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싼 몸값’에 시비만 붙였네
  • 이석 (ls@sisapress.com)
  • 승인 2009.01.13 02: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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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우조선해양, 매각에 차질…한화와 산업은행의 결별 수순 아니냐는 관측도

▲ 경남 거제시 대우조선해양 옥포조선소에서 직원들이 선박을 건조하고 있다. ⓒ연합뉴스

대우조선해양 인수전이 또다시 안갯속에 빠져들었다. 인수 방식이나 대금 문제를 둘러싼 협상 주체 간 ‘기 싸움’이 격해지면서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상황으로 치닫고 있다. 시장에서는 “산업은행과 한화그룹이 결별 수순을 밟기 위해 명분 쌓기에 들어간 것 아니냐”라는 얘기가 벌써부터 흘러나오고 있다.

산업은행(이하 산은)은 지난해 10월24일 대우조선해양 매각을 위한 우선협상대상자로 한화컨소시엄을 선정했다. 그 다음 달 11월14일 양해각서를 체결했고, 현재는 오는 1월 말 본 계약 체결을 앞두고 있다. 예상대로라면 일사천리로 매각 작업이 진행되어야 한다. 특히 한화그룹이 그동안 대우조선 인수에 적극적이었기 때문에 웬만한 문제는 인수에 큰 걸림돌이 되지 않을 것으로 재계에서는 내다보았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미국발 금융 위기가 실물 경제로 급속히 전이되면서 변수가 발생했다. 보유 자산을 매각해 인수 대금을 마련하겠다던 한화측의 계획에 차질이 생긴 것이다. 한화는 산은에 매각 대금의 분납이나 연기를 요구했지만 거절당했다. 그러자 이번에는 한화측이 본 계약 체결 전 실사 미이행을 이유로 산업은행을 압박하고 있다.

그러자 산은이 기관투자가와 함께 별도의 PEF를 조성해 한화가 내놓은 물건을 사주는 방안을 제시했다. 인수 자금 조달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한화 입장에서는 이 자금으로 대우조선 인수 자금을 확보할 수 있다. PEF에 매각된 자산은 금융 위기가 사라진 3~5년 뒤 시장에 내다팔아 초과 수익이 생기면 한화에 되돌려주게 된다. 그렇게 되면 “현재로서는 시장 상황이 좋지 않아 무리하게 자산을 매각하면 제값을 받을 수 없다”라는 한화측의 이의제기도 해소할 수 있다.

산업은행, 한화에 인수 자금 조달 방안 제시했지만 안 먹혀

▲ 한화그룹 김승연 회장. ⓒ시사저널 임준선

민유성 산업은행장도 최근 “펀드의 운용은 자산운용사에 맡길 것이다. PEF가 시장이 회복된 뒤에 자산을 팔아 수익이 나면 비용을 제하고 돌려줄 생각이니 한화로서는 손해 볼 것이 없다”라고 말했다.

산은 입장에서는 일단 한화와의 계약을 성사시키는 것이 좋다. 우선 애초의 이행각서 내용을 바꾸지 않고 매각 대금을 받아 헐값 매각 논란을 피할 수 있게 된다. 대출을 비롯해서 직접적인 자금 지원을 해주었다는 특혜 시비에도 걸리지 않아 한화측에도 유리한 ‘윈윈’의 거래가 될 수 있다는 것이 산은측의 시각이다.

그러나 이는 어디까지나 계약을 성사시키려는 산은의 바람일 뿐이다. 한화는 산은의 이번 제안을 시큰둥하게 받아들이고 있다. 한화측은 산은의 제의가 언론을 통해 흘러나온 것에 대해 불쾌해하고 있다. 그룹의 한 관계자는 “지난 1월8일 언론에 공개되었지만 우리에게 통보된 것은 불과 이틀 전이었다. 계약 관련 사항은 보안을 유지해야 할 의무가 있는데, 이것을 왜 미리 언론에 흘렸는지 모르겠다”라고 불만을 표시했다.

이 관계자는 이어 “우리가 요구한 원칙은 본 계약 전 실사와 함께 우발적 리스크에 대해서는 보완 장치를 해달라는 것이다. 또, 이번 잔금 납입 기한을 연기해달라는

▲ 한국산업은행 민유성 총재 ⓒ시사저널 임영무

것이 전부이다”라면서 산은의 제안이 한화의 입장과 거리가 있음을 에둘러 표현했다.

산은 주변에서는 한화그룹이 대우조선 매각 우선협상자 자격을 박탈당할 것이라는 얘기가 나오고 있다. 익명을 요구한 한 증권 애널리스트는 “산업은행이 한화그룹의 자금 조달 능력에 의구심을 나타내고 있다. 때문에 본 계약 체결 대신 계약 파기 쪽으로 가닥을 잡았다는 소문이 파다하다”라고 귀띔했다. 금융가에서는 한화나 산은이 계약을 파기시키는 데 묵시적으로 동조하고 있는 것이 아니냐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증권가에서는 본 계약이 파기될 경우 손해를 보는 쪽은 한화가 아니라 산업은행이라고 보고 있다. 한화가 우선협상대상자로 꼽히자 한화그룹 관련주는 일제히 하향 곡선을 그었다. 불확실성이 증가되었기 때문이다. 신용평가 기관에서도 한화컨소시엄에 들어간 한화 계열사들을 신용등급 하향 검토 대상에 올리는 등 한화측은 적지 않은 타격을 받았다. 따라서 증권가에서는 협상이 결렬될 경우 한화 계열사들의 주가가 급등해 한화가 위기의 터널에서 빠져나오게 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이에 반해 산은은 협상이 깨지면 적지 않은 손해를 보게 된다. 한화의 계약 이행보증금 3천억원을 챙긴다고 해도, 2차 입찰에서 6조원대의 인수가액을 써낼 입찰자가 없을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한화가 떨어져나갈 경우 가장 유력한 인수 후보로는 포스코가 거론되고 있다. 그러나 포스코에서는 “아직 거론할 사안이 아니다”라며 입장 표명을 꺼리고 있다.

한화, 해외 프로젝트 리스크 등 감안해 계속 실사 요구

금융가에서는 최근 금융 상황과 조선업계 경기 싸이클을 감안하면 인수가액은 적어도 2조원 이상 떨어질 것으로 보고 있다. 그럴 경우 산은 입장에서는 매각 자체를 몇 년 뒤로 미룰 가능성이 크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에 빠질 수 있는 것이다.

 문제는 3천억원에 달하는 이행보증금의 향방이다. 한화는 지난해 말 계약 이행 보증금으로 3천억원을 산업은행에 맡겼다. 만약 본 계약이 불발될 경우 이 돈은 산업은행에 들어가게 된다. 그러나 계약 불발의 귀책 사유가 산은 쪽에 있는 것으로 드러나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한화가 이행보증금을 돌려받을 여지가 있는 것이다. 한화측이 최근 매각 주체인 산업은행을 상대로 원만한 실사 보장을 강하게 요구하는 배경에는 그런 복선이 깔려 있다고 할 수 있다.

실제 재계에서는 그동안 동유럽이나 아프리카 등 대우조선의 해외 프로젝트에서 예상치 못한 리스크가 튀어나올 수 있다고 보아왔다. 한화에서 이런 리스크를 감안해 실사를 주장했지만, 대우조선 노조의 반대로 진행하지 못했다. 한화는 그 책임을 산업은행 쪽으로 돌리고 있다. 매각 당사자로서 실사를 할 여건을 마련해주어야 함에도 그렇게 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산업은행도 현재 별다른 해명을 하지 못하고 있다. 산은 관계자는 “우리도 가급적이면 빨리 실사를 하기를 원한다. 그러나 노조의 반대가 심해 어떻게 할 수 없다”라고 토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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