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꾸 속 터지는‘과자 속 벌레’
  • 이은지 (lej81@sisapress.com)
  • 승인 2009.01.13 02: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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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콜릿에서 또 이물질…방충 포장 시급

▲ 롯데제과가 수입해 유통하고 있는 초콜릿에서 나온 애벌레.

초콜릿에서 또다시 이물질이 나왔다. 이번에는 롯데제과가 수입해 유통하고 있는 ‘허쉬 초콜릿’이다. 제보자 김 아무개씨(38, 전북 정읍)는 “가족 4명과 함께 허쉬 초콜릿을 먹다가 애벌레를 발견해 지난해 12월22일, 롯데제과에 신고했다. 롯데에서 먼저 얼마의 피해보상을 원하냐고 묻길래 가족 한 명 당 100만원의 가치도 안 되느냐고 말했다가 식파라치 취급을 하더라. 그러면서 정녕 피해보상을 받고 싶으면 내과와 정신병원에 가서 신체적, 정신적 피해 진단서를 끊어오라는 말을 듣고 어이가 없었다”라며 분통을 터뜨렸다. 그는 보상은 이제 바라지도 않고 롯데가 전수검사를 철저하게 해 원인을 밝혀냈으면 하는 바람을 전했다. 롯데제과는 김씨의 신고를 받고 이틀 뒤, 식품의약품안전청(이하 식약청)에 이 사실을 알렸다. 조만간 식약청의 실사가 진행될 예정이다. 롯데제과는 조사 결과를 지켜보면서 대응해 나간다는 입장이다.

이제는 새삼스럽지도 않다. 롯데제과의 경우 지난해 4월에는 ‘에어셀’에서, 9월에는 ‘가나 초콜릿’에서 애벌레가 나왔다. 오리온제과의 ‘초코다이제’에서도 애벌레가 나왔다. 한국소비자단체협의회가 지난해 6월부터 11월까지 6개월간 초콜릿에서 이물질이 나왔다고 신고받은 건수만 48건이었다. 가공식품 전체로 범위를 확대하면 이물질 발견 신고 건수는 1천8백6건이나 된다. 수많은 소비자 시민단체에 접수된 것을 모두 합치면 그 수는 1만건도 넘을 것으로 추정된다.

초콜릿을 비롯한 식품의 이물질 신고 건수에 대한 공식적인 통계 자료는 없다. 식약청이 식품에서 이물질이 나오는 문제를 별도로 관리하기 시작한 것은 지난해 3월로 ‘쥐머리 새우깡 사건’ 이후부터이다. 식약청 식품관리과 최순곤 사무관은 “신고가 들어오면 실사 나가고 조사를 하는 데에만 2~3개월이 걸린다. 그렇다 보니 전체적으로 신고가 얼마나 들어왔고 조사 결과가 어떻게 나왔는지 정확하게 맞춰서 통계 처리를 하지 못했다”라고 해명했다.

 사후 대책도 제대로 세우지 못했다. 조사 이후 업체가 어떤 식으로 개선을 했고 재발 방지를 위해 어떤 노력들이 이루어졌는지를 파악하지 못했으니 대책이 세워질 리 만무하다. 단지 식품위생법을 개정해 감독을 강화하고, 유통시설 기준을 까다롭게 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이것만으로 초콜릿을 비롯한 식품에서 이물질이 나오는 것을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는 없다. 전문가들은 가공식품의 포장지 개발이 현실적인 대안이 될 수 있다고 입을 모은다. 연세대 패키징학과 김재능 교수는 “흔히 쌀벌레로 불리는 화랑곡나방 애벌레는 턱 구조가 발달되어서 유리나 철, 플라스틱을 제외한 포장지는 다 뚫는다. 애벌레가 뚫을 수 없는 알루미늄박이나 비닐 포장지를 개발해낸다면 이물질 발견 건수를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다”라고 주장했다.

‘포장 산업은 하청 업체 몫’ 인식…방충 포장지 개발에도 소극적

업체도 이미 포장지 개발을 위한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롯데제과 문영태 홍보팀장은 “2007년 초부터 고려대와 산학협력을 맺어 방충 포장재 개발을 위한 연구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본사 내 포장연구팀에서도 연구를 한다. 친환경적이면서도 애벌레가 뚫지 못하는 강도 높은 포장지 개발이 쉽지 않다. 설령 개발을 하더라도 원가 부담 때문에 실용화로 이어지기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이다”라고 설명했다.

▲ 방충 포장지를 개발 중인 고려대 실험실. ⓒ시사저널 박은숙

롯데제과처럼 포장지 개발에 연구비를 쓰는 기업은 극소수이다. 대다수 기업은 포장만 전문적으로 하는 중소 업체에 하청을 준다. 포장업체가 영세한 탓에 기술 개발은 거의 불가능하다. 김교수가 포장지 개발에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이 필요하다고 강조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김교수는 “식품에서 이물질이 나오는 것은 전세계적인 문제이지만 이를 해결한 포장지는 아직 없다. 지식경제부가 선두에 나서 연구비를 투자하고 포장지 개발을 이끌어낸다면 또 다른 수익 창출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라고 말했다.

정부는 여전히 업체가 감당해야 할 문제로만 인식하고 있다. 지식경제부 디자인 브랜드과 권병기 사무관은 “식품의 이물질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포장지 개발에 관여하지도, 규제를 하지도 않는다. 식품 안전과 관련한 문제는 모두 식약청이 전담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식약청의 입장은 또 다르다. 식약청 용기포장과 관계자는 “이물질 문제는 업체와 소비자와의 신뢰 문제인 만큼 정부가 관여할 사항이 아니다. 다른 나라에서도 정부가 개입하지 않는다. 포장지 개발도 마찬가지이다. 업체가 개발한 포장 용기에 한해 안전성 유무를 확인하는 업무를 맡고 있을 뿐이다. 우리가 나서서 연구 개발을 하거나 지원 사업을 하지 않는다”라고 잘라 말했다.

다만, 정부는 포장 산업 육성 차원에서 2006년 10월, 정부 출연 연구기관인 한국생산기술연구원 내에 패키징산업지원센터(이하 패키징센터)를 만들었다. 하지만 포장지 개발로 국민의 먹을거리 불안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것과는 거리가 멀다. 이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가 있다. 패키징센터가 설립되고 난 지 한 달 뒤, 지금과 똑같이 애벌레 문제가 이슈화되었다. 패키징센터 조계민 소장은 이참에 업체와 포장 연구 기관과 함께 컨소시엄을 구성해 포장지 개발에 나서려고 했으나 예산이 나오지 않았다.

먹을거리 관련 포장 산업은 수출에도 도움…정부 지원 절실

2년이 지난 지금도 방충 포장 개발에 할당된 예산은 전혀 없다. 포장 기술 개발에 배정된 예산 35억원 모두 썩는 포장지 개발을 목적으로 한다. 조소장은 “올해부터는 방충 포장 개발을 추진해보려고 계획은 하고 있다. 하지만 예산 확보가 쉽지 않다. 이 개발뿐만이 아니다. 나노 기술이 접목된 포장지나 방청 필름(금속 부식을 방지하는 수출 포장용 비닐) 개발을 위한 예산도 필요하다. 하지만 예산처는 포장에 무슨 기술이 필요하냐고 말한다”라며 답답한 속내를 털어놨다.

조소장의 말대로 포장 산업은 먹을거리 불안 문제를 해결함과 동시에 엄청난 부가가치를 창출해낼 수 있는 신성장 산업이다. 예를 들어 일본으로부터 전량 수입하고 있는 방청 필름이나 채소의 신선도 유지를 위해 구멍 뚫린 포장지 등을 국산화한다면 수익 창출로 이어질 수 있다. 또한, 일본의 요구대로 김치의 숙성도가 표시되는 포장지를 개발하고 장미의 신선도를 유지할 수 있는 포장지가 개발된다면 수출이 훨씬 늘어날 수 있다.

하지만 정부의 인식은 낮다. 1996년 ‘산업디자인포장진흥법’이 ‘산업디자인진흥법’으로 개정되면서 10년 넘게 포장 산업의 지원 근거조차 없는 상황이다. 조소장은 “정부가 나서서 포장 산업의 중·장기적인 로드맵을 그려야 한다. 어떤 포장지를 개발할지, 어떤 연구원을 어디에 배치할지를 정해야 효과적인 기술 개발이 가능하다”라고 강조했다. 김교수 역시 “GDP가 1만5천 달러 시대에는 디자인이 중요하게 인식된다. 하지만 2만 달러를 넘어 3만 달러 시대로 가면 디자인도 대동소이하기 때문에 결국은 포장이 제품의 경쟁력을 결정짓는다. 포장 기술의 발달로 햅반이 등장해 밥 시장을 만들어낸 것처럼 없던 시장도 만들어낼 수 있는 것이 포장 산업이다”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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