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었던 도요타, 너마저!”
  • 도쿄·임수택 편집위원 ()
  • 승인 2008.12.30 0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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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상 첫 영업 적자 기록해 일본 경제 ‘비상’…국내외 공장, 감산 또는 일시 중지 들어가

▲ 감산이 예정된 북미의 도요타자동차 켄터키 공장. ⓒAP연합

도요타자동차(이하 도요타)는 지난 12월22일 정례 기자회견에서 2008년 회계연도에 1천5백억 엔의 영업 적자가 발생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2007년 영업이익이 2조2천7백3억 엔이었던 것과 비교하면 충격적인 결과이다. 불과 한 달 전에  6천억 엔 정도의 영업 흑자를 예상한다고 발표할 때만 해도 도요타가 적자를 낼 것이라고 예상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하지만 도요타는 결국, 자동차 수요 감소로 인한 판매 부진과 엔고(高)의 파도를 넘지 못했다.

도요타가 영업 적자를 낸 것은 창업 직후인 1941년 이후 처음이다. 도요타는 70년 전 처음으로 미국에 진출한 이후 2002년에는 영업이익 1조 엔을 돌파했고, 2007년에는 역대 최고의 영업이익과 생산량 9백51만대를 기록해 GM을 제치고 세계 제1의 자동차 생산회사가 되었다. 이처럼 반세기 이상 가장 안정적이고 비약적인 성장을 구가해온 도요타에 빨간 불이 켜진 것이다. 즉각 와타나베 가즈아키 사장이 퇴임하고 내년 4월부터 창업가 출신인 도요타 아키오 부사장이 사장으로 승격해 도요타의 지휘봉을 잡을 예정이다. 배수진을 치고 위기를 돌파하고자 하는 고육지책이다.

도요타가 일본 경제의 견인차 역할을 해온 점을 고려하면 도요타의 영업 적자가 일본 경제 전체에 미치는 영향이 작지 않다. 자동차의 도요타는 소니, 파나소닉, 히타치, 도시바 등 전기회사들과 더불어 일본 기업을 상징하는 대표 브랜드로 성장해왔다. GM을 누르고 세계 최대의 자동차 생산 메이커로 등극했을 때, 미국의 3대 자동차 메이커들의 전망이 불투명해 보일 때만 해도 도요타의 질주는 당분간 지속될 것으로 예상되었다.

하지만 도요타도 글로벌 경기 침체라는 장애물을 넘지 못했다. 도요타는 그동안 미국 시장에서 신차 판매가 부진했던 부분을 신흥국 판매를 통해 보충해왔으나 이마저도 꽁꽁 얼어  붙은 탓이 크다. 도요타는 즉각 비상경영 체제로 들어갔다. 고정비를 10% 삭감하고 경비를 5백억 엔 줄이기로 했다. 2009년 1월에는 일본 국내 전 공장에서 일제히 3일간 휴무를 하고 이 제도를 2월 이후에도 검토하기로 했다. 미국 미시시피 공장과 인도의 신공장 설립 계획을 연기했다. 또, 본격적인 감산 체제에 들어갔다. 아이치 현 타하라 시의 공장에서 95만3천대를 포함해 일본 전체 공장에서 1백16만3천대를 감산했다. 해외에서의 감산도 예외는 아니다. 북미의 텍사스 공장, 켄터키 공장을 비롯해서 유럽, 중국, 타이완 등에 있는 공장의 가동을  일시 중지하거나 감산을 하기로 했다.

주변 산업·지역 경제·고용·실물 경제에 큰 타격

자동차 산업은 일본 총 수출의 25%, 설비 투자액은 제조업 전체의 20%, 관련 업계를 포함한 노동자 수는 전 취업 인구의 8%인 5백만명에 이르는 효자 산업이다.

 감산 및 중지 결정은 주변 산업, 지역 경제 및 재정, 고용 그리고 실물 경제에 심각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일본 전문가들은 부품 메이커, 철강, 광고 산업 등에 미치는 영향은 세 배에 이를 것이며 일본 경제 전체로는 5조3천억 엔 규모의 생산 감소가 나타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도요타 본사와 일곱 개의 공장이 모여 있는 도요타 시는 그간 풍부한 세수 때문에 전국에서도 재정 자립도가 아주 높은 자치단체로서 다른 지자체들로부터 부러움을 사왔다. 하지만 도요타의 추락으로 인해 세수의 3분의 1에 달하는 법인·시민세가 금년도에 과거 최고인 4백42억 엔을 계상했으나 4백억 엔 정도로 줄었다. 뿐만 아니라 도요타의 하청업자들은 현재 패닉 상태에 빠졌다.

무엇보다도 고용에 미치는 영향이 크고 심각하다. 파견사원, 파트타임, 고령자 재고용, 일본계 남미인 그리고 관련 가족들까지 감안하면 수만 명에 달한다. 해고 붐은 도요타에서만 일고 있는 것이 아니다. 일본 자동차 메이커 전체 12사가 비정규직 사원 1만7천명을 줄이기로 했다. 내년도 신규 직원 채용은 가능한 한 연기하거나 축소하기로 했다.

하지만 경기 악화의 정도에 따라 이것은 서곡에 지나지 않을 수도 있다. 스즈키 본사를 비롯해서 주요 자동차 메이커의 공장이 운집해 있는 시즈오카 현 하마마츠 시에 사는 무라코시 씨는 이번 자동차 업계의 불황으로 지역 경제가 심각하다고 걱정했다. 그는 “가장 눈에 띄는 점은 물류 분야이다. 지방 물류가 적잖이 줄고 있다. 그리고 공장 지대라서 외식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외식 관련 레스토랑, 식재 사업이 위기를 맞고 있다”라고 말했다. 무라코시 씨는 부친이 보험업을 하고 있는데 자동차 산업의 침체는 보험업에도 영향을 미쳐 부친이 더 이상 보험업을 할 수 없을 것 같다고 했다. 그는 “동네에서 슈퍼마켓을 찾는 발길도 눈에 띄게 줄어들고 있다”라며 한숨을 쉬었다.

1990년대 버블이 붕괴하면서 ‘잃어버린 10년’을 보낼 때도 도요타는 인위적인 정리해고를 하지 않았다. 오쿠다 전 회장 시절 도요타는 불황속에서도 고통을 분담하며 노사 간에 신뢰를 바탕으로 위기를 극복할 수 있으며 이것이 바로 일본식 경영의 장점이라고 강조했다. 이런 전통과 경영 방침을 유지해오던 도요타가 8천여 명 이상의 정규·비정규직 사원을 줄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 사태의 심각성을 잘 말해주고 있다.

일본식 경영이라고 하면 종신 고용, 연공서열 그리고 기업 내 노조를 말한다. 한마디로 화합을 기업 운영의 기본에 두는 일본 특유의 고용 제도이다. 하지만 1990년대 버블 붕괴를 맞아 10여 년간 깊은 침체를 경험하면서 제도가 바뀌었다. 그러나 2000년대 들어서면서 경기가 다시 회복되고 장기적인 성장 궤도에 들어오면서 다시 고용의 중요성을 강조하기 시작했다. 고용의 질을 향상시키기 위해서는 위기 때라도 인력 관리가 소중하다는 것이다. 즉, 일본식 경영의 중요성이 다시 살아나는 분위기였다.

▲ 일본 도요타자동차의 아키오 도요타 부사장이 도쿄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기자들의 질문을 듣고 있다. ⓒAP연합

아소 정권도 경기 활성화 묘안 내놓지 못해 경제 불황 심각해질 듯

기업에서 비정규직을 정규직화하려는 움직임이 있었으며 정부도 제도적인 지원에 앞장서왔다. 특히 단카이 세대(1947~49년 사이의 베이비붐 세대)의 정년 퇴직으로 인해 공백이 예상되는 숙련된 인재가 필요한 시점이어서 더욱 그랬다. 하지만 이번 미국발 금융 위기는 이런 분위기를 근본적으로 흔들어놓고 있다. 위기 극복의 강력한 수단으로서 인원 삭감에 무게 중심이 쏠리고 있다. 이는 비단 도요타 자동차뿐만이 아니다. 지속적인 경영 악화가 예상되고 있는 혼다·닛산·마츠다·이수즈·미츠비시 자동차도 파견사원 및 기간 요원을 과감하게 줄이기로 결정했다. 일본에서 자동차업계 발 경기 침체설이 대두되는 이유이다.

악화 일로를 걷는 고용 사정은 사회적으로 문제가 되고 있다. 매스컴에서는 연일 고용 문제를 보도하고 있다. 아소 정권은 고용 문제와 경기 활성화에 대한 뾰족한 묘안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이것이 집권 자민당의 지지도가 추락하는 이유이고 차기 중의원 선거에서 정권 교체의 가능성이 대두되고 있는 원인 중 하나로 꼽힌다. 그동안 원만한 노사 관계를 유지해왔고 지속적으로 경비 및 제조 원가를 절감하며 모범적으로 경영해온 도요타조차 위기를 맞이하는 상황이고 보면 새해 경제의 불황은 생각보다 훨씬 심각할 것으로 예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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