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방통행 정권, ‘오만’ 버리고 ‘설득의 리더십’을 배워라
  • 이상돈 (중앙대 법대 교수) ()
  • 승인 2009.01.13 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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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선 때의 표심을 아전인수식으로 해석하는 ‘오판’ 탓에 실책 거듭…적대감 비우고 국민의 마음 움직이는 국정을

▲ 이상돈 (중앙대 법대 교수)

이명박 정권이 들어선지 1년이 되어 가지만, 정권은 불안할 뿐더러 인기도 없다.

여러 가지 요인이 있을 것이다. 이명박 대통령은 지난 대선 때 2위와의 큰 표 차이로 당선되었지만, 투표율이 저조한 탓에 전체 유권자의 30% 지지를 받는 데 그쳤다. 이대통령과 그 주변 사람들은 이러한 표심(票心)을 자기들에게 유리하게만 해석했다. 2등과 표차가 컸다는 점만 생각했고, 전체 유권자 중 지지율이 낮았다는 점은 무시했다. 

이러한 ‘오판’은 ‘오만’으로 흘렀고, 그런 결과로 인수위원회 시절부터 잡음이 많았다. 정권이 들어서기도 전에 서둘러 단행한 정부 부처 통합도 적지 않은 부작용을 일으켰다. 총선 때에는 박근혜 전 대표 계열을 공천에서 대거 탈락시켜 ‘친박연대’라는 급조된 정당의 등장을 초래했다. 한나라당이 총선에서 압승했다고는 하나 여론이 정권에 대해 호의적이지 않은 징후는 많았다. 이재오, 이방호 등 MB계 핵심 멤버가 낙선했고, 강재섭 당시 당 대표는 아예 출마를 포기했다. 대통령의 성급한 미국 방문은 쇠고기 파동을 일으켰고, 급기야는 ‘촛불’이라는 전대미문(前代未聞)의 사태를 초래했다.

이명박 정권은 그 후에도 실책을 거듭했다. 헌법재판소 판결을 기다려서 처리하면 될 종합부동산세 개편 문제를 성급히 꺼내서 ‘강남 부자당’이라는 비난을 자초했다. 미국에서 시작된 금융 위기에 성급하게 대처하고, 무책임한 발언을 해서 위기를 키웠다. 대운하에 대해서도 끊임없이 말을 바꾸어서 불신을 키웠다. 방송 관련법과 사이버모욕법, 불법집회집단소송법 등 논쟁이 많은 법안들을 무리하게 통과시키려다 민주당의 의사당 점거 농성 사태를 초래했고, 결국 박근혜 전 대표의 말 한마디에 주저앉고 말았다.

이같은 일련의 사태는 정권의 ‘오만’이 초래한 것이다. ‘오만’은 ‘신뢰’를 붕괴시키기 마련이고, 한 번 ‘신뢰’를 잃어버린 정권은 리더십을 발휘할 수 없다. 그래서 이 정권은 위기에 봉착해 있는 것이다. 더 큰 문제는 당사자들이 위기를 인정하지 않고 오히려 이를 다른 것에 전가(轉嫁)하려는 데 있다. 비판을 수용하기는커녕 오히려 자기들 지지 세력 안에 갇혀 지내고 있는 것이다. 총선에서 심판을 받은 이재오 전 의원의 복귀설을 퍼뜨리는 등 민심과는 관계없는 일만 하고 있다.

방송 관련법 등 첨예한 논쟁이 있는 쟁점 법안을 다른 민생 법안과 함께 일괄적으로 통과시키겠다고 나서면서 공청회를 열거나 전문가들의 의견을 수렴하는 노력도 하지 않았다. 야당과 국민을 설득하려는 노력도 전혀 하지 않은 것이다. 그러면서 한나라당의 원내대표가 겨우 한다는 말이 “국회는 다수결로 움직인다”라는 것이었다.  

국민의 대표 기관인 국회는 궁극적으로 ‘다수결’ 원칙에 의해 움직이는 기관이다. 하지만 입헌주의에는 ‘다수결’ 이상의 그 무엇이 있다. 만일 다수결이 그렇게 만능이라면 성문(成文) 헌법은 존재할 필요가 없다. 실제로 우리 헌법은 다수결을 견제하는 장치를 많이 심어놓았다. 대통령은 국회가 다수결로 통과시킨 법안을 거부할 수 있으며, 국회가 통과시켜서 대통령이 서명한 법률도 헌법재판소에 의해 무효로 판결될 수 있다.

‘다수의 독재’를 모르는 한나라당

우리와 같은 대통령제 국가인 미국도 마찬가지이다. 제임스 매디슨 등 미국 헌법의 아버지들이 단순 다수결이 위험할 수 있다고 보아 각 주(州)는 인구와 관계없이 상원의원을 각 2명씩 선출하게 하는 등 단순한 다수 지배를 견제하는 장치를 여러 곳에 설치해두었다. 상원은 ‘필리버스터’라는 의사방해 행위를 인정해서, 전체 의원 100명 중 60명이 동의해야 필리버스터를 종식하고 표결에 회부하도록 했다. 무슨 입법이든 양당이 충분한 협의를 거치지 않을 수 없는 것은 당연하다. 민주주의에서는 ‘다수 지배(majority rule)’ 못지않게 ‘다수의 독재(tyranny of the majority)’를 방지하는 것도 중요한데, 이런 상식을 현 정권과 한나라당 지도부는 모른다. 

요즘 집권 세력이 툭하면 내세우는 ‘법치’도 마찬가지이다. 만일에 모든 법이 정당하다면 ‘악법(惡法)’이라는 단어는 존재하지도 않을 것이다. 국회가 통과시킨 법률에도 ‘악법’은 있는 법이고, 그런 ‘악법’으로부터 시민적 자유를 보호하기 위해 헌법재판소가 있고 법원이 존재한다. 그런데 요새 별안간 법률을 집행하면 ‘합법’이요, 법률을 위반하면 ‘불법’이라는 허울 좋은 ‘형식적 법치주의’가 성행하고 있다. 법과 정의(正義)는 동전의 두 면과 같아서 정의에 부합하지 않는 ‘법치’는 저항을 초래하고 마는 것은 역사가 웅변으로 증명하고도 남는데, 현 정권은 그것을 모르는 것 같다. 이대로 가다가는 집시법(集示法)이 헌법 위에 올라탈 상황이 벌어질까 걱정된다.

이명박 대통령은 경선 후보 시절부터 ‘대한민국의 정체성’ ‘보수’ ‘법치’ 같은 말은 일절 하지 않았다. 그 대신 “운하를 건설하면 국운이 융성한다” “주가 3000 국민 성공 시대를 연다” 같은 ‘실용’을 강조했다. 그러다가 ‘촛불’과 금강산 관광객 피살 등으로 ‘실용’에 바탕을 둔 정책이 좌초하고, 자체의 지지 기반이 취약해지자 뒤늦게 ‘국가 정체성’과 ‘법치’를 내세우고 안보 보수 세력에 기대고 있는 것이다. 

▲ 이명박 대통령이 청와대에서 집권 2년차 국정 운영 방향을 제시하는 신년 국정연설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오만’이 얼마나 위험한가는 미국이 실패한 베트남 전쟁과 이라크 전쟁의 경우가 잘 보여준다. 베트남 전쟁은 린든 존슨 행정부의 ‘오만’이 초래한 것이고, 이라크 전쟁은 조지 부시 행정부의 ‘오만’이 초래했다. 반면, 성공한 대통령으로 뽑히는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은 ‘설득의 리더십’을 구현한 지도자였다. 레이건은 자기와 견해가 다른 민주당 정치인이나 진보적 언론을 결코 적대시하지 않았다. 그는 해박한 역사 지식과 유머로 가득한 말과 글로 국민의 마음을 움직여서 국정을 끌고 나갔다. 재직 당시에는 높은 인기를 누리지 못했지만 해리 트루먼 대통령이 보여준 리더십도 오늘날 우리에게 많은 교훈을 준다.

미주리의 시골 출신으로 대학도 나오지 못한 트루먼은 훌륭한 인물들을 각료로 발탁해서 그들과 함께 국정을 이끌어갔다. 딘 애치슨, 조지 마셜, 애버럴 해리먼 등 학식과 경험이 출중한 인물들을 중용해서 냉전 체제로 급변하는 당시 위기에 적절하게 대처했다. 딘 애치슨 국무장관이 파리에서 어려운 회의를 성공적으로 이끌고 귀국하자 트루먼 대통령은 공항으로 애치슨 장관을 마중 나가기도 했다. 일본에 대한 원자폭탄 투하, 한국전쟁 참전, 맥아더 파면 등 역사를 바꾼 중요한 결정을 많이 내린 트루먼은 겸허하지만 용기 있는 지도자였다. 오늘날 우리에게는 트루먼처럼 겸허하고, 레이건처럼 설득을 잘하는 대통령이 필요하지 않은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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