꽁꽁 언 대북 정책에 ‘해빙’ 기운 움트려나
  • 고유환 (동국대 북한학과 교수) (sisa@sisapress.com)
  • 승인 2008.12.30 0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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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연구원의 ‘비핵·개방·3000’ 수정안, 정부가 추진할지 주목

▲ 김하중 통일부장관이 2008년 12월5일 서울그랜드힐튼호텔에서 열린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운영·상임위원회 합동회의에서 대북 정책 추진 현황 및 방향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명박 정부 출범한 지 10개월이 지났음에도 남과 북은 관계 설정을 하지 못하고 갈등을 지속하고 있다. 이명박 정부는 김대중·노무현 정부의 대북 포용정책에 불만을 품고 차별화를 시도했다. 대북 ‘퍼주기’를 했는데 북한에 본질적 변화가 없다는 것이 이전 정부의 대북 정책에 대해 이명박 정부가 내린 부정적인 평가이다. 대선 과정에서 표를 얻기 위해 내놓았던 ‘친북 좌파 정권의 잃어버린 10년’ 구호가 집권 이후에도 그대로 적용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햇볕정책’은 소련과 동구사회주의권을 붕괴시켰던 헬싱키 프로세스의 한국판 변종으로 좌파 정책이 아니다. 그런데도 이명박 정부는 한국의 진보 정권들이 ‘평화적 이행전략’을 잘못 적용해 북한의 버릇을 나쁘게 했으니 문제라는 식으로 이를 폐기하고, ‘비핵·개방·3000’ 등의 대북 강경 정책을 내놓고 북한의 태도 변화를 강요했다.

김하중 통일부장관은 지난 12월24일 중국 방문을 마치고 귀국하면서 “지금은 남북 관계 조정기일 뿐 정부가 진정성을 갖고 기다리면 남북 관계가 잘 풀리는 때가 반드시 올 것이다”라고 낙관했다. 그러나 남북 관계 교착이 장기화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미국 오바마 행정부가 출범하면 고위급 특사 파견과 북·미 직접 협상을 시도하는 등 북·미 간에 적대 관계를 해소하기 위한 다양한 행보가 본격화할 가능성이 크다. 이러한 상황에서 ‘기다리기 전략’을 지속할 경우 이른바 ‘통미봉남’이라는 얘기가 다시 부각될 가능성도 있다.

일각에서는 국민 다수의 지지를 받은 이명박 정부가 국민 여론을 반영해서 대북 정책 재조정을 시도하고 있기 때문에 인내심을 가지고 지켜보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다른 한편에서는 잘되던 남북 관계마저 잘 안 되고 있다는 여론이 비등해지고 있다. 지난 1년여 동안 남북 관계 재조정을 하지 못한 것으로 보아 이명박 정부가 기존 입장을 고수할 경우 앞으로의 전망도 밝지 않을 것이다.

이런 가운데 정부 외곽 연구 기관에서 새로운 아이디어를 냈다. 국책 연구 기관인 통일연구원이 이명박 정부의 대북 정책인 ‘비핵·개방·3000’을 수정해 남북 협력의 새로운 추진 방향으로 ‘비핵·평화, 개방·개혁, 통합·통일’을 병렬적으로 추진할 것을 제안한 것이다. 이 때문에 이명박 정부가 대북 정책 기조를 수정하려는 것인지 여부가 주목되고 있다.

‘비핵·평화, 개방·개혁, 통합·통일’ 병렬적 추진 제안해

이대통령의 대선 공약이던 ‘비핵·개방·3000’은 “북한이 비핵화와 개방을 할 경우 1인당 국민소득 3천 달러를 만들도록 돕는다”라는 조건부 정책이었다. 하지만 이번에 통일연구원이 제시한 개념에서는 비핵과 평화, 개방과 개혁, 통합과 통일을 이루자는 병렬적 정책으로 바뀌었다. 특히 ‘3000’이 사라진 대신 ‘남북 통합을 통한 실질적인 통일 기반 구축’이라는 의미의 ‘통합·통일’이 등장한 점이 눈길을 끈다. 그동안 ‘비핵·개방·3000’ 구상에 대한 우리 사회 내부의 논란이 많았고, 북한도 거부 의사를 분명히 했다는 점에서 수정 검토는 바람직한 것으로 보인다. ‘비핵·개방·3000’은 대선 과정에서 제시된 대북정책 공약으로 야당 시절 집권 세력의 대북 정책과의 차별화를 위해 만든 공약일 수 있으나, 집권 이후에는 실행력이 있고 북측의 거부감이 적은 실용주의 대북 정책으로 재구성할 필요가 있다. 비핵은 우리와 주변 국가들이 강력히 요구할 수 있는 사항이지만, 개방과 3천 달러 시대 개막은 북한이 선택할 사항이다. 그동안 북한은 ‘비핵·개방·3000’을 내정 간섭적인 흡수 통일 방안으로 인식하고 강한 경계심을 보였다.

이러한 북한의 우려를 불식하기 위해서 이명박 정부는 2008년 7월11일 대통령의 국회 연설 무렵부터 ‘상생과 공영의 대북 정책’을 제시하고 ‘비핵·개방·3000’을 전면에 내세우지 않고 하위 개념으로 설정했는데, 이번에 통일연구원이 전면 수정·보완을 건의한 것이다.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남북 관계 재설정에 실패한 것은 남측이 6·15 공동선언과 10·4 선언의 전면 이행을 선언하지 않고, ‘비핵·개방·3000’을 주장하는 데 북측이 불만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북측은 이명박 정부가 ‘비핵·개방·3000’과 ‘상생·공영’을 내세워놓고 실질적으로는 ‘북한 붕괴론’과 ‘급변 사태론’에 기초한 대북 강경 정책을 추진하는 것으로 의심하고 맞대응 차원에서 대남 강경 대응을 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명박 대통령은 북한 문제와 경제 문제는 연관성이 없다는 인식과 함께, 기다리는 것도 전략이라고 하면서 먼저 북한의 태도변화를 요구하며 대북 ‘무시 정책’을 지속하고 있다. 또한 “6자회담에서 진전이 없는 한 우리가 의장국으로 있는 경제·에너지 워킹그룹을 진행하지 마라”라고 지시한 것으로 알려진다. 분명 기다리는 것도 전략일 수 있지만, 사실은 정권 출범 당시에는 북·미 핵협상의 결과를 지켜보면서 대북 정책 조정을 미루고 기다렸어야 하고, 지금은 미국의 오바마 행정부 출범 등에 맞추어 새로운 대북 정책을 구체화할 때이다. 우리의 정권 교체기 때 북·미는 부시 행정부 임기 내 북핵 해결의 성과를 내기 위해서 협상을 진행하고 있었고, 불능화와 테러지원국 해제 등의 주고받기가 기정사실화되었었다. 이러한 시기에 우리는 대북 정책 재조정에 들어가 북핵 해결의 주도권을 상실하고 남북 갈등이 심화되었다.

상생·공영에 대한 청사진 보여주고 신뢰 회복 힘써야

남북 갈등의 모든 책임을 북측에 돌리면서 기다릴 수만은 없다. ‘불량 국가’ 북한을 잘 다루어야 할 책임은 우리 정부에 있다. 불량 국가와 맞대응할 경우 ‘정상 국가’도 불량해질 수 있다. 중국과 타이완이 통상(通商)·통항(通航)·통우(通郵) 등 3통을 실현하고 경제 위기 해소에 공동의 노력을 해나가는 데 비해, 남과 북은 북핵 해결 노력과 남북 관계 발전이라는 선순환의 고리를 찾지 못하고 남북 관계가 부분적으로 차단된 가운데 오바마 행정부 출범을 기다리고 있다. 북한은 한국이 북핵 해결에 주도적 역할을 하기보다는 ‘훼방꾼’이라고 비난하고 있다. 개방 지역인 금강산 관광지구는 폐쇄된 채 해를 넘긴다. 비핵·개방·3000의 관점에서 볼 때도 이것은 모순이다.

오바마 행정부 출범을 앞둔 지금이 대북 정책을 재검토할 절호의 기회이다. 북의 압력과 협박에 ‘굴복’해서 대북 정책을 바꿀 수 없기 때문이다. 오바마 당선인측의 대북 정책 실무자들과 정책을 조율해 엇박자가 나지 않도록 해야 할 것이다. 우리 정부가 대북 강경정책을 지속하는 동안 미국은 테러지원국 해제와 함께 대북 에너지 및 인도적 지원을 지속하고 있다. 검증의정서 채택에 실패했음에도 북핵 해결을 촉진하기 위한 미국의 노력은 지속되고 있다.

급변 사태론에 입각한 대북 정책은 김영삼 정부 시기에 이미 시행했다가 성과를 거두지 못한 일방주의적 대북 강경 정책이다. 가치 중심의 무시 정책은 부시 행정부가 추진했다가 성공하지 못한 정책이다. 전통적 지지층의 반발 등을 의식해 기존의 대북 강경 노선을 고수할 경우 북핵 해결 과정에서 우리 정부의 영향력은 축소되고 북한의 남한 당국 배제 정책은 지속될 것이다. 남남갈등 구조에 비춰볼 때 어떤 대북 정책을 펴더라도 일부에서의 반발은 불가피하다는 점을 고려하면 지지층을 의식하기보다는 남북 관계와 한반도 정세 전반을 고려한 전향적 대북 정책을 추진하고 성과로써 갈등을 해소해야 할 것이다. 정부 당국이 상생·공영을 말할 때 어느 한편에서 급변 사태를 공공연하게 언급할 경우 신뢰를 쌓을 수 없다. 북한이 남측의 대북 정책에 대해 신뢰를 가질 수 있도록 상생과 공영에 대한 우리 정부의 청사진을 만들고 신뢰를 회복해야 한다. 표방한 대북 정책 기조와 실제 추진하고 있는 정책이 표리부동해야 신뢰를 쌓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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