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산업개발을 파산시켜라?
  • 안성모 (asm@sisapress.com)
  • 승인 2008.12.30 02: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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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청인 “채권액 5백억원, 왜 한 푼도 안주나”…현대 “말도 안 돼, 법원에서 판단할 것”

▲ 서울~춘천 민자고속도로 구간 내 휴게소 건설 공사가 한창이다. 정 아무개 변호사는 현대산업개발이 이 토지를 불법 점유해 훼손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시사저널 박은숙
대기업 건설사의 채권자가 채권 회수를 위해 이 회사에 대한 파산 신청서를 법원에 제출해 그 결과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서울~춘천 민자고속도로 사업과 관련해 소송을 진행 중인 정 아무개 변호사는 최근 이 사업을 추진하고 있는 현대산업개발에 대한 파산자 결정을 요구하는 신청서를 서울중앙지방법원에 제출했다. 이에 따라 지난 12월19일 첫 번째 심리가 열렸으며, 향후 추가 심리를 거친 후 파산 여부에 대한 법원의 결정이 내려질 전망이다.

경기 불황의 여파로 인해 2008년 들어 법인에 대한 파산 신청 건수는 예년에 비해 부쩍 늘어났다. 2007년 29건이었던 데 반해 2008년에는 세 배 가까이 많은 80여 건의 법인 파산 신청서가 법원에 제출되었다. 특히 그동안 자주 접할 수 없었던 채권자의 법인 파산 신청도 건수가 늘어났다. 서울지법의 이용운 판사는 “지금 회사를 청산하는 것이 채권자에게 유리하다고 판단될 경우 파산 신청서를 제출할 수 있다”라고 설명했다.

이번 현대산업개발에 대한 파산 신청도 흔치 않은 경우에 속한다. 법인 파산 담당인 한정석 판사는 “채권자로부터 파산 신청이 접수되는 일은 자주 있지 않다. 특히 대기업을 대상으로 한 파산 신청은 이번이 거의 유일하다고 볼 수 있다”라고 밝혔다.

그동안 투자사가 중소기업을 대상으로 법원에 파산 신청을 요구한 적은 있지만 개인이 대기업을 상대로 파산 신청서를 제출한 적은 없었다는 것이다. 최근 코스닥업체인 코아정보시스템에 대한 파산 신청도 이 회사의 전환사채 5백만 달러를 가진 외국계 투자사 메릴린치가 법원에 제출한 것이다. 절차는 일반 파산 신청과 크게 다르지 않다. 신청서가 접수되면 가능한 빠른 기일 내에 파산 신청을 한 채권자와 채무자인 회사의 대표이사나 위임장을 지닌 직원을 출석시켜 심리를 갖는다. 이후 관련 자료를 제출받은 법원이 이에 대한 분석과 평가에 들어가며, 몇 차례 심리 과정을 더 거친 후 파산의 원인이 있는지를 판가름한다. 이러한 과정이 보통 두세 달 정도 걸린다고 한다.

파산의 기준으로는 우선 신청자가 해당 회사의 채권을 지녔는지 여부부터 따지게 된다. 그런 후 회사의 재무 상황을 살피게 되는데, 부채가 자산을 초과할 경우 파산의 원인이 될 수 있다. 또, 채권자의 권리 이행 요구에 대한 회사의 실현 의지와 현실적인 이행 가능성도 함께 검토해 파산 여부를 판단한다. 한정석 판사는 “파산 신청권의 남용은 아닌지도 살피는 등 신중하게 처리할 것이다”라고 밝혔다. 

이와 관련해 정변호사는 현대산업개발이 2005년 12월21일께부터 본인 소유의 경기도 가평군 설악면 미사리 일대 토지 20필지를 무단으로 벌채해 그 채권액이 최소한 5백억원에 이르는데도 불구하고 불법 점유 및 훼손 행위를 계속하는 한편, 단 한 푼도 변제하지 않고 있어 파산의 원인이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 토지는 서울~춘천 민자고속도로 구간 내 휴게소 부지로 설계되어 지금 한창 공사 중이다.

“미사리 일대 20필지 무단 벌채하고 휴게소 공사 중”

그는 또 전자 공시된 현대산업개발의 올해 3분기 보고서를 보면, 현재 이 회사의 자산 총계가 1조1천2백억원으로 되어 있지만 투자 활동으로 인한 현금 흐름이 마이너스 1천7백76억원에 달하고 이를 단기 차입금과 사채 발행으로 보완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와 함께 서울~춘천 민자고속도로 사업과 관련해 현대산업개발이 허위 공시로 주가를 조작하고, 사업보고서 제출 및 공시에서 고의 누락을 통해 허위 보고를 한 것 등에 대해 금융감독원에서 조사가 진행 중인 상태라고 주장했다.

정변호사는 현대산업개발이 원상 회복 비용 및 그동안 불법 점유로 인한 손해배상으로 막대한 금액의 채무를 부담하고 있는데도 오히려 고의로 불법 점유를 계속하면서 채권자의 손해를 가중시키고 있을 뿐 채무를 변제할 의사가 없어 파산 선고를 요구한다고 밝혔다.

반면, 현대산업개발의 입장은 다르다. 법무팀 관계자는 “말도 안 되는 소송이다”라며 정변호사의 주장을 반박했다. 그는 “채권보다 회사의 빚이 더 많다고 생각되면 파산 신청서는 자유롭게 낼 수 있다. 하지만 재판이 되느냐는 법원에서 판단하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특히 “채권 소송이 진행 중이며 아직 구체적으로 확정이 안 된 상태이다”라며 정변호사의 채권자 자격 여부에 대해서도 문제를 제기했다. 회사는 최근 대법원장 비서실장에서 물러난 김종훈 변호사를 법정 대리인으로 내세웠다.

이에 대해 정변호사는 “대법원 판결이 남았지만 이미 4건의 소송에서 이겼기 때문에 채권 관계에서 문제가 없다. 채권액도 현재 공사 중인 고속도로 휴게소를 원래 상태로 복구하려면 그 비용이 5백억원 이상 들 것이다”라고 반박했다. 그는 “대기업이라고 할지라도 채권액을 지급할 능력이 없다면 파산 절차를 밟는 것이 당연하다”라고 말했다.

정변호사는 2008년 9월25일 정부를 비롯해 서울~춘천 고속도로, 현대산업개발, 구산토건 등을 상대로 낸 소유권방해금지청구 1심에서 승소했다. 서울지법은 해당 토지에 관해 토목공사, 건축공사를 하거나 공사 차량을 출입, 통행시키거나 하는 등 일체의 소유권 방해 행위를 해서는 안 된다고 판결했다. 이에 현대산업개발 등 피고측은 항소를 제기하는 한편 별도로 강제집행정지를 신청했다. 법원은 2008년 10월8일 항소심 판결 선고 때까지 집행을 정지하도록 결정을 내렸고, 이에 따라 공사는 예정대로 진행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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