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좁은 문’ 앞에 진친 ‘대입 장사꾼’들
  • 김지혜 (karam1117@sisapress.com)
  • 승인 2008.12.23 02: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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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마다 천차만별인 요강 이용해 고액 컨설팅으로 ‘떼돈’ 벌어…학부모 불안 심리가 원인

ⓒ시사저널 이종현

2009학년도 대학 입시 전략을 짜준다는 고액 입시 컨설팅 시장이 올해 더욱 번창하고 있다. 대입 선발 기준이 지난해와 달라져서 예전 입시 자료를 보면서 입시 전략을 짜기 힘들고, 대학마다 입시요강이 천차만별이어서 혼란스럽기 때문이다. 입시 컨설팅업체들은 입시를 앞둔 수험생들의 불안감을 이용해 과도한 장사를 하고 있다는 비판을 받지만 연일 몰려드는 학생들과 학부모들 덕분에 성황을 이루고 있다.

대학 정시 모집 기간인 요즘 특히 인기를 끌고 있는 서비스는 한 시간 상담료가 30만원에서 50만원에 이르는 ‘오프라인 입시 컨설팅’. 온라인 입시 컨설팅과 달리 입시 전문가가 학생을 직접 만나 수능 전략을 짜준다는 의미에서 붙여진 이름이다. 입시 컨설팅업체들은 저마다 “맞춤형 입시 전략으로 이미 결정된 수학능력시험과 내신 성적을 보완해 좋은 대학에 보내준다”라며 큰소리를 친다.

이런 오프라인 컨설팅 시장에 대형 학원이나 전문 입시 컨설팅업체는 물론 소규모 학원까지 다투어 뛰어들고 있다. 불안해하는 대한 입시생들은 비싼 비용도 마다하지 않아 이른바 ‘돈이 되는 시장’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컨설팅 비용이 비싸도 너무 비싸다. 입시 컨설팅업체로 유명한 ㅈ사의 오프라인 컨설팅 비용은 1회에 50만원. 다른 입시 컨설팅업체들도 가격은 비슷해서 시간당 40만원에서 50만원을 받는 경우가 흔하다. 소규모 컨설팅업체나 소규모 학원이라고 예외는 아니다. 저마다 ‘우리만의 차별화한 분석 시스템’을 내세우며 시간당 상담료를 30만원 넘게 받는 경우가 태반이다.

정시 모집 시작하기도 전에 자리 꽉 차 접수 못 받는 학원도

하지만 이런 비싼 가격에도 불구하고 오프라인 컨설팅의 인기는 폭발적이다. 현재는 오프라인 컨설팅은 받고 싶어도 불가능한 상황이다. 지난 12월18일 대학 정시 모집이 시작하기도 전에 유명 입시 관련 업체들의 오프라인 컨설팅은 예약이 일찌감치 마감되었기 때문이다. 시간당 50만원을 받는 ㅈ사는 “수능 성적표가 나오자마자 자리가 꽉 찼다. 대기 번호도 모두 마감되어서 지금은 전혀 접수를 받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40만원을 받는 다른 입시 컨설팅 ㄷ사도 상황은 같다. “마감된 지 오래되었다. 선생님들이 전혀 시간을 낼 수 없다. 전화 컨설팅도 내용은 같으니 저렴한 가격에 전화 컨설팅을 받아보는 것이 어떻겠느냐”라고 권하기도 했다.

그렇다면 이런 오프라인 컨설팅은 지불한 비용만큼 대학 입시 전략을 짜는 데 효과적일까. 서울시 이동진학상담소에서 무료로 오프라인 컨설팅을 해주고 있는 한성고등학교 강신정 교사(35)는 “노하우를 가지고 기술적으로 입시 전략을 제대로 짜는 컨설턴트는 각 학원에 한두 명뿐이다. 나머지 학생들은 평범한 학원 강사들이 담당할 텐데 이들에게 40만~50만원씩 주고 상담할 필요는 없는 것 같다”라고 말했다. 학생들도 같은 말을 한다. 이들은 한결같이 “남들이 다 하는 것 같아 마감되기 전에 얼른 신청했는데 특별한 노하우나 합격 비법은 전혀 없었다. 지원 가능한 대학을 모두 골라주면서 각자 알아서 선택하라는 식이다”라고 불만을 털어놓는다. 학생들의 불평은 주로 ‘허무하다’는 것이다. 재수생 이수현씨(20)는 “오프라인 컨설팅에서 골라주는 대학은 여러 학원의 배치표와 인터넷 정보 수집을 통해 혼자서 예상했던 것과 거의 다를 바 없다. 요즘에 그 정도 정보가 없는 학생이 어디 있나. 40만원짜리 오프라인 상담까지 받을 이유가 전혀 없었는데 돈만 날렸다”라고 말했다. 오프라인 컨설팅을 받은 학생들 중에는 “재수를 안 할 거라고 했더니 지나칠 정도로 하향 지원을 하라고 권했다. 재수할 생각도 있다는 친구에게는 상향 지원을 부추겼다고 한다. 그런 컨설팅이라면 나도 할 수 있다. 학교, 평소 다니던 학원, 저가 컨설팅과 다를 바 없는 상담 내용이었다”라고 말하는 경우도 있었다.

컨설팅 가격의 거품도 심하다. 같은 분석 프로그램을 사용하는데 한쪽에서는 시간당 50만원을 받고 다른 한쪽에서는 무료로 상담해준다. 서울 목동의 ㄷ학원은 성적표가 나온 직후부터 매일 100명 이상에게 오프라인 컨설팅을 무료로 제공했다. 시간도 최소 30분 이상이다. 하지만 목동 ㄷ학원에 진학 프로그램을 판 ㅈ업체는 시간당 50만원을 받는다. ㄷ학원의 진학 지도 담당자조차 “ㅈ사가 그렇게 고가로 오프라인 컨설팅을 하는 줄을 몰랐다. 우리는 ㅈ사 프로그램을 수백만 원을 주고 구입했지만 무료로 컨설팅을 해주고 있다”라고 답했다. 그는 “그 가격에도 불안해서 찾아가는 학부모들이 문제인 것 같다”라고 덧붙였다.

이렇게 오프라인 컨설팅 시장이 달아오르다 보니 대학 입학원서 마감일에 학생과 학부모들을 모아놓고 ‘눈치 작전’을 대신해주는 ‘막판 컨설팅’ 학원까지 생겨나고 있다.

서울 대치동의 한 논술학원. 이 학원 원장은 일단 평소에 오프라인 컨설팅으로 학생들의 지원 대학 리스트를 뽑아준 뒤, 대학 입시원서 접수 마감 당일에 한자리에 모아놓고 ‘눈치 작전 입시 컨설팅’을 진두지휘한다. 

지난해 동생의 대입 원서 접수 마감일에 이 컨설팅 학원에 함께 들렀던 김지현씨(27)는 ‘마치 증권 거래소를 방불케 한다’라고 했다. 김씨에 따르면 한 교실에는 이미 오프라인 컨설팅을 받은 20명에서 30명 사이의 학생들이 노트북을 펴고 엄마와 함께 앉아 있다. 학원장은 다른 학원과 계속 통화를 하며 정보를 주고받는다. 최종 입시 경쟁률이 발표되거나 마감 시간이 가까워지면 원장이 지시를 하기 시작한다. “○○대학에 ○○과, ○○과 실질 경쟁률이 낮을 것 같으니 해당 학생 원서 접수하세요.” 또 몇 분 후, 원장은 “ㅇ대학은 예상외로 많은 학생들이 지원하고 있으니 수준과 입시요강이 비슷한 ㅂ대학 ○○과로 대체하세요”라고 말한다. 학생들은 이 지시에 따라 원서 접수를 마친다. 이 학원이 그 대가로 받은 돈은 학생 1인당 40만원. 몇 시간 만에 1천만원가량을 벌었다.

“학교에서 표준화된 정보 제공해줄 수 없나”

하지만 김지현씨는 이러한 고가 컨설팅이 소용없다고 말했다. “내 동생도 원장의 추천을 받아 눈치작전으로 지원한 대학에 떨어졌다. 오히려 막판 경쟁률 발표 이후 지원자가 몰려 치열했다. 원장이 지시하는 내용은 집에서 인터넷을 검색하고 있던 학생들도 아는 것이다. 당연히 같은 생각을 했을 것이고 갑자기 지원자가 몰린 것 아니겠나.” 그녀는 또 “그런 얄팍한 작전으로 성공한 학생은 30명 가운데 한 명도 찾기 힘들다. 내가 볼 때는 (동생이 점수가 안 되어 떨어진 것이) 당연한 결과인데, 엄마는 아직도 운이 없어서 그랬다고 생각한다. 고가 컨설팅은 바로 엄마들의 그런 절박한 심리를 교묘히 이용하는 상술이다”라고 말했다.

이렇게 효과도 크지 않으면서 수험생들의 불안 심리를 자극해 돈을 버는 오프라인 컨설팅 업체들이 난립하자 서울시 교육연구정보원의 대학진학지도지원단에 소속된 90여 명의 학교 선생님들이 뜻을 모아 ‘이동식 진학상담소’를 차렸다. 부실한 오프라인 컨설팅 30분에 30만원을 주고 상담을 받는 현실이 안타깝다며 공교육에서 제대로 된 입시 지도를 하자는 취지에서였다. 이곳에서 상담을 하는 한성고등학교 강신정 교사는 “불안 심리를 조장하는 고가의 컨설팅업체들이 난립하지 않도록 정상적 공교육의 과정에서 진학 지도가 이루어져야 한다”라고 말했다. 이동식 진학상담소에서 상담을 받은 이대부고 정예지 학생(19)도 “학원들마다 배치표 기준이 너무 다르니 뭘 믿을지 몰라서 비싼 오프라인 컨설팅에 몰리는 것 같다. 학교에서 표준화된 입시 정보를 제공해주면 좋겠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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