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새로운 이야기’에 주목했다
  • 조철 (2001jch@sisapress.com)
  • 승인 2008.12.23 0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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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스트셀러 1위는 ‘또’ <시크릿>…국내 문학 부활하고 경제·경영서는 침체

연말연시를 맞아 내놓은 각 서점의 판매 집계를 보면 올 한 해 베스트셀러 1위에는 <시크릿>이 올라 있다. 이 책은 지난해에도 1위를 차지해 지난해 출판의 흐름 중에 재테크와 자기계발 분야가 강세였음을 대변하기도 했다. 비록 이 책이 올해에도 판매 1위를 기록하기는 했지만 출판의 흐름은 지난해와 사뭇 다르다는 것을, 예스24·인터파크·교보문고의 ‘2008년 결산’에서 엿볼 수 있다. 지난해에는 재테크나 자기계발 분야에서 출간 붐을 이루었지만, 올해에는 출간 종수가 대폭 줄어들어 ‘심각한 침체’로까지 비치기도 했다. 그런데도 각 서점 종합 베스트셀러 10위권 안에 자기계발서가 3종 이상 올라 있다. 반면, 100위권 안에 인문 서적이 한 권도 없고, 구간 서적들이 대거 약진해 순위에 올라 있다. 이는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

이외수·황석영·공지영 등이 활기 띄워

▲ 한 서점에서 ‘올해의 책’으로 선정한 책들. ⓒ시사저널 임영무

올해는 출판사들도 경영 악화로 문을 닫거나 구조 조정을 하는 등 출판계 불황의 골이 더욱 깊어진 한 해였다. 유가 상승으로 인해 종이 값이 크게 오른 것도 출판계를 위축시키는 요인이 되었다. 독자들의 소극적인 구매에 대응해 신간 출시를 미루거나 포기하는 경우도 많았다. 서점에서도 신간 매출 비중이 줄고 구간 매출 비중이 크게 늘었다. 인터파크도서의 경우 지난해 6 대 4 정도로 신간 매출 비중이 우세했으나 올해에는 5 대 5 정도로 집계되었다. 예스24 송은주 도서2팀장은 유아 분야에서 스테디셀러들이 그 어느 해보다 막강한 힘을 발휘했다고 전하며 “불경기로 신간보다는 내용이 검증된 스테디셀러의 판매가 두드러졌다. 특히 스테디셀러의 경우 할인 폭이 훨씬 크다는 점도 한몫했다”라고 말했다.

길을 잃고 헤맸더라도 올해 출판계에 두드러진 특징은 있다. 우선, 국내 문학의 부활을 들 수 있다. 지난해 김훈 소설 <남한산성>이 침체되어 있던 문학 분야에 활기를 띄우더니 올해 황석영 소설 <개밥바라기별>이 ‘대박’의 뒤를 이었다. 공지영 산문집 <네가 어떤 삶을 살든 나는 너를 응원할 것이다>도 큰 인기를 모았다. 이외수 산문집 <하악하악>도 빼놓을 수 없는 ‘인기 톱 10’이다. 최근 나온 신경숙 소설 <엄마를 부탁해>도 주간 베스트셀러 순위에 빠지지 않고 있어, ‘문학의 위기’를 말해왔던 지난 몇 년간의 논의를 무색하게 만들었다. 잘 알려진 기성 작가들이 인터넷 연재와 방송 출연 등에 적극적으로 임한 것도 특징이다. 이외수·황석영 씨의 경우 <무릎 팍 도사>라는 프로그램에 출연해 책 홍보 효과를 거두기도 했다.

해외 문학 분야에서는 프랑스 작가 기욤 뮈소가 두각을 드러냈다. <사랑하기 때문에>가 폭발적인 인기를 끌면서 이전에 출간된 <구해줘> 등까지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미국발 금융 위기로 주식·부동산 등 재테크 관련서의 인기는 급속히 추락하고 있다. 이 자리를 경제 위기와 관련한 경제 현상 분석서들이 메우고 있는 것도 눈길을 끈다. 그중에서 미국식 금융자본주의와 신자유주의를 비판한 장하준 교수의 <나쁜 사마리아인들>이 주목을 받았다. 우화형 자기계발서도 신간에서는 찾아보기 힘들고 대신 실제 겪은 이야기를 토대로 쓴 성공 에세이 <육일 약국 갑시다> <10미터만 더 뛰어봐> 등에 독자들이 몰렸다.

이례적으로 영어책이 베스트셀러에 오른 ‘사건’도 있었다.  1945년 출간된 <잉글리시 리스타트>는 40여 개국에서 베스트셀러로 자리 잡았다고 하니 한국에서는 뒤늦게 ‘발견’한 셈이다. 이 책은 서문에서 ‘성경 다음으로 가장 많이 팔린 책’이라고 자부하고 있다.

‘촛불’ ‘오바마’ 관련서 출간도 끊이지 않아

▲ 광화문 서점의 베스트셀러 코너. ⓒ시사저널 임영무

국내 인터넷서점 예스24와 인터파크도서는 올해 출판계의 동향을 분석하면서 공통적으로 ‘미국과 촛불’을 크게 다루기도 했다. 예스24는 “2008년 한국인의 도서 테마는 미국에서 왔다. 한·미 FTA, 특히 미국산 쇠고기 수입 문제로 여름이 뜨거웠고, 광화문에 촛불이 뜸해질 즈음, 미국의 경제 위기를 우려하는 목소리들과 ‘서브프라임 모기지론’이라는 생소한 단어가 신문을 덮기 시작했다. 뿐만 아니라 연말에는 오바마의 당선 과정이 관심을 끌었다”라고 정리했다.

인터파크도서는 “2008년 정치·사회 키워드의 하나는 촛불이었다. 광우병 파동으로 인한 촛불 시위는 일시적으로 도서 판매를 급감시켰지만, 관련 도서는 큰 반응을 얻었다”라고 분석했다. 

원래 ‘대박’ 같은 것은 염두에 두지 않아 한갓져 보이는 인문 서적 분야 책들은 한 서평 전문지가 조사한 ‘올해의 책’ 10권 중에 1종도 올리지 못하는 불명예를 겪고 있다. 물론 미디어의 출판 담당들은 책 소개에 여념이 없지만….

인문·과학 서적 전문 출판사 휴머니스트의 김학원 대표는 “출판 흐름은 신간과 구간의 흐름과 함께 그 이면에 채워지지 않는 독자들의 불만과 갈증을 함께 읽어야 책을 통한 동시대인의 사회 문화적인 요구와 방향을 파악할 수 있다. 올해 특징 중 하나는 한국의 독자들이 역량 있는 동시대의 국내외 작가들의 소설에 연이어 주목했다는 사실이다. 인문적 배경에 기초한 교양서 발간에 주력하는 나로서는 이러한 독자들의 ‘새로운 이야기’에 대한 주목을 어떻게 지식의 영역과 접목할 것인가에 관심이 간다. 단순히 쉽고 흥미로운 지식을 엮기보다 그 지식을 접하는 새로운 오감을 개발하는 것이 과제이다”라며 내년을 기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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