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손으로 만드는 ‘4분의 기적’
  • 노진섭 (no@sisapress.com)
  • 승인 2008.12.30 0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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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폐소생술, 누구나 쉽게 배울 수 있어…법 개정으로 환자 사망해도 책임 면제

▲ 대한심폐소생협회에서 실시하는 심폐소생술 교육 과정을 통해서 일반인들이 심폐소생술 교육을 받고 있다. ⓒ시사저널 박은숙

국회는 지난 6월15일 ‘응급의료에 관한 법률’을 마련했다. 심장마비로 쓰러진 환자가 병원에 가보지도 못하고 사망하는 불상사를 줄이기 위해 대중 시설에 휴대용 전기심장충격기인 자동제세동기(AED)를 갖추도록 한 것이다. 또, 심장마비로 쓰러진 사람을 일반인이 발견해 심폐소생술(CPR)이나 AED로 응급 처치하다 환자가 사망하더라도 법적 책임을 묻지 않기로 했다.

그러나 심폐소생술과 AED 작동법에 대한 인식과 교육이 미흡해 실제 어느 정도 효과를 낼지는 의문이다. 사실 그동안 법적인 문제가 아니라 어떤 조치를 취해야 할지 몰라서 환자의 상태가 잘못되어도 지켜봐야만 했던 것이 현실이기 때문이다. 

병원에서 교육 받고 자격증 취득 가능

응급의학계에서는 심장마비로 쓰러진 후 4분을 생사의 경계로 보고 있다. 심장이 멈춰 뇌에 혈액이 공급되지 않은 지 4분이 지나면 뇌기능에 손상이 생길 수 있기 때문이다. 6분을 넘기면 뇌기능에 심각한 이상이 나타나 생명도 보장할 수 없는 상태에 이른다.

소방방재청이 지난 10월 국회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2007년 119구급대 평균 출동 시간은 평균 6분이다. 전라남도에서는 무려 12분이 걸렸다. 지역에 따라서는 5분이 채 안 걸리기도 한다. 그러나 차량 진입이 불가능해서 의료진이 걸어서 이동하는 시간까지 계산하면 실제 환자에게 도착하는 시간은 10분 이상이 걸린다. 환자는 이미 사망했거나 살더라도 뇌사 상태에 빠지게 된다.

강구현 강남성심병원 응급의료센터장은 “의료진이 오기 전까지 아무런 조치를 하지 않으면 환자를 정상으로 회복시키기는 거의 불가능하다. 환자의 생존율은 1분마다 7~10%씩 감소한다. 5분이 흐르면 생존율이 50%도 되지 않는 셈이다. 만일 심폐소생술을 하면 생존율을 두 배 이상 높일 수 있어 의료진이 도착할 때까지 충분한 시간을 벌 수 있다. 심폐소생술은 사실 심장과 폐보다 뇌를 살리는 구급법이라고 할 수 있다”라고 강조했다.

의료인이 아닌 일반인도 얼마든지 심폐소생술을 배울 수 있다. 대한심폐소생협회를 통해 소정의 교육비를 내고 신청하면 가까운 병원에서 심폐소생술 교육을 받고 자격증까지 취득할 수 있다. 지난 12월19일 기자가 직접 심폐소생술 교육을 받아보았다. 이날 서울 대림동에 있는 강남성심병원 별관 4층 강당에는 심폐소생술 교육을 받기 위해 16명이 모였다. 교육을 받는 사람은 주부부터 대학생까지 다양했다.

심폐소생술에 관한 간단한 시청각 교육에 이어 바로 실습 교육이 이어졌다. 2인이 1조가 되어 심폐소생술 교육용 인형을 놓고 교육을 받았다. 사람이 심장마비로 쓰러지면 먼저 환자의 양 어깨를 두드려 의식을 확인한다. 의식이 없다면 119에 신고한다. 만일 주변에 사람이 있다면 도움을 청한다. 이때 손가락으로 한 사람을 지명해서 119에 신고하고 AED를 가지고 올 것을 지시한다. 책임감을 갖게 하기 위함이다.

그런 다음 환자의 고개를 뒤로 젖혀 기도를 유지한다. 이때 한 손은 환자의 이마를 짚고, 다른 한 손으로는 환자의 턱 부위를 들어올리듯이 하면 된다. 이 상태로 귀를 환자의 코에 대고 숨소리를 들으면서 눈으로는 환자의 가슴이 움직이는지를 확인한다. 숨을 쉬지 않으면 환자의 코를 막고 입으로 인공호흡을 2회 시행한다.

그래도 아무런 반응이 없으면 심장 압박을 한다. 양손을 겹쳐 환자 양 젖꼭지의 가운데 부위에 손바닥을 대고 압박한다. 환자의 가슴이 4~5cm 정도 들어갈 정도로 강하고 분당 100회 정도로 빠르게 압박한다. 사실 긴급한 상황에서 흉부 압박 깊이와 분당 횟수까지 기록할 여유가 없다. 따라서 팔을 쭉 펴고 허리의 힘으로 온 힘을 다해 조금 빠르다 싶은 속도로 압박하면 된다.

흉부 압박을 30회 시행한 후 2회 인공호흡을 해야 한다. 따라서 압박할 때 큰소리로 1부터 30번까지 세는 것이 중요하다. 인공호흡을 할 때는 공기를 깊게 들이마시고 강하게 내뿜을 필요는 없다. 풍선을 부는 듯한 정도로 가볍게 호흡을 불어넣으면 된다. 흉부 압박 30회와 인공호흡 2회를 반복적으로 의료진이 도착할 때까지 시행하면 된다.

의료진이 도착하기 전에 AED가 도착하면 즉시 사용한다. 기기에서 방송되는 자동 음성 안내를 따라하면 AED를 쉽게 사용할 수 있다. AED 사용법까지 모두 2시간 동안의 교육을 마친 교육생들의 이마에는 땀방울이 맺혀 있었다. 10분 정도의 휴식 시간을 가진 후 이들은 테스트를 거쳐 심폐소생술 자격증을 취득했다.

기자를 포함해 심폐소생술 교육과 테스트를 통과한 교육생들의 소감은 비슷했다. 힘은 들었지만 생각보다 간단하다는 것이었다. 대학원 입학을 준비하고 있는 이수진씨(30ㆍ여ㆍ가명)는 “교육을 받아보니 생각보다 어렵지 않아 놀랐다. 여성인 나도 심폐소생술을 하게 되었다. 이렇게 쉬운 심폐소생술을 더 많은 사람이 배울 수 있는 기회가 있으면 좋겠다”라고 밝혔다.

“정규 교육 과정에 포함시켜라”

심폐소생술을 민간 차원이 아니라 국가적 차원에서 교육시켜야 한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김성순 대한심폐소생협회 이사장(연세대 의대 심장내과 교수)은 “심폐소생술 교육을 정규 교육에 포함시켜야 한다. 노르웨이 등 유럽과 미국의 일부 주에서는 정규 교육 과정에서 심폐소생술을 가르치고 있다”라며 공교육에 심폐소생술을 포함시킬 것을 주장했다.

심장마비는 예고가 없고 60~80%는 가정, 직장, 길거리 등 의료 시설 이외의 장소에서 자주 발생한다. 의료인보다 일반인이 응급환자를 먼저 발견할 가능성이 크다. 이때 일반인은 혹시 자신이 나서서 심폐소생술을 하다가 환자가 사망하거나 잘못될 것이 두려워 아무런 행동을 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이에 대해 황성오 대한응급의학회 이사장(연대 원주의대 응급의학과 교수)은 “심폐소생술을 하면 환자의 갈비뼈가 부러지는 경우가 40% 정도 된다. 갈비뼈 골절은 얼마든지 회복할 수 있으므로 생명을 구하는 것이 우선이다. 또, 심폐소생술로 환자가 사망하는 경우는 거의 없으며 그런 일이 벌어진다고 해서 법적 처벌을 받지는 않는다. 심폐소생술은 교육을 받지 않아 어설프게 하더라도 안 한 것보다는 환자가 살아날 가능성이 크므로 반드시 시행해야 한다. 실제로 교육을 받지 않은 사람이 심폐소생술을 ‘흉내’ 내서 사람을 살린 경우는 수도 없이 많다”라고 설명했다.

 


▲ 양손을 겹쳐 깍지를 끼고 어깨와 양손이 역삼각형이 되도록 한다. 팔은 쭉 펴서 흉부를 압박할 때 구부러지지 않도록 한다. ⓒ시사저널 박은숙

▲ 심폐소생술을 시행하는 사람의 팔과 심장마비 환자의 가슴이 직각이 되도록 유지한 채 흉부 압박을 한다. ⓒ시사저널 박은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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