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르단강가의 핏빛 원한 누가 씻으랴
  • 조홍래 편집위원 ()
  • 승인 2009.01.06 0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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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팔레스타인, 일촉즉발 위기 / 5차 중동전 우려 속 국제 사회 중재 ‘안간힘’

▲ 지난해 12월30일 프랑스 파리 외무부 청사에서 유럽 각국의 외무장관들이 모여 가자 지구의 휴전을 요청하기 위해 관련 사항들을 협의하고 있다. ⓒEPA

가자 지구 내 한 병원. 20대 여인이 입원한 남편의 면회를 신청했다. 민간복 차림의 하마스 민병대는 여인의 청을 거절했다. 여인이 떠난 지 15분 후 그녀의 남편은 다른 5명과 함께 들것에 실려 병원을 나왔다. 다른 병원으로 이송한다는 것이었다. 바로 그 순간 남자의 머리에 총알이 발사되었다. 너무 가까이서 총격을 받아 골수와 피가 뒤섞여 튀어나왔다. 하루 동안 이런 식으로 병원에서 처형된 사람은 5명이나 된다. 이유는 이스라엘에 협조했다는 것이다. 이들은 가자 지구 감옥에 수용되어 재판을 기다리고 있다가 이스라엘의 가자 공습이 시작된 후 병원으로 옮겨져 잔혹하게 처형되었다. 처형 장면을 목격한 군중 속의 한 여인에게 경비원이 비웃듯이 말했다. “무서운가? 이 인간들은 하마스 전사들을 죽인 이스라엘에 협력한 반역자들이야.”

이 병원에는 1백15명이 수용되어 있었으나 환자가 처형되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이스라엘의 공습이 시작된 후 하마스는 돌연 복수의 화신으로 변했다. 이스라엘과의 전투에서 부상을 입고 가자 지구 내 9개 병원에 입원한 전사들은 대략 1천5백명이다. 이제 복수극이 시작된 이상 앞으로 얼마나 더 처형될지 모른다. 면회를 온 가족들은 공습과 처형의 이중 공포에 떨고 있다.

‘하마스’에 대한 이스라엘의 보복 공습으로 민간인 피해 커

하마스(Hamas)는 ‘이슬람 저항 운동’을 뜻하는 아랍어의 약자이다. 하마스를 탄생시킨 것은 1987년 발생한 가자 지구 내 난민수용소 폭동 사건이었다. 6년간 계속된 이 소요 사태로 팔레스타인인 2천명과 이스라엘인 1백92명이 죽었다. 하마스는 이를 계기로 팔레스타인 내 또 다른 무장 조직 파타(Fatah)를 추방하고 지난해 가자 지구를 장악했다. 수니파로 구성된 하마스는 파타보다 더 강경한 준군사 조직으로 2006년 실시된 선거에서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의석 1백32석 가운데 과반수가 넘는 76석을 차지해 정치적 뿌리를 굳혔다. 이후 팔레스타인의 합법적 정당이 되려는 꿈을 안고 의료·교육·복지 등 사회적 프로그램을 통해 팔레스타인 안에서 상당한 인기를 얻었다. 문제는 하마스의 강령이다. 이 강령은 이스라엘을 파괴하고 그 자리에 팔레스타인이슬람 국가를 건설하는 것을 대의로 삼고 있다. 강령대로라면 하마스와 이스라엘은 같은 하늘을 이고 살 수 없다. 하마스의 출현과 함께 이스라엘과의 충돌이 격화되고 잦아진 것은 물론이다. 이 강령은 또 이전의 파타 조직이 부패해 이스라엘에 팔레스타인 땅을 빼앗겼다고 주장하면서 실지 회복의 유일한 길은 무장 저항을 통한 이스라엘의 파괴라고 다짐하고 있다. 강령은 마치 나치의 유대인 말살 정책을 연상케 하는 ‘유대인 학살 음모’를 반영하고 있다. 이스라엘이 하마스를 테러 그룹으로 보는 것도 그 때문이다. 2000년 사망한 팔레스타인해방기구(PLO) 의장 야세르 아라파트와는 질적으로 다른 데다 핵 개발로 이스라엘을 위협하는 이란의 강력한 지지를 받고 있는 점도 눈엣가시이다. 

이스라엘에 대한 하마스의 증오는 이스라엘 정보 기관 모사드가 하마스 궤멸을 위한 협력자를 모집한 일로 가열되기 시작했다. 이때부터 하마스는 이스라엘에 대한, 특히 민간인에 대한 자살 폭탄 공격을 강화했다. 자살 공격과 이스라엘의 보복이 되풀이되면서 쌍방에 대한 국제 여론이 나빠지자 양측은 2008년 6월 휴전에 합의했다. 이집트의 중재로 이루어진 휴전은 그러나 이집트가 은근히 이스라엘 편을 들고 있다는 의혹과 함께 지난 11월 하마스가 이스라엘 남부 민간 지역에 대한 로켓 공격을 시작하면서 깨지고 말았다.

 이번 충돌은 1967년 이래 최악의 것이다. 이스라엘은 예비군까지 소집하면서 전면전을 준비하고 있다. 이스라엘군이 가자 지구를 침공하면 5차 중동전으로 확대될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다행히 이스라엘이 24시간 휴전을 제의하는 등 자제력을 보여 확전 가능성은 없어 보인다. 미국은 휴전을 먼저 깬 하마스에 모든 책임이 있다는 입장이다. 콘돌리자 라이스 국무장관은 하마스의 거듭된 로켓 공격이 폭력을 재발시켰다고 비난했다. 그러나 국제 여론은 이와 조금 다르다. 하마스의 로켓 공격으로 인한 이스라엘의 인명 피해는 민간인 3명 사망, 6명 부상이다. 이에 비해 이스라엘의 보복 공습에 따른 팔레스타인 사상자는 2천명을 넘었다. 인명 피해의 비율로 미루어 이스라엘이 과잉 대응을 했다는 여론이 우세하다. 이스라엘 건국 이후 60년간 이스라엘의 공격으로 죽은 팔레스타인인은 5천명 가까이 된다. 독일을 제외한 유럽 각국과 요르단, 이란 그리고 러시아까지 이스라엘 비난에 가세했다.

하마스가 비교적 잘 지켜오던 휴전을 왜 깨트렸는지에 대해서는 추측이 무성하다. 미국의 정권 교체기를 이용해 팔레스타인 문제를 부각시킴으로써 이스라엘의 양보를 얻어내려는 계산을 했다는 분석이 있다. 이스라엘 입장에서는 오는 2월로 다가온 총선에서 강경 우파 야당인 리쿠드 당의 도전에 직면한 중도 노선의 에후드 올메르트 총리와 집권 카디마 당의 새 리더로 떠오르는 지피 리브니 외무장관 등이 선거를 의식해 하마스에 대한 강경 조치를 취했다는 것이다. 부시에 비해 이스라엘에 덜 동정적인 오바마의 등장도 일조를 했다. 이스라엘은 또한 강경파인 하마스를 없애고 비교적 온건한 파타와 협상하려는 속셈도 가지고 있으나 하마스와 파타 간 내분으로 여의치 않다.  

▲ 요르단강 서안 마을 헤브론에서 이스라엘 군인들이 팔레스타인 시위대와 대치하고 있다. ⓒAP통신

주변국들의 정치적 계산 때문에 휴전 깨졌다는 의혹도 있어

원인이 무엇이든 이번 충돌은 예사롭지 않다. 이스라엘은 수천 명의 예비군에 소집령을 내리고 지상전 준비에 들어갔다. 이에 맞서 하마스는 이스라엘에 대한 미사일 공격까지 불사한다는 태세이다. 레바논의 무장 조직 헤즈볼라는 하마스에 대한 전폭적인 지지를 약속했다. 이번 충돌에서는 이집트가 한몫을 하는 것이 특이하다. 이집트는 가자 지구와의 국경을 봉쇄하고 이집트로 입국하는 난민들을 차단하고 있다. 이란의 최고 종교 지도자 하메네이는 이집트를 간접적으로 지목하면서 인명 살상보다 더 무서운 범죄는 무슬림을 자처하는 일부 아랍국들이 이 사태에 침묵하거나 이스라엘에 동조하는 범죄를 저지르고 있다고 비난했다. 이집트는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 하마스와 이스라엘의 휴전을 중재했으나 이스라엘의 각본에 놀아났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이집트로서는 하마스를 이란의 조종을 받는 대리전 세력으로 보고 있어 서로 간에 불신의 골이 깊다. 이집트, 사우디, 이스라엘, 요르단이 하마스를 파멸시키기 위한 비밀 동맹을 맺었다는 소문도 나돈다.

하필이면 리브니 이스라엘 외무장관이 얼마 전 카이로를 방문함으로써 이집트에 대한 의혹에 불을 붙였다.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 간에는 천년에 걸친 원한의 강이 흐르고 있다. 팔레스타인은 추방된 고향으로 귀향할 권리를 주장하고 이스라엘은 생존권으로 맞서고 있다.

오토만 제국 붕괴 이후 유랑의 길을 떠난 팔레스타인 난민은 대략 1천만명이다. 이 가운데 절반이 가자와 웨스트 뱅크 그리고 여타 아랍국에 살고 있다. 두 민족이 평화적으로 살 수 있도록 하는 수많은 협상과 협정이 부침했으나 터널의 끝은 보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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