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제보다 ‘사계’가 더 좋아
  • 이재현 (yjh9208@korea.com)
  • 승인 2009.01.06 0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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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모와 배신에 시달린 병약한 천재 음악가 안토니오 비발디

▲ 감독: 장 루이 길예르모 / 주연: 스테파노 디오니시
먹어야 산다는 명제 앞에서 아무도 자유로울 수는 없다. 황제도 때가 되면 먹어야 하고 거지도 끼니가 찾아오면 먹어야 한다. 먹자면 벌어야 하고 벌자면 굴욕을 감내해야 한다. 자존심을 내세웠다가는 먹을 수 있는 ‘밥’이 날아간다. 그 밥은 나만 먹는 밥이 아니다. 가족도 먹어야 하니 입 따라 더 벌어야 한다.

이 밥은 예술가들이라고 해서 봐주지 않는다. <아마데우스>의 모차르트는 낭비벽으로 늘 가난했고 나중에는 돈을 받고 <레퀴엠>을 작곡하다 죽었다. 베토벤도 다르지 않았다. 그들은 안정적인 밥을 얻기 위해 궁정악장이 되든가 전혀 재능이 없는 귀족에게 음악을 가르쳐야 했다.

주교, 신부로서 할 일 다 하라 꾸중

안토니오 비발디의 일대기를 다룬 영화 <비발디>에서 비발디(스테파노 디오니시 분)는 바이올린 연주자이자 작곡가로 등장한다. 스테파노 디오니시는 <파리넬리>를 통해 우리에게 알려진 인물이다. <비발디>는 비발디가 고아원 원생들과 <사계>를 연주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클래식 음악의 문외한일지라도 <사계>중 ‘봄’은 누구나 한 번쯤 들어보았을 정도로 유명한 곡이다. 연주가 끝나자 덴마크 국왕인 프레데릭 4세는 비발디를 무도회에 초대한다. 연주의 대가로 돈을 받은 비발디는 집으로 돌아와 가족들에게 오페라를 올릴 것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가난에 시달린 가족들은 오페라가 마땅찮다. 굴속 같은 집에서 짐승처럼 사는데 무슨 오페라인가. 비발디가 오페라를 무대에 올릴 것이라는 소문이 퍼지자 그에게 신부 서품을 내린 주교가 크게 화를 낸다. 사제이면서 미사도 집전하지 않고 점잖지 못한 오페라나 입에 올리는 신부라니. 주교는 그에게 봉급을 주는 처지이다. 하지만 비발디는 자신의 병약함을 호소하면서 주교에게 양해를 구한다. 그가 점점 유명해지자 주교는 비발디의 친구들과 함께 그를 향한 음모를 꾸며나간다. 영화에는 비발디가 작곡한 40여 곡이 내내 흐르고, 스테파노 디오니시는 진짜 병약한 인물처럼 연기해 보는 이의 눈길을 끈다.

자신의 명성을 지키기 위해 노력하는 비발디의 모습이 조금은 어이없게 보이지만 그에게는 ‘밥’을 지키는 일이다. 가난에 치이고 음모와 배신에 시달리는 비발디를 보는 모습은 유쾌하지 않다. 그러나 주옥같은 그의 음악을 90분 넘도록 들을 수 있는 것은 행운이다. 1월8일 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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