 있다.

대중의 선택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은 흥행 성적이다. 흥행 성적으로 본 올 한 해 최고의 영화는 6백70만명의 관객을 동원한 <놈놈놈>이다. <놈놈놈>은 정우성·이병헌·송강호라는 한국 영화계를 대표하는 남자 배우 3인이 모두 등장하는 데다, 2백억원이라는 제작비를 들인 2008년 최고의 기대주였다. 영화가 개봉하자 재미와 작품의 완성도에 대한 찬반 양론이 인터넷을 뜨겁게 달구었고, 결과적으로 1천만 관객을 달성하는 데는 실패했다. <놈놈놈>이 최고의 흥행을 했지만 진정한 승자는 <추격자>라고 할 수 있다.

<추격자>는 평단과 관객에게 모두 호평을 받으며 상반기 침체된 영화시장에 불을 붙였다. 전국 5백만 관객을 넘어섰으며 각종 영화상 시상식에서 나홍진 감독과 하정우·김윤석 두 배우를 수상대로 불러올렸다.

외국 영화 <테이큰>도 또 다른 승자이다. 프랑스에 이어 두 번째로 개봉한 한국에서 <테이큰>은 2백40만 관객을 동원하며 입소문의 무서움을 확인해주었다.

<테이큰>의 성공 원인으로 단순한 이야기를 빠른 스피드의 편집으로 옹골차게 밀고 나가는 작품의 힘과 다른 나라에 비해 빠른 개봉으로 불법 다운로드의 피해에서 자유로웠다는 점도 들 수 있다.

관객들의 선택이 이렇다면 평단의 선택은 어땠을까. <시사저널>은 김봉석·김종철·이동진·이용철·황진미 등 영화평론가 5명으로부터 2008년 최고의 한국 영화와 외국 영화를 각각 5편씩 선정받았다. 결과적으로 이들의 리스트에서 흥행작은 <추격자>와 <다크 나이트> 정도뿐이었다.

평론가들의 호평 받은 <나의 친구, 그의 아내> 영화평론가가 선택한 영화를 어렵고 딱딱한 영화로 치부하는 관객들도 있다. 하지만 이들의 선택이 즐겁게 시간 보내는 것이 전부인 팝콘 무비에 지쳐 있는 사람들에게는 생각할 거리를 던져주거나 의미 있는 작품을 찾아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것만은 분명하다. 이들의 선택지에 올려 있는 영화 중에서 놓친 작품이 있다면 여유가 있을 때 챙겨보기를 권한다.

5명의 평론가들로부터 가장 좋은 평가를 받은 한국 영화는 <나의 친구, 그의 아내>이다. 단편으로 주목을 받았던 신동일 감독의 두 번째 연출작으로 2006년 완성 후 어렵게 개봉했지만 관객으로부터는 외면받았던 작품이다. 경제력과 사회적 지위가 다르지만 절친한 우정을 과시했던 두 남자가 한 남자의 아이를 실수로 죽음에 이르게 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다루고 있는 영화이다. 두 남자와 한 여자, 세 사람 간의 심리와 계급적 갈등을 치정극 안에 녹여놓았다.

그 다음으로는 관객과 평단 모두 엄지손가락을 치켜든 <추격자>와 전도연·하정우라는 두 연기파 배우가 수준 높은 연기 밸런스를 보여준 <멋진 하루>가 꼽혔다. <멋진 하루>는 두 배우의 이름값을 증명하며 일정 수의 개봉관을 확보했지만 흥행에서는 참패했다.

이밖에 주목할 만한 작품으로 <우린 액션배우다>와 <사과>가 있다. <우린 액션배우다>는 무대 뒤 인생, 스턴트맨들의 삶을 카메라에 담은 다큐멘터리이다. 다큐멘터리이지만 전주국제영화제 최고인기상을 받았을 정도로 흥미적인 요소도 뛰어나다. 서울액션스쿨 출신의 정병길 감독이 동기생들의 삶을 때론 유쾌하고 때론 진솔하게 그려냈다. <사과>는 어렵지 않으면서도 연애와 결혼에 대해 차분하게 생각할 거리를 던져주는 사랑 이야기이다.

외국 영화 중에는 <다크 나이트>가 첫손에 꼽혔다. <다크 나이트>는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와 <데어 윌 비 블러드>에 비해 1위 표는 적었지만 모든 평론가로부터 선택을 받았다. <다크 나이트>는 히어로 장르 영화의 완성형이라는 극찬을 받으며 전세계 극장가를 석권하다시피 했다. 할리우드의 대표적인 작가주의 천재 감독 두 명의 작품도 좋은 평가를 받았다. 코엔 형제의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와 폴 토마스 앤더슨의 <데어 윌 비 블러드>가 그것이다. 코맥 맥카시의 동명 소설과 업튼 싱클레어의 소설 <Oil>을 각각 영화화한 두 작품은 훌륭한 각색과 천재 감독의 연출에 하비에르 바르뎀, 토미 리 존스, 다니엘 데이 루이스의 명연기까지 더해져 인상적인 영화로 탄생했다.

외국 영화 중에서 주목할 또 다른 작품은 <렛미인>이다. <렛미인>은 낮은 순위이기는 하지만 모든 평론가로부터 올해의 베스트 영화라는 평가를 받았다. 다양성 영화관을 중심으로 작은 영화 돌풍을 일으키고 있는 <렛미인>은 뱀파이어 장르에 북유럽의 신비주의와 동심의 순수함을 더해 평단뿐만 아니라 관객들로부터도 좋은 평가를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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