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자기 귀해진 땅 밑’어찌 지키나
  • 반도헌 (bani001@sisapress.com)
  • 승인 2008.12.30 02:03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서울시, 치성과 이간수문 등 최근 발견된 유적 상당수…하도 감터·어영청터는 사라질 위기

▲ 문화재 전문가들이 이간수문 등 총 1백23m에 이르는 것으로 확인된 서울 성곽 일대를 둘러보고 있다. ⓒ연합뉴스

서울 도심의 이곳저곳에서 조선시대 유적이 발견되었다는 소식이 연이어 들리고 있다. 땅만 파면 보물이 나온다는 말이 무색하지 않을 정도이다. 개발과 현대화로 옛 모습이 거의 남아 있지 않은 것으로 여겨졌던 고도(古都) 서울에서 역사를 증명하는 유적들이 속속 나오고 있다는 사실이 신기하기만 하다.

2008년 동안만 해도 옛 동대문운동장 터에서 최근 발견된 치성(雉城)과 이간수문(二間水門)을 비롯해 종묘 남동쪽에서 발견된 어영청(御營廳)과 일제 강점기 담배 공장 건물터, 광화문 원위치 복원 계획을 위한 발굴 작업에서 발견된 경복궁 창건 당시 광화문 터와 궁궐 담장 터, 광화문 앞 세종로에서 발견된 육조거리 토층, 창덕궁 후원 부용지 옆에서 발견된 어정(御井) 등이  땅속에 묻혀 있다 비로소 햇빛을 보게 되었다. 사실 6백년간 한 나라의 수도였던 서울에서 역사 유적 발굴이 이어지는 것이 놀라운 일은 아니다. 단지 일제 강점기와 현대화를 거치며 새로운 건물에 자리를 내주고 지하로 들어가 있었을 뿐이다. 문화재청 발굴조사과의 한 관계자는 “서울시, 그중에서도 옛 4대문 안쪽 지역에는 어디를 발굴해도 의미 있는 유적이 발견될 정도로 지하에 유적이 많이 묻혀 있다”라고 말했다.

“4대문 안쪽은 어디를 파도 유적 나와”

▲ 서울 성곽은 동대문운동장을 건설하는 과정에서 멸실된 것으로 추정되었지만, 최고 잔존 높이 4.1m(내벽 기준)에 바닥 폭 8~9m에 이르는 규모로 남아 있는 것이 확인되었다. 위는 어영청터. ⓒ시사저널 우태윤

이제야 우리 눈앞에 모습을 드러냈지만 발굴된 유적들을 앞으로 계속 볼 수 있을지는 확실하지 않다. 일부 유적들이 개발이 예정된 지역에서 발굴되었기 때문이다. 자칫 개발 논리에 밀려 보존의 필요성이 묻혀버릴 수도 있는 상황이다. 문화재위원회에서 유적의 가치를 어떻게 평가하는지와 개발 가능성에 따라 그 자리에 복원이 될 수도, 복원 이전될 수도, 보존된 상태 그대로 땅속에 다시 묻힐 수도 있다. 일부 유적들은 발굴 당시의 기록과 디지털 복원 3D 화면으로만 만나보게 될 수도 있다는 뜻이다.

옛 동대문운동장 터에서 발견된 치성은 성벽의 일부를 바깥으로 돌출시켜 성벽 가까이 붙은 적을 측면에서 효과적으로 공격하기 위한 방어 시설이다. 그동안 문헌 기록에만 남아있던 것으로 실제로 발굴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매장문화재 발굴 조사 기관인 중원문화재연구원은 “성곽에서 남북 10.2m, 동서 8.3m 크기의 사각형 치성 1개소를 확인했다. 동대문에서 광희문까지 4~6군데의 치성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라고 밝혔다. 치성과 함께 발견된 이간수문은 남산 쪽에서 흘러내린 물을 도성 바깥 청계천 쪽으로 빼내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다. 동대문운동장 터에서 발견된 것은 윗부분을 아치형으로 만든 홍예(虹霓) 이간수문 형태인 것이 특징으로 홍예 부분을 제외하고 받침돌, 바닥석 등이 거의 완벽하게 보존되어 있다.

치성과 이간수문은 서울시가 추진한 동대문디자인플라자&파크 조성 부지에서 발굴되었다. 2011년 완공될 예정인 디자인플라자&파크는 서울시가 세계 디자인 수도로 자리매김하겠다는 계획에 따라 국내 디자인과 패션 산업의 중심지 역할을 할 예정이다. 이미 설계 공모를 통해 여성 최초로 건축계의 노벨상격인 프리츠커상을 수상한 세계적인 건축가 자하 하디드의 설계가 채택된 상황이다. 서울시 동대문디자인파크 관계자는 “설계 당시 이미 고려했기 때문에 디자인 원안이 크게 바뀌는 일은 없을 것이다. 서울시에서 제출한 여러 안 중에 문화재위원회에서 결정한 내용을 바탕으로 치성과 성벽, 이간수문을 보존·보축할 계획이다”라고 말했다.

서울시가 설계 의뢰 과정에서 이미 고려했다지만 발굴이 구체적으로 실행되기 이전이었기 때문에 일부 설계 변경은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발굴 작업에서 실제로 드러난 유적의 보존 상태가 당초 예상보다 양호하기 때문이다. 황평우 한국문화유산정책연구소장은 “동대문운동장 터에서 발견된 유적들은 국보급의 가치가 있다. 이 유적들을 처음 봤을 때 마치 그리스·로마의 신전을 떠올렸을 정도였다. 이 부분이 보존되더라도 디자인플라자&파크 설계에는 수정이 필요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더 큰 문제는 동대문야구장 부지에서 발견된 하도감(下都監)  터이다. 하도감터에는 디자인플라자 건물이 들어설 예정이다. 하도감은 조선시대 훈련도감의 분영으로 수도를 방위하고 왕의 시위와 지방군의 훈련 및 치안을 담당한 기관으로 하도감 터에서는 조선 후기 유적부터 중기·전기 유적까지 계속 발굴되고 있다. 

“개발보다 유적 발굴이 먼저”

어영청 터도 마찬가지이다. 어영청은 조선 후기 오군영 중 왕을 호위하던 군영으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인 종묘 근처에 있는 세운상가 이주 건물 부지에서 일제 시대 연초 제조 공장 건물 터와 함께 발견되었다. 어영청 유적의 역사적 가치와 더불어 그 위에 건물을 세워버린 일제의 만행을 상기시킨다는 의미도 있는 것으로 평가받는다. 어영청 터 일대에서 유적과 유물이 발견되면서 현재 전면 발굴이 결정된 상황이다. 하지만 이 결정이 유적 그대로의 보존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문화재청의 한 관계자는 “어영청 터에 들어설 건물은 지하층이 없이 설계되었다. 매트 공법을 사용해 유적을 지하에 보존한 상태로 건물을 올리는 방법이 고려될 수 있을 것이다. 유적을 본래 자리에 보존하는 것이 최선책이지만 이전이나 지하 보존 등의 차선책을 따를 수도 있다”라고 말했다. 황평우 소장은 “하도감터와 어영청터는 조선시대 관청 유적으로 지금까지 흔적이 없던 것이 이번에 발견된 역사적으로 소중한 자료들이다. 이 유적들을 밀어버리고 디자인플라자나 세운상가 이전 건물을 짓는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라고 말했다.

개발 예정지에서 발견된 유적들로 인해 발생하고 있는 논란이 서울시만의 일은 아니다. 연천 전곡리 유적을 뛰어넘는 한국 최대의 구석기 유적으로 평가받고 있는 경기 파주시 교하읍 일대와 대규모의 고려시대 건물지가 발굴된 대전 상대동 유적지는 개발 사업과 부딪치고 있다. 개발 논리와 문화재 보존 논리의 충돌이 계속 발생하는 것은 개발 계획이 먼저 세워지고 난 다음에 발굴이 뒤따르기 때문이다. 황평우 소장은 “도심지 계획을 세우기 전에 고도로서의 역사 가치를 먼저 판단하고 개발 여부를 결정해야지 개발하기로 해놓고 유적이 발굴되니까 진행된 개발을 어떻게 할 것인지 고려하는 것은 순서가 거꾸로 된 것이다”라고 지적했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