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P 세대’에게 뜨거운 박수를
  • 김재태 편집부국장 (jaitai@sisapress.com)
  • 승인 2008.12.23 0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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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1월11일의 일이다. 지난해까지는 볼 수 없었던 낯선 풍경 하나가 사무실에 펼쳐졌다. 그날을 상징하는 상품이 된 막대형 초콜릿 과자가 직원들의 책상마다 고루 놓여진 것이다. 이미 젊은이들 사이에 대세가 된 ‘빼빼로 데이’의 위력을 가늠케 해주는 장면이었다. 그날을 앞두고 들렀던 대형 할인점에서 그 과자들을 진열하는 특별 코너까지 마련된 것을 보고 시류의 변화를 직감하기는 했지만, 직접 겪으리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한 터여서 내내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다.

그 풍경이 보여준 대로, 과자업체의 얄팍한 상술로 치부되며 크게 주목받지 못했던 ‘빼빼로 데이’는 이제 무시할 수 없는 한 시대의 문화 아이콘으로 어엿하게 자리를 잡았다. 그 흐름을 세시풍속의 중심으로 이끌어낸 주체는 다름 아닌 10대 청소년, 그중에서도 여중고생이 전위에 선 신세대 여성 그룹이다. 그들은 이미 문자메시지라는 생경한 통신 수단을 주류의 소통 도구로 앞장서 진화시킨 주역이기도 하다. 그날 사무실 책상마다 과자를 놓아 새로운 트렌드를 ‘세례’해준 이도 두말할 나위 없이 회사의 젊은 여직원들이었다.

 그들만의 당당한 행동 양식과 사고로 무장한 신세대 여성들을 보는 것은 이제 더 이상 낯설지 않다. 지난 봄과 여름, 전국을 뜨겁게 휩쓸었던 촛불의 시원(始原)에도 그들은 어김없이 있었다. 광우병 사태 초기 청계천 집회를 채웠던 다수도 그들이었다. 청계천에 마련된 자유 발언 무대에서 그들은 아무 거리낌이 없었다.

가공되지 않은 목소리로 0교시 수업을 성토하고 정부 정책을 꼬집었다. 당시 현장에서 직접 목격한 바로는, 그때까지만 해도 광우병은 그들의 목소리를 높이게 한 여러 문제들 중의 하나였을 뿐이다. 그렇게 촛불이라는 긴 물줄기의 상류에서 길을 틔운 주인공은 교복을 입고 삼삼오오 어깨동무하며 광장으로 나선 신세대 소녀들이었다.

굳이 이름을 붙이자면 ‘G.O.P(Girls of Plaza)’라고 할 수 있을 이들 신세대 여성의 활약상은 거기서 그치지 않는다. 한국 프로야구가 13년 만에 처음으로 5백만 관중을 돌파한 배후에도 그들이 있었다. 야구장뿐만이 아니다. 올림픽 응원이나 다른 프로 경기 관중석에서도 그들은 더 이상 소수가 아니었다. 오히려 남성을 압도하는 수효와 위력을 보이기까지 했다. 각종 국가 고시나 대학 입시에서 여성들이 두각을 보이는 것은 더 거론할 필요도 없다. 이제 10대 후반~20대 초반 젊은 여성들의 입김은 사회 전반에서 새로운 경향성 창출을 가능하게 할 만큼 강력해졌다.

G.O.P 세대의 위력은 <시사저널>이 선정한 ‘올해의 인물’에서도 뚜렷하게 감지된다. 올해의 인물인 배우 문근영이나 ‘국민 요정’으로 불리는 김연아, 두터운 팬층을 확보한 ‘원더걸스’ 모두 자신의 분야에서 최선을 다하며 대중 친화적인 면모를 보여준 인물들이다. 그리고 그들의 진정한 힘은 자기만의 세계 안에서 폐쇄적으로 배양된 것이 아니라 ‘광장’ 속에서 시대와 코드를 맞추며 대중의 희망과 적극적으로 화학 결합해 나온 것이다. 올 상반기 키워드였던 ‘촛불 소녀’의 이미지도 그와 크게 다르지 않을 터이다.

시대는 늘 새로운 세력의 출현에 힘입어 전진한다. G.O.P 또한 우리 사회에 긍정적인 변화를 불러올 신성장 동력이 될 수 있다. 더욱 밝고 왕성한 그들의 활약이 기대된다. 이제는 옛말과 정반대로 ‘여성이 울면 집안이 흥하는’ 시대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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