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수근 화백이 ‘진위’ 가려야 하나
  • 이재언 (미술평론가) ()
  • 승인 2008.12.23 02: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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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래터> 공방전, 3라운드 진입…과학 감정한 교수 보직 해임되고 경매사측은 법원에 판정 의뢰

▲ 이인성 서울대학교 기초과학 공동기기원장이 과학 감정에 참여했던 윤민영 교수의 해임에 대한 입장을 발표하고 있다. ⓒ연합뉴스

우리나라 경매 사상 최고가를 기록한 박수근 화백(1914~65년)의 45억원짜리 <빨래터>를 둘러싼 진위 공방이 3라운드로 접어들고 있다. 며칠 전 이 작품의 과학 감정을 맡았던 서울대 기초과학 공동기기원 정전가속기연구센터장 윤민용 교수가 보직 해임되었으며, 이로 인해 이 작품을 취급한 경매사측이 법원에서 이 작품을 감정해달라고 정식으로 요청했기 때문이다.

지난 7월 유화 <빨래터>를 과학 감정했던 서울대가 12월12일 기자회견을 열고, 과학 감정 과정과 결과에 오류가 있었는지 자체 진상조사를 벌인 결과 △감정 자체에는 큰 오차가 없었지만 △감정 결과를 외부에 발표하는 과정에서 절차적인 문제가 있었다고 밝혔다. 서울대 기초과학공동기기원장은 “과학감정 담당자인 윤민영 교수가 ‘최종 결과’가 아닌 ‘예비 결과’를 정상적인 결재 절차를 밟지 않고 곧바로 언론에 발표한 것은 잘못”이라며 “윤교수를 정전가속기연구센터장 자리에서 보직 해임했다”라고 말한 바 있었다.

문제의 발단이 된 이 작품이 논란에 휩싸인 것은 지난해 5월 경매회사인 서울경매의 옥션에서 45억2천만원이라는 초유의 낙찰가를 기록하면서부터이다. 주식회사 한국미술품감정연구소에서 내린 진품이라는 감정 결과를 근거로 경매가 실시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지난해 12월 ‘아트레이드’라는 신생 미술 잡지가 모종의 의혹을 제기했다. 때를 같이해 감정에 최초 참여한 위원 중 한 사람이 감정위원 구성 자체를 문제 삼으면서 감정의 절차와 신뢰도에 관해 여러 가지 추측들이 떠돌게 되었다.

다른 나라 연구진까지 동원해야 할 사건 될 수도

이 작품의 최초 소장자인 존 릭스 씨(81)는 1954년부터 약 3년간 한국에 근무한 건설 분야의 전문직 인사였으며, 당시 조선호텔에 체류하면서 박수근 화백과 절친하게 지낸 인물로 알려져 있다. 릭스 씨가 일본에서 구입한 재료들을 박화백에게 제공해 답례로 받은 작품이라고 주장하며 이 작품이 배경으로 있는 사진까지도 소송에 제출될 것으로 알려져 있다. 릭스 씨는 <빨래터>만이 아니라 몇 점을 더 가지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나머지 보유 작품도 이번 소송에서 함께 분석 대상으로 채택될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아무튼 이러한 정황만으로 보면 결과가 확실해 보이는데도 의혹과 공방이 확대되고 있는 현상 자체가 엄청난 추리극을 보고 있는 듯한 느낌을 주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문제 제기가 있자, 경매사측에서는 바로 서울대와 도쿄 대학에 이 작품에 대한 분석 감정을 요구했으며, 참고 작품 몇 점도 함께 제출했다(여기서 도쿄 대학의 분석 결과는 원본이 공개되지 않은 채 경매사의 번역본만이 공개되어 의혹을 사기도 했다). 이 의뢰를 접수한 서울대 기초과학 공동기기원 정전가속기연구센터장 윤민용 교수는 탄소연대 측정 결과, 이 작품의 소장자가 이 작품을 취득한 시점인 1950년대 초반과 일치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고 발표했으며, 이 분석을 근거로 경매사는 의혹을 제기한 잡지 회사를 상대로 30억원대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민사 소송을 하게 된 것이다. 아울러 유족 가운데 감정에 가장 적극적인 박화백의 장남 박성남씨도 진품이라는 입장을 보여 의혹을 제기한 쪽이 궁지에 몰리는 것으로 정리가 되는 듯했다.

그러자 국내 감정 분야의 권위자로 인정받고 있는 명지대 최명윤 교수가 탄소연대 측정 방식 자체에 대해 문제 제기를 했으며, 아울러 참고 작품들 자체가 의심스럽다고 의혹을 제기 함으로써 진위 공방 자체가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게 되었다. 지난해 이중섭 작품에 대해 가짜라는 의혹을 제기해 결국 사법 당국이 나서게 되고 아울러 가짜임을 밝혀냄과 동시에, 원소장자라고 알려진 인사가 위작의 핵심으로서 사법 처리되는 데 결정적 기여를 한 당사자였던 그의 개입은 의혹 사태의 또 다른 핵으로 떠올랐다.

최교수는 ‘스터디빨래터’라는 사이트를 개설해 참고작 중 일부는 1980년에 만들어진 집섬보드(MDF) 위에 그려졌다는 세세한 주장을 곁들이면서 최초 의혹을 제기한 잡지사의 주장을 엄호했다. 이 사태는 결국, ‘경매사 대 잡지사’의 대결 구도에서 ‘경매사·미술품감정연구소 대 잡지사·최교수’라는 공동 전선이 형성됨으로써 진위 여부는 이제 어느 한쪽의 사활이 걸린 사안이 되고 말았다. 

이런 와중에 지난 11월30일 <빨래터>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공방에 대해 취재한 sbs에서, 감정에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박화백의 아들 박성남씨의 판단 자체도 신뢰하기 어렵다는 내용의 방송이 나가자 일반인들 상당수가 감정의 신뢰도 자체를 의심하는 지경으로 번져갔다. 이 방송 하나로 미술계와 미술시장 자체의 신뢰도가 크게 손상되는 결과로 이어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 12월18일 열린 서울옥션 기자간담회에서 서울옥션 최윤석 팀장이 의 최초 소장자인 존 릭스 씨의 사진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연합뉴스

‘아니면 말고’ 식 의혹 제기도 안 되지만 소송 대응도 안타까워

양측의 주장들을 보면 모두 타당성과 설득력이 있어 보여 이러한 모순적 국면을 보고 있는 국민으로서는 답답한 노릇이다. 이제 이 문제는 법원이 나서지 않을 수 없는 사안이 되었다. 앞으로 법원이 내리게 될 결정은 우리 미술시장과 문화계에 엄청난 파장을 몰고 올 것으로 보인다. 그런가 하면 어떤 감정 전문가는 이 사건이 영원히 미궁으로 빠질 가능성이 있다고 관측하기도 한다. 하지만 우리 문화의 미래를 위해서도 이제 이 문제는 어떤 수단을 통해서도 명명백백하게 가려야 할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서울대 기초과학 공동기기원만이 아니라 다른 나라의 연구진까지 동원되어야 하는 사건이 될 수도 있다.

이 문제를 둘러싼 논의들을 지켜보면 안타까운 점들이 눈에 띈다. 사건이 너무 진위에만 쏠리고 있어 거의 묻히고 만 문제점들이지만 되짚어보지 않을 수 없다. 우리 사회가 성숙한 문화로 가기 위해서 생각해 보아야 할 과제들이 지적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다. 이제 법정에서 이 작품의 진위 여부에 의해 어느 한쪽이 치명적인 곤경에 처할 것은 피할 수 없게 되었다. 하지만 그 결과 못지않게 중요한 문제들이 함께 폭넓게 다루어져야 한다는 점이다.

현재 전문가들이 부족한 현실은 이해하지만 이해관계에 있는 화랑대표, 유족, 의뢰인측 인사들이 버젓이 참여하는 관행이 개선되지 않는 현실이 참으로 안타깝다. 더구나 안목 감정 운운하는 식의 감정은 이제 더 이상 통용되지 않는 시스템이 확보될 수 있도록 당국에서 시급히 대처해야 할 것이다.

의혹 제기 자체가 학문적이고 언론적인 수행인 경우에는 대응 역시 같은 차원에서 이루어질 필요가 있다. 물론 아니면 말고 식의 의혹 제기는 철퇴를 받아 마땅하다. 하지만 학문적 수행이나 언론적 수행 자체를 원천적으로 차단하기 위해 가혹하다 싶은 소송으로 대응하는 현실 역시 안타깝기는 마찬가지이다. 지난해 이중섭의 위작들이 대량으로 유통될 뻔했던 사건을 상기하면 정말 아찔하다. 이번 사태를 좀더 신중히 생각해보자. 미심쩍은 일들에 대해서는 언제든지 정당하게 문제를 제기할 수 있는 분위기를 보장해주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고 절실한 일이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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